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프러포즈 (137/145)


137화. 프러포즈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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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흠.”

식사 테이블 앞에 앉은 로제타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잔뜩 놓여 있었다. 아마 엘리아나 멜라니가 주방장에게 말을 해둔 모양이었다.

아르문트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 듯 한쪽 눈썹을 비틀었다.

다이닝 룸에 올 때부터 썩 좋지 않던 낯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재 로제타에게 지나치리만큼 많은 시선이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황손을 호위한답시고 벽마다 서 있는 기사들은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흘끔거리기 바빴다.

반짝거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괜스레 헛기침도 해봤지만, 시선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참다못한 아르문트가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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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경만 빼고 모두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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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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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살벌한 목소리로 명령하고 나서야 기사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다이닝 룸을 떠났다.

리처드는 답지 않게 하품을 쩍 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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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암. 저도 나가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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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은 계속 호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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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마스터가 옆에 있는데 무슨 호위가 필요하다고…….”

리처드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건방진 태도가 마치 러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르문트는 리처드가 이번 사건 이후 성격이 변한 것 같다며 혀를 쯧 찼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처드를 바라보는 눈길은 이전보다 퍽 상냥했다.

그런 그의 변화가 달가워 로제타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아르문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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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즐거운가 보지? 나는 요즘 매일 질투로 죽어 나가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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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무슨 질투까지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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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내놈들이 그대를 저렇게 흘끔대는데, 어떻게 질투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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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로 쳐다보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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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든.”

아르문트는 흥 콧방귀를 뀌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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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많은 애인을 두는 건 꽤 피곤한 일이군.”

그의 말대로, 요즘 로제타의 인기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찔렀다.

그녀가 소드마스터라는 사실과, 가장 위험할 때 멋지게 나타나 아르문트를 구한 이야기가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며 난리가 난 것이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이 극적인 러브스토리에 열광했다. 하나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랑이라며 칭송하기 바빴다.

심지어 벌써 아르문트와 로제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음유시인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고 했다. 이러다 연극으로 제작하겠다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확실히 이전 회차에 소드마스터가 되었을 때보다도 반응이 격렬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아르문트의 연인인 데다, 한미한 가문 출신이자 황궁 하녀이기 때문이리라.

어딜 가도 시선이 따라붙었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다가와 친한 척을 했다.

조용한 걸 즐기는 로제타로서는 이러한 인기가 몹시 피곤하기는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바로 모두 그녀와 아르문트의 결혼을 한마음 한뜻으로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제국 유일의 소드마스터를 황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자신과의 결혼이 아르문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하녀 주제에 무슨 황태자의 연인이냐며 조롱하기 바빴던 걸 떠올리면 허망하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만 본다면 잘된 일이었다.

기사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로제타와 아르문트는 함께 식사하며 밀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중간중간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리처드의 시야를 더럽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보니 어느새 진지한 주제로 접어들었다.

그 시작은 밀리엄 백작 부인과 마담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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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밀리엄 백작 부인은 사실 황후를 막으려 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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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더군. 그녀의 일기 내용이 사실이라면.”

황후의 최측근이라고만 생각했던 밀리엄 백작 부인은 황후 모르게 그녀의 범행에 대해 기록해왔다. 이는 모르트마르 백작을 반역죄로써 처형하는 데 큰 증거가 되었다.

일기에는 로제타가 모르는 내용이 잔뜩 담겨 있었다.

황후, 아르티나 모르티마르와 함께 시녀로서 전 황후를 모시던 밀리엄 백작 부인은 사실 전 황후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모르티마르를 따르게 되었으나, 마담과는 달리 황후 모르게 계속해서 아르문트를 도와왔다. 흑마법의 금제가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죽은 말콤의 입에 마담의 옷 장식을 넣어놓은 것도, 마담이 로제타를 죽이려 할 때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 방해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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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 혀를 자르겠다 협박했을 때도, 내가 끝까지 아르문트에 대한 정보를 불지 않자 그만두게 하려던 눈치였지.’

믿을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아니라면 쫓아내려는 목적이었을 테다. 그전 하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껏 악인이라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아르문트를 도왔다니. 기분이 미묘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마담이 배신자였던 것만큼이나 이상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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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거구나…….’

로제타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번 체감하며 마지막 남은 미트볼을 예쁘게 잘라 입안에 넣었다. 적당히 짭조름한 것이 아주 맛이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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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대마법사 말인데.”

난데없는 주제 전환에 순간 미트볼을 뱉을 뻔했다.

다행히 꿀꺽 삼켜내긴 했지만 두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반역이 터진 날 저녁, 로제타는 그에게 발레리안이 황후에게 조금이나마 협력했음을 밝혔다. 아르문트에게 방어 마법을 걸어주긴 했지만, 어쨌든 뒤에서 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니까.

