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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예쁘네 (45/145)

45화. 예쁘네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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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눈만 껌뻑거렸다. 무슨 상황인지 조금이라도 파악이 돼야 뭐라도 말을 할 텐데, 도대체 아르문트가 왜 갑자기 뛰어와 자신을 껴안는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그냥 가벼운 포옹도 아니고, 빈틈 하나 없이 격렬한 포옹이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제 뒷머리를 단단히 잡아당겼고, 다른 한쪽 팔은 허리를 끌어안았다. 맞닿은 피부 너머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급하게 뛰었는지 아직도 숨이 가빴고, 심장박동도 아주 거셌다. 문득,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먼저 맞잡은 손. 그답지 않은 장난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1654957293768.jpg‘아냐,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로제타가 부끄러운 마음에 입술을 감쳐 물었다. 이번 생의 아르문트가 유난히 친절해서 그런지, 아니면 광증 상태일 때 민망한 상황을 자주 접해서 그런지,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전하를 상대로 부끄러워하다니. 바람직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로제타는 흐트러진 기강을 다시 바로잡으리라 마음먹으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1654957293768.jpg“전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개복치가 이번 일로 많이 놀란 모양이다. 혹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들었다.

1654957293768.jpg“괜찮으세요?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녀는 왜 갑자기 껴안는지 묻는 대신, 나긋한 목소리로 걱정 어린 질문을 뱉었다. 그러자 자신을 껴안은 팔에 힘이 더욱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16549572937695.jpg‘또 내 걱정만 하고 있군.’

아르문트의 손가락이 그녀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파고들었다. 자신도 위험할 수 있던 상황에 계속 남 걱정만 하다니. 진심으로 누군갈 좋아하면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정작 나는 자신이 위험해질까 봐 돌아오기를 망설였는데. 아르문트가 제 입술을 짓씹었다.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가슴속에 휘몰아쳤다. 또한 감사했다. 무사히 살아 자신을 향해 괜찮냐 물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16549572937695.jpg“……걱정했다.”

아르문트가 어딘가 억눌린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로제타는 여전히 그에게 안긴 채 눈을 껌뻑거렸다. 목소리가 워낙 낮고 작아 집중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었다.

16549572937695.jpg“네가, 그 새끼들한테 잡혔을까 봐. 걱정했어.”

아. 로제타가 그제야 아르문트가 자신을 껴안은 이유를 깨달았다.

16549572937695.jpg“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아르문트는 내가 정말 걱정됐구나. 이렇게 황급하게 뛰어와, 무사한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껴안을 정도로 걱정이 된 거야. 로제타는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기분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코끝이 찡했다.

1654957293768.jpg“전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그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다른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벅찬 심정이 그런 식으로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로제타가 그를 마주 안자 아르문트는 움찔 몸을 떨더니, 이내 팔에 힘을 더 주어 그녀를 강하게 그러안았다. 아르문트도, 로제타도,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포옹한 것은 처음이었다. 로제타의 경우 발레리안과 자주 포옹하기는 했으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완벽한 타인과 살을 맞대는 기분은 예상외로 만족스러웠다. 서로에게 닿은 곳이 따뜻했고, 피부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호흡이 점차 안정되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누구 것인지도 모를 심장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살아있다는 신호와 같아 아르문트에게는 그것마저 감격스러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격앙되었던 마음이 진정되고 이성이 돌아왔다.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슬며시 떨어졌다. 이윽고 드러난 아르문트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완전히 달아올라 있었다.

16549572937695.jpg‘내가 무슨 짓을…….’

정말 잠시 미쳤던 게 틀림없다. 아무리 로제타가 살아있는 게 기뻤다 한들 갑자기 껴안아 버리다니. 그녀가 자신을 연모하기는 하나 그와 별개로 허락 없는 스킨십은 무례한 것이었다. 로제타가 이상한 오해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로제타는 그렇게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무려 그와 포옹을 했는데도 말이다. 아르문트는 미묘한 기분에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다. 변태 취급을 하지 않는 건 다행이긴 한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주 조금이지만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섭섭한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몇 번 헛기침을 한 후 말문을 열었다.

