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는요?”
“당연히 떨어지지. 대충 흉내만 낸 거야. 맛도 별로고.”
“그런데 잘 팔리나 봐요. 저희 제품의 판매량을 앗아갈 만큼.”
“응. 그게 문제야. 우리는 약재상을 통해 판매하지만, 이건 아무 좌판에서나 구할 수 있어서 접근성이 좋거든.”
“그러면 효능을 의심할 텐데요?”
“사람들이 바쿠스의 효과를 알잖아. 그래서 바쿠스인 줄 알고 구매하는 거지. 그런 사람이 굉장히 많아.”
루미나는 침착하게 뚜껑을 열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향이 비슷했다.
곧바로 한 입 마셔봤다.
‘맛은 다르네.’
바쿠스의 병 디자인 자체가 독특한 것도 아니었고, 맛도 다르니 직접 가서 따질 수도 없었다.
“확실히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애매하네요.”
루미나가 차분하게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으니 브랜든이 황당해했다.
처음에 이걸 보여주면 우리 꼬마 마님의 작은 심장이 얼마나 놀랄까 싶어 조마조마했었다.
그런데 전부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왜 놀라는 척도 안 하는 거야?”
“아.”
놀라야 했던 건가?
고개를 든 루미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브랜든을 쳐다봤다.
그리고-.
“우와. 놀랍다. 우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펼친 두 손을 들어서 깜짝 놀란 제스처를 했다.
“진짜 놀라워 보인다.”
“그렇죠?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애가 어른 놀리는 데 도가 텄다.
에휴.
한숨을 내쉰 브랜든이 비장의 수를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놀라게 해 주지.”
“와, 얼마나 놀라운 소식일까.”
전혀 기대가 없어 보이는 루미나의 태도에도 브랜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것을 만든 작자가 테레사 발레스라고 한다면?”
“와. 놀랍네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왜 놀라지 않는 거야?!”
브랜든이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뜯을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필살 비장의 무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요.”
“어떻게?”
“저희 집안 핏줄이 좀 양심이 없기로 유명하거든요.”
친가나 외가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비슷비슷했다.
“그래서 이대로 내버려둘 거야? 네 친척이니까 눈감아주려고?”
“아뇨.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제 고모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짓밟을 예정이었다.
마침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야심으로 불타올랐던 루미나의 마음이 기름을 부은 듯이 더욱 활활 타올랐다.
“그렇다면 나한테 한 가지 의견이 있는데.”
“뭔데요?”
“바쿠스 5000이라고 해서 더욱 강력한 약을 만드는 건 어때? 효과가 지금의 오천 배인 거야.”
브랜든이 신이 난 어조로 말했다.
제품에 차별성을 두자는 의견이었다.
“……오천 배면 사람이 죽지 않을까요?”
마치 사랑의 묘약처럼.
“아. 그러면 체감상 오천 배. 두 배, 열 배, 이러면 솔직히 눈으로만 봤을 땐 확 와닿지 않잖아.”
좋은 의견이었다.
루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숫자를 붙이는 건 저쪽에서도 따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품의 안정성 문제로 에리카와 상의를 해야 하고요. 이 사태를 타개하려면 방안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팔짱을 낀 채로 ‘흐음’ 하고 고민하던 루미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박사라는 사람은 병을 통일해서 그렇게 생긴 병이 사랑의 묘약이라고 인식하게끔 했잖아요.”
“병을 바꾸게?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라. 작정하고 따라 한 만큼 어떻게 바꾸든 또 따라 할 거야.”
브랜든도 브랜든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따라 하지 못할 만큼 독특한 용기를 만들려면 단가가 올라가지.”
“…….”
“오히려 적자가 날 수도 있어. 또 단가를 올리면 반발이 생길 거고.”
브랜든은 단순히 루미나의 수족 역할 이상으로 이 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현실적인 대책과 조언을 줬다.
‘꼭 고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바쿠스를 베낀 제품을 냈을 거야.’
그러니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제품이라는 인상을 남겨야 했다.
“용기를 새로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그것만큼이나 비용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 될 만한 방법이 한 가지 떠올랐어요.”
“뭔데, 뭔데?”
속닥속닥-.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아! 아니, 이런 식으로 판매하면 네 말대로 장기적으론 훨씬 이득이니 꼭 해야겠어.”
이런 걸 보면 브랜든과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그리고 사람을 한 명 찾으려고 해요.”
“사람?”
“네. 이름은 라일리 킨즈.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에요.”
