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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가장 친한 친구에게 (117/145)


117화. 가장 친한 친구에게
2022.04.14.


푸른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황후라니.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지위였다.

아르문트의 말대로 황태자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봤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로제타는 그와의 교제에 결혼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결혼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거의 없는 그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방 남작가 출신이다. 그것도 수도의 귀족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한미한.

어지간한 백작 영애도 황후감으로는 부족하다 말하는 형편에, 어떻게 감히 그런 과분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전 생처럼 제국 유일의 소드마스터로서 칭송받기라도 하면 몰라, 지금 그녀는 일개 하녀에 불과한데.

게다가 로제타는 인생의 대부분을 황실 기사로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황가의 사람이란 자신이 모셔야 할 대상일 뿐, 넘볼 대상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로제타는 아르문트의 청혼 비슷한 제안에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입술만 뻐끔거렸다.

아르문트는 그녀의 당황을 다른 식으로 이해한 듯 장난스럽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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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고작 이런 말로 청혼을 대신하려는 건 아니니까.”

그가 눈웃음을 지으며 로제타의 입술에 제 입술을 꾹 찍어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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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예비 신랑이 그렇게 센스가 없는 편은 아니야.”

예비 신랑.

예비 신랑이란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호칭에 로제타의 얼굴이 빠르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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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결혼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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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렇지. 왜냐하면 내가 아직 그대에게 결혼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르문트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녀의 당황스러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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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그대에게 청혼한다면.”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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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날 거절하지 않을 거잖아.”

이해했음에도 일부러 다른 가능성 자체를 묵살하는 것이거나.

아르문트는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의 볼을 꼬집던 손가락이 느긋하게 목을 쓸어내렸다.

다정하기 짝이 없는 손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사나운 집착과 욕망이 감춰져 있었다.

로제타는 여전히 붉은 낯을 하고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의 시선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만 같았다. 숨결 하나 내뱉기가 힘들었다.

방금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의 달콤한 미소에 홀린 기분이었다.

다행히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은 덕에 정말 고갯짓을 하진 않았다. 다만 심장이 쿵쾅쿵쾅 마구잡이로 뛰는 것만큼은 자제하지 못했다.

꿀꺽, 로제타는 침을 삼키며 진정하려 애썼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아르문트가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곧장 대답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의 턱이 조금이나마 움찔한 것을 보았다. 하얀 피부 속에서 심장이 가쁘게 뛰고 있는 것 또한 여실히 느껴졌다.

목선을 따라 내려오던 손가락이 이내 어깨에 얹어진 붉은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쓸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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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해,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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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제 생각이 간파당한 것 같아 로제타는 괜스레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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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최선을 다할 거야.”

촉. 다시금 입술이 닿아왔다. 이번에는 이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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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허락을 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테니. 아르문트가 관능적인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가벼운 입맞춤일 뿐인데 로제타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찔 떨었다. 그의 입술이 제 피부를 스칠 때마다 가슴께가 간질거려서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쿡쿡, 하고 낮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아르문트가 이번에는 그녀의 입술을 노렸다.

로제타는 자신을 놀리는 그를 한번 흘겨보면서도 제 얼굴을 물리지 않았다.

마침내 두 입술이 맞물리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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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마담 르블랑께서 오셨습니다.”

문을 넘어 눈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또 러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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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

아르문트가 짜증스럽게 이를 갈았다.

사실 이번의 경우 러크는 그저 제 임무를 다한 것일 뿐이었지만, 몇 번의 선례가 있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욕을 들어먹었다.

흠흠, 로제타는 헛기침을 뱉으며 다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와 한참을 껴안고 있었던 탓에 원피스에 주름이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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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 해.”

아르문트는 그녀를 도와 머리와 옷을 정돈해주며 응접실로 향했다. 정작 본인의 차림새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그였다.

곧 마담 르블랑이 특유의 다정한 미소와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몇 걸음 떼지도 않았을 무렵 그녀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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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오랜만에 뵙습…… 어머나.”

뭐가 문제인고 했더니 하필이면 그때 아르문트의 손이 로제타의 엉덩이 쪽 주름을 털어주고 있었다.

당황한 아르문트가 제 손을 재빨리 원상복구 시키긴 했지만 이미 마담 르블랑은 모든 것을 봐버린 후였다.

어쩐지 상기된 로제타의 얼굴. 다급히 옷차림을 정돈한 것 같은 모습. 아래에서 올라온 손.

방금 있었을 상황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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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너무 일찍 왔나 봐요. 생각해보니 오늘 다른 약속이 있었던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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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그런 것 아니다.”

마담 르블랑이 슬그머니 뒤를 돌아 나가려 하자 아르문트가 재빨리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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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한 차도 이미 준비해놓았으니, 어서 앉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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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제가 괜히 와선. 한창 청춘인 두 분을 방해했네요, 못 살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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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라니까.”

그만 놀려, 베티.

아르문트가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무리 부끄러움이 없는 그라 해도 자신을 길러준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들킨 건 민망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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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알겠어요, 전하.”

마담 르블랑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입가에 그려진 호선을 지우지 못했다. 초록빛 눈동자 위로 장성한 아들을 향한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로제타는 애써 민망하지 않은 척 미소 지으며 미리 준비해둔 차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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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몸은 좀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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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덕분에 아주 건강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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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이후로 한번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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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죄송하기는요. 황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아는걸요.”

