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스 내외가 이번 자양강장제 사업의 성공을 확신한 이유는 하나였다.
원조인 바쿠스가 이제 막 부상하기 시작한 신생 제품인데도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쿠스의 판매자에게 엄청난 뒷배가 있지 않는 이상, 이 시기에는 적당히 비슷한 제품이 깔린다 해도 막아내지 못할 터였다.
조사해 보니, 퀸 메를로는 단신으로 제도에 올라온 여인이었다.
좋게 말하면 혈기 넘치는 젊은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딱 뒤통수 맞기 좋은 부류였다.
에리카 가르티라는 학자도 듣자 하니 빈민가를 전전하던 거지라고 했고.
비록 부와 명성을 모두 잃었지만, 그간 사업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발레스 내외에게는 당해내지 못할 이력이었다.
바쿠스의 지분을 꿀꺽하기 좋은 것이다.
‘그래, 분명 그렇게 됐어야 했어.’
카피 제품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한 젊은 사업가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테레사는 퀸 메를로가 공급을 늘려 수요를 맞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테레사 또한 공격적으로 맞대응하기 위해 제조 물량을 늘린 것이었는데…….
“여보. 저게 대체 뭐죠?”
바쿠스의 판매처는 약재상이었다. 그 한정된 판매처가 베케슈의 판매를 늘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바쿠스가 판매되는 광경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마공학으로 만든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노란 옷을 입은 중년의 여인이 네모난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손수레에는 ‘바쿠스 판매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년의 여인이 손수레를 끌고 한 걸음 가면 한 개가 팔리고, 또 한 걸음 가면 한 개가 나가는 격이었다.
테레사와 아이작은 판매원이 조금 한가해졌을 때 손님인 척하며 접근했다.
‘이 손수레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내야 해!’
네모난 통 같은 수레의 뚜껑을 열자 냉기가 흘러나왔다.
마공학으로 냉각 기능을 장착한 것이다.
‘냉각 기능이면 이 수레 하나 값이 어마어마할 텐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바쿠스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모인 지역을 돌아다니는 중년의 여인.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그녀가 좀 더 멀어지기 전에 바쿠스를 잔뜩 구매해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게다가 음료가 차가우니 미지근한 음료보다 훨씬 신선하다고 느끼게 됐다.
베케슈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불쾌감을 숨긴 테레사가 손수레를 가리켰다.
“크흠흠. 이것의 이름이 뭔가요?”
“사장님께서는 뽀삐라고 부르자고 하더라고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
“……사장님이라면 퀸 메를로를 말하는 거죠? 잘 아시는 사이인가 봐요.”
“아뇨, 아뇨. 그분과는 전혀 면식 없어요.”
순간 거짓말일까 하고 의심했는데 그런 눈치는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따로 사람을 보내서 간단한 일거리를 주고 싶다고 제안해 주시지 뭐예요. 참 감사한 분이죠.”
“…….”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서 나가면 인생의 자리가 좁아지기 마련이잖아요.”
이해하지 않느냐는 듯, 중년의 여인이 테레사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곧 아는 얼굴을 보게 됐는지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
루미나는 여유롭게 차를 홀짝거리면서 브랜든에게 보고를 들었다.
그다지 달지 않은 차인데도 어쩐지 오늘따라 달게 느껴졌다.
“바쿠스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니까 크게 따지지 않고 만들어 줘서 다행이었지.”
바쿠스의 등장으로 일의 능률이 크게 오른 공업 지구에서 큰 호감을 얻고 있었다.
그 덕을 많이 보게 됐다.
‘마공학으로 만든 제품이라 그런지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냉각 기능이 있어 꼭 바쿠스뿐만 아니라 다른 걸 팔 때도 유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테레사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질 걸 상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고모님께서는 어때요? 이번 사태로 굉장히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계실 것 같은데.”
“그쪽이야 뭐 난리 났지.”
브랜든이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무슨 수를 쓸 거라고 예상하긴 했나 봐. 그에 발 맞춰서 빚을 지면서까지 무리해서 제조 물량을 늘렸더라고.”
“전부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이제까지 추이를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거고요.”
하지만 상황이 반전됐다.
뒤늦게 뽀삐까지 따라 하려고 해도 특허를 낸 데다 값을 감당하지 못할 터.
그렇다고 아주머니들을 포섭하기도 힘들 거다.
‘베케슈가 바쿠스를 따라 한 거라고 말해놨지. 지금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퍼졌을걸.’
