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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만져도 돼? (85/145)

85화. 만져도 돼?2021.12.23.

16549580712842.jpg“그러니 내 앞에서 다른 놈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16549580712846.jpg“네, 네? 다른 놈이 누구…….”

설마 발레리안이요? 물어볼 새도 없이 입술이 닿아왔다. 식사 도중 몇 번이고 짜증스레 입술을 짓씹은 탓에 겉면이 다소 거칠었다. 그는 조급하게 속을 탐하는 대신, 말랑말랑한 입술을 한 번 꾹 누르고 다시 떨어졌다. 짧은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로제타의 가슴은 세차게 뛰어댔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아르문트를 바라보았다. 아르문트는 반응을 확인하듯 그녀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찬란한 황금빛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진득한 욕정을 드러냈다. 이를 발견한 로제타는 기름한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도 차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16549580712846.jpg“저…….”

그녀는 다시금 무어라 입을 떼려 했으나 아르문트가 더 빨랐다. 그는 단숨에 로제타의 얼굴을 감싸 쥐곤 잡아당겼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16549580712846.jpg“읏!”

깜짝 놀란 로제타가 비음을 흘렸다. 아르문트는 갈급하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어 여린 살을 훑었다. 거친 입술과 달리 그 속은 부드럽기만 했다. 잠시의 틈도 없이 숨결이 섞이고, 말캉한 살이 얽혔다. 짜릿한 쾌감에 연신 흘러나온 신음마저 그가 모두 삼켜버렸다. 야외에서,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하기에는 지나치게 질척한 키스였다. 문도 단단히 잠가두었고, 커튼도 꽁꽁 쳐둔 덕에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민망했다.

16549580712846.jpg‘정말 여기서 하려는 거야?’

로제타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간을 슬며시 찌푸리고 입맞춤에 몰입한 그의 얼굴은 지나치리만큼 관능적이었다. 관계하기 전 그가 종종 짓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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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딱딱한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를 느릿하게 훑었다. 이에 로제타는 확신했다. 이건 진심이다.

16549580712846.jpg‘공공장소에서 어떻게……!’

어떻게 그런 민망한 짓을 할 수가 있나. 그녀가 움찔 허리를 휘며 생각했다. 사실 로제타도 박스석이 종종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귀족들이 이곳에서 은밀한 행위를 즐긴다더라. 크고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는 것도, 들어오는 문이 유독 두꺼웠던 것도 모두 그러한 이유였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경악했다. 그것들 다 미친 거 아니냐며, 얼마나 참을성이 없으면 그런 곳에서 관계를 갖냐고 빈정댔었다. 자긴 영원히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라며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제타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과거 단호하게 선언한 것과 달리 몹시 갈등하고 있었다. 그와의 입맞춤이 너무 기분 좋아서, 또 아르문트의 눈빛이 너무 매혹적이라서.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16549580712846.jpg‘그냥 미친 척 넘어갈까……?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런 데서! 그렇지만 여기 방음도 잘 되고, 또 엄청 깨끗한데…….’

아르문트와 입술을 겹치는 내내 로제타의 머릿속에서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를 단호하게 밀어낼까. 아니면 그냥 받아들일까. 로제타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르문트의 의사였다.

16549580712842.jpg“후…….”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어낸 아르문트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로제타는 몽롱한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밟으리라고 생각하며.

16549580712842.jpg“마음 같아선 당장 그대의 옷을 찢어놓고 싶지만.”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절로 아랫배가 저릿해질 만큼 농염했다. 정식으로 사귀게 된 이후 아르문트는 로제타를 그 누구보다 고귀하게 대했으나, 잠자리 중에는 얘기가 달랐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야한 말들을 잔뜩 속삭이고, 또 그녀의 입으로 부끄러운 소리를 하게 만드는 걸 즐겼다. 숙맥인 줄만 알았던 그가 사실은 타고난 변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로제타는 겉으로는 민망해하면서도 내심 그러한 그의 특징을 매우 좋아했다. 우아하고 고상한 황태자 전하가 내게만 변태처럼 군다니. 세상에, 이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에도 또 다른 야한 짓이 이어지리라는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착각이었다.

