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남자인 친구 (37/145)

37화. 남자인 친구2021.07.08.

갑자기 왜 이래? 로제타는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부탁에 따라 얌전히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그만큼 발레리안을 믿기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스킨십을 해오는 그이기는 하나, 이런 순간까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껴안을 리 없다. 이렇게 판단한 로제타는 멀뚱멀뚱 서서 그가 이유를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이내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가슴 위쪽에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움찔 몸을 떨자 발레리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16549571378134.jpg“이거, 가져가야지.”

아래를 내려다보자 목걸이가 보였다. 발레리안에게 마법을 걸어달라고 줘놓고 받아오는 걸 깜빡한 것이었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이걸 잊다니! 로제타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목 뒤에 스치듯 닿아왔다. 발레리안이 목걸이 착용을 도와주려는 모양이었다.

1654957137814.jpg“내가 해도 되는데.”

16549571378134.jpg“이런 것 많이 안 해봤을 거 아냐.”

달랑거리는 거 귀찮다고 싫어하잖아. 발레리안이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로제타는 큰 부를 얻은 후에도 보석이나 액세서리 따위에 큰 관심이 없었다. 희귀한 것을 얻어도 그저 보관해둘 뿐 직접 착용하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달랑거리는 것이 영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르문트를 호위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사교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몇 안 되는 파티마저도 항상 기사 제복 차림으로 갔기에, 드레스니 액세서리니 하는 것들은 그녀에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발레리안은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을 즐겼다. 귀걸이는 너무 자주 착용해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고, 화려한 로브 위로 각종 장식을 걸치기도 했다. 일부 귀족들은 계집애냐며 그를 뒤에서 헐뜯고는 했으나, 막상 발레리안을 눈앞에서 마주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발레리안이 강하기도 강하거니와, 그의 외모가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가 했으면 웃겨 보였을 단발도, 화려한 치장도,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동시에 훤칠하고 멋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로제타 또한 종종 감탄할 정도이니 어련하랴.

16549571378134.jpg“다 됐어.”

발레리안이 능숙한 솜씨로 목걸이를 채워주었다. 로제타가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옷 위에서 달랑거리는 목걸이가 제법 예뻐 보였다. 목줄을 찬 것 같아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16549571378134.jpg“로즈, 황태자에게 네가 죽지 않는다는 건 말했어?”

1654957137814.jpg“아니, 아직.”

16549571378134.jpg“슬슬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1654957137814.jpg“응,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로제타가 긍정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계속 시한부인 척하는 것은 무리일 듯싶었다. 세타르를 먹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죽든 살든 무언가 결과가 나와야 할 때인 것이다. 시일 피일 미루느니, 이제라도 그에게 말해야 했다. 기적적으로 몸이 다 나았다고.

1654957137814.jpg‘사냥제까지 버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로제타가 아쉬운 마음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사냥제. 이름만 들어도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이 행사는 2년 주기로 열리곤 했다. 올해가 바로 사냥제가 열리는 해로,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사용인들 사이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제타는 이번 해 열릴 사냥제에 기필코 참석해 아르문트를 따라다닐 생각이었다. 네 차례의 회귀 동안 첫해 사냥제부터 무슨 일이 터진 적은 없었지만,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첫 회귀 당시 아르문트는 사냥제에서 암살당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로제타가 원래보다 일찍 그의 호위기사가 되어 주변을 들쑤시고 다닌 것이 미래를 바꾼 모양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누군가가 더 일찍 손을 쓴 것이리라. 이처럼 이번 사냥제에서도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 더군다나 다섯 번째인 이번 생은 유독 일찍부터 사건사고가 많았으니 더욱이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아르문트가 하녀인 그녀를 사냥제에 데려갈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호위기사일 때야 아무렇지 않게 쫓아갔지만, 지금은 적당한 명분이 없었다. 죽기 전 소원이라며 시종 대신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달이나 남은 사냥제까지 자신이 곧 죽는다는 거짓말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과연 아르문트가 자신이 죽을 목숨이 아닌 걸 알고 난 후에도 지금처럼 잘해줄까?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친절했던 까닭이 연민과 부채감인 이상, 죽지 않는다는 걸 알자마자 약속한 것을 모두 무를 가능성이 컸다. 휴. 로제타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1654957137814.jpg“그럼 이제 진짜 가볼게. 선물 고마워, 발레리.”

16549571378134.jpg“필요한 건 더 없고?”

1654957137814.jpg“음. 이번 휴일에 시간 되면 쇼핑이나 가자. 나 옷 좀 사줘.”

