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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고대하던 순간 (108/145)

108화. 고대하던 순간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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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배 위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로제타는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이런 스킨십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혹은 그의 몸이 지나치게 튼실해서 그런지 긴장감이 바짝 밀려들었다. 괜히 그를 자극했다가 후회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실제로 사냥제 전까지만 해도 그의 넘쳐나는 정력 탓에 그녀의 허리는 매일같이 고통을 호소했었다. 그러나 로제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대신 오히려 고개를 더욱 들어 올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중에 후회하든 어쩌든 간에, 지금은 그냥 그와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었다. 오래도록 기다려온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시야 속에 아르문트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짙은 황금빛 속에는 그녀를 향한 욕정이 엿보였다. 그녀가 깨어나기 전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요즘의 그는 사냥제 전과는 어딘가 이미지가 달랐다. 살이 빠져 턱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눈가는 어두웠으며, 전체적으로 조금 더 성숙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만 로제타가 깨어난 뒤로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의 말투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정되어 보였다. 삶의 의미를 되찾은 까닭이었다.

16549585315929.jpg“전하.”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 로제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고, 흔하디흔한 호칭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아르문트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야하게 들렸다. 아르문트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잘못했다간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를 미친 듯이 탐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로제타는 은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그런 각오를 무참히 짓밟았다.

16549585315929.jpg“안아주세요.”

어떤 사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고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도승이야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르문트는 그리 청렴한 자가 아니었다.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졌다.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르문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뒷머리를 다급히 잡아당겼다. 날렵한 턱이 비스듬히 돌아가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금세 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몹시 거칠고도 조급한 키스였다. 아르문트는 자신이 언제 망설였냐는 듯 갈급하게 입술을 파고들어 안쪽의 여린 살을 훑었다. 촉촉한 살덩이가 맞닿고 숨결이 섞이는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16549585315929.jpg“흐읏.”

로제타는 제 온몸을 일깨우는 쾌락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입술이 교차할 때마다 쾌락이 벼락같이 밀려들었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쿵쾅 뛰어댔다.

16549585315929.jpg‘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키스만 했을 뿐인데. 팔다리가 바르르 떨릴 정도로 쾌감이 온몸으로 번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곧 제 아랫배를 묵직하게 찔러오는 느낌에 로제타는 그의 단단한 팔뚝을 꽉 움켜잡았다.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어 제법 따끔했을 텐데도 아르문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고통조차 그에겐 또 다른 자극으로만 느껴졌다. 짙은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짐승 같이 그르렁거린 그는 단숨에 로제타의 허벅지를 잡고 번쩍 안아 들었다.

16549585315929.jpg“꺗!”

갑작스러운 행동에 로제타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아르문트는 설명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내 그가 그녀를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푹신한 질감이 닿는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침대였다. 아르문트는 사나운 눈빛으로 로제타를 응시하며 빠르게 제 옷깃을 풀어헤쳤다. 자신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하는 그의 모습에 로제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곧 있을 일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쫄깃해졌다.

1654958531595.jpg“보고 싶었어.”

아르문트가 덮치듯 그녀의 위로 올라가며 속삭였다. 살짝 내리깐 속눈썹 사이로 드러난 황금색 눈동자가 유독 야릇했다.

16549585315929.jpg“회의 전까지 쭉 같이 있었잖아요.”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던 건데. 로제타가 양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덧붙였다.

1654958531595.jpg“내겐 그 몇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아르문트는 벌을 주듯 그녀의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살짝 따끔했지만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1654958531595.jpg“그대에겐 고작인 모양이지?”

16549585315929.jpg“……전하는 눈 아래에 있는 점이 참 예뻐요.”

로제타가 홀린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이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워서 정신이 멍해졌다. 아르문트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도장을 찍듯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1654958531595.jpg“너무 속이 보이는 칭찬인데.”

16549585315929.jpg“아니요, 진짜로요. 정말 너무 예뻐서요.”

1654958531595.jpg“그대는 아양을 떠는 것조차 귀엽군.”

마음만 같아선 통째로 씹어 삼키고 싶을 정도야. 아르문트가 다소 잔인한 말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또다시 입맞춤이 이어졌다. 방금의 대화로 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았는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간지러운 느낌의 키스였다.

16549585315929.jpg“으응…….”

1654958531595.jpg“하…….”

로제타는 점점 더 애가 타는 듯한 기분에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입술을 자극하는 감각도, 그의 단단한 근육에 피부가 눌리는 느낌도, 귓가에 닿아오는 뜨거운 숨결마저도. 모두 너무 좋아서 혼이 쏙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경험이 무섭다고, 그녀는 이 뒤에 더 짜릿한 쾌락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것을 맛보고 싶어 슬슬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16549585315929.jpg‘더.’

더 하고 싶다. 로제타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만 안타깝게도 아르문트는 아직 키스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저 커다란 손을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움직이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본능에 따라 느릿하게 다리를 옮겼다. 곧 단단한 허벅지가 스치며 아랫배에 불이 붙은 것만 같은 쾌락이 번졌다.

1654958531595.jpg“큭!”

거친 목소리로 신음한 아르문트가 로제타를 내려다 봤다. 시선이 어찌나 이글거리는지 당장 그녀를 씹어먹을 듯했다. 로제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기다란 속눈썹만 팔랑거렸다. 다만 그녀 또한 눈빛만큼은 그 못지않게 음흉했다.

