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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최애는 나 (149)화 (149/152)

***

마르셀이 엘리엇을 납치해 사라진 후, 암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황궁.

언제 아들들과 관련된 소식이 들릴까 싶어서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좌불안석이던 황제에게 드디어 희소식이 찾아왔다.

“폐하! 엘리엇 전하께서 돌아왔습니다!”

“뭐? 엘리엇이?”

“네! 황궁 앞에 쓰러져 계시는 걸 발견하고 급하게 이송했습니다.”

“……마르셀은?”

“엘리엇 전하 혼자인 터라 마르셀 전하의 행방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알겠네. 일단 엘리엇에게로 가지.”

황제는 마침 소식을 접한 아라벨과 합류하며 엘리엇에게로 갔다.

온갖 고생을 한 듯한 몰골과 신발조차 없이 맨발인 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었다.

엘리엇이 가엾다는 생각 반, 마르셀의 행방에 대한 걱정 반으로 속내가 어지러웠다.

그렇게 엘리엇을 살피고 있으려니 곧 그가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

“그래, 엘리엇. 정신이 드느냐?”

“오라버니!”

엘리엇은 황제와 아라벨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황제가 마르셀의 행방을 물었다.

엘리엇의 눈동자가 처연하게 빛났다.

“마르셀 형님께서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 세상에.”

“형님의 죽음은 저도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마르셀의 시체는?!”

“제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산짐승들에게 뜯어 먹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엘리엇 또한 우울한 표정으로 있었지만, 실제 속내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루미나가 자신의 발명품을 훔쳐서 사라졌다.

루키우스가 개입하여 계획이 어긋날 때를 대비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그걸 가동시킨 것이다.

‘치유의 레기온을 만나서 들떴던 거지. 내가 그녀를 너무 풀어놨어.’

시전자가 바라는 시간대로 짧게 이동할 수 있는 발명품이었다.

루미나의 에테르가 있다면 짧은 시간 여행이 두 번 정도 가능했다.

그래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만 믿고 내보내달라고 외쳤을 땐 비웃었다.

그런 용도가 전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실책이 겹치며 눈앞에서 루미나가 사라지자 분노만이 가득 차올랐다.

‘어차피 본인의 것이 아닌 시간대에 오래 머물 수는 없으니 돌아올 거야.’

문제는 언제, 어디로 돌아오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루미나를 기다리던 박사는 시간 낭비인 걸 깨닫고 황궁으로 향했다.

루미나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황자, 엘리엇의 신분으로 지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황자라는 신분은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 루키우스에게서 숨기에도 용이했다.

“아, 아버지. 죄송해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나 봐요.”

“그래, 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아라벨, 그만 일어나자꾸나.”

어쩔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따라서 아라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던 아라벨은 아차 싶었다.

“아, 이걸 줬어야 했는데.”

아라벨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손수건이었다.

아라벨이 어릴 적에 직접 수를 놓아서 엘리엇에게 선물한 손수건.

원래라면 엘리엇의 방에 고이 보관돼 있어야 했지만, 엘리엇이 행방불명된 후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하인들이 마르셀과 함께 엘리엇의 방을 뒤졌었다.

그때 서랍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손수건이 발견됐다.

잠깐 엘리엇의 침실을 방문한 아라벨은 자신이 선물한 손수건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고 황급히 챙겨 놨다.

워낙 어릴 때 놓은 수여서 제 눈에도 솜씨가 미숙했다. 남들이 보고 비웃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온 엘리엇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손수건을 돌려줘야 하는데 깜빡하고 말았다.

“아직도 이걸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니. 흥, 그런다고 내가 좋아할 줄 안 건가.”

엘리엇 폰 렘브라나.

엘리엇의 이름이 어설프게 새겨진 손수건을 보며 아라벨이 중얼거렸다.

“오라버니 상태가 괜찮아지면 손수건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채겠지. 그때 돌려줘야지.”

손수건이 없어졌다는 걸 알고 우왕좌왕할 오라비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런데 마음에 안 드는데 수를 덧입힐까.”

제 선물을 간직해주어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손수건을 쥔 채로 침실에 들어선 아라벨이 멈칫했다.

“누구야?!”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살수치고는 형편없군. 그깟 기척조차 숨기지 못하면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

“오늘 기분이 좋아서 친히 상대해 줄 테니 어서 나오렴.”

“황녀님…….”

“……루미나?”

아라벨은 당황하고 말았다.

발코니 쪽,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루미나였기 때문이다.

루미나가 아무런 언질 없이 제 방에 숨어 있는 것도 당혹스러운데 더 놀라운 건 루미나의 행색이었다.

“꼴이 왜 그래? 내가 모르는 새 비라도 내렸니?”

“사정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루미나가 다녀왔던 과거 모두 비가 내렸던 터라 신발뿐만 아니라 옷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린 카라얀과 아이리스는 바깥에 비가 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루미나가 젖어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날씨는 쨍쨍하다 못해 구름 한 점 없으니 아라벨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할 만했다.

“그리고 어째서 도둑 같은 모습으로 몰래 찾아온 거야? 경비가 따로 있어서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을 텐데?”

“그건 영업 비밀이라고 말씀드릴게요.”

