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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두 번째 허니문 (141/145)


141화. 두 번째 허니문
2022.07.07.


꿀꺽. 로제타는 튼실하게 솟은 가슴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셔츠를 입었는데도 근육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스물네 살의 아르문트도 제법 몸이 탄탄한 편이었지만, 서른넷의 그는 그때와 비교도 안 되게 훌륭했다. 꾸준히 몸을 키워왔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시선이 가슴선을 따라 아래로 쭉 내려왔다.

그렇다면 복근도 더 튼실해졌을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로제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 그러면 조금만…….”

평소의 그녀였다면 거절해야 함이 마땅한 제안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저렇게 잘난 외모로 유혹을 해대는데 넘어가지 않고서 배기겠는가. 심지어 아르문트는 그녀의 남편이기도 하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르문트는 편안히 만질 수 있도록 팔을 치워주기까지 했다.

그러한 도움에 힘입어 로제타는 슬며시 그의 가슴 근육을 쓰다듬었다.


“오…….”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촉감이 아주 탄탄하고 쫀득한 것이 만질 맛이 났다.

흘끔, 아르문트의 눈치를 보자 상냥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시야에 담겼다.

과연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는지, 이전 같았으면 뺨을 발갛게 붉히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여유가 가득해 보였다.

평온한 태도를 확인한 로제타는 더욱 서슴지 않고 그의 몸을 더듬었다. 넓은 어깨도, 딱딱한 복근도, 핏줄이 은근하게 솟은 팔뚝까지도 몽땅 만져보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열심히 입을 놀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우리 결혼식은 어땠어요? 크게 진행했나요?”

“예. 사실 부인께서는 그리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지 않는 듯하였으나, 급하게 제위에 오르게 된 이상 어느 정도 보여주기식 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메이필드 남작, 그러니까 제 아버지도 왔던 건 아니죠?”

“입장 전에 제지되었습니다. 손님들이 보기 전 리처드 경이 알아서 처리해주었죠. 이후 그와 메이필드 영애가 몇 차례 더 부인을 만나고자 시도하였으나 제 선에서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더 귀찮아질 일은 없을 겁니다.”

어휴, 사람은 역시 안 바뀌는구나.

로제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그의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어쩜 아르문트는 손까지 예뻤다. 잠시나마 가라앉았던 기분이 다시금 가벼워졌다. 모두 아르문트의 아름다움 덕이었다.


“참, 웨딩드레스는 뭘 입었어요?”

“로젠다이엠의 마담이 만들어준 드레스를 세 벌 입었습니다. 드레스룸에 보관되어 있으니 다시 입어볼 수 있을 겁니다.”

“로젠다이엠 거라면 분명 예뻤겠네요.”

“예.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너무 예뻐서, 예식 순서마저 잊고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요.”

물론, 지금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아르문트가 사르르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로제타는 부끄러운 마음에 괜스레 헛기침만 뱉었다.


“그,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는 뭘 했어요?”

바로 신혼여행을 떠났는지가 궁금해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르문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기다란 손가락이 느릿하게 그녀의 손가락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따뜻하면서도 간지러운 촉감이 피부를 타고 번지자 로제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글쎄요. 뭘 했을 것 같습니까?”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녀라도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화르륵! 로제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의 가슴이고 배고 전부 다 만져놓고, 고작 이런 말에 민망해하다니.

스스로도 과민하다는 걸 알았으나 자제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여전히 그가 지나치게 관능적인 탓이었다.

아르문트는 고구마 같은 얼굴이 된 그녀를 발견하고 쿡쿡 웃음을 흘렸다.

웃음소리가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아 로제타의 피부는 더욱 벌게졌다.


“이런. 어린 부인을 희롱한 몹쓸 놈이 된 기분이군요.”

“회귀한 시간을 다 합치면 제가 훨씬 더 나이 많거든요?”

“그러십니까.”

그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더 깊어졌다. 기다란 눈매가 연신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졌다.

로제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회귀를 얼마나 했든 간에 지금 제 말솜씨로 저 능구렁이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도대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르문트가 이렇게 변한 건지, 그동안의 기억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신혼여행은 어땠어요?”

“결혼식과 달리 허니문은 다소 간소하게 진행했습니다. 부인의 바람대로 시녀나 하인조차 대동하지 않고 떠났죠.”

“남부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 갔다고 했죠? 예뻤나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나군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그렇다기엔 아르문트의 기억력이 그리 나쁘지 않을 텐데.

로제타는 의아한 마음에 눈을 껌뻑거렸다.

씨익. 아르문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는 모습이 보였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음 이어질 말 또한 무척 부끄러운 것이리란 걸.


“내내 침대에만 있어서. 풍경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을-.”

“와아 너무 아쉽다! 너무 아쉽네요!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참 재밌었을 텐데 기억에 없다니 아쉬워 죽겠어요!”

로제타가 와다다 말을 쏟아내며 그의 말을 잘랐다. 부끄러운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으나 귀까지 붉어진 이상 그건 이미 글렀다.

