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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최애는 나 (112)화 (112/152)

“대체 왜…….”

루미나는 그가 건넨 선물을 선뜻 받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비를 맞으면서 이것을 사 온 이유를.

심지어 지금 제비꽃 설탕절임을 판매하는 가게를 찾으려면 멀리까지 나가야 했다.

루미나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카라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갖고 싶어 했으니까.”

루미나가 부티크에서 친우들을 만나고.

카라얀은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의는 아니었다.

귀가 워낙 좋은 탓에 이야기가 다 들렸던 것뿐이지.

제비꽃 설탕절임인지 뭔지.

꽃은 아무 데나 피어 있으니 대충 그걸 따서 설탕을 쏟아 넣으면 되는 일 아닌가?

설탕덩어리일 뿐인데 뭐가 그리 낭만적이라고 꺅꺅대며 좋아하는지.

그것이 유명해진 이유까지 얼떨결에 듣게 됐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시시해.’

다소 부루퉁하게 있긴 했지만 간간이 들리는 루미나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목소리만 듣고 있자니 괜히 얼굴이 보고 싶어서 카라얀이 슬쩍 그녀를 곁눈질했다.

“바르텐 영식도 예약을 하고 꼬박 한 달을 기다렸대요.”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제비꽃 설탕절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루미나를. 어쩐지 부러워하는 듯한 눈빛을.

제 일처럼 기뻐하며 웃고 있었으나 분홍빛 눈동자가 딱히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정황상 부러워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나 때문이야.’

이게 다 섬세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자신 탓이었다.

가까이 있으면서 루미나가 원하는 것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니.

‘갖고 싶어도 성격상 시치미를 뚝 떼겠지.’

루미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욕심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뭐라도 안겨주려고 하면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라고 주저하는 눈빛을 했다.

그런 주제에 정작 남은 잘 챙겨줘서 저러다 사기꾼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결혼도 나 같은 얼굴이 취향이라서 다행이지. 만약 웬 놈팡이한테 좋다고 했으면 답도 없었어.’

툴툴대면서도 발걸음은 부지런히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비꽃 설탕절임을 구하기 위해.

루미나한테 선물할 것인데 정말로 제비꽃을 따다가 설탕을 막 뿌려서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라얀은 곧바로 가게란 가게는 전부 뒤져가며 제비꽃 설탕절임을 판매하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죄송합니다. 현재 재고가 없어서 예약을 하시면 한 달 뒤에……. 손님?”

한 달이나 기다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당장 루미나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이니까.

카라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가게로 향했다.

재고가 없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일일이 머릿속으로 세지 않았다.

이 넓은 땅에 그것을 판매하는 가게가 한 곳이라도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음 가게 문을 열었다.

슬슬 루미나한테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증이 들 때쯤에 기다렸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딱 한 개 남아 있습니다. 손님께서는 운이 좋으시네요.”

카라얀을 보고 깜짝 놀란 직원이 잠깐 고민하더니 제비꽃 설탕절임을 포장해 줬다.

카라얀은 리본까지 곱게 묶이는 상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설핏 웃고 말았던 것 같다.

행복해할 루미나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 후 가벼운 걸음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루미나?”

우산을 쓰고 있어 뒷모습이 일부 가려져 있었지만 착각할 일은 없었다.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에 항상 그녀가 있었으니까.

본능적으로 그녀를 찾게 됐고, 수백 명의 사람 속에 섞여 있어도 단번에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네가 꽃을 잔뜩 먹었잖아. 그 모습이 생각나서 사 왔어.”

한참이 지나도 루미나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그린 것 같은 미소를 지어준 것도, 기쁘다는 한마디를 해 준 것도, 그렇다고 상자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짝 눈을 내리깐 채 우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상자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얀은 머쓱해져서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게 됐다.

“처량하게 정원에 있는 꽃 서리 같은 거 하지 말고 이거나 먹어.”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제 마음을 진정시킨 루미나가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입을 열었다.

“따로 사람을 시키면 되는데 왜 직접 나가서 사온 거예요.”

“그러고 싶었으니까.”

카라얀은 그 어떤 포장도 하지 않고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의 본심을 툭툭 털어놓았다.

“당장 너한테 주고 싶었어.”

“…….”

“내가 운이 좋나 봐. 마침 지나가다가 있길래 샀지. 딱 하나 남은 거래.”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주운 듯이 말하고 있지만, 아니라는 것쯤 알고 있었다.

애초에 남들은 꼬박 한 달을 예약해서 구하는 물건을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었을 리가.

“받지 않을 거야? 슬슬 팔 아픈데.”

