소설리스트

악당들의 최애는 나 (30)화 (30/152)

“어? 사탕이.”

루미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사탕을 눈으로 좇았다.

마차가 달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의자 안쪽으로 쏙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면 찾기 더 어려워질 테니 얼른 주우려고 손을 뻗었다.

콩!

공교롭게도 사탕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건 루미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엔디미온과 그대로 머리 박치기를 한 루미나는 황급히 이마를 문질러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누님.”

“아냐. 죄송할 건 없어.”

잽싸게 다시 손을 뻗은 루미나가 사탕을 주워서 엔디미온에게 건네줬다.

“잊지 말고 챙겨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단 걸 먹으면 머리가 훨씬 잘 돌아가거든.”

“네, 네.”

머리를 부딪친 충격 때문일까.

어쩐지 엔디미온이 조금 멍청해진 것 같았다.

실제로도 머리에 거센 충격이 가해지면 지능이 하락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굉장히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혼이라고 하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마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엔디미온의 목소리가 그대로 묻혔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엔디미온의 말을 듣지 못한 루미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엔디미온이 살짝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아카데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관계자를 만나기 전까지도 그런 상태였다.

“자세한 얘기는 시험이 끝나면 해 줄게. 힘내!”

“……네.”

루미나는 저도 모르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소년의 머리를 살펴보게 됐다.

‘이마에 혹이 생긴 건 아니겠지?’

엔디미온의 반응이 평소보다 느렸다.

루미나 본인도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저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엔디미온보다 자신의 머리가 더 단단한 걸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었다.

“시험 잘 치고 좀 이따 보자.”

“……네.”

이쯤 되면 마차 안에서 재빨리 치료해줘야 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카라얀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쓰지 않겠다고 루키우스와 약속한 탓에 여의치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되는 엔디미온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자그마한 소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미소를 지은 루미나가 애쉬를 돌아봤다.

“애쉬 경. 시험 시간이 굉장히 길다고 알고 있는데 그동안 시내 구경이나 할까?”

끄덕.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루미나가 굳이 엔디미온을 따라 나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엔디미온과의 친목.

둘째. 애쉬와의 친목.

속물적으로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미래의 소드 마스터와 친해질 기회? 흔치 않았다.

‘그리고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거든.’

전생에서는 올리비아가 루키우스를 배신하며 뮤네즈 가문이 몰락했다.

루미나는 당시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배신자! 네가 올리비아 뮤네즈냐!”

“올리비아 뮤네즈?”

“하트 공작의 부관인 주제에 간도 크게 공작을 배신해서 결국 가문이 몰락한 여자의 이름이잖아. 몇 년이 지났다고 그걸 몰라?”

한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 사람아. 말조심해. 이런 얘기를 떠드는 걸 공작님이 알면 경을 치게 될 거야.”

“…….”

“그 여자가 공작님을 배신한 건 알고, 공작님께서 그 얘기가 떠돌지 않길 바라는 건 모르다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하긴. 나 같아도 믿고 등을 맡겼던 부하한테 배신당하면 치가 떨리게 싫겠다.”

희대의 배신자.

그것이 루키우스를 배신한 올리비아가 죽고 나서 따라붙은 별칭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배신자의 아들인 애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암월 기사단에 계속 소속돼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소드 마스터가 탐나는 인재라 내버려뒀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배신자의 아들인데.

똑같이 배신할 거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뭔가 있어.’

아직 올리비아가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달기 전이었다.

루미나는 뮤네즈 가문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

“애쉬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셔?”

“평범합니다.”

전혀 평범하지 않으시던데.

“아버지는?”

“평범합니다.”

엄청난 철벽이었다.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의 배우자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네. 애쉬의 외모를 보면서 유랑 민족이라고 추측하는 정도?’

뮤네즈 가문은 대대로 공작가를 보필한 봉신 가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현 가주는 올리비아.

올리비아가 부관으로서 제법 조명을 받는 것에 비해 그녀의 배우자는 존재감이 흐릿해 알 수 없었다.

‘유랑 민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으니까 올리비아가 일부러 남편의 정보를 숨긴 걸지도.’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루미나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관적이었다.

괜찮습니다. 평범합니다. 아닙니다.