“뭐 하는 사람인데?”
이 상황에서 엄청난 도움이 될 사람인가!
그런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브랜든이 루미나를 쳐다봤다.
“어, 음.”
브랜든의 기대를 잔뜩 받은 루미나는 난처한 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백수요.”
***
테레사는 탐욕스럽게 눈을 빛냈다.
그녀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금화가 두 개의 탑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는 기다란 손으로 금화를 하나 집어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손수 금화를 세는 행동은 몇 번이나 해도 질리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돈이었으니까.
“이게 겨우 한 달 만에 번 돈이라니.”
“다음 달이면 배가 돼 있을 겁니다. 부인.”
“그래요. 아직 부족하죠.”
이제껏 판을 벌였던 사업과 비교하면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아이작과 모르간 또한 욕심이 그득그득 담긴 눈빛으로 금화를 쳐다봤다.
“랑슈스의 돈이 보태졌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금화를 세던 테레사가 불평했다.
흑마법이 연루된 사업에 뛰어든 것부터가 잘못이건만 테레사는 전혀 자신의 잘못을 되짚지 않았다.
“그래도 고난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이번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거고요.”
“…….”
“몇 달만 더 지나면 재산이 복구될 겁니다.”
자신이 제안했던 일이 생각보다 훨씬 잘 풀리자 기세등등해진 아이작이 말했다.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가 칙칙하니 조각상을 다시 사야겠어요. 압류당했던 것보다 더 값비싼 것으로.”
“그러죠. 부인.”
평생 귀족으로 살아온 테레사에게 돈을 쓰는 행위는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절제하고 절약하는 건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진행했던 사업이 망하다 못해 악귀처럼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끌고 갔다.
한동안 삶이 지옥과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네요.”
어차피 돈은 계속 벌 것이다.
그러니 빚을 갚는 것보다 당장 제 기분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머니. 그러면 저는 약속이 있어서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모르간. 제대로 챙겨 입고 나가렴. 거지꼴로 나가서 우리 가문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없지.”
“네.”
모르간이 향한 곳은 번화가였다.
약속 장소로 가자 한 여인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모르간 님!”
모르간은 연인을 끌어안았다.
“라일리.”
“하고 계시는 일이 잘 풀렸나 봐요. 멀리서 봐도 표정이 너무 밝은 거 있죠.”
“라일리, 네가 행운의 여신인가 봐. 널 만나고 나서부터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
“모르간 님도 참.”
라일리는 발레스 내외가 구속된 이후 한 푼도 없던 모르간이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여인이었다.
평민인 그녀는 오페라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처지가 어렵기는 피차 마찬가지라 통하는 게 많았다.
그렇게 그들은 단숨에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아, 맞아요. 제게도 좋은 소식이 있어요!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관계자분들 반응이 좋은 거 있죠? 이번에는 반드시 캐스팅될 거예요!”
“잘됐네.”
“제가 배우로서 성공하면 모르간 님의 어머니이신 발레스 부인께서도 저를 달리 보겠죠?”
“그럼. 그렇고말고.”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테레사는 제 아들을 평민이 아닌 번듯한 귀족 영애와 결혼시키고 싶어 했다.
그 뜻을 아는 모르간은 어머니의 눈을 피해 라일리와 몰래 만남을 가졌다.
라일리가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테레사는 끝까지 그녀의 핏줄을 물고 늘어질 거다.
동생인 랑슈스 백작의 불행이 잘못된 배우자를 들이면서 시작됐다고 믿었으니까.
이어서 라일리가 뭐라고 하려 했다.
모르간은 대화 주제를 회피하기 위해 그녀에게 열렬하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
오페라는 귀족 사회에서 즐기는 최고의 오락이었다.
그런데 연기력, 가창력, 얼굴까지 모두 빠지지 않고 뛰어나 칭송받던 오페라 가수 카멜라가 몰락하며 귀족들은 심드렁해졌다.
극이 아무리 빼어나도 연기하는 배우가 종이 인형 같으니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멜라의 부재 이후 재능을 가진 여배우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하루하루 유행이 바뀌는 수도 사교계에서 그 공백은 굉장히 길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가 한 명 있었으니.
‘라일리 킨즈.’
카멜라를 이어서 전설이 되리라고 다들 확신했던 여배우였다.
‘곧 있으면 라일리를 스타로 만들 극이 올라갈 예정이라서 만나보려고 했는데…….’
루미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 험담을 하고 다녔을 사촌과 쮸압쮸압 입술을 부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위가 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