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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최애는 나 (132)화 (132/152)

***

“아빠! 아빠!”

오로라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조제프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자상한 아버지 조제프는 한창 카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과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깔끔하지 않은 턱수염.

꾀죄죄한 꼴이 거지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건 오로라도 비슷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을 모욕한 튜베로즈의 귀부인들을 신나게 고발했던 그녀였다.

거액의 위자료를 갚고 이혼해야 할 테니 응징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오로라는 이제부터 좋은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건 영애들의 경멸 어린 시선이었다.

그녀가 하트 공자와 외도 중이라고 소문을 퍼뜨린 게 모두 망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오로라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함께해 줬던 사촌, 루미나마저 그녀를 기피했다.

완벽히 혼자가 된 오로라가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와중이었다.

종이 한 장이 그녀 앞에 도착했다.

“아빠! 이게 무슨 소리야?”

오로라가 들고 있던 종이를 조제프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깃털보다 가벼운 무게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혼이라니? 게다가 알아보니까 노인네의 열 번째 부인 자리던데, 이게 말이 돼?!”

“오로라. 일단 비켜봐라.”

“비켜? 비키라고? 아빠는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옆에서 딸이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는데도 조제프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말이 안 될 건 또 없지.”

눈으로는 한창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상대의 움직임을 좇으며 조제프가 말했다.

“네가 하트 공자와 관련된 헛소문을 퍼뜨린 탓에 혼삿길이 막혔는데 그 와중에 이 아빠가 고르고 고른…….”

“난 이 결혼 안 해! 못 해!”

쾅!

조제프가 테이블에 주먹을 내리쳤다. 그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못하면 네가 어쩔 건데!”

“못생긴 노인네한테서 도망쳐야지!”

“생긴 건 주관적인 거고, 나이는 사랑에 어떤 방해도 되지 않지. 네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아니, 그것만 문제인 것 같아? 이 할아버지가 지난 부인들을 죽였다는 얘기가 있단 말이야!”

오로라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이 이상은 남들이 듣기에 좋지 않았다.

조제프는 황급히 오로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딸아이와 할 얘기가 있어 이번 판은 빠지겠습니다.”

“패가 불리해서 딸아이를 변명 삼는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억지 미소를 지은 그는 오로라를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혹여나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말했다.

“또 이상한 소문 퍼뜨리지 마라. 너의 그 말도 안 되는 망상 때문에 황자님과의 혼담도 그르치고, 아비도 이 꼴이 된 거니까.”

“아빠가 말해 봐. 내가 뭘 했는데? 포도주인가 뭔가 하는 사업은 내 탓이 아니잖아! 아빠 탓이지!”

“네가……!”

오로라를 윽박지르려던 조제프는 이 모든 다툼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말을 바꿨다.

“어쨌든 결혼해라.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이분께서 얼마나 명망 높은지 알고 있니?”

“…….”

“이런 분이 너와 혼인하고 싶다고 했으니 감사하다고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상황인 거다.”

“아빠……. 미쳤어?”

오로라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가 아님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빠 지금 중독이야! 도박 중독이라고!”

“도박 중독이라니? 이건 중독이 아닌 투자다.”

“…….”

“그리고 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 많은 빚을 갚겠니. 널 위해서라도 이게 최선이다.”

조제프는 그동안 착한 사람 행세를 하며 미소를 팔았다.

그다음은 양심이었으며 모든 걸 팔아버린 지금.

마지막으로 팔게 된 건 제 혈육이었다.

조제프는 더 이상 오로라를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믿었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오로라는 결국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조차 올리지 않고, 팔려 가듯이.

오로라의 인생이 칩 몇 개로 거래된 것이다.

조제프는 딸의 인생과 바꾼 칩으로 다시 도박장을 전전했다.

이 칩을 몇십, 몇백 배로 불리고 나서 딸을 되찾아오겠다는 꿈에 부푼 채로.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었다.

도박장을 전전한 그는 갖고 있던 칩을 모두 잃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딸 수 있었는데……! 옆자리에 있던 놈이 내 주의력을 앗아가서 망한 거야! 빌어먹을!”

모든 칩을 잃은 것도 모자라 추가로 칩을 살 현금조차 없는 그는 도박장에서 쫓겨났다.

