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화 (1/44)

프롤로그

&01

이세계 1일차.

어둡다. 축축하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아프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이유는. 아니, 이처럼 속으로 오늘을 정리하는 이유는 미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지? 난 죽는 것일까?

미치겠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이세계 15일차.

오늘도 꿈을 꾸었다.

사랑하는 석영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과 쿠야, 그리고 밉지만 평생 함께 할거라 믿었던 친구 창익이가 꿈에 나왔다.

일어나니 울고 있었다.

젠장···너무나 보고 싶다.

하지만 볼 수가 없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니까.

처음엔 부정도 해 봤지만, 낯선 해와 낯선 달이 뜨고 지기를 15번이나 반복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이 끝없이 우거진 숲은 지구가 아니다.

심지어 나뭇잎마저 초록색이 아니라 기분나쁜 갈색이지 않은가?

아니 씨발···난 노가다 뛰고 집에 와서 라면 끓인 다음에 잠깐 눈 붙인 죄밖에 없다고······.

심지어 먹지도 못하고 피곤해서 잠들었다고.

여긴 도대체 어디일까.

지구가 그립다.

다시 돌아갈 때까지 내가···죽지 않길 바란다.

이세계 32일차.

갈색 대수림.

이곳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한 가지만 꼽자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먹이사슬 관계일 것이다.

여기는 호랑이보다 토끼가, 토끼보다 쥐가 강했다. 물론 덩치도 더 컸다. 편의상 지구의 생물로 분류해서 불렀지만 자세히 보면 지구의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많다. 아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적어도 저것들은 토끼나 쥐로 불리진 않겠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반대로 부정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가장 약한 호랑이보다 내가 약하다는 사실 정도랄까?

자 여기서 문제 하나. 나는 32일 동안 뭘 먹고 살았을까?

벌레다.

그것도 손바닥 만한 벌레다!

세상에, 여긴 그런 벌레들이 즐비하다.

며칠 전에는 주먹 만 한 개미들에게 포위 당해서 산채로 잡아먹힐 뻔했다.

처음, 테니스 공만 한 모기가 나한테 붙어서 실시간으로 커질 때는 얼마나 아찔하던지.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먹으려고 들어올린 벌레가 갑자기 폭발하는 건 정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해서 던지지 않았더라면 오른 팔이 날아갔을 것이다.

염병. 수류탄이었다니.

이런 씨발···한 달 조금 넘는 시간에 이렇게 많이 죽을 뻔 하다니.

나, 정말 살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세계 192일차.

폭탄 벌레를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 사냥이 쉬워졌다. 폭탄벌레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다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나서 가 보면 사냥감이 반쯤은 죽어가고 있는 식이다.

오늘은 쥐새끼가 걸렸다.

토끼가 맛있어서 토끼였으면 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이거라도 맛있게 먹어야 겠지.

아···치킨···아니, 라면먹고 싶다.

이세계 204일차.

오늘은 자고 있는데 호랑이가 날 덮쳤다.

아직도 녀석에게 물린 왼쪽 승모근이 뻐근했다.

물론 녀석은 나에게 가죽을 남겼다.

옛말을 되짚어 보았을 때 죽어서 가죽을 남겼으니 녀석도 남는 장사 아닐까?

···쩝.

이런 뻘한 개그에도 웃어줄 녀석들이 보고싶다.

지금 쯤 날 엄청 찾고 있겠지?

여동생도, 쿠야도, 못생긴 창익이 녀석도 모두 보고싶다.

녀석들아. 잘 살아 있냐?

난 여기서 잘 살아가고 있다.

이제 좀 숲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는 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세계 254일차.

그간 호랑이도, 토끼도, 거대한 쥐새끼도 맨손으로 모두 죽이며 살았다.

녀석들을 많이 섭취하면서 깨달았다.

각질을 갑옷처럼 두른 곰을 죽이고 그 굴을 빼앗아 살며 몇 날 며칠 곰 고기를 씹어먹다가 손아귀에서 각질이 돋아났으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곳에 떨어진 후 개화한 힘은 ‘고기를 먹으면 강해지는 힘’이 아니었다.

