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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벗으세요, 전하 (5/145)

5화. 벗으세요, 전하2021.03.18.

로제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르문트를 응시했다. 아르문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기만 했다. 방금 시한부 선고라는 엄청난 짓을 한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16549564435698.jpg‘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로제타는 입을 뻐끔거리며 방금 그가 보여줬던 이상한 태도를 되짚었다. 이제야 저 얼굴이 평소와 달리 너그러운 이유를 알겠다. 그녀의 말에 성실히 대답해준 이유도. 그녀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예의를 베푼 것이었다. 로제타는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바보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16549564435698.jpg“그, 그럴 리가 없는데요.”

16549564435707.jpg“그래. 너도 이리될 줄은 몰랐겠지.”

아르문트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6549564435707.jpg“해독하려 최선은 다했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더군. 원한다면 다시 신관을 불러주겠지만 소용은 없을 거다.”

16549564435698.jpg“예? 아니…….”

16549564435707.jpg“가족에게 위로금은 충분히 전달하지. 그것 말고도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주겠다.”

16549564435698.jpg“아니, 저기.”

16549564435707.jpg“죽기 전까지는 마음껏 누리고 가라.”

말 좀 하자, 말 좀! 로제타는 저놈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답답해서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16549564435707.jpg“그 정도는 책임지지. 나 대신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입가에 자조의 빛이 스쳤다. 그 대신 죽어 나간 하인이 몇이던가. 기사는 또 몇이고. 당신 때문에 죽게 되었다며 원망하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도 했다. 저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잔상으로 남아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한편, 로제타는 어두운 얼굴로 자책하는 아르문트의 모습에 난감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16549564435698.jpg‘아니! 안 죽는다고!’

일반인이야, 빨리 해독을 해도 삼킨 독의 양이 너무 많을 경우 당연히 죽을 수 있다. 그러나 로제타는 일반인이 아니라 기사다. 그것도 아주 강한. 물론 서른 살의 로제타에 비하면 스무 살의 로제타는 햇병아리나 다름없다. 때문에 로제타는 회귀할 때마다 약한 제 몸뚱이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다만 그것은 자신과 비교했기 때문일 뿐, 다른 자들과 비교한다면 스무 살의 로제타는 명백한 강자이다. 로제타는 본래 스무 살에 기사가 되었다. 마음만 같아선 다른 기사들처럼 일찍이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계속되는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그 때문에 스무 살이 되어 겨우 입단했을 때 많은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16549564464641.jpg-“여자가 기사는 무슨 기사야? 시집이나 갈 것이지.”

16549564464641.jpg-“스물에 입단이라니, 쪽팔리지도 않나? 나는 열 살부터 기사 수련을 받았다고.”

16549564464641.jpg-“저 가는 몸으로 무슨 검을 든다고. 식칼이나 들라지, 하하!”

대부분 이런 식의 조롱이였다. 그러나 그녀를 비웃던 놈들은 며칠 되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입단한 지 고작 사흘 만에 로제타가 상급 기사와 대련해 이겼기 때문이었다. 로제타는 일곱 살 때부터 검을 수련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스승은 따로 없었고, 대련을 도와주는 친구는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대마법사였다. 타고난 재능에 대마법사와의 대련 수백 번이 더해지니 실력이 날로 향상됐다. 그리하여 스무 살의 로제타는 무척이나 강해질 수 있었다. 무려,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검의 경지, 소드마스터에 이르기 위해선 총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양상이 득도하는 것과 비슷해, 검사들은 이를 ‘깨달음’이라고 부르곤 했다. 어느 날 언질도 없이 그녀의 몸에 발현한 깨달음은 그녀를 보통 인간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외모가 달라지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근육이 잘 붙지 않아 스트레스였던 팔로도 훨씬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어지간해서는 외상을 잘 입지 않게 되었으며, 병이나 독에 적당한 면역이 생겼다. 즉, 어지간해서 독으로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해독제를 먹었다면 더욱이.

16549564435698.jpg‘이걸 사실대로 설명할 수도 없고, 원.’

로제타는 꺼낼 말을 고르기 위해 입술을 한참 달싹거렸다. 예전에 실수로 먹어본 적이 있어 면역이 있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특이체질이라고 할까. 고민 끝에 입을 떼려는 찰나, 불현듯 기발한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16549564435698.jpg‘이거…… 기회 아냐?’