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잃은 지 오래였고, 아내를 쏙 닮은 딸은 제 손으로 팔아버리지 않았던가.

주린 배를 감싸며 거리를 전전하던 조제프가 골목 한구석에 주저앉았다.

빛이 스미지 않는 곳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보다는 당장 도박장에 출입할 수 없다는 암담함이 그를 덮쳤다.

결혼한 오로라에게라도 가서 돈을 빌려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그의 앞에 섰다.

“당신이 조제프 멜칸입니까?”

“뭐, 뭡니까?”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조제프가 뒤로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않은 채 매일 도박에 빠져서 산 그가 건장한 사내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몸으로라도 갚아야지.”

사내들이 조제프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이거 놔! 놓으라고!”

조제프가 힘껏 반항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그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된 골목은 침묵에 휩싸였다.

***

“아버님.”

똑똑-.

루미나가 문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고서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시간 괜찮으세요?”

“그래.”

루키우스의 집무실.

등 뒤로 무언가를 숨긴 루미나가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와 이제는 지정석이나 마찬가지인 자리에 앉았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루키우스가 말했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

“아버님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헤헤.

루미나가 상대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미소를 지었지만, 상대는 루키우스였다.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어조로 오늘 루미나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던 이유를 언급했다.

“조제프 멜칸이 결국 빚을 갚지 못했다고 하더구나. 따지고 보면 오래 버틴 셈이지.”

“정말요? 그러면 숙부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그 돈을 전부 갚을 능력이 없을뿐더러 현재 자산마저 없으니 몸으로 갚아야겠지.”

신체 또한 재산의 일부였다.

루미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세히 묻지 않았다.

대신 숨기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아버님, 선물이에요.”

루키우스는 루미나가 내민 물건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봤으면서도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을 하게 됐다.

“이게 뭐지?”

“칼바도스요!”

“그건 알고 있다만…….”

루키우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쳐다봤다.

아래가 둥근 병에는 사과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당연하죠. 퀸 상단에서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프리미엄 라인인걸요!”

당당하게 외치던 루미나는 자신이 너무 장사치처럼 말했다는 걸 깨닫고 배시시 웃었다.

“보다시피 병의 입구가 좁잖아요. 다 자란 사과를 넣을 수 없으니까 사과꽃이 필 때 병을 씌워서 사과가 자라길 기다린대요.”

루미나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 과정에서 사과가 자라다가 벌레한테 먹힐 수도 있고,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어서 이렇게 사과 하나가 온전히 들어있기가 참 힘들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몇 병 판매하지 않는대요.”

그중 사과 알이 큰 것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저도 정말정말 어렵게! 우연히! 구했는데 아버님 생각이 나지 뭐예요.”

루키우스는 루미나가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주를 돌렸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덤덤하게 넘어가는 척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나는?’ 싶은 생각이 있었다.

티는 내지 않아도 심기가 영 불편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살짝 입꼬리를 올린 루키우스가 하인을 불렀다.

“잔을 두 개 준비해라.”

“아버님, 저는 아직 술을 마실 나이가 아닌걸요.”

“고작 몇 달 차이인데 괜찮다. 그리고 보통 네 나이 때 레기온들은 병나발도 불지.”

거절은 거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였다.

덕분에 루미나는 대낮부터 루키우스와 함께 대작하게 됐다.

“훌륭하군.”

브랜디를 한 입 대 본 루키우스가 칭찬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입에서 훌륭하다는 평이 나왔으니 이 사과주는 무조건 잘 팔릴 수밖에 없었다.

루미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루키우스가 따라주는 사과주를 빼지 않고 기쁘게 마셨다.

사과주 자체도 달았지만, 복수가 끝나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사과의 풍미를 여유롭게 음미하던 루미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박사라는 사람에 대한 조사는 진척이 있나요?”

칼바도스.

루키우스가 은밀히 움직일 때 쓰는 가명이었다.

전생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은밀하게 가명과 함께 정체가 퍼졌는데, 이제 와서 보니 알 수 있었다.

그가 박사의 뒤를 쫓다가 가명이 밝혀졌다는 걸.

루미나의 질문을 듣고 루키우스의 입매가 일자로 굳었다.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는 건가?’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2황자,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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