다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발레리안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혹 그가 큰 벌을 받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종종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 아르문트는 그 처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리라.

꿀꺽. 로제타가 다시 침을 삼켰다. 입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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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벌은 유배형으로 정했어. 기간은 5년, 장소는 남부가 적당할 것 같군. 이름은 유배형이지만 실제로 감금해두진 않을 테니 걱정 마. 5년간 수도에만 오지 못하는 것뿐이야.”

아르문트는 이렇게 말하며 시종에게 손짓했다. 메인 요리를 다 먹었으니 디저트를 가져오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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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거요?”

로제타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아르문트의 말대로라면, 5년 동안 수도에만 오지 못할 뿐이지 무얼 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처분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수준의 벌이었다.

발레리안이 큰 벌을 받기를 원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벼운 처사로 끝날 줄은 몰랐다. 비록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곤 하나 명백히 황태자 시해에 가담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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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그가 동참한 걸 아는 이는 그대밖에 없는 데다…… 그대가 대마법사의 처분을 원하지 않잖아. 내겐 그대의 의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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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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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마법사에겐 이것이 그 무엇보다 무거운 벌일 것 같기도 하고.”

5년간 그대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니.

아르문트가 생긋 웃으며 말을 삼켰다. 굳이 여기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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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건 그렇게 하기로하고. 대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지. 알다시피 내가 질투가 심해서, 그대가 다른 남자 생각을 하는 게 썩 불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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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핫, 그래요. 전하 생각만 할게요.”

로제타는 쉬지 않고 질투하는 그가 귀여워 웃음을 터트렸다.

아르문트도 마주 웃으며 그녀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은은한 홍차 향이 공기를 타고 번지자 로제타가 일순 몸을 움찔거렸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녀는 따뜻하게 데워진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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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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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대가 언제까지 날 전하라 부를지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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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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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봐, 로제.”

그녀가 재빨리 말을 수정하자 아르문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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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이 준 차에 독이 들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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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향기였거든.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가르쳐준 적이 있어. 이런 향기를 풍기는 차에는 맹독이 들어 있으니, 조심하라고.”

로제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르문트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약 그가 정말 그 향기를 알고 있었다면, 지난 생에는 왜 독이 든 차를 마시고 죽었단 말인가.

그때는 다른 독을 썼었던 걸까? 그런 맹독은 흔하지 않을 텐데.

고민해봐도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르문트는 그녀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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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마셨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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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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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삶의 기쁨을 알게 되지 못했더라면. 굳이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쿵.

심장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순간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네 번의 회귀 끝에야 그가 죽은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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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차에 독이 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마셨던 거였다. 마담의 배신을 깨닫고, 더는 살 이유를 찾지 못해서.

첫 번째 죽음은 맹독이 묻은 침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그게 아니었더라도 아르문트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의 숙명처럼.

그것은 타살이었지만 자살이었고, 동시에 자살이지만 타살이었다.

툭, 투둑.

무언가 볼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이를 발견한 아르문트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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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무슨 일이야!”

왜 울어. 그가 당혹한 목소리로 물으며 다급히 손수건을 빼 들었다.

로제타는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저으며 계속해서 눈물을 떨궜다.

그의 삶이 너무 가련해서, 네 번의 삶 동안 한 번도 그에게 의미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그리고 이번 생이야말로, 아르문트가 살아준 것에 너무 감사해서.

수많은 이유로 울음이 터져 흘렀다.

아르문트는 영문도 모르고 허둥지둥 다가와 그녀의 의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곤 조심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만큼이나 괴로운 얼굴로 말이다.

로제타는 한참을 더 훌쩍였다. 그 결과 아르문트의 손수건이 눈물로 온통 젖어 들었다.

리처드가 조심스레 다가와 여분의 손수건을 건넸으나 아르문트는 다른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 와중에도 다른 놈의 손수건 따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로제타는 한 개의 손수건을 더 적시고, 아르문트의 권유로 차를 몇 모금 더 마신 후에야 겨우 진정했다.

너무 운 탓인지 두 눈이 퉁퉁 부어버렸다.

로제타는 새삼 자신이 민망한 꼴을 보였음을 자각하고 머쓱하게 코를 훌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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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해야겠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제 비밀을 털어놓을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큰 결심과 함께 입을 열려는 순간, 아르문트가 선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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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미안하지만, 당분간 여행을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

그녀의 울음만큼이나 느닷없는 얘기였다.

상황상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게 당연했기에 로제타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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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아르문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로제타는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퉁퉁 부은 눈만 비벼댔다.

이내 시원하게 트인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호선을 그렸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보고 나서야 로제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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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나와, 결혼해주겠나?”

프러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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