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주인은 루미나가 번화가로 나온 순간부터 뒤를 쫓으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찰칵-.
‘하루아침에 공자비가 돼서 인생 역전한 소녀. 신문사에서 환장하는 소재지.’
지금도 봐라.
다들 흥미로운 눈빛으로 신문을 읽고 있지 않은가.
며칠 동안은 루미나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을 거다. 그만큼 이 사진의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것이고.
‘이번에도 사진을 비싸게 팔 수 있겠어.’
만약 대중들이 루미나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면 다시 장작을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결혼하자마자 다른 남자와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든지.
나이가 어려도 결혼은 결혼이니 충분히 구설에 오를 만한 일이다.
상대는 옆에 있는 호위로 하면 될 듯했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가십에 목마른 대중들을 안달 나게 할 수만 있다면.
‘완벽해. 난 천재야.’
잭은 스스로에게 도취됐다.
그리고 벌써 돈 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즐겁게 루미나의 사진을 찍었다.
‘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군.’
아까부터 보닛을 써서 얼굴이 제대로 나오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진은 각도가 중요하건만. 찍는 사진마다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잭은 최대한 얼굴이 잘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 루미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음? 어디로 가는 거지?’
루미나가 호위와 함께 모퉁이를 돌았다.
그 뒤를 밟던 잭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알기로는 이쪽으로 가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길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모자를 써도 알아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보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잭은 조금 여유를 뒀다가 루미나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갔나.’
잭이 얼굴에 사진기를 갖다 댔다. 그리고 최대한 줌인 한 채로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하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다.
그때였다.
앵글에 잿빛 눈동자가 커다랗게 들어찼다.
“허억!”
깜짝 놀란 잭이 사진기를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양팔이 제압당해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는 덩치가 산만 한, 소년과 청년 사이의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케, 켈톤?!”
켈톤. 예전에는 수소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변질됐다.
바로 제국민과 소수 유랑 민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비하하는 표현이 된 것이다.
사람의 면전에 대고 사용해서는 안 될, 모욕적이기 그지없는 단어였다.
“뭐? 켈톤?”
잭을 제압한 애쉬의 뒤에서 루미나가 쏙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무단으로 남의 사진을 찍는 것도 모자라서 그런 저급한 단어를 쓰다니. 이거 완전 쓰레기 아니야.”
말랑말랑한 얼굴을 한 루미나가 팔짱을 낀 채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애쉬 경. 사진기.”
루미나가 척 하고 손을 내미니 애쉬가 잭의 목에 걸려 있는 사진기를 벗겨서 척 하고 건네줬다.
손발이 착착 맞았다.
“내 사진기……!”
루미나가 사진기를 살펴봤다.
잭은 저 어린애가 사진기를 고장 낼까 봐 조마조마해졌다.
“그,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좀 더 소중하게 다루란 말이야!”
“애쉬 경.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
루미나가 사진기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지나가듯 말했다.
애쉬는 루미나가 뭘 원하는지 알고 착실하게 명령을 이행했다.
반평생 하트 공작 밑에서 구른 노련미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으악!”
잭이 죽어가는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진기를 살펴보던 루미나가 말했다.
“아저씨가 찍었죠?”
“내 사진기니까!”
“이거 말고 오늘 신문 일 면을 장식한 사진 말이에요.”
잭의 입이 다물어졌다.
찍었다고 하면 험한 꼴을 보게 되리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잭을 보며 루미나가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고 사진기를 떨어뜨리는 시늉을 했다.
히익-!
잭은 당장이라도 기절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루미나가 사진기를 위로 올리니 곧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것도 잠깐이었지만.
히익-!
사진기가 떨어질 듯, 말 듯 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몇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간 잭이 잔뜩 지친 표정으로 항의했다.
“나, 날 갖고 노는 거냐?!”
“네!”
발랄한 대답이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찍었어요, 안 찍었어요? 거짓말을 하면 이번에는 진짜로 떨어뜨릴 거예요.”
“찌, 찍었어! 내가 찍었다고!”
목숨 같은 사진기로 협박하자 이실직고했다. 차라리 목에 칼이 들어왔다면 이보다 더 오래 버텼을 거다.
‘그럴 줄 알았지.’
루미나는 신문을 확인한 순간부터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 사람이 미래에 파파라치로서 악명을 떨치는 남자일 줄은 몰랐지만.
‘얼굴 보니까 알겠네.’
당장은 연차가 쌓이지 않아서 쉽게 붙잡은 데다 이런 협박도 먹히는 듯한데, 오 년쯤 지나면 악질 중의 악질이 된다.
‘사진 한 장을 찍어놓고 전혀 사실이 아닌 허무맹랑한 얘기를 붙여서 팔았지. 그 탓에 죽은 사람까지 있어서 한때 떠들썩했어.’
전생의 루미나가 그 얼굴을 알 정도였다.
루미나는 잭을 마주 본 채로 말했다.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얼굴을 마음껏 찍어서 파는 타지도 않는 쓰레기.”
“…….”
“시궁창 인생.”
“…….”
“남의 인생을 빨아먹으며 사는 기생충.”
“그, 그만해!”
아직은 이런 원색적인 비난에 면역이 없는 듯했다.
남에 대한 얘기는 가볍게 떠들면서 본인을 욕하는 건 못 참다니. 참 모순적이었다.