16549580712842.jpg“감히 그대를 이런 곳에서 안을 순 없으니, 자제하지.”

아르문트는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에게서 몸을 물렸다. 그리고 로제타는 동그랗게 뜬 눈을 멍하니 껌뻑거렸다.

16549580712846.jpg‘키스하고 끝이라고?’

그게 말이 돼? 그녀가 허탈한 나머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16549580712846.jpg‘왜 자제해요? 아니 왜 자제하냐고!’

평소엔 그렇게 짐승같이 굴더니, 왜 이제 와서 지성인인 척하냐 이 말이다. 로제타는 당장 그의 멱살을 붙잡아 마구 흔들고 싶었으나 애써 참아냈다. 그랬다간 지금껏 지켜온 순수한 이미지가 단숨에 사라지고 말 테다. 그와 얼마나 오래 연인으로서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시간만큼이라도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하고 싶었다. 그가 나중에라도 그녀를 좋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녀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아 제 몸 가득 차오른 음란함을 진정시킨 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습게도 아르문트의 얼굴 위에 섭섭함이 스쳤다. 자기가 먼저 얼굴을 떼어냈으면서, 섭섭할 게 무어가 있단 말인가? 서운해야 할 사람은 이쪽인데! 로제타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삐죽거렸다.

16549580712842.jpg“……로제.”

16549580712846.jpg“네?”

그러나 삐진 와중에도 대답은 몹시 잘하는 그녀였다.

16549580712842.jpg“가끔, 아주 가끔은 말이야. 나만 그대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느닷없는 내용이라 농담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기엔 그의 얼굴이 진지했다. 그는 꼭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당황한 로제타가 재빨리 부정했다.

16549580712846.jpg“네에?! 그럴 리가 없잖아요!”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젠데요. 그녀가 작게 덧붙였다. 그러자 아르문트의 낯빛이 금세 밝아졌다. 그가 기대하듯 로제타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16549580712842.jpg“그러면 로제.”

16549580712846.jpg“네, 전하.”

16549580712842.jpg“앞으로는 내 이름을 불러줘.”

누구나 쓸 수 있는 ‘전하’라는 호칭 대신에. 아르문트가 덧붙였다.

16549580712846.jpg‘아까 발레리가 한 말을 담아두고 있었구나!’

로제타가 그제야 깨달았다. 질투 운운하던 것도 모두 발레리안 때문인 모양이었다.

16549580712846.jpg‘그 소꿉친구가 사실 발레리인 건…… 절대 말하면 안 되겠다.’

발레리안의 타운 하우스에서 한때 같이 지냈다는 걸 알면 아르문트가 잔뜩 분노할 것이 분명하다. 하긴, 어떤 남자가 제 애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았다는 걸 좋아하겠는가. 로제타에게 발레리안은 남자가 아닌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이를 이해해줄 연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르문트를 살리기 위해선 앞으로도 발레리안을 몰래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는 타운 하우스에서 자고 오는 건 자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16549580712842.jpg“어서 불러봐. 나와 처음 잘 때 그랬던 것처럼.”

아르문트가 그녀를 재촉했다. 그때 얘기는 왜 또 꺼내는 거람. 로제타는 부끄러움에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름을 부르는 것쯤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16549580712846.jpg‘어떻게 주군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그녀에게 아르문트는 연인이기도 하나, 여전히 그보다는 주군에 가까웠다. 주군으로 모셔온 날이 워낙 긴 탓이었다. 한때는 개복치처럼 픽픽 죽는 그가 답답했던 나머지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막 부르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16549580712846.jpg“음, 아, 아르…….”

로제타가 바보처럼 계속 아, 아, 하고 말을 반복했다. 어느새 얼굴은 고구마처럼 붉었다. 갑갑한 마음에 그만두라 할 법도 하거늘, 아르문트는 가만히 앉아 그녀가 말을 끝맺기를 기다렸다. 온종일도 기다릴 수 있다. 그의 눈빛이 이렇게 말해오는 듯했다. 결국, 도망갈 길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로제타는 주먹을 꽉 쥐고 힘차게 입을 열었다.