한 시간 내내 팔을 들고 있어도 멀쩡할 레기온인 주제에 카라얀이 투정을 부렸다.

루미나는 못 이기는 척 조심스레 상자를 받았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상자에는 왕관 모양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루미나가 주목한 점은 그게 아니었다.

비로 흠뻑 젖은 카라얀과 달리 상자에서는 물기를 찾을 수 없었다.

꽃으로 만든 설탕절임 따위가 뭐라고.

평소 눈으로 보는 것마저 질색하는 비에 잔뜩 젖게 됐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상자는 어찌나 소중히 안고 왔는지. 그깟 설탕절임을 제 목숨보다 중히 여긴 듯했다.

순간 루미나의 뺨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결국 그에 대한 감정이 터지다 못해 겉으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

빠르게 우산을 아래쪽으로 내려서 카라얀이 제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꼼수를 썼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숨 죽여 운다고 한들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루미나는 그 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에 파묻히길 바랐다.

하지만 카라얀은 청력이 예민했다. 루미나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왜, 왜 그래? 울어?”

훌쩍.

“진짜 우는 거야? 자, 잠깐만.”

훌쩍거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당황한 카라얀이 손을 허공에 허우적댔다.

루미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눈물을 훔치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우산이 견고한 벽처럼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니. 왜 울어? 아, 널 다그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제기랄.”

킁!

“너한테 욕한 거 아니야!”

루미나가 크게 코를 먹는 소리를 듣자마자 카라얀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만약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당장 우산을 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친 사람처럼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카라얀이 애원했다.

“얼굴 좀 보여줘. 응?”

“…….”

“네가 제일 좋아하는 내 얼굴 계속 안 볼 거야?”

“……전부.”

루미나가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카라얀 님 때문이에요.”

“그래. 전부 나 때문이고, 내가 잘못했어. 미안하니까 얼굴만 보게 해 줘. 제발.”

우는 모습 보고 싶어서 사 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설마 평생 얼굴 보지 말고 살자는 얘기가 나올까 봐 초조해하고 있자니 루미나가 우산을 치웠다.

눈가뿐만 아니라 코까지 빨개져 있는 루미나는 카라얀의 눈에 심장이 멎을 만큼 귀여웠다.

문득 그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음흉한 생각을 하다가 멈칫했다.

제 머리를 쥐어박으려던 그는 대신 손가락을 뻗어서 루미나의 눈물을 훔쳐 주려고 했다.

카라얀은 손가락까지 홀딱 젖어 있어서 찬 기운이 돌았다.

루미나가 움찔했다.

덩달아 움찔한 카라얀은 혹시나 눈물을 닦아주려다 도리어 루미나가 젖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훑었다.

“비가 오는 날이 두렵지 않으세요?”

잠깐 호흡을 멈춘 루미나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두려운 적 없어.”

“거짓말. 힘들어하셨잖아요.”

평소 같으면 비 같은 게 왜 두렵겠냐고 하면서 자존심을 세웠을 거다.

그러나 물기 어린 눈으로 저를 직시하는 루미나를 보고 있자면 조금 부끄럽지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내뱉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아직도 두려워.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어째서요?”

“네가 있잖아.”

그의 대답을 듣고 루미나가 복잡한 표정을 했다.

“혹시……. 아직도 저를 독점하고 싶으세요?”

“으, 응. 당연하지.”

들켰나.

순간 제 속내가 해파리처럼 투명하게 보이나 싶어서 당황한 카라얀이 말을 더듬었다.

사실 들키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전에 마차에서 루미나를 껴안은 채로 독점 중이라는 발언을 당당하게 했으니까.

“가까이 오세요. 혼자 비 다 맞고 있잖아요. 우산이 커서 저희 둘 다 쓰는 것도 가능해요.”

루미나가 카라얀 쪽으로 우산을 내밀자 카라얀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 젖었어. 같이 있으면 너까지 축축해질 거야.”

“상관없어요.”

더는 카라얀의 의사를 묻지 않고 루미나가 그에게 꼭 붙었다.

팔짱을 끼며 빈틈없이 맞닿자 카라얀의 얼굴이 빨개졌다.

얼굴이 어찌나 뜨거워 보이는지 빗물이 전부 증발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퍽-.

응징하듯 우산대가 그의 머리에 박혔다.

장신의 카라얀에게 맞추려면 루미나가 우산을 높이 들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손을 아래로 내리면 우산대에 얼굴이 부딪치고 말았다.

“카, 카라얀 님!”

“……우산은 내가 들게.”

덕분에 음흉한 생각이 조금 날아갔다.

카라얀이 일부러 덤덤한 척하면서 우산을 쥐었다.

그러다 문득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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