‘당장 사진기를 뺏는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 않겠지.’
결국 다른 사진기를 사서 똑같은 짓을 반복할 터.
그렇다고 몰래 제 사진을 찍은 데다 애쉬를 켈톤이라고 비하한 자를 그냥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잠깐 고민하던 루미나가 두 눈을 반짝였다.
귀여운 외모의 소녀일 뿐이건만.
잭은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고개.”
루미나가 제 눈높이에 맞춰보라고 손짓하자 애쉬가 능숙한 솜씨로 잭의 허리를 꺾을 듯이 숙여놓았다.
“억!” 소리가 나올 만큼 강한 힘이었다.
잭에게 다가간 루미나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속닥속닥-.
가만히 루미나의 말을 듣던 잭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속닥.
속닥속닥?
속닥속닥속닥.
그렇게 두 사람은 몇 번 속닥거리며 한 차례 대화를 끝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
“하나 하면 사람은.”
“사람은?”
“이상하다? 목소리가 작네요.”
“사, 사람은!”
애쉬가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잭이 황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둘 하면 생긴 걸로 차별하면 안 된다.”
“생긴 걸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좋아요. 하나.”
“사람은!”
“목소리가 작다. 다시 하나!”
“사람은!!”
“둘!”
“생긴 걸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잭이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외쳤다.
얼굴까지 빨개졌는데도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루미나가 애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애쉬 경. 화가 났을 테니까 풀릴 때까지 때리고 놓아줘.”
잭이 벌벌 떨었다.
저 덩치로 자신을 때리겠다고?
한 방에 신의 품으로 떠날 게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애쉬의 대답을 듣고 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루미나는 아니었다.
“괜찮다니? 아까 이 사람이 지껄였던 말이 듣기 거북했을 거 아니야.”
“아닙니다.”
“하지만 경을 비하했어!”
“평범합니다.”
애쉬가 지정된 말을 내뱉었다.
실제로도 아무렇지 않았다. 잡종이니 켈톤이니. 살면서 자주 들어본 말이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이유로 경이 하지 않으면 나라도 할 거야! 에잇!”
본인 일처럼 씩씩대던 루미나가 결국 잭의 고간을 걷어찼다.
무지막지한 힘이었기에 순간 잭의 눈에서 흰자만 보이는 듯했다.
“이제 놓아줘.”
루미나가 그 짜증 나는 얼굴에 카메라를 정통으로 던졌다.
후다닥-. 서둘러 사진기를 챙긴 잭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도망갔다.
“엔디미온의 선물을 사지 못했어. 아까 둘러보면서 대충 정했으니까 어서 사고 돌아가자.”
홱-.
몸을 돌린 루미나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까와 달리 들어가는 가게마다 쓸어 담듯이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기세가 무서웠던 터라 루미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쉬가 살짝 질린 시선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애쉬 경. 손.”
폭풍 같았던 쇼핑이 끝나고, 루미나가 요구했다.
애쉬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우르르-.
그의 손 위에 사탕과 초콜릿이 넘칠 정도로 잔뜩 쌓였다.
“아까 엔디미온한테 사탕을 줄 때 경의 시선이 사탕에서 떨어지지 않길래 좋아하는가 보다 했어.”
동생을 챙기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그 모습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호위로 따라온 만큼 당연히 자신은 공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애쉬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이 없었다면 많이 난처했을 거야. 그래서 주는 건데 혹시 싫어?”
“아닙니다.”
먹을 걸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그게 바로 애쉬의 인생 공식이었다.
먹을 걸 줌으로써 좋은 사람으로 격상된 루미나한테 ‘아닙니다’라는 말만 하고 빼기 뭣했다.
좀 더 깊게 고민하기도 전에 애쉬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좋아합니다.”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공작님께서도 사탕을 들고 다니던데 취향이 비슷하네?”
흠칫.
뒤늦게 하트 공작을 떠올린 애쉬가 오한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작이 지정한 말 외의 문장을 내뱉어 버렸다!
분명 보고할 때 공작님께서 이 사실을 눈치채실 텐데……. 벌써 두려워졌다.
“아, 애쉬 경. 실수했어. 이건 내 거야.”
애쉬가 속으로 벌벌 떨었다.
그 사이 루미나가 그의 손바닥에 있는 많은 사탕들 중 딱 하나를 들고 갔다.
뭐지? 하고 쳐다보니 포장지 색깔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건 가져가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애쉬의 시선을 오해한 루미나가 다급히 말했다. 그리고 포장지를 까자 냄새가 났다.
계피 맛 사탕이었다.
사탕을 한 입에 쏙 넣은 루미나가 우물거렸다. 참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애쉬는 루미나를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래.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 다르니까…….
그는 공작에게 전달할 루미나에 대한 보고서를 최종적으로 수정했다.
취향이 독특함.
정말 독특함.
***
“엔디미온!”
엔디미온이 시험을 끝내고 나올 시각이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루미나가 붕붕 손을 흔들었다.
성큼.
엔디미온이 훌쩍 다가와 루미나 앞에 섰다.
비율은 좋지만 아직 어려서 짧은 다리인데, 그 다리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불쑥 꺼낸 이야기는 귀엽지 않았지만.
“결혼 얘기는 뭡니까?”
시험을 잘 친 것 같은지, 문제는 어렵지 않았는지.
그런 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또 본론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