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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더 만져도 돼? (61/145)

61화. 더 만져도 돼?2021.09.30.

1654957632613.jpg“흐윽! 저, 전하……!”

짜릿한 쾌감에 또다시 몸이 튀었다. 로제타는 이상한 목소리로 신음을 흘려대는 제 입을 재빨리 틀어막았다. 덕분에 계속해서 입술을 맞대오는 아르문트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었다.

16549576326137.jpg“손 떼, 로제타.”

아르문트가 으르렁거리듯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금색 눈동자에는 더는 숨겨지지 않는 욕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로제타가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손을 떼면 그가 바로 입을 맞춰올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저을 시간에 재빨리 일어나서 욕실을 뛰쳐나가면 될 일이었으나, 너무 당황한 탓에 차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르문트의 단정한 눈썹이 비틀리듯 휘어졌다. 그녀가 얼굴을 가린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16549576326137.jpg“떼라니까.”

말도 참 안 듣는군. 그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오른쪽 눈 아래에 찍힌 눈물점이 새삼 관능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이번에는 그녀의 손등에 닿았다. 할짝. 혀가 촉촉한 피부를 간지럽히듯 핥아 올렸다. 입술을 내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키스하지 뭐. 은근하게 빛나는 눈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손등 위로 입을 맞추는 생경한 느낌에 로제타는 또다시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1654957632613.jpg‘미쳤나? 아니면 광증이 갑자기 발현된 건가?’

그녀는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워했다. 첫 키스를 제 주군과 해버렸으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욕실 안에는 여전히 수증기가 구름처럼 둥둥 떠돌고 있었고, 뿌연 시야 속에 드러난 아르문트의 모습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야릇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욕조 안에서 젖은 몸은 계속해서 맞닿았으며, 손등 위로 느껴지는 느릿한 입맞춤은 간지러우면서도 짜릿했다. 맹세컨대, 다섯 번의 인생 중 이렇게 야한 짓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54957632613.jpg‘그래, 광증인가 봐. 그게 아니라면 전하가 이럴 리가 없으니까!’

로제타가 눈을 질끈 감으며 확신했다. 광증은 주로 밤에 발현되고는 했으나, 아르문트의 말에 따르면 드물게 낮에 나타날 때도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오늘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녀가 피워둔 향초나 그의 몸에 바른 향유에 최음 성분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물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발레리안이 그녀가 성인이 되기 직전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줄 때 그런 내용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로제타는 아르문트가 맨정신으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가능성 자체를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곧바로 아르문트의 진득한 시선과 눈길이 마주했다.

16549576326137.jpg“하.”

아르문트는 단지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애가 타는 듯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내 그가 고개를 비틀었다. 그녀의 손을 간지럽히던 입술이 이제는 목으로 향했다.

1654957632613.jpg“저, 전하, 이러면……!”

이러면 안 돼요! 로제타가 제 입을 가린 손을 떼어낸 뒤 그에게 열심히 가르쳤던 말을 외치려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 날카로운 이가 그녀의 목을 따끔하게 파고들었다. 동시에 단단한 손가락이 허리를 천천히 훑고 내려왔다.

1654957632613.jpg“으읏!”

또다시 잇새로 비음이 흘러나왔다. 쾌감이 얼룩진 목소리가 욕실을 울리자 로제타는 부끄러움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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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57632613.jpg‘안 돼, 이대로는……!’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녀가 무엇이든 잡기 위해 손을 허우적거렸다. 욕조 끝이 잡히자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그가 허리를 붙잡지만 않았더라면. 첨벙!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 다시 앉게 되자 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미끄러지며 경직된 곳이 다시금 민감한 부위를 찔렀다. 로제타는 이를 악문 덕에 다행히 이번에는 신음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르문트는 아니었다.

16549576326137.jpg“크윽……!”

