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아침이 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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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아침이 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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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아침이 밝을 때까지
2022.04.03.
갈급하면서도 야릇한 키스가 이어졌다.
로제타를 제 품 안에 가둔 아르문트는 숨을 쉴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녀를 밀어붙였다.
입술이 조금의 틈도 없이 겹쳐지며 이내 말캉한 살덩이가 원래 제가 있어야 할 곳을 향하듯 자연스럽게 속을 파고들었다.
느닷없는 입맞춤에 로제타는 신음을 흘리며 파르르 속눈썹을 떨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으나 딱딱한 벽의 질감만 더 잘 느껴질 뿐이었다.
심지어 아르문트는 어느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마치 도망갈 곳조차 없는 초식동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작 그녀는 도망칠 생각 따위 없었지만 말이다.
아르문트가 갑작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를 벌주는 듯한 행동이었다.
다만 열렬한 입맞춤 중 입술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은 고통보다는 쾌감에 가까웠다.
“읏……!”
로제타가 또다시 신음 같은 숨결을 내쉬며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시선이 마주했다.
아르문트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강렬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어찌나 관능적인지 로제타는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는 기분마저 느꼈다.
그는 한참을 숨결을 섞은 뒤에야 제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곤 목이 긁히는 듯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과는. 자주 같이 술을 마셨나?”
뜬금없는 주제에 로제타는 눈만 동그랗게 떴다.
“그놈이 누구…….”
열렬한 입맞춤으로 반쯤 정신이 빠져 있었던 탓에 파악이 늦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발레리안이 쓸데없는 얘기를 했던 것도 같았다.
“아, 발레리요?”
발레리안의 이름이 언급되자 아르문트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시야가 워낙 어두운 탓에 로제타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보니 가끔 같이 마시기는 했죠. 발레리랑 저랑 좋아하는 주종이 비슷하기도 해서요.”
“그놈 애칭은 잘도 부르는군. 내 애칭은 거의 불러주지도 않으면서.”
아르문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그녀를 불만스럽게 응시했다.
서늘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까 안주도. 내가 준 닭보다 그놈이 준 감자튀김을 훨씬 많이 먹던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제에 로제타는 눈만 껌뻑거렸다.
“푸핫!”
그러나 상황 파악이 끝나자 커다란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렇게 관능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겨댔으면서, 갑자기 감자튀김 같은 소리를 하다니. 너무 귀엽고 우스워서 눈물까지 고일 지경이었다.
“세상에, 그걸 다 세고 있던 거예요? 귀여워 죽겠네 진짜.”
아르문트 또한 자신이 한 말이 매우 하찮고 민망한 것이었다는 걸 느꼈는지 대리석 같은 피부가 희미하게나마 붉어졌다. 부끄러움에 입매도 더욱 굳었다.
그런 그가 사랑스러워 로제타는 계속해서 웃음을 흘려댔다.
그러곤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르문트, 아까는 저를 믿는다면서요? 질투도 안 한다더니.”
그럼 이건 뭐예요. 로제타가 생글거리며 덧붙였다.
손가락으로 아르문트의 가슴을 쿡쿡 찌르자 두툼한 근육이 움찔움찔 떨리는데, 그것마저 이제는 귀엽게만 보였다.
“그대를 믿어.”
아르문트가 제 가슴을 건드리던 손을 단호하게 잡아 쥐며 고개를 숙였다.
단단한 손가락이 유혹하듯 손목을 훑자 로제타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움찔 몸을 움츠렸다.
“괜한 오해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또다시 아르문트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졌다. 코끝이 맞닿으며 그의 체향이 훅 풍겨왔다.
“그래도 질투는 해.”
그것도 아주 많이.
나지막이 덧붙인 아르문트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로제타도 눈을 감고 그와의 입맞춤에 응했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나긋한 키스였다. 아무래도 로제타의 반응에 조금이나마 아르문트의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거칠어지는 건 금방이었다.
“흐읏, 아문…….”
로제타는 간질간질한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몸을 기댔다. 그러곤 신음과 함께 그가 그토록 원하던 애칭을 입에 담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언가 아르문트의 어딘가를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었다.
순간 그의 황금빛 눈동자 위로 짙은 욕망이 이글거리더니, 이내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잡아 쥐었다.
“으앗!”
깜짝 놀란 로제타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아르문트가 느닷없이 자신을 안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향을 보아하니 침대로 가는 듯했다.
‘다음에는 내가 해봐야지.’
그녀는 그의 품에 얌전히 안긴 상태로 다짐했다.
언젠가 아르문트를 덥석 안아 들고 침대에 던져놓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힘도 자신이 더 세겠다, 못 할 것도 없으리라. 실제로 예전에 아르문트에게 ‘공주님 안기’를 한 적도 있고 말이다.
한편, 아르문트는 그녀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모른 채 걸음을 옮겼다.
알았다면 정색을 해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그때의 공주님 안기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이내 푹신한 침대의 질감이 로제타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손으로 침대를 짚고 반쯤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제 앞에 서서 셔츠 단추를 끄르는 아르문트의 모습을 감상했다.
단추가 하나하나 풀어질 때마다 근육이 단단하게 박인 상체가 드러났다.
여러 번 본 모습인데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아니, 볼 때마다 새롭고 짜릿했다.
로제타는 그의 배에 자리 잡힌 선명한 라인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곧 있을 거사를 생각하니 심장이 너무 뛰어서 표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르문트는 그런 그녀의 시선이 퍽 만족스러운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누가 그렇게 야하게 쳐다보래.”
“네?”
“오늘 아예 못 자더라도 뭐라 하지 마. 그대의 책임이니까.”
자기가 벗어놓고 이건 무슨 말이람?