16549571378134.jpg“물론이지. 기다리고 있을게, 로즈.”

뻔뻔하기 짝이 없는 부탁이었으나 발레리안은 오히려 달가워했다. 늘 옷을 사준대도 거절하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인사를 대신하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로제타는 별 반응 없이 그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야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가 발레리안에게 다시 손을 흔들어준 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얘기를 나눈다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르문트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야 않았겠지만, 그가 워낙 개복치인 만큼 장담할 수는 없다.

16549571407134.jpg

  오래 지나지 않아 아르문트를 마주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르문트가 그녀를 먼저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16549571407142.jpg“로제타!”

1654957137814.jpg“아, 전하!”

다행히 어디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군.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아까 있던 일이 다시금 떠올랐으나, 발레리안과 대화하며 안정을 되찾은 덕에 이제는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1654957137814.jpg‘그냥 답지 않게 장난을 친 것뿐이야. 고작 손 한번 잡은 건데 뭐!’

생각해보니 아르문트와 한두 번 손 잡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민망해할 이유가 없다. 로제타가 해맑게 웃으며 쪼르르 달려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까처럼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아니었다. 이는 두려움의 심장 박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야에 담긴 아르문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황금색 눈동자 위로 흉흉한 기운이 번들거렸다.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하녀가 저만 두고 홀랑 사라졌으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하다. 로제타가 재빨리 상황 파악을 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곧 그녀의 앞에 다가선 아르문트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16549571407142.jpg“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온 거야!”

1654957137814.jpg“죄송해요, 전하. 본궁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다 그만, 길을 잃었어요. 감히 전하를 기다리시게 하다니…… 정말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로제타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선 사과했다.

16549571407142.jpg“내가 얼마나……!”

아르문트는 말을 잇는 대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그녀의 착잡한 얼굴을 날카롭게 바라보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그러곤 걸음을 옮겨 황실 도서관 밖으로 향했다. 로제타는 그의 눈치를 보며 졸졸 뒤를 따랐다. 좋았던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한참을 걸어 사람이 없는 후원 한편에 다다르자 아르문트가 돌연 우뚝 멈춰섰다.

16549571407142.jpg“……앞으로는.”

그가 로제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그스름한 입술 사이로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6549571407142.jpg“어디 갈가면 말하고 가. 갑자기 사라지지 말고.”

1654957137814.jpg“네, 전하. 꼭 그럴게요. 죄송해요. 불쾌하셨죠.”

한결 누그러진 말투에 안심한 로제타가 재빨리 사죄했다.

16549571407142.jpg“불쾌하기보단…….”

아르문트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16549571407142.jpg“신경 쓰였다. 네가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까 봐.”

말을 마친 그가 홱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던 로제타는 차마 그를 쫓지 못하고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얼굴도 금세 상기되었다.

1654957137814.jpg“저, 전하!”

로제타가 재빨리 뛰어 그를 따라갔다. 그러곤 덥석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예전이라면 당장 손을 내뺐을 아르문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례하다며 지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순순히 그녀에게 잡혀주었다. 그러한 반응에 힘입은 로제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1654957137814.jpg“방금 저, 걱정해주신 거예요?”

분명 ‘네 걱정 따위 한 적 없다’라며 면박을 줄 테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로제타는 이렇게 예상하면서도 그의 입술만을 빤히 응시했다. 묘한 기대감에 숨이 가빠졌다. 아르문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다, 나지막이 답했다.

16549571407142.jpg“그래.”

이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꺼내 보인 진심.

16549571407142.jpg“걱정했다.”

체통도 없이 황실 도서관을 쥐잡듯이 뒤지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용인들에게도 그녀를 본 적 없느냐고 캐물을 정도로. 혹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로제타가 쓰러져 있을까 봐, 자신이 곁에 없을 때 외로이 죽음을 맞고 말까 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것이 걱정이 아니면 무어겠는가.

1654957137814.jpg“전하…….”

자그맣게 중얼거린 로제타가 제 입술 안쪽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쩐지 눈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잔물결을 일으켰다.

16549571407142.jpg“……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미안하다. 사과하지.”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인데, 잘해주기는커녕 소리를 지르다니. 남자 실격이군. 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굳이 평가하자면, 이번 데이트는 실패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옆에 앉아 책을 읽은 게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도 지키지 못했다. 무작정 손을 잡다니. 지금 생각하니 자신이 미쳤던 것 같다. 그러나 계획한 것을 모두 지키지 못했음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와 조용히 앉아 책을 읽던 것도, 다짐한 걸 잊고 손을 잡았던 것도. 지금 이렇게 후원에 함께 서 있는 것도 제법 즐거웠다. 분명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선호하던 그이거늘,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로제타가 많은 것을 바꿔놓은 느낌이었다.