무려 ‘섭취한 녀석들의 일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거였다!

확신이 들었다.

이 영역에서 나보다 강한 녀석은 모두 나에게 죽었다는 확신이.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이세계 434일차.

난 확실히 이곳의 최고가 되었나 보다.

눈 마주치면 달려들고 보던 녀석들이 이젠 나를 피한다.

아니, 오히려 다가와서는 배를 까뒤집고 아양을 떤다.

어떤 녀석은 궁둥이를 들이밀며 나를 야릇한 시선으로 돌아보기도 해서 발로 걷어차 주기도 했다.

녀석들은 나를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혹은 이용하려 들고 있었다.

거참.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

이세계 1812일차.

벌써 이곳에서 맞이하는 여섯 번째 겨울이다.

이번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얼마나 춥냐면, 한 겨울에도 얼지 않던 지하수가 꽝꽝 얼어버렸을 정도다.

지하수의 매끈한 얼음 표면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반사했다.

천연 거울이 된 셈이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바뀐 내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참. 많이도 변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에나 170이 되던 키가 190이 되어 훤칠했다.

통통하던 몸뚱이는 표범처럼 옹골찼고, 이게 근육의 윤곽인지 살이 갈라져서 생긴 흉터인지 모를 것들이 온 몸에 빼곡했다.

확실히, 나는 잘생겨져 있었다.

문득 눈물이 났다.

석영이가 보면···좋아해 주었겠지?

아니, 상처를 보곤 슬퍼했으려나?

이석영. 소꿉친구에서 시작해 연인으로 끝난 나의 유일한 여자친구.

예쁘고, 사랑스럽고, 나만 좋아해주고.

석영이보다 딸리는 외모 때문에 가끔 내가 자격지심을 느낄 때에도 장난을 걸며 따스하게 달래주던 그녀.

보고싶다.

하지만 더이상 볼 수 없겠지.

지구로 돌아가는 건 3년도 전에 포기했으니까.

사랑했다, 석영아.

나같은 건 잊고 잘 살기를······.

이세계 10952···아니, 30년 하고도 2일차.

여전히 나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가끔 나에게 도전해 오는 맹수들이 있었지만 가볍게 제압한 후 본보기를 보여주자 내 권위에 도전하는 녀석들도 사라졌다.

이상한 점은, 내 몸이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몸 단련을 게을리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겨먹은 게 똑같은 건 참으로 이상할 노릇이다.

오히려 단련으로 인해 몸이 엄청 좋아졌다.

이곳에선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이곳에 와서 딱 하나 좋은 점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세계 31년 하고도 242일차.

어제까지만 해도 나의 삶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주변 환경이 바뀐 건 아니다.

내가 바뀌었다.

아마 단련으로 인해 발달한 기감이 임계점을 넘어서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선 듯했다.

주변엔 나만큼 강한 녀석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더 들어가면 나를 가볍게 찍어누를강자들이 넘쳐났다.

알고보니 나는 우물. 아니, 웅덩이 안 개구리 신세였다.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던 건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아서 였다.

난 언제고 나보다 강한 녀석에게 죽임 당할 수 있는 나약한 몸이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다.

운이 좋으면 오래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운이 나빠지면? 주변 강한 놈이 세력 넓히겠다고 움직였다가 이곳이 휘말린다면?

나의 작은 웅덩이는 불어나버린 강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강이 되어야 했다.

아니, 바다가 되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서 언젠간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이세계 82년 하고도 322일차.

폭탄벌레 밭을 지났다.

거대 산에 위치한 진짜 호랑이를 잡았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대 문어를 잡고, 그 어느 것보다 질겼던 거미줄을 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난, 여전히 살아 있다.

중간 부턴 동물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달린,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녀석들이 종종 등장하고는 했다.

녀석들은 붉은 피부를 가졌다. 뿔도, 점막날개도 달려 있었다.

