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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술자리가 끝나고 (113/145)


113화. 술자리가 끝나고
2022.03.31.


황태자궁 근처의 기사단 식당.

기사단장의 배려로 하루 간 비워진 이곳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술과 음식이 셀 수 없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주위로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앉았다.

그레이한의 추격에 동행했던 발레리안과 리처드 및 기사들은 물론이고, 황태자궁을 지키던 러크와 알렉, 테오도르 신관도 함께였다.

멜라니와 엘리아 또한 사뭇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단지 로제타의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들 또한 믿을만한 하녀로서 황자궁과 황후궁의 소문을 알아내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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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하께서 이렇게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으니 다 같이 건배하죠!”

아직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것 같은 러크가 잔을 들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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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생긴 황태자 전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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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로제타는 신이 나서 잔을 맞부딪쳤다. 그러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잔에 가득 담겨 있던 황금빛 맥주가 순식간에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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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도 먹으면서 마셔.”

그녀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아르문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튀긴 닭을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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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먹어봐. 너 이거 좋아하잖아.”

그리고 그녀의 왼쪽에 앉은 발레리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크림소스가 올려진 감자튀김을 건넸다.

자리 배치가 왜 이렇게 됐지.

로제타는 공평하게 닭튀김과 감자튀김을 동시에 먹으며 고민했다.

아무래도 발레리안이 아르문트 다음가는 지위이다 보니 자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이해는 가지만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 아는 사람으로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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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저쪽으로 가고 싶다.’

로제타는 슬픈 눈으로 멜라니와 엘리아가 있는 쪽을 응시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떻게 황태자 전하와 함께 술을 마시냐며 손사래를 치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호탕하게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 있었다. 심지어 멜라니는 근처에 앉은 알렉에게 은근슬쩍 집적거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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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알렉이 잘생긴 편이긴 하지.’

아르문트가 직접 호명하여 챙긴 덕에 억울하게 잘리는 미래에서 벗어난 알렉은 나름 정석 미남에 속했다. 다른 기사들보다 젊은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르문트와 발레리안을 질리도록 본 로제타에게야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수염이 거뭇거뭇한 기사들 사이에선 저만한 미남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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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지금 어딜 보고 있지?”

잠시 쳐다봤을 뿐인데 질투가 이글거리는 질문이 돌아왔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로제타는 기시감을 느끼며 재빨리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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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저 소시지가 맛있어 보여서요…….”

그녀의 말을 들은 아르문트는 곧장 러크에게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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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많이 드세요!”

이럴 때는 또 눈치가 빠른 러크가 재빨리 소시지 접시를 통째로 들고 다가왔다. 막 소시지를 한 점 집어가려던 테오도르 신관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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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잔이 비었네요! 우리 로제타 님은 술도 잘 드시고, 못하는 게 뭡니까? 자,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쪼르륵, 러크가 공손한 태도로 술을 따라주었다.

이건 또 무슨 짓거리람.

로제타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허물없이 반말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눈동자도 유독 반짝거리는 게 영 의심스러웠다.

그녀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멀리서 ‘쟨 또 왜 지랄이야?’ 하며 욕을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하게도 멜라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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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제타 님. 혹시 그 대단한 실력은 어떻게 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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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러크가 조심스럽게 묻자 리처드 또한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한참 전부터 묻고 싶었던 걸 아르문트가 올 때까지 겨우겨우 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르문트도 회의 내내 궁금했던 것은 마찬가지기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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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말이죠.”

로제타는 속눈썹을 위아래로 팔랑거리며 뜸을 들였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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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꿈이 기사였거든요. 메이필드 남작가에 있을 때 계속 수련했어요.”

로제타는 아르문트가 회의하는 내내 제 실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기 바빴다.

자신이 두 번째 깨달음까지 얻었다는 사실을 밝힐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론은 이것이었다.

어느 정도 검을 다룰 수 있다는 것만 설명하되, 진짜 실력은 숨긴다.

깨달음을 얻었으면서 하녀로 자원한 게 이상하기도 하고, 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력은 감춰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누가 갑자기 어떤 이유로 배신할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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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아니더라도 러크 입이 워낙 싸기도 하고.’

로제타는 씁쓸한 심정을 억누르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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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필드 남작께서 기사 교육을 시켰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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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고…… 저 혼자 수련했죠, 뭐. 아버지는 달가워하지 않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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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수련해서 그 정도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로제타. 재능도 재능이거니와, 스승 없이 그런 실력을 갖추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안 봐도 알겠군요.”

리처드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검의 길을 걷는 자로서 그녀의 성취에 순수하게 감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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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기사가 아니라 하녀에 지원한 거야? 아니, 거예요?”

러크가 제 입술을 찰싹찰싹 때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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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자 놈이 기사로서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황자랍시고 워낙 오래 배워서 바로 기절시키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그는 말하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어물거렸다. 여기사의 입단 조건은 사뭇 다르리라는 걸 알아차린 탓이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분위기가 일순 가라앉았다.

로제타는 짧은 침묵을 깨고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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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조금이라도 더 일찍 전하를 만나고 싶었으니까요. 전하도 절 더 빨리 보는 게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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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그녀가 그의 어깨로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아르문트는 다정하게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에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금세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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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이래서 커플들은! 다정한 전하 목소리 엄청 징그럽거든요!”