로제타가 어처구니가 없어 미소를 지었다.
반라의 모습이 된 아르문트는 사르르 눈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올라갔다. 그러곤 그녀가 항변하지 못하도록 입을 맞췄다.
로제타는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입술을 교차하듯 문댔다. 언제나 그렇듯 숨결이 섞여드는 감각은 간질거리면서도 짜릿했다.
로제타가 키스에 열중하는 때, 기다란 손가락이 느릿하게 그녀의 목선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그녀의 옷도 어느새 거의 벗겨진 상태였다.
“한동안 안 할 거라면서요?”
언제는 나보고 휴식을 더 취해야 한다더니. 로제타가 빙긋이 웃으며 지적했다.
“지금도 아파?”
아르문트는 그녀의 쇄골과 그 아래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짙은 눈썹이 잔뜩 휘어진 모양과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보아,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했다.
“음, 어쩌면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로제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뻔한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관계를 정말 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며칠 전 자신을 거부했던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뿐이다.
눈치 빠른 아르문트는 이러한 속내를 금세 파악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대도 조금 참아.”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속삭였다.
“오늘 그대 때문에 내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으, 능글맞아. 로제타가 쿡쿡거리며 그를 놀려댔다.
그러나 장난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열락은 이제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아르문트는 자신이 뱉은 말을 아주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아예 못 잘 줄 알라던 말이 진심이었을 줄이야. 로제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아르문트는 정말 밤이 새도록 그녀를 괴롭혔다.
장소도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침대에서.
씻으러 가던 중에 갑자기 복도에서.
겨우 아르문트를 진정시킨 후 몸을 씻던 욕조에서까지.
심지어 아르문트는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도는지 처음인 것처럼 다시 침대 위에서 짓궂은 장난을 했다.
초반에야 로제타 또한 사랑의 과정을 즐겼다. 오래도록 고대하던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횟수가 세 번을 넘어가고 나니 극도로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체력이야 워낙 방대한 까닭에 남아 있긴 했지만 정신력이 바닥나는 기분이었다.
네 번째만큼은 거부하려 했건만 아르문트가 미인계를 썼다.
“사랑해, 로제. 그대가 너무 예뻐서 미칠 것 같아.”
“한 번만 더. 부드럽게 할게. 응?”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이런 말을 해대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로제타는 그의 외모에 홀딱 넘어간 죄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잔뜩 신음을 흘려야 했다.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목이 쉰 채 기절하듯 잠이 든 그녀였다.
***
“앞으로 제 몸 건드릴 생각 마요.”
다음날, 로제타는 이불 속에서 몸을 애벌레처럼 만 모습으로 아르문트에게 경고했다.
아르문트는 그런 그녀조차 귀여워 죽겠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미안, 로제. 오늘 밤에는 좀 살살하도록 하지.”
“오늘 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건드릴 생각 말라니까요!”
지금 일부러 불쌍한 표정 짓는 거 다 알아요!
로제타가 작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밤새 당한 것이 있으니 경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휴, 무슨 짐승도 아니고! 자제 좀 해요, 전하!”
“장담은 못 하겠지만 노력은 해볼게.”
짐승 같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르문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겠는가.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로제타만 보면 몸이 반응하는데. 이건 모두 로제타가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탓이다.
아르문트는 은근슬쩍 책임회피를 하며 그녀의 이마에 쪽 입맞춤했다.
여전히 잠옷 차림인 로제타와는 달리 그는 화려한 정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이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는 거죠?”
로제타가 그의 스케줄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르문트는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오늘 루니엘라 공녀를 만난다고 했지.”
“네. 그 뒤에는 마담 르블랑이 차를 마시러 오시기로 했어요.”
“늦지 않게 가지. 내가 없는 동안 즐거운 시간 보내, 로제.”
“그럴게요.”
“그렇다고 너무 즐겁지는 말고.”
질투 나니까. 그가 빙긋이 웃으며 덧붙였다.
아르문트는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겨우 재촉해 방을 떠났다.
로제타와 보낸 시간이 너무 꿈결 같았던 탓에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목적지, 황제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쓰디쓴 현실감만이 남았다. 하루 내내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도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똑똑.
가볍게 노크한 아르문트는 무뚝뚝한 얼굴로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아르문트! 어서 오거라. 몸은 좀 괜찮으냐?”
황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모습이었다. 제 병색의 이유를 찾은 것이 몹시 기쁜 게 분명했다.
“예. 폐하께선 무탈하셨습니까.”
“나야 훨씬 좋지! 네 말대로 신관을 바꾸니 몸이 달라지는 기분이구나. 자, 이쪽으로 앉거라.”
심지어 테이블 위에는 아르문트를 위한 차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아르문트는 떨떠름하게 자리에 앉았다.
“마침 아주 희귀한 차가 들어왔더구나. 마셔보거라.”
황제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차를 권유했다.
막 내린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는 확실히 향기가 독특했다. 다른 대륙에서 수입해온 고급품인 모양이었다.
아르문트는 천천히 찻잔의 손잡이를 잡아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마시려는 찰나, 돌연 좋지 않은 추억이 떠올랐다.
로제타가 그를 대신하여 독이 든 차를 마셔주었던, 그때의 기억이었다.
‘혹시.’
황제가 이제 와서 자신을 해하려들 이유는 없다. 황후의 다양한 공세에도 황태자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던 그였으니까.
그러나 온전히 의지하기에는 너무 가냘픈 믿음이었다.
황제의 마음이 갑자기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벼랑 끝에 몰린 황후가 어떻게든 사람을 심어두었을 수도 있다.
“어서 마셔보래도?”
아르문트가 가만히 앉아있자 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재차 권유했다.
그리고 아르문트는 느릿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