그러자 아르문트는 또다시 크게 소리 내 웃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원. 그녀는 민망한 나머지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그렇다면 다시 하죠.”

“네?”

“내일 바로 출발할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네?”

로제타가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고 다시금 눈만 바보처럼 껌뻑거렸다.


“신혼여행 말입니다.”

 

 

***

다음날, 로제타는 정말 남부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푸짐한 아침을 먹고, 테오도르에게 간단히 진찰을 받은 뒤 자연스럽게 마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손에는 그녀의 전속 시녀가 된 엘리아가 바리바리 싸준 가방을 쥔 채로 말이다.

황제가 이렇게 갑자기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거냐며 아르문트를 말렸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부인과 여행 한번 마음대로 못 간다면 자신은 황위를 버리겠노라 선언하기에 그냥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뭔 놈의 황위를 저렇게 쉽게 포기하는지. 로제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렇다 보니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마차가 수도를 떠나온 후였다.

남부까지는 서너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마차를 이렇게 오래 탄 경험은 많지 않아 무얼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잘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문트의 눈빛이 너무 반짝거렸다. 그녀와의 여행을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저런 얼굴을 앞에 두고 잠을 잘 자신은 없어서, 그녀는 적당히 대화 주제를 찾아 꺼냈다.

마침 궁금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저나, 러크 경이랑 멜라니는 어떻게 됐어요? 잘 결혼했나요?”

“예. 우리가 결혼하고 바로 다음 주에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부부보다 알콩달콩하게 잘살고 있죠.”

“그, 다리는…….”

“안타깝지만 여전히 거동하지 못합니다. 본인은 어차피 기사로 오래 일하진 못할 것 같았고, 평생 써도 다 못 쓸 보상금을 받았으며, 결정적으로 멜라니라는 아내를 얻었으니 다리 하나쯤 걸 가치가 있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죠.”

“그렇군요……. 엘리아는 10년 전부터 쭉 제 시녀로 일해온 건가요?”

“예. 연애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며 평생 부인과 함께 사는 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부인이 저보다 엘리아 양과 더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질투가 났지만…… 엘리아 양이 부인의 뒷얘기를 하는 하인을 의자로 내려찍는 모습을 본 뒤로는 저도 별다른 간섭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하구나.

로제타는 빗자루로 셀레나의 엉덩이를 가격하던 엘리아의 용맹한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뒤로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10년의 세월을 메꾸려면 아직 나눠야 할 이야기가 한참 남은 까닭이었다.

리처드가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한 것도, 페이즐리와 테오도르 신관 사이에 귀여운 왕자님이 태어난 것도 모두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제국의 정세도 그녀의 첫 번째 생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흘러온 듯했다. 아스펠과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전쟁을 예방한 것이 가장 큰 예였다.

시간을 돌리기를 정말 잘했다. 로제타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제 선택에 감사했다.

몇 시간을 떠들어댔을까.

한참 만에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로제타는 새삼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문트의 눈빛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크기의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이 모두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치사해요.”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저는 아직 결혼 전의 풋풋한 기억에 머물러 있는데.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행을 가는 것만으로도 설레서 죽을 것 같은데, 전하는 이미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을 거 아녜요.”

“하하하!”

아르문트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로제타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질책했다.


“뭐가 웃겨요?”

“아니, 아닙니다. 그저…… 제가 했던 말을 부인이 하니 재밌어서.”

“……전하가 이런 말을 했다고요?”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데. 그녀는 의심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예. 그랬습니다. 정확히는 이보다 더 심했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전 처음처럼 설레고 부끄럽기만 한데. 아직도 부인의 미소 하나, 손짓 하나에 사춘기 소년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저와 달리 부인은 무던해진 것만 같아 속상하다며 떼를 썼습니다.”

시무룩한 얼굴로 애정을 갈구하는 아르문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모습마저 매혹적일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중증이었다.


“부인께서 기억을 잃은 지금은 더합니다. 서른넷의 내 모습이 부인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어떡하나. 늙었다며 싫어하는 건 아닐까, 밤새 마음을 졸였습니다.”

“싫어할 리가요!”

오히려 너무 좋아서 미치겠는데!

로제타가 입술을 꾹 깨물어 말을 삼켰다. 벌써 너무 변태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야 없다. 어쩌면 이미 한참 전에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동안 부단히 관리해오길 잘했습니다. 저 또한 지금 이 여행이 무척 설레서 자제하기 힘들 정도이니, 부인도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요? 아문도 그래요?”

“……제가 왜 이런 여름날 긴 외투를 입었다고 생각합니까?”

“네? 그야…….”

로제타의 시선이 그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외투로 덮인 허벅지 부근이 미묘하게 솟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쳐다보지는 마세요. 이 마차에는 부인과의 즐거운 기억이 제법 남아 있는 데다…… 여전히 자제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닌지라.”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아르문트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선 매우 엉큼한 말을 속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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