16549585315929.jpg“오늘은 좀 다르게 해볼까요?”

로제타가 해사한 얼굴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곤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빙글 돌아누웠다. 침대에 엎드린 채 그를 돌아보는 모습이 몹시 유혹적이었다. 그 탓에 아르문트의 목 위로 굵은 핏대가 불거졌다.

16549585315929.jpg“아, 이러면 옷을 벗기기가 힘들려나. 그럼 다시-.”

다시 돌아야겠다. 이렇게 말하려는 순간 뒤에서 투두둑 소리가 났다. 경악하여 고개를 돌리자, 나긋하게 눈웃음을 짓는 아르문트의 모습이 보였다.

1654958531595.jpg“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대로도 충분히 벗길 수 있으니. 아르문트가 굵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맨손으로 옷을 찢어버린 것이었다. 세상에. 로제타는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물론 그녀 또한 옷 하나쯤 찢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리 얌전을 떨던 그가 이렇게 파격적으로 나오니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악할 새도 없이 열락이 이어졌다. 아르문트는 한 손으로는 옷을 마저 찢으며 그녀의 목에 제 이를 박아넣었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는 행동까지 무척 자연스러웠다. 민감한 부위가 닿으며 로제타의 잇새로는 높은 비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딱딱한 손가락이 천천히 파고드는 느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흡 들이켰다.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온 것이었다.

16549585315929.jpg“…….”

그러나 이게 웬걸. 갑자기 아르문트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춰버렸다. 더 큰 쾌락을 위해 뜸을 들이나 싶었지만 그렇다기에는 너무 굳어 있었다. 의아해진 로제타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크게 일그러진 아르문트의 표정을.

16549585315929.jpg‘아.’

그녀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아르문트를 지키다 자객에게 당한 상처를 발견한 것이리라.

16549585315929.jpg“저, 거기 하나도 안 아파요. 괜한 걱정 마요.”

1654958531595.jpg“…….”

16549585315929.jpg“정말이에요. 겉보기에만 심해 보이지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신경 끄고 하던 거나 마저 하자! 로제타가 입술을 꾹 깨물어 마음속의 외침을 삼켜냈다.

1654958531595.jpg“……미쳤군.”

그리고 아르문트는 죄책감이 만연한 얼굴을 하고선 천천히 그녀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1654958531595.jpg“아무리 흥분했다 해도 그대의 몸 상태도 잊고 관계를 맺으려하다니.”

16549585315929.jpg“아니요! 저 건강하다니까요?!”

1654958531595.jpg“아니, 그러지 마, 로제. 아직은 더 휴식을 취해야 해.”

16549585315929.jpg“다 나았다고! 다 나았다고요!”

로제타가 절박할 정도로 소리쳤으나 아르문트는 완고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내 먼저 자고 있으라며 방을 나서기까지 했다.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쾌락과 사랑으로 가득하던 침대는 이제 허무함밖에는 남지 않았다. 화장실로 향한 아르문트는 대관절 무엇을 하는지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았고,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남은 로제타는 이불을 물어뜯으며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야만 했다. *** 다음날 로제타는 아침이 밝자마자 발레리안을 찾아갔다. 밤을 새워가며 일했을 발레리안이 걱정되기도 했고, 또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자신과 접촉하지 않으려 드는 아르문트가 짜증 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르문트에 대한 생각은 발레리안을 마주하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만큼 발레리안의 상태가 심각한 까닭이었다.

16549585315929.jpg“세상에, 발레리! 너 괜찮은 거야?”

발레리안은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늘 화사하게 빛나는 피부는 어딘가 까칠해 보였고, 눈가도 어두웠으며 입술도 생기가 덜했다. 심지어 어딘가 예민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제 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애가 이렇게 돼? 로제타는 그의 상태가 당연히 과도한 업무 탓이리라 여기며 발레리안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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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585315929.jpg“목소리도 거칠고. 혹시 열나는 거 아니야?”

어휴, 네가 고생이다. 로제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손바닥이 이마를 감싸자 발레리안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얼음처럼 투명하고 밝은 눈동자는 정처 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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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585315929.jpg“열은 안 나는데…….”

로제타는 이마 온도를 비교하느라 차마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고작 열을 재는 행동만으로 발레리안은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예상대로 일이 많고 힘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힘든 건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을 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모든 마음은 그녀를 향해 있었는데. 왜, 이를 빠르게 인정하고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했을까. 그랬더라면 황태자가 아닌 자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를 텐데……. 발레리안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으나 그럴수록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뿐이었다.

16549585315929.jpg“잠은 좀 잤어?”

로제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발레리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장이 찔리는 것 같은 괴로움에 한숨도 자지 못했으나 굳이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무어라 더 조잘거리는 동안 그는 느릿하게 주머니 안에 넣어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얇은 끈에 달린 단단한 것. 로제타가 의식이 없는 동안 타마린도 숲에서 찾아온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그녀에게 건네주기 위해 가져왔는데. 꺼내서 주기만 하면 로제타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발레리안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로제타의 미소를 보더라도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 발레리안은 목걸이를 강하게 쥐어 잡으며 주머니의 깊은 곳으로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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