루미나는 애뮬릿에 대고 현재로 돌아갈 위치를 간절히 바랐다.

박사는 애뮬릿이 공간 이동은 시켜주지 않는다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돌아갔더니 박사의 연구실이라는 허무한 결과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친절한 애뮬릿은 루미나의 바람대로 루미나를 황궁으로 보내줬다.

그것도 아라벨의 침실 한가운데로.

“비밀이 많구나.”

“네. 지금 제가 황녀님을 찾아온 것도 비밀로 해 주세요.”

아라벨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만약 네가 루미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널 감옥에 처넣었을 거야.”

루미나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라벨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설명한다 해도 믿어줄지 의문이었다.

루미나가 고개를 푹 숙이자 아라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젖은 채로 그렇게 안쓰러운 표정을 하면 누가 넘어갈 줄 아나?

“하지만 특별히 네 오만함을 눈감아주도록 하지. 일단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렴.”

그 ‘누구’가 바로 아라벨이었다.

그녀는 이번 한 번만 수상쩍은 루미나의 행동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하지만 루미나는 다급히 아라벨을 붙잡았다.

“황녀님, 일단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봐.”

“제 동생, 엔디미온이 안전한지 알아봐 주세요.”

“네가 직접 집에 가서 확인하면 되지. 아, 이것도 비밀이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뭐. 특별히 그렇게 해 줄게.”

“그리고 엘리엇 황자님께서 황궁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엘리엇의 귀환은 아라벨의 침실에 숨어 있던 루미나의 귀에 들어올 만큼 떠들썩하게 퍼졌다.

때문에 루미나 또한 알 수 있었다.

“맞아. 망할 첫째 오라비한테 납치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어. 다만 그 망할 첫째는…….”

아라벨이 순간 머뭇거렸다.

아무리 미운 짓만 잔뜩 한 혈육이라고 하지만 평생 가족의 틀 안에서 함께 살아왔다.

그의 죽음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씁쓸하고 잔혹한 결말이었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나약한 마음이었으면 왜 애꿎은 둘째 오라버니를 납치한 거냐고. 정말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야.”

“엘리엇 황자님께서 자살이라고 말하던가요?”

“그래. 그래서 도망칠 수 있었대.”

루미나의 표정이 굳었다.

“황녀님.”

지금부터 할 얘기가 아라벨에게 얼마나 잔혹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만약 지금의 엘리엇 황자님이 황녀님의 진짜 오라버니가 아니라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루미나는 아라벨이 쥐고 있는 손수건을 단번에 알아봤다. 익숙한 디자인이었다.

처음 엘리엇을 만났을 때, 그가 흘렸던 것이다.

“그 손수건, 엘리엇 황자님을 위해 황녀님이 직접 수를 놓았죠.”

“맞아.”

“정확히 언제 선물한 건가요?”

“언제라니.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있겠어.”

“엘리엇 황자님이 사냥터에서 변을 당하기 전에 주셨나요?”

“으, 응. 그 직전이었어.”

루미나가 진지하게 밀어붙이는 터라 아라벨은 얼떨결에 전부 답해 주고 말았다.

“지금 황궁으로 귀환한 사람은 더 이상 황녀님이 손수건을 선물한 사람이 아니에요.”

“루미나. 난 네 말을 웬만하면 믿고 싶어.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그러면 확인해 볼까요?”

“…….”

“지금 황궁에 있는 황자님이 정말로 황녀님이 알고 있는 오라버니인지.”

***

엘리엇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루키우스와 카라얀은 곧바로 황궁으로 갔다.

“비켜라.”

엘리엇이 하트 공작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두었기에 시종들은 한사코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하트 부자를 막을 수 없었다. 루미나의 생사가 달린 일이니 더더욱.

안 되면 되게 하라.

힘으로 못 할 건 없었다.

그들이 무작정 엘리엇의 침실로 들이닥쳤으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어디 갔지?”

“그, 그게…….”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처음 질문은 루키우스였고, 뒤에 협박한 사람은 카라얀이었다.

시종이 벌벌 떠는 동안 소식을 들은 황제가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

“하트 공작. 내 아들을 찾는 데 협조해준 건 감사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아직 요양이 필요한 아이에게 이렇듯 무작정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엘리엇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황제가 분개했다.

하지만 루키우스와 카라얀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레기온인 딸을 두고 있어서 레기온이 얼마나 막 나가는지 익히 알고 있기에, 황제는 반쯤 포기한 채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가 엘리엇의 빈 침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엘리엇은 어디로 간 거지?”

설마 하트 공작이 그새 빼돌렸나? 며느리에게 추파를 던진 마르셀이 죽었으니 대신 엘리엇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건가?

황제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루키우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제껏 입을 꾹 닫고 있던 시종의 대답으로 오해는 금방 풀렸다.

“아라벨 황녀님과 외출 중이십니다.”

“외출? 회복 중인데 갑자기 웬 외출이란 말이냐?”

“황녀님께서 하도 강권하셔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하셨습니다.”

“아라벨.”

황제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면 루키우스는 냉랭한 어조로 시종에게 따져 물었다.

“어디로 갔지?”

“그……. 사냥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황실 소유의 사냥터로 가셨습니다.”

더 이상 입을 다물었다가는 공작의 손에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결국 시종이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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