러크가 토하는 시늉을 하며 아르문트를 비난했다.

방금 그레이한을 ‘황자 놈’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렇고, 대놓고 징그럽다고 말하는 것까지 모두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드물게도 리처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 러크에게 엄지를 추켜세우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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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경이 꺼지면 되겠군. 당장 옷 벗고 나가.”

리처드가 재빨리 손을 반대로 돌려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아무 말도 한 적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그였다.

저 치사한 자식! 러크는 속으로 제 친구를 욕하며 재빨리 태세 전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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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잠시 미쳤었나 봐요. 사랑합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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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군. 이만 자리로 꺼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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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엥!”

후다닥 튀어오는 러크의 모습에 모두들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덕분에 다시 분위기가 좋아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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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늘이 날이라고 여겼는지 쉴 새 없이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로제타 또한 발레리안이 마법으로 그레이한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마음 놓고 잔을 들이켰다.

그녀 앞의 테이블 위로 남들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텅 빈 잔이 쌓여갔다.

보다 못한 아르문트는 조심스럽게 로제타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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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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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아직 얼마 안 마셨어요.”

그렇다기엔 벌써 술잔이 높게도 쌓였는데.

아르문트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술 취한 그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기에 더욱 염려스러웠다.

반쯤 눈이 풀린 얼굴로 헤실헤실 웃어 보이던 그녀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그런 만큼 취한 모습은 오로지 자신만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는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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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 마십시오. 로즈는 알아주는 말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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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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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맞잖아. 우리 집 와인 창고가 누구 때문에 거덜이 났더라?”

발레리안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놀렸다.

로제타는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씩씩거리면서도 차마 반박을 하진 못했다. 실제로 회귀 전에도 그의 타운 하우스에 있던 와인을 있는 족족 뺏어 마시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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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르문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상냥하던 목소리는 여지없이 낮아졌다.

발레리안은 여우처럼 눈꼬리를 휘어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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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 타운 하우스 말하는 겁니다. 세이프 하우스 겸 아무도 모르는 곳에 하나 장만해두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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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아르문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는 있었으나 사실 그 속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며 떠나던 로제타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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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오해는 마세요.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낸 덕에 허물이 없을 뿐입니다.”

로제타가 안절부절못하자 발레리안은 걱정하듯 부연했다.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아르문트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지금 자신을 우롱하는 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 안 이상 순순히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 수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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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지. 그런 오해는 안 하니까. 말했지 않나. 로제타는 날 사랑한다 말했고, 난 그걸 믿는다고. 그렇지,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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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죠, 전하!”

로제타가 환한 얼굴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애교를 부리는 걸 보니 적당히 술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었다.

이를 본 발레리안의 입꼬리가 순간 뒤틀렸다. 다만 미세한 변화인지라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로제타 또한 그중 하나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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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행여 아르문트가 또 질투라도 할까 걱정했는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괜찮나 봐!

안심한 로제타는 기분 좋게 술잔을 들어 올렸다.

다시 술을 마시는 데 집중한 그녀의 눈에는 아르문트와 발레리안이 허공에서 눈싸움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뜻밖의 손님도 술자리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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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저도 여기 껴도 괜찮을까요?”

루니엘라 공작을 따라 황궁에 온 페이즐리였다.

깜짝 놀란 로제타가 그녀를 환영하려는 찰나, 그녀보다도 먼저 나선 이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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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넛,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얼른 이리로 앉으세요.”

어느새 페이즐리의 애칭까지 부르는 테오도르 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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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둘이 무슨 사이……?”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묻자 테오도르 신관이 발갛게 볼을 붉혔다. 페이즐리는 그런 그의 손을 잡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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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히 연인 사이죠. 우리 잘 어울리지 않나요?”

충격적인 소식에 분위기는 더욱 과열되었다.

로제타는 아르문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이 나서 건배를 해댔고, 발레리안은 몇 잔만 홀짝거리다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진 후에야 술자리가 마무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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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재밌었다, 그렇죠?”

술자리가 파한 뒤, 로제타는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 듯 헤실헤실 웃으며 아르문트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제법 많이 마신 탓에 적당히 취기가 올랐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또 아니었다. 그녀가 맥주에 강한 타입이기 때문이었다.

방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로제타는 계속해서 입을 조잘거렸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술자리를 다녀와서 그런지 말할 거리가 끊임없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르문트는 짧게 대답하거나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표정도 어딘가 굳어 있었고, 걸음 또한 평소보다 빠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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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별달리 떠오르는 건 없는데.

로제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곰곰이 오늘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도 그가 화난 이유를 유추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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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문트,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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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럴 땐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넌지시 질문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어쩌면 아직 복도라 말을 삼키고 있는 걸지도 몰라.

로제타는 방에 들어가서 제대로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보폭에 맞춰 빠르게 걸었다.

마침내 아르문트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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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보기 싫었나?’

고민하며 문을 연 순간이었다.

쿵!

눈 깜짝할 사이에 아르문트가 그녀의 어깨를 잡더니 부드럽게 밀어붙였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을 때는 이미 벽에 등이 닿아 있었고,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시야에는 아르문트의 얼굴이 담겼다. 그것도 무척 가까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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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하? 갑자기-.”

당황한 로제타가 얼굴을 분홍빛으로 붉히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미처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입술이 거칠게 닿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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