꿀꺽. 로제타가 침을 삼켰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금세 이채가 돌았다.

16549564435698.jpg“괜찮아요, 전하.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로제타의 말에 아르문트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거나, 어떻게든 살려달라며 애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미소까지 살포시 머금곤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16549564435698.jpg“어쩌면 안 죽을지도 몰라요. 저 엄청 튼튼한 편이거든요.”

멍청하다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르문트는 너무 어이가 없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나 계속 헛된 희망을 품게 둘 순 없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16549564435707.jpg“안타깝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16549564435698.jpg“아예 없지는 않을걸요? 뭐, 죽으면 어쩔 수 없고요.”

16549564435707.jpg“……쉽게도 얘기하는군.”

아르문트가 차가운 어조로 그녀를 힐난했다. 아차, 개복치 앞에서 꺼낼 말은 아닌가. 로제타는 멋쩍은 웃음으로 응수하곤 재빨리 본론을 꺼냈다.

16549564435698.jpg“그러면요, 전하. 저 소원 하나 빌어도 되는 거예요?”

16549564435707.jpg“소원?”

16549564435698.jpg“원하는 거, 들어주신다면서요.”

로제타가 배시시 웃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서 기대감이 엿보였다. 아르문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요구하든 그의 재량에서 적당히 맞춰줄 생각이다. 자신 때문에 목숨을 버린 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라도.

16549564435698.jpg“곁을 허락해주세요.”

그러나 이 이상한 하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꾸만 그의 예상 범주를 벗어났다.

16549564435698.jpg“전속 하녀로서 전하의 곁을 계속 지키고 싶어요.”

16549564435707.jpg“잊은 모양인데. 넌 며칠 후에 죽을 예정이다.”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짚은 아르문트가 또다시 그녀의 시한부 목숨을 언급했다. 그런 말을 꺼내는 그의 마음도 썩 편치만은 않았으나, 로제타가 자꾸만 잊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16549564435698.jpg“네, 알아요.”

16549564435707.jpg“아는 것 확실한가?”

16549564435698.jpg“네. 그냥, 마지막까지 전하를 모시다 가고 싶어요.”

일순 아르문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부하의 충정에 감동하긴커녕, 회의심이 만연한 눈길이었다.

16549564435698.jpg‘아오, 의심 많은 자식. 이럴 줄 알았다!’

살다 보면 이유 없는 호의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르문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선 그 어떤 행동이든, 감정이든, 이유가 필요했다. 여러 회차를 거듭하며 확실하게 깨달은 바였기에 로제타는 얼른 말을 이었다.

16549564435698.jpg“그러면…… 제 죽음이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요.”

연기력을 끌어모아 처량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16549564435698.jpg“어차피 죽을 텐데,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이 좋지 않은 가족에게 갈 위로금도 마찬가지고요. 차라리 전속 하녀로서 전하의 시중을 들다가 가면 황태자를 모셨다는 명예라도 남잖아요. ”

그제야 아르문트의 얼굴이 풀어졌다.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곁을 달라니. 누군가를 가까이 두는 걸 극히 꺼리는 그로서는 돈이나 권력을 달라는 요청보다 더 곤란한 부탁이었다. 하나 제 목숨값을 지불하기 위해선 그 정도 곤란함쯤은 감수해야 함이 옳다. 또한, 방금 그녀가 쓸쓸한 얼굴로 덧붙인 이유가 유독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제 목숨에 조금의 의미라도 찾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 남 일 같지 않아서.

16549564435707.jpg“……그래.”

아르문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16549564435707.jpg“네 마지막은 내가 지켜주지.”

그러자 로제타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그녀는 너무 들뜬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곤 두 손으로 아르문트의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16549564435698.jpg“정말요? 전하, 약속하시는 거예요?”

움찔. 아르문트가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그녀에게 단숨에 제압당해 입을 맞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마음 같아선 붙잡힌 손을 빼내고 싶었다. 그러나 곧 죽을 사람에게 그리 매정하게 대하자니 양심이 찔렸다. 그렇기에 그는 손을 마주 잡지도 빼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했다.

16549564435707.jpg“그래, 약속하지.”

16549564435698.jpg“서류로 남겨주세요!”