16549580712846.jpg“아르문트.”

그러자 아르문트의 눈매가 천천히 휘어지더니, 장미보다도 더 고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피어났다.

16549580712842.jpg“잘했어.”

달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로제타는 먹지도 않은 꿀을 한가득 머금은 기분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제는 만족했겠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아르문트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6549580712842.jpg“이번에는 애칭을 불러줘. 아르, 아문. 어느 것이든 그대가 편한 쪽으로.”

그 대마법사 놈과 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는 없지. 그가 나긋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 로제타는 결국 그의 애칭을 부르지 않았다.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아르문트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투정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불만을 표출했다. 연극을 보러왔으면 연극을 봐야지, 내내 로제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그였다. 그래놓고 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자마자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16549580712842.jpg“재밌었다.”

16549580712846.jpg“하나도 안 봐놓고 뭐가 재밌긴 재밌어요?”

어처구니가 없었던 로제타가 지적했다. 그러자 아르문트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16549580712842.jpg“그대를 보는 게 제일 즐거운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다시 커튼을 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치고 나면 그때는 정말 못 참을 것 같아서. 그가 마차에 오르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런 말에 면역이 없는 로제타는 또다시 얼굴을 화르르 붉혔다.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진짜!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아르문트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그 또한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16549580712842.jpg“로제, 그거 알아?”

16549580712846.jpg“네? 어떤 거요?”

16549580712842.jpg“이 마차. 아주 방음이 잘 되거든. 이 시간에 황궁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도 오래 걸리고.”

로제타가 흠칫 몸을 굳혔다. 야릇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에 설마 싶다가도, 아까 전 그렇게 빼던 걸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여겼다.

16549580712842.jpg“그리고 사실 아까부터 참느라 슬슬 힘들어서.”

아르문트가 아래쪽으로 눈짓했다.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인 로제타는 이내 ‘힘들다’는 의미를 파악하고야 말았다.

16549580712846.jpg‘도대체 언제부터 저랬던 거야……?’

그녀가 새빨간 얼굴로 경악했다. 박스석 안이 워낙 어두웠던 데다가, 그의 바지가 두꺼운 재질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고 나니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 신기할 수준이었다.

16549580712842.jpg“조금만 만져도 될까?”

16549580712846.jpg“네에?! 여기서 그걸, 직접요?!”

로제타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16549580712846.jpg‘변태인 건 알았지만 그건 좀 정도가 심하지 않나? 나는 그럼 눈을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하지?’

그녀가 눈을 빙글빙글 돌리며 고민했다.

16549580712842.jpg“아니, 그대를 만지겠다는 말이었다만.”

16549580712846.jpg“아.”

16549580712842.jpg“……그대는 생각보다 음란하군, 그래. 그런 취향이 있나?”

16549580712846.jpg“아니, 아니요! 제가 무슨……! 오해예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모습에 아르문트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로제타가 부끄러워하는 걸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변태 같은 말이란 말은 그 혼자 다 해놓고, 저더러 음란하다고 말하다니. 로제타로서는 억울할 노릇이었다.

16549580712842.jpg“그래서. 만져도 돼?”

아르문트가 큭큭 소리 내어 웃으며 되물었다. 말투는 또 어찌나 정중한지 누가 들으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착각할 것만 같았다. 로제타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아까부터 몸이 달았던 그녀였다. 연극을 보는 동안 열기가 잦아들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또다시 그가 빼기 전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러나 돌연 떠오른 아이디어가 그녀를 멈추게 했다.

16549580712846.jpg“전하.”

16549580712842.jpg“아르문트라 해야지.”

아니면 아문도 좋고. 아르문트가 이 와중에도 고쳐주었다. 로제타는 얌전히 그의 말에 따라 호칭을 교정한 뒤 본론을 꺼냈다.

16549580712846.jpg“아르문트, 조건이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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