마담 르블랑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그러곤 자긴 정말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일’이란 마담 르블랑이 로제타를 대신하여 밀리엄 백작 부인에게 맞은 사건을 의미했다.

그날, 백작 부인의 손에 밀려 거세게 넘어진 이후로 마담은 열병이 나 집에서 죽 요양을 취했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백작 부인을 제압할 것을. 로제타가 시무룩한 얼굴로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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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늙으면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픈 법이랍니다. 그 일 때문에 아팠던 건 아니니, 괜히 마음 쓰지 말아요.”

마담 르블랑이 다정한 목소리로 로제타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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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김에 푹 쉴 수 있어서 저는 오히려 좋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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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들네에서 지내다 온 건가? 이름이 제롬이었지. 그는 잘 지내나?”

아르문트가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주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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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직 좋은 짝은 못 만났지만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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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운이 좋기는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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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랑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그 무뚝뚝하던 전하가 이런 말을 다 하고.”

그녀의 농담에 아르문트가 장난스럽게 응수하자, 마담 르블랑은 경악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가벼운 농담으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때로는 서로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담 르블랑은 황제가 그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을 듣고 눈시울까지 붉혔다.

한편, 로제타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였으나, 중간중간 그녀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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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황후가 되는 것이 당연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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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해, 로제.”

 
자꾸만 아르문트의 목소리가 떠올라 집중을 방해한 것이었다.

두근, 두근.

진정된 줄 알았던 심장도 다시금 가쁘게 뛰어댔다.

가슴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한 단어로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어려운 감정이었다.

로제타는 얼른 누군가에게 이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고 싶었다.

대상은 누구든 좋았다.

멜라니와 엘리아라면 아마 그녀보다도 더 기뻐하며 축하해줄 것이고, 요즘 친해진 페이즐리라면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해주다가도 결혼한 후에도 검술 과외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리라.

그러나 그들보다도 먼저 얘기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소식은 역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먼저 말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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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트기 전, 새벽.

발레리안의 연구실 한편에서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마찰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발레리안 전용 수련실이 있는 쪽이었다.

콰과광!

채앵!

어찌나 소리가 큰지, 누가 들으면 전쟁이라도 난 줄 알 정도였다. 방음 마법이 걸려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황궁의 사용인들을 전부 깨웠을 것이다.

이러한 굉음을 만들어낸 범인은 다름 아닌 로제타와 발레리안이었다.

새벽같이 만나 대련을 시작한 그들은 오래간만에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본 실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발레리안의 스태프에서 만들어진 마법은 로제타에게로 날아가 그녀의 목숨을 노렸고, 마찬가지로 로제타의 검 끝은 그의 목을 향했다.

대련은 언제나 실전처럼.

발레리안과 로제타가 합의한 지론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다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둘 다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웬만해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일은 없었다. 적당한 상처는 나중에 치유 받으면 그만이고 말이다.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승패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싸움이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점점 결과가 드러나고 있었다.

로제타는 한쪽 옷깃이 불마법에 약간 그을렸다는 것 빼고는 몹시 멀쩡한 상태인 데 반해, 발레리안의 몸에는 점점 작은 생채기가 늘어갔기 때문이었다.

까강-!

아니나 다를까 곧 발레리안의 스태프가 반으로 조각나 날아갔다.

어느새 로제타의 검 끝은 그의 목젖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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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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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제대로 졌어.”

거친 숨소리만이 오가던 중, 먼저 호흡을 가다듬은 발레리안이 생긋 웃으며 패배를 선언했다.

그러자 로제타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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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너 자꾸 짜증 나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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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한 대꾸에 그녀가 다시금 얼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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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봐주고 있잖아!”

로제타는 훈련용 검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그랬다.

분명 발레리안이 승기를 잡을 만한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는데, 그는 그럴 때마다 한 박자 느리게 스태프를 휘둘렀다.

반응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발레리안의 실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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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적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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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할 생각이면 집어치워. 내가 그렇게 바본 줄 알아?”

발레리안은 능청스럽게 변명하려 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로제타가 살벌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자 그는 재빨리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죄를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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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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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그랬는데? 만만해 보여서?”

발레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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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플까 봐.”

로제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짜증까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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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 예전에는 잘만 마법으로 날려버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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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때고.”

발레리안이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싶은 모양이었다.

정말 발레리는 아무리 봐도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

로제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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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힘들다.”

오랜만에 제대로 땀 뺐네.

그녀가 쭉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발레리안이 온전히 실력 발휘를 하지 않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제대로 몸을 푼 덕에 기분이 상쾌했다.

발레리안은 그녀를 따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전에는 같이 드러눕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로제타는 몸을 옆으로 돌려 발레리안의 옆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그 또한 대련이 제법 힘들었는지 머리카락 끝이 땀으로 살짝 젖어 있었다.

더울 텐데도 멋을 위해 끝까지 망토를 벗지 않는 모습이 몹시 그다웠다.

그녀는 숨을 쌕쌕 몰아쉬며 그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얼굴에는 상처를 내지 않았다고 안도할 무렵, 어쩐지 발레리안의 귀 끝이 붉어졌다.

로제타는 어지간히 더운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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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발레리.”

움찔. 날렵한 턱선이 작게 떨리는 게 보였다.

또 짜증을 낼까 봐 긴장했나?

그게 아니라면 이름을 부른 것 가지고 저렇게 당황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로제타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부드럽게 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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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가 내게 청혼하려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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