로제타가 해말간 얼굴로 외쳤다. 행여나 그가 의심할까 적절한 이유까지 덧붙이면서.

16549564435698.jpg“그래야 제가 죽고 나서도 대대손손 자랑할 수 있죠.”

16549564435707.jpg“물려줄 아이가 있나?”

16549564435698.jpg“어머, 애인도 없는 처녀한테 그런 무례한 질문을!”

아르문트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눈으로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로제타는 뻔뻔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549564435698.jpg“어쨌든 흔적이라도 남기면 좋잖아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저는 증명서를 남기고.”

16549564435707.jpg“……알겠다.”

아르문트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편했던 손도 이제야 빼낼 수 있었다. 금세 종이를 구해온 그는 만년필을 꺼내 들곤 유려한 필체로 글자를 써 내려갔다.

16549564435707.jpg“이름은?”

16549564435698.jpg“아, 로제타예요. 로제타 메이필드. 애칭은 로즈, 아니면 로지. 장미가 만개한 날에 태어나서 어머니가 지어주셨어요.”

로제타가 해사한 낯으로 대답했다. 말 많은 하녀 아니랄까 봐, 아르문트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은 정보까지 전부. 그녀는 그가 쓰는 내용을 유심히 지켜보다, 저가 원하는 항목까지 살뜰히 추가했다.

16549564435698.jpg“거기에 ‘죽을 때까지’라는 단어도 넣어주세요!”

목소리가 어찌나 평온한지 시한부 선고를 들은 게 그녀가 아니라 아르문트 자신이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윽고 짧은 증명서가 완성되었다. 로제타는 지치지도 않는지 요구했다.

16549564435698.jpg“와! 기념으로 한번 읽어주세요, 전하!”

16549564435707.jpg“너도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 같은데.”

16549564435698.jpg“그래도 제가 읽는 거랑 전하가 읽어주는 거랑 다르잖아요.”

아르문트의 눈썹이 짧게 꿈틀거렸다. 그녀의 맹랑함이 지나쳤던 탓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지적하지 않고 종이를 잡아 들었다. 불쾌감보다는 죄책감이 컸다. 적어도 아직은.

16549564435707.jpg“나, 라그나르 제국의 황태자, 아르문트 볼드윈 폰 라그나르는 로제타 메이필드를 유일한 전속 하녀로 임명한다.”

아르문트가 우아한 발음으로 글자를 읽어 내렸다

16549564435707.jpg“기한은 로제타 메이필드가 죽을 때까지로 둔다.”

며칠 뒤, 자신이 이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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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장까지 손수 만들어준 아르문트는 이제 그만 쉬라며 자리를 떠났다. 사실 반쯤 질린 얼굴로 보아 그가 휴식이 간절한 모양이었다. 그가 사라진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16549564464641.jpg“로지!”

16549564464641.jpg“맙소사, 로제타! 괜찮은 거야?!”

멜라니와 엘리아였다.

16549564435698.jpg“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로제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녀가 쉬고 있는 이곳은 그녀의 방이 아니었다. 원래 그녀는 다른 하녀와 같이 방을 썼다. 여기는 아르문트가 그녀를 배려해 새로 내어준 방이다. 독 한 번 먹고 그의 곁도 허락받고 1인실도 얻다니 일거양득이었다.

16549564464641.jpg“어떻게 알긴? 소문이 쫙 퍼졌는데! 전하 대신 독을 마셨다며!”

16549564464641.jpg“하녀장님이 방을 알려주셨어. 근데 안에 전하가 계셔서 언제 나오시나 눈치만 보고 있었지.”

하긴, 그 까칠이가 있으면 들어올 수 없었겠지. 로제타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16549564435698.jpg“오래 기다렸어? 다리 아프겠다.”

16549564464641.jpg“네가 우리 걱정할 때야, 지금?!”

멜라니의 고함이 귀를 울렸다. 깜짝 놀란 로제타가 시선을 올리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16549564464641.jpg“어떡해. 어떡하냐구. 흐어엉!”

16549564435698.jpg“메, 멜라니. 울어? 왜 울어?”

로제타가 허둥지둥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도움을 구하고자 엘리아를 바라봤으나 이쪽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엘리아도 눈가를 빨갛게 물들인 상태였다. 구슬픈 목소리가 이어졌다.