16549572937695.jpg“그래서, 여기에 계속 숨어 있었던 건가?”

1654957293768.jpg“네, 맞아요. 저는 계속 여기 있었어요.”

로제타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뱉었다. 처음에야 어려웠지 이제는 별다른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16549572937695.jpg“아까 그놈들은.”

1654957293768.jpg“걱정하실 것 없어요, 전하. 제가 여기서 죽 보고 있었는데, 아까 그 남자들은 그냥 불량배인 것 같더라고요. 그냥 돈을 노렸던 거지, 전하를 알아보고 쫓아온 건 아닌 것 같았어요.”

16549572937695.jpg“불량배였다고……. 어디로 가는지 봤나?”

아르문트가 눈을 날카롭게 뜨고 물었다. 흉흉한 목소리에서 그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면 사람을 시켜서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다.

1654957293768.jpg“네! 그게 말이에요, 갑자기 어떤 멋진 신사분이 나타나더니, 그놈들을 금세 무찌르지 뭐예요! 한방에 확 기절까지 시키고!”

로제타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멋진 신사분으로 둔갑시켰다. 이는 바로 로제타가 아르문트를 만나기 전 미리 짜둔 이야기였다. 쓰러진 남자들은 이미 저 구석에 안 보이게 감춰두었다.

1654957293768.jpg“그래서 더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저는 혹시 몰라서 계속 숨어 있기는 했지만, 곧 전하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요.”

그녀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거짓말을 마쳤다. 제법 믿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아르문트의 얼굴이 썩 좋지 못했다. 미간에 주름이 미세하게 잡혀있는 거로 보아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16549572937695.jpg“멋진 신사분이라.”

아르문트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헉, 혹시 의심하는 건가? 로제타는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부연했다.

1654957293768.jpg“네, 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미남이더라고요. 어찌나 멋지던지, 하하.”

금발에 벽안은 제국에 가장 널려 있는 특징이었다. 정석 미남 소리를 듣는 요소이기도 하다. 단지 의심을 피하려고 한 말이었건만 아르문트는 어쩐지 더욱 인상을 구겼다. 미남? 그가 사나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로제타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재빨리 말을 돌렸다.

1654957293768.jpg“어쨌든 다행이에요! 큰일이 없어서요.”

16549572937695.jpg“…….”

1654957293768.jpg“자, 이제 돌아갈까요? 리처드 경이 걱정하시겠어요. 어느새 날도 다 저물었고요.”

16549572937695.jpg“……그러지.”

다행히 아르문트는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여전히 기분은 안 좋아 보였으나 넘어간 게 어디겠는가. 휴. 로제타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올리니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두운 골목이 보였다. 정신없이 도망가고, 또 싸우다 보니 정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1654957293768.jpg“저쪽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어요. 저기로 가요.”

16549572937695.jpg“그래.”

아르문트가 순순히 로제타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번거롭기는 했지만, 로제타는 그보다 이곳에 더 많이 와보았으니 더 잘 알 것이다.

16549572937695.jpg‘그런데 누구와 왔을까?’

문득 의문 하나가 가슴속에 샘솟았다.

16549572937695.jpg‘설마, 그 소꿉친구란 놈과?’

가능성이 있었다. 의상실까지 같이 가는 사이라 하고, 이 시장은 그 소꿉친구가 추천해준 의상실에서 아주 멀지 않으니까. 안 그래도 일그러져 있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놈에게도 직접 꼬치구이를 먹여주었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연이어 떠올랐다. 그러나 그중 하나도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존심이 있지, 의처증 걸린 남편도 아니고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할 수야 없으니까. 곧 언덕의 정상에 다다랐다. 애초에 크기가 작은 언덕이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편인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여름밤을 반짝반짝 물들이는 조명이 꽤 예뻐 보였다.

16549572937695.jpg“사람이 왜 저렇게 많아졌지?”

아르문트가 아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아까보다 인파가 늘어 있었다.