심지어 말을 걸어 오기까지 했다.

물론 뭐라고 씨부리는 지는 알 수가 없다. 공격하며 씨부리는 것에 대답할 생각도 없었다.

나를 공격했으니, 그저 뿔을 뽑아내고 날개를 잘라서 죽여버릴 뿐이다.

녀석들은 나에게 좋은 먹이 공급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 물론 잡아먹은 건 아니다.

그저 뿔만 뽑아서 얇게 잘라서 건조시킨 후 사탕처럼 오독오독 씹어먹었다.

동물의 기름을 쥐어짜서 그것을 가열해 튀김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립보행 하는 놈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먹는 건 좀 그렇더라고.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라. 난 그리 비위 좋은 놈이 아니다.

그런데 나 누구랑 이야기 하니?

점점 미쳐가는 느낌이다.

어찌 되었건, 난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터줏대감이 있으면 터줏대감을 잡고, 섭취하고, 또 나아가고를 반복하며 강해졌다.

이쯤 되자 멈출 수가 없다.

빌어먹을. 수십 년 동안 강한 녀석들을 죽이고 섭취하며 강해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강한 녀석들 투성이인데 내가 어떻게 정체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이세계 163년 하고도 24일차.

세상에나.

인간을 만났다.

그것도 이곳 원주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지구출신 인간을!

“으음, 헤, 헬로우?”

“ты. Вы, кажется, не знаете языка здесь. невероятный! кто ты? Ты вернулся из Кореи?”

“에···영어 할줄 모릅니까? 보아하니 그거 러시아어 같은데······.”

난 황금원숭이에게 심장이 파 먹혀 죽어가는 녀석을 구해서 보살펴 주었다.

녀석의 이름은 볼카프스키라고 했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발짓을 통해 녀석에게 이곳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손짓발짓으로 나에게 설명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며, 당연히 이 숲도 다른 세상의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계진입자들이 꽤나 많이 존재하고 있다고. 그들은 도시에 살고 있다고.

괜찮다면 그곳으로 같이 가자고!

세상에. 미칠듯이 기뻤다.

이제 인간 냄새 좀 맡고 살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기쁨은 잠시다.

새끼가 도망쳤다.

그것도 내가 공들여 만든 소중한 무기를 가지고 튀어버렸다.

젠장.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아예 내 보따리를 가지고 튀어버렸네.

빌어먹을 러시아 새끼!

그래도 나에겐 수확이 있었다.

이곳에, 나 혼자 떨어진 건 아니라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이세계 164년 하고도 287일차.

외롭다.

미칠듯이 외로웠다.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1년 전 만났던 볼카프도눅놈의스키는 내 무기만 가지고 튄 게 아니었다.

내 평정심도 가져갔다.

인간을, 그것도 지구의 인간을 보지 않았을 때와 지금은 천지차이였다.

잊고 있었던. 마음 저편에 묻어 놨던 그리움이 한번에 터져 나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와 씨. 이러다 자살 할 수도 있겠지 싶다.

그래서일 것이다. 죽어가던 마수 한 마리를 치료한 것은,

윌슨이란 이름을 짓고 키우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이유 때문일 터였다.

“내가 살던 세상엔 쿠야라는 녀석이 있어. 너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지만, 혹시 만나게 된다면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어흥어흥!

그렇게 나와 녀석은 마경 안을 탐독했다.

그 시간이 퍽이나 즐거웠다.

이세계 269년 하고도 23일차.

윌슨을 보내주었다.

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을까봐 보내주었다.

녀석도 나와 함께 강해졌지만 여기까지가 한계다.

나처럼 녀석은 무한대로 강해질 수 없었고, 점점 쇠약해져 갔다.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면 녀석은 숲이 내뿜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보내주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의 두 번째 반려동물은 그렇게 나와 생이별했다.

내가 알던 모든 이들이 그러했듯이······.

이세게 290년 하고도 176일차.

그렇게 나아가고, 잡고, 흡수하고 강해지고, 또 나아가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산 하나가 나를 막았다.