16549564464641.jpg“너, 너 죽는다며.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끄윽, 끅.”

멜라니가 울다 못해 꺽꺽거렸다. 이를 본 로제타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16549564435698.jpg“아니야! 오해야! 안 죽어, 나 안 죽어!”

걱정하지 마 얘들아! 로제타가 열심히 덧붙였다. 그러자 멜라니와 엘리아의 낯빛이 단숨에 밝아졌다.

16549564464641.jpg“저, 정말로? 오해라고?”

16549564435698.jpg“응! 신관이 다 고쳐주고 갔어. 걱정 마. 소문이 잘못 났나 봐.”

아르문트를 속이는 것은 별 감흥이 없었으나 이들은 달랐다. 퉁퉁 부은 눈을 보자 양심의 가책이 마구 밀려들었다. 로제타는 몇십 분여간 멜라니와 엘리아에게 정말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음이 너무 앞섰던 탓에 백텀블링을 하는 것도 보여줬다. 덕분에 그들은 로제타의 말을 믿었다. 오해가 풀리자 미뤄두었던 수다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취침 시간도 이미 지났겠다, 하녀장의 허락도 받았겠다, 셋은 로제타의 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16549564464641.jpg“친한 친구랑 같이 자는 건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야! 왠지 신난다. 잠옷 파티하는 것 같고.”

16549564464641.jpg“내일 일만 없었으면 정말 신날 텐데.”

16549564464641.jpg“엘리아! 일을 언급하다니!”

멜라니가 엘리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엘리아가 쿡쿡거렸고, 로제타도 덩달아 웃었다. 로제타 또한 처음이었다. 여러 번의 회귀를 모두 포함하여, 단 한 번도 친구와 이렇게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 그래선지 마음이 더욱 들떴다.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진지한 고민거리부터, 사소한 이야기들까지. 로제타도 분위기를 타서 입을 열었다.

16549564435698.jpg“있지,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어떻게 해야 빨리 가까워질까?”

16549564464641.jpg“뭐?! 남자야?”

16549564435698.jpg“응, 남자긴 한데.”

이런, 불쌍한 리처드 경. 멜라니가 짧게 한탄했다. 로제타가 눈을 껌뻑거리며 리처드 경이 왜? 하고 묻자 멜라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과연 이 둔감한 것의 마음을 홀린 것은 누굴까,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16549564464641.jpg“성격이 어떤데?”

16549564435698.jpg“좀 까칠한 편이야. 예민하고.”

16549564464641.jpg“오, 나쁜 남자?”

16549564464641.jpg“나는 마음은 착한데 몸은 나쁜 남자가 좋더라.”

엘리아가 느닷없이 제 취향을 밝혔다. 멜라니가 끄덕거리며 그녀의 고급진 취향을 칭찬했다.

16549564464641.jpg“그렇지, 말은 다정하게 하는데 몸은 막…… 화가 나 있는 거지.”

16549564464641.jpg“막, 울끈불끈?”

16549564464641.jpg“울끈불끈.”

16549564435698.jpg“저기, 그래서 친해지는 방법은?”

로제타가 끼어들어 콧김을 내뿜는 멜라니를 진정시켰다. 그제야 이상형 토론으로 새었던 대화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16549564464641.jpg“남자랑 가까워지려면 역시…….”

멜라니와 엘리아가 시선을 교환했다.

16549564464641.jpg“스킨십이지.”

16549564464641.jpg“응, 스킨십이야.”

상상치도 못한 답변에 로제타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녀는 못 미덥다는 듯 둘을 흘겨보았다.

16549564435698.jpg“갑자기 뭔 스킨십?”

16549564464641.jpg“우리만 믿어. 그만한 게 없다니까, 정말.”

16549564464641.jpg“맞아. 진짜야.”

멜라니가 단호하게 주장했고, 엘리아는 동조했다. 둘은 계속해서 로제타를 설득했다. 물론, 척 봐도 순진해 보이는 로제타를 놀리고자 장난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검에만 몰두한 탓에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던 로제타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그리하여 다음날,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16549564435698.jpg“벗으세요, 전하.”

로제타가 상큼한 얼굴로 명령했다.

16549564435698.jpg“목욕 시중을 들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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