낮은 목소리가 동굴에 있는 것처럼 울렸다. 근육이 단단히 박인 팔에는 핏줄이 눈에 띄게 불거졌다. 아무래도 그녀가 그를 더 흥분하게 만든 것 같았다. 아르문트가 집착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뜨거운 시선이 피부를 찌르자 로제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16549576326137.jpg“로제.”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움켜잡으며 이름을 속삭였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의 말을 계속 들으면 더욱 곤란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차마 그의 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16549576326137.jpg“더, 해도 되나?”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인 손가락이 느릿하게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것만 같은 시선은 집요하게 그녀의 입술을 향했다. 대답을 재촉하는 것처럼. 로제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재차 질문했다.

16549576326137.jpg“더 만져도, 돼?”

굵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다음에 있을 일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로제타는 이번에도 침묵을 고수했다. 그러나 방금처럼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단숨에 움켜잡았다. 커다랗고 딱딱한 것. 바로, 뒤집힌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엄마 오리였다.

16549576340724.jpg“꽤액!”

그녀의 손안에서 오리 장난감이 눌리며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욕실을 가득 메웠다. 아르문트가 반사적으로 돌아보려는 순간, 로제타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퍼억! 오리가 빠르게 아르문트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고작 오리 장난감으로 공격이라니. 무기라 부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걸 사용한 이가 로제타라면 말이 달라졌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 로제타는 오리 장난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르문트를 제압했다. 커다란 몸이 천천히 욕조에 늘어졌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졌다.

1654957632613.jpg“헉, 허억…….”

로제타는 숨을 몰아쉬며 그가 제대로 기절했는지 확인했다. 눈꺼풀을 들어 올려 보니 동공이 확대된 게 보였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는 뜻이었다. 미약하게 숨을 내쉬고 있는 거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후우. 로제타가 또다시 숨을 크게 내쉬었다.

1654957632613.jpg“광증이야, 광증…….”

그냥 평소처럼 잠시 미쳤던 거고, 평소처럼 발정이 났던 거야. 나는 약속한 대로 그걸 처리해준 거고. 별것 아닌 일이니 당황할 필요 없어.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별것 아니라 말하는 것치곤 얼굴이 퍽 심각했다. 볼은 이미 분홍빛으로 물든 지 오래였고, 눈가도 촉촉했으며, 입술은 심장이 그곳에서 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파들거렸다. 로제타는 그런 자신의 반응을 애써 모른척하며 아르문트를 번쩍 들어 올렸다. 커다란 수건으로 그의 몸을 둘둘 감아준 후 침대에 던져놓으니 목욕하다 지쳐 자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잠입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전속 하녀인 만큼 아르문트의 방 청소는 그녀 몫이었다. 즉, 로제타는 옷만 갈아입고 다시 욕실로 돌아가 정리를 해야 했다. 방금 자신이 끈적한 일을 벌였던 장소를 손수 청소해야 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민망했다. 여기저기 묻은 향유를 닦을 때마다 그와 몸을 겹치며 신음을 흘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죽고 싶었다. 마사지 침대를 닦고 바닥까지 정리한 그녀의 눈에 욕조 안을 뒹굴고 있는 오리들이 보였다.

1654957632613.jpg‘이놈의 오리들 때문에……!’

로제타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곤 이딴 걸 선물이라고 사온 러크를 욕했다. 정작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오리를 강탈해온 것도 자신이라는 걸 잘 알았지만, 누구든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로제타는 창고 구석에 오리 가족을 꼼꼼히 처박아두었다. 영원히 다시 볼 일이 없도록 말이다. 청소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벽에 걸린 거울 위로 낯선 여인의 모습이 비쳤다. 촉촉이 젖은 눈동자, 달아오른 얼굴,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 분명 제 얼굴이건만 모든 게 낯설어 보였다.

1654957632613.jpg‘저게 뭐야?’

로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이상한 자국을 발견한 탓이었다. 하얀 목 위로 장미처럼 피어난 붉은 자국. 그것의 정체를 유추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로제타의 얼굴이 또다시 화르르 달아올랐다.