1654957293768.jpg“그러게요. 아!”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녀가 환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1654957293768.jpg“전하, 저기 보세요!”

그녀가 검지로 별이 빼곡히 박힌 밤하늘을 가리켰다. 아르문트는 하늘을 바라보다 아무 특별한 점도 찾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16549572937695.jpg“뭘 보라는…….”

그때였다. 펑! 퍼펑! 색색의 불꽃이 터져 나와 어두운 밤하늘 위에 예쁜 그림을 그려냈다.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1654957293768.jpg“오늘이 불꽃놀이를 하는 날이었나 봐요!”

운이 좋으시네요, 전하. 그녀가 눈웃음을 치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반짝거리는 불꽃이 남색 하늘에 새겨지는 모습과, 그 가운데 서서 자신에게 밝게 웃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 아르문트는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처럼 제게 주어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654957293768.jpg“규모는 작긴 하지만, 그래도 꽤 예쁘죠?”

로제타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아르문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눈앞의 불꽃놀이는 황실 행사 때 터뜨리는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이 가장 어여뻤다. 그 무엇과 비교해도 이만큼 아름다운 걸 찾기 힘들 정도로.

16549572937695.jpg“그래, 예쁘네.”

너도, 불꽃도. 그가 미소 지으며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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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덕에서 내려온 로제타와 아르문트는 오래 지나지 않아 리처드를 만났다. 리처드는 잠시 떨어져 있던 동안 5킬로는 빠진 듯했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디로 사라졌던 거냐는 그의 질문에 아르문트와 로제타는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아르문트는 결국 이렇게 답했다.

16549572937695.jpg“잠시 둘이 볼 게 있어서.”

리처드의 속을 더 터지게 하고 싶은 거였다면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다. 고작 데이트 때문에 몰래 사라지다니! 리처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아르문트로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실대로 불량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상황도 복잡해질뿐더러, 앞으로 리처드의 감시가 더욱 심해질 테니까. 지금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따라다니는 그인데, 여기서 더 심해지면 정말 로제타와 따로 시간을 보내지 못할 터. 원래의 아르문트는 안전을 위해서라면 제 개인 시간쯤은 희생할 수 있다 여겼으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16549573030081.jpg“적어도 말이라도 해 주고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16549572937695.jpg“말하면 못 가게 할 것 아닌가?”

리처드의 주장에 아르문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박했다. 너무 맞는 소리라 더 얄미웠다. 로제타를 원망할 법도 하건만 리처드는 원망의 화살을 오로지 아르문트에게만 돌렸다. 어떤 상황이든 로제타는 잘못이 없어. 분명 전하께서 억지를 부리셨을 거야. 아직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그가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들은 곧장 황궁으로 돌아왔다. 이미 약속한 한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고, 조금 더 늦장을 부렸다간 황태자가 사라졌다며 궁에 소란이 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로제타는 목욕을 마치고 제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빌린 옷과 액세서리를 가져다줄 기운도 없었다. 오랜만에 계속 나가 있었던 데다가, 일이 워낙 많았던 탓에 피로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느낀 기척을 보아하니 아르문트 또한 금세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 덕에 로제타는 걱정 없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정확히 네 시간 후. 로제타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번쩍 눈을 떴다. 고작 네 시간의 휴식만으로도 체력은 완벽히 회복돼 있었다. 피로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잠이 없는 편이라고 한들, 아무 이유도 없이 새벽에 깨어날 리는 없다. 유독 일찍 잠자리에 든 것.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깨어난 것. 모두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654957293768.jpg“이럴 줄 알았지.”

그녀가 아르문트의 방 쪽으로 향하는 한쪽 벽면을 응시하며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척이 없던 방에, 인간이라기에는 이질적인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르문트의 광증이 다시 발현한 것이었다. 오늘 그렇게 많은 일이 있으니 무리도 아니지. 로제타가 이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아르문트의 방으로 통하는 문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1654957293768.jpg‘자. 교육 시작이다.’

그녀가 씩 미소 지으며 손잡이를 잡아 쥐었다. 드디어 책에서 배운 것을 써먹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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