구름에 가려서 얼마나 높은지도 모를 만큼 높은 산이었다.

무작정 올라갔다.

두려움은 없었다.

그딴 것을 느끼기에 나는 너무 오래 투쟁해 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꼭대기에서 만난 날개달린 검은 도마뱀이 검은 불을 뿜을 때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녀석은 나를 가소롭게 내려봤는데, 그 표정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 보단 강했지만, 결국 난 녀석을 죽일 수 있었다.

녀석의 몸은 다방면으로 유용했다.

날개로는 지붕을 올리고, 몸통으로는 집의 뼈대를 쌓았다.

숲에서 가장 높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아래쪽 세상은 나의 오랜 의문점을 풀어주었다.

넓고, 넓고, 정말 넓은 대수림.

그 대수림의 바깥. 지평선 너머엔 분명 인간이 만들어낸 빛이 있었다.

···염병.

길을 잘못 들었다.

완전 반대로 왔다.

살고자 들어선 길은 문명세계와 나를 더욱 단절시켰다.

아마 방향을 반대로 잡았더라면, 더 약한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갔더라면 지금 쯤 난 저 불빛의 일원이 되어 있었을 텐데, 이젠 저곳으로 가려면 아무리 나라도 몇 십 년이 걸릴지 알지 못하는 머나먼 여정이 되어 버렸다.

가서도 문제다.

아마 저곳에 가면 날 아마존에서 좀 놀던 원주민 쯤으로 보지 않을까?

나보다 강한 놈들이 즐비 하겠지.

공교롭게도 이곳은 뿔과 날개가 달린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이 도시규모로 모여 살고 있었다.

저 놈들 잡으면서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이세계 299년 하고도 364일차.

그렇게 나는 강해졌다.

뿔 달린 녀석들을 잡고, 잡고, 또 잡은 결과 미친듯이 강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힘이 넘쳐 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정말, 이렇게 강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제는 저곳으로. 문명 세계로 나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출발을······.

* * *

사가사각.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팬티바람으로 나뭇잎에 글을 써 내려가던 시혁이 뒤를 보았다.

아까부터 묵직한 존재감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하나로만 이루어진 뿔, 세 쌍의 점막날개. 붉은 몸에 빼곡하게 새겨진 보랏빛 문신.

키는 3미터 정도 되려나?

녀석이 시혁에게 말을 건넨다.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

“···뭐라고 하는 건지 10년이 지나도 모르겠어, 너희들은.”

장난스런 말투와는 달리 시혁은 바짝 굳었다.

300년간 끊임없이 강해졌기에 시혁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존재가 진짜 미친듯이 강하다는 사실을.

심지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

.

.

그러니, 시혁이 죽는 건 당연했다.

그의 심장이 뚫린 것도 당연했다.

물론 억울하진 않았다.

저승으로 가는 길동무로 그 녀석을 함께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쿨럭!”

녀석의 입에서 보라색 피가 쏟아졌다.

시혁은 붉은 피를 쏟으며 마주 웃어 주었다.

녀석의 눈동자에서 빛이 꺼졌다.

그럼에도 시혁이 살아 있으니 결국 그가 이긴 것일까?

“젠장······.”

죽어가는 와중에도 시혁은 옛 인연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석영이였다.

‘석영아, 곧 보겠다. 돈 벌어서 결혼하자고 했는데, 곧 청혼하러 갈게.’

그의 절친, 창익이도 보인다.

‘잘···살고 있냐. 거기서도 여전히 못생긴 건 여전하니? 그렇다면 몰라볼 일은 없겠구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 여동생.

‘시아···잘 있지? 혹시 먼저 가서 날 기다리고 있다면 곧 만나자.’

그들의 모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25년을 지구에서, 그 이후의 인생을 대마경에서 보낸 시혁의 인생이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화아아악!

그렇게 시혁은 300년 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가까운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세계에서 죽으면 자동으로 귀환이 되는 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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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귀환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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