1654957632613.jpg“미쳤어, 진짜…….”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절망했다. 심장이 자꾸만 쿵쾅쿵쾅 뛰어댔다. 결국, 그녀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고민으로 밤새 고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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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아침 일찍 아르문트가 창백한 얼굴로 그녀의 방을 찾아왔다. 덜 정돈된 행색을 보아하니 일어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바로 그녀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기에 로제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1654957632613.jpg“전하, 제 방까진 무슨 일이세요? 그것도 이렇게 이른 아침에.”

밤을 새워 마음 정리를 한 그녀였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행위에 괜히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로제타는 이렇게 생각하며 빙긋이 웃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눈만 껌뻑거리자 아르문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16549576326137.jpg“로제타, 내가 어제…… 어쩌다 잠들었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창 그녀와 입술을 맞대고 있던 때, 갑자기 까무룩 정신을 잃어버렸으니까. 오리 장난감이 꽥 소리를 지르는 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키스하다 말고 기절하다니. 창피해도 이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로제타가 자신을 경멸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로제타의 얼굴은 여전히 해맑기만 했다. 마치, 어제 입 맞췄던 것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1654957632613.jpg“아, 그게……. 제가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니까, 전하께서 변하셨더라고요.”

로제타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광증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대신 변했다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16549576326137.jpg‘증상이 또 나타났다고?’

테오도르 신관을 주치의로 영입해 매일같이 치유를 받은 뒤에는 광증이 발현되는 빈도가 퍽 줄어들었다. 특히나 낮에 갑자기 나타난 적은 로제타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광증 말고는 갑자기 정신을 잃을만한 이유가 없다. 로제타가 확인까지 해주었으니 확실했다.

16549576326137.jpg‘그럼 어제의 입맞춤도…….’

정말 꿈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생생했던 것이 모두? 아르문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시금 살펴본 로제타의 얼굴은 해사하기만 했다. 눈빛도 순수하기 짝이 없었다.

16549576326137.jpg‘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 의심이 들었으나, 그럴 리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로제타가 굳이 왜 자신과의 키스를 없던 일 취급하겠는가. 아르문트는 그럴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욕구불만이 만들어낸 꿈이라는 게 더 가능성이 있었다. 로제타를 두고 몽정하다니. 아르문트가 민망한 마음에 입술을 재차 감쳐 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궁금해졌다. 저 통통한 입술에 곧장 입을 맞추면 정말 그토록 황홀할지. 꿈처럼 로제타가 저 고운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예쁜 목소리로 신음할지.

16549576326137.jpg‘젠장.’

생각만 했을 뿐인데 몸이 달았다. 아르문트가 진정하고자 손에 아프도록 힘을 주었다.

16549576326137.jpg“어디, 다치진 않았나.”

1654957632613.jpg“네! 걱정 마세요. 멀쩡해요.”

16549576326137.jpg“이번에도 말을 하던가?”

1654957632613.jpg“……네! 근데 별말은 안 하셨어요.”

로제타가 잠시 움찔하다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더 만져도 돼?’ 따위의 말을 했다고는 말이다. 그의 정신건강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그런 건 잊어주는 게 나으리라.

16549576326137.jpg“무슨 말을-.”

1654957632613.jpg“앗, 전하! 잠시만요.”

아르문트가 캐물으려 하자 로제타는 다급히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례한 짓이었으나 요즘의 아르문트는 이 정도는 무례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1654957632613.jpg“전하 방에 누가 온 것 같은데요?”

다행히 그와의 대화를 그만둘만한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로제타는 아르문트가 뒤돌아있는 틈을 타 하녀복의 옷깃을 더욱 올렸다. 오늘은 이 키스 마크의 존재를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상대가 오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1654957632613.jpg‘발레리안이 이걸 봤다간…….’

적어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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