아주머니들의 입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말 대단해! 돈 모으는 아이디어를 기가 막히게 떠올린다니까.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가장 큰 문제는 판매 장소가 한정됐다는 것과 바쿠스라는 이름이 구매자한테 익숙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지.”
“단점을 어떤 식으로 보완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을 뿐이에요.”
사랑의 묘약은 용기를 똑같게 해서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반면 바쿠스는 뽀삐를 이끄는 노란 옷의 아주머니라는 이미지로 각인시키게 됐다.
애매하게 따라해 봤자 전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확실한 대처법이었다.
“돈 맡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모습이 상인의 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그런 출생의 비밀은 없어요.”
“하지만 사업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그……, 그런 게 있어요.”
루미나는 전생에서 들었던 수많은 사업 실패담을 떠올렸다.
도박장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잘했는데 운이 나빴을 뿐이야!”
그러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본인의 인생 실패담을 떠벌렸다.
‘덕분에 반면교사로 삼을 게 많았지. 심지어 나는 미래까지 알고 있으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며 대다수가 실패를 한다.
그러니 꼭 사람들에게 알려진 성공을 따라 하려 하지 않고, 실패의 반대만 해도 망할 일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루미나는 금전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입장이었으니 진행까지 일사천리였다.
‘역시 돈이 최고다.’
뽀삐는 마공학의 도움으로 손수레에 살짝만 힘을 줘도 잘 나아가게끔 설계됐다.
연륜이 있는 아주머니께 무게가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런 게 뭔데?”
“사실 전 천재예요.”
루미나가 어깨를 쫙 펴며 말했다. 당당한 소녀의 말을 듣고 브랜든이 유쾌하게 웃었다.
“아. 맞아. 대장이 너한테 앞으로 더 잘해 줄 거야.”
“네? 지금보다 더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여기서 더 잘해 줄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분에 넘치는 수준인데.
브랜든은 전혀 믿지 못하는 루미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 루키우스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내가 흑마법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니까 바로 박사가 연관됐다는 걸 알아챈 눈치더라. 나한테 잠깐 다른 데를 보라고 하더니 망설임 없이 능력을 썼어.”
“…….”
“능력을 쓸 때마다 본인이 아플 수밖에 없는데도 박사를 쫓는 대장을 위해 그 힘을 쓴 거야.”
그때까지도 루키우스는 요지부동이었다. 브랜든이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러니까 대장. 애를 혼내지 말고 잘해 줘! 아직 어린 애가 얼마나 착하고 기특해. 나 같으면 진즉 딸로 입양했겠다.”
“……그건 안 된다.”
“응?”
“이미 내 며느리니까 입양은 안 된다.”
대화는 완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루키우스가 루미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 터라 브랜든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런 게 있어.”
“되게 불길하네.”
“잘해 준다는데 불길하다니.”
“아저씨의 얼굴이 불길해서 그래요.”
“뭐?! 이 세상 최고의 미남으로 얼굴 바꿔줄까?”
말 한마디에 어찌나 흥분하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브랜든을 말리느라 루미나는 혼쭐이 났다.
***
그리하여 지금.
루미나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러다 설탕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테이블 위에 잔뜩 놓인 달달한 케이크와 음료.
적당히 볕이 드는 테라스의 휴식 공간.
그곳에서 루미나는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한 채 오늘도 까만 루키우스를 쳐다봤다.
그녀의 옆에는 카라얀이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루키우스가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그림 동화책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 지금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건 루키우스의 동화책 낭독을 듣기 위함이었다.
루미나가 열 살만 어렸다면 훈훈했을 장면이었다.
‘저번에 무릎 위에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하더니.’
루미나의 필사적인 노력과 카라얀의 분노 끝에 무릎 위는 기각됐다.
그러나 동화책 낭독은 피할 수 없었다.
‘엔디미온의 편지를 읽으러 도서관에 간 날. 카라얀 님한테 그림 동화책을 잔뜩 요구했던 게 아버님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사실 이게 다 브랜든이 잘해 주라고 한마디를 한 탓이었다.
루키우스는 달리 루미나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루미나를 만나고,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귀한 것들을 모두 선물해 줬다.
물질이 풍족하니 동화책을 읽어주겠다는 발상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가 무심하다 못해 심드렁함을 숨기지 못한 채 기다란 손가락으로 동화책을 넘겼다.
미리 내용을 확인하는 듯했다.
꿀꺽.
루미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팔랑팔랑-.
동화책을 쓱쓱 넘기던 루키우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죽었다.”
“……?”
“전부 죽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