1654957137814.jpg“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전하.”

로제타가 배시시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과하던 것보단 이게 훨씬 보기 좋았다. 자세히 보니 못 보던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옷 안에 감춰져 있던 모양이군. 그가 이렇게 생각하며 찬찬히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광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모조 보석으로 만든 싸구려 목걸이 같았다.

1654957137814.jpg“참, 전하. 드릴 게 있어요.”

16549571407142.jpg“내게?”

1654957137814.jpg“네. 이거, 선물이에요.”

아르문트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녀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었다.

16549571407142.jpg‘나름 첫 데이트라고 선물까지 준비한 건가.’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다는 게 새삼 민망해졌다. 오늘 아침에 결정한 사항이니만큼 준비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케이스를 열자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커프 링크스가 나왔다. 황태자인 아르문트에게야 그리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봉급으로 사려면 밥도 굶어가며 돈을 모아야 할 물건이었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단추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를 응시했다. 어쩐지 생김새가 낯설지 않았다. 이쪽이 훨씬 값나가 보이기는 하나, 그녀의 목걸이와 디자인이 비슷했다. 문득 어디선가 들어본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16549571407142.jpg‘커플 아이템.’

요즘 연인들끼리 이렇게 비슷한 액세서리를 끼는 것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로제타가 아마 그것을 의도한 모양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 마음을 은근히 드러내다니, 맹랑하기도 하지. 단단히 착각한 아르문트가 그녀의 대담함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곧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생겼다. 이게 정말 커플 아이템이라면, 어째서 자신의 것만 이렇게 좋은 걸 샀단 말인가?

16549571407142.jpg‘똑같은 것을 두 개 살 돈이 없으니, 내 것만 비싼 걸 산 거군.’

그래, 하녀 봉급으로 이런 것을 두 개나 살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연모의 상대인 자신에게만 좋은 걸 준 것이다. 어차피 그녀는 오래 살지도 못할 테니까. 그녀의 마음이 참 딱하면서도 속이 쓰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더더욱 기분이 착잡해졌다.

1654957137814.jpg“부디 애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로제타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가끔이라도 껴서 자신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르문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16549571407142.jpg“그래. 매일 끼고 다니지.”

1654957137814.jpg“네?!”

16549571407142.jpg“매일 끼고 다니겠다고.”

뭐 문제라도 있나? 아르문트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로제타가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문제야 없다. 정말 매일 끼고 다닌다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다만 그의 말을 정말 신뢰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녀가 호위기사일 적에도 이것과 같은 기능의 마법 물품을 그에게 줬었다. 그러나 아르문트는 그걸 가지고 다녀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빼먹고는 했다. 이번에는 마법 물품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도 않았으니, 더 까먹으면 까먹었지 꾸준히 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16549571407142.jpg“……난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만.”

1654957137814.jpg“아, 괜찮아요. 전하께서는 안 주셔도 돼요.”

16549571407142.jpg“그럴 수야 없지. 당한 것은 반드시 되돌려줘야 하는 성미거든.”

아르문트가 단호하게 못 박았다. 로제타로서는 민망할 따름이었다. 이것은 사실 자신이 아닌 발레리안이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16549571407142.jpg“뭐가 좋을까……. 옷이 많지 않은 것 같던데. 디자이너를 불러주는 건 어때.”

1654957137814.jpg“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이번 휴일에 친구가 옷을 사주기로 했거든요.”

로제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옷이야 몇 개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굳이 여러 쪽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 아르문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16549571407142.jpg“친구라면…… 방금 만난 친구?”

1654957137814.jpg“……네, 맞아요. 제 소꿉친구랍니다.”

로제타는 혹 발레리안과의 관계가 드러날까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시인했다. 이 정도 정보로는 그 친구가 발레리안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애초에, 고작 하녀가 대마법사와 친구라는 걸 믿을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아르문트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16549571407142.jpg“그래, 뭐. 쇼핑이야 여자끼리 하는 것이 더 즐겁기는 하겠군.”

1654957137814.jpg“아, 아니요.”

아니라고? 아르문트의 동공이 일순 확장되었다. 혹시 자신과 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려나? 디자이너를 부르지 말고 함께 나가자는, 이른바, 애프터 신청을 하려는 건가? 그가 헛된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로제타는 해맑게 웃으며 그의 기대를 와장창 깨트려주었다.

1654957137814.jpg“걔는 남자인 친구예요.”

1654957152016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