세 마디로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장난감 가게다. 저기 들어가 보자.”

루미나가 애쉬를 끌고 가게로 들어갔다.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어쩐지 애쉬가 이런 데 관심 있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엔디미온의 아카데미 입학 기념 선물로 줄까 해서. 기숙사에 들어가면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럼 외롭잖아.”

루미나는 곰 인형을 들었다.

붉은 하트 모양이 수놓아진 인형의 가슴을 누르자 소리가 들렸다.

[사랑해!]

다시 한번 인형의 가슴을 눌렀다.

[사랑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싶더니.

인형과 애쉬가 똑같았다.

이 인형을 두고 대화하는 편이 애쉬랑 대화하는 것보다 더 영양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순간 욱한 건지 약간의 분노를 담아서 반복적으로 인형의 가슴을 눌렀다.

애쉬가 놀란 듯이 루미나를 쳐다봤다. 덕분에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중독성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변명처럼 중얼거린 루미나가 곰 인형을 내려놓았다.

“저쪽에도 장난감이 있네.”

루미나가 부자연스럽게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애쉬는 루미나의 호위를 맡기 전, 루키우스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애에 대해 네가 직접 지켜보고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해.”

“제가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넌 연기를 못하니까 그냥 말을 하지 마라.”

“우리 애가 연기를 좀 못하긴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올리비아의 항의에도 루키우스는 꿋꿋했다.

“만일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괜찮다. 평범하다. 아니다.’ 딱 이 정도로 대답하도록.”

그리하여 지금.

지정된 말만 내뱉는 중이었다.

루미나의 호위를 맡은 지 얼마 안 됐지만 보고할 만한 자료를 수집하기에는 충분했다.

애쉬는 루미나에 대한 마음속 보고서를 수정했다.

주의. 보기보다 매우 폭력적.

***

장난감 가게에서 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루미나가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무언가 영 찝찝했다.

“애쉬 경. 사람들이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

“평범합니다.”

……대체 뭐가?

루미나는 고장 난 애쉬를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착각이 아니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기 바빴다. 개중 들고 있던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신문과 루미나를 번갈아 가며 곁눈질하거나.

‘신문?’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문을 들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챈 루미나가 지나가던 신문팔이 소년을 붙잡았다.

신문 한 부를 사서 펼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굳이 신문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찾던 내용이 맨 앞장에 대문짝만 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단독! 하트 공자, 깜짝 결혼 발표. “이미 혼인 신고와 결혼식을 마쳤다.”]

멀리서 찍은 듯, 루미나의 얼굴이 자그맣게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배경을 보니 우리 집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정원으로 나왔을 때 찍은 것 같네.’

엔디미온이나 애쉬가 찍히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카라얀은 워낙 행적을 따라가기 힘드니 찍지 못한 것 같고. 역시 만만한 내 얼굴부터 팔고 보는 거네.’

지금쯤 제도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루미나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됐을 거다.

정작 루미나는 허락한 적 없는 일인데 말이다. 괘씸함이 치밀어 올랐다.

‘사진을 찍었으면 돈이라도 줘야지!’

오늘 하루 종일 제도 사람들의 입에 ‘루미나’라는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다.

신문이 나온 지 하루 이틀이 지났으면 관심이 덜했을 텐데.

‘외출 시기가 좋지 못했어.’

근처 아무 옷 가게나 들어간 루미나는 가게 주인에게 돈을 쥐여주고 대충 아무 모자나 구매했다.

“애쉬 경. 여기 모자.”

혼자 쓰면 섭섭하니까 애쉬까지 챙겨줬다.

깜찍한 분홍색 보닛을 받아 든 애쉬는 가만히 그걸 쳐다보다가 불만 없이 썼다.

“으앗, 애쉬 경! 그거 내 거야! 모자가 바뀌었어!”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정신이 없어 보이던 루미나가 뒤늦게 모자 디자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명처럼 애쉬를 불렀다.

리본까지 앙증맞고 완벽하게 다 묶었는데.

애쉬가 씁쓸한 표정으로 리본을 도로 풀고 루미나와 모자를 바꿨다.

그러면서 마음속 보고서에 추가했다.

변덕스러움.

***

한편, 그 시각.

루미나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그녀를 주시하는 음흉한 시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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