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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진건읍.
과거 물 맑고 경치 좋고 예쁜 카페가 많던 그곳은 지금 지옥이 되어 있었다.
맑은 하늘에 검게 그어진 선 안에선 인간만 한 박쥐들이 튀어나왔고,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부수고 짓이기며 남양주를 피로 물들이는 중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난데 없이 습격을 받은 민간인들은 예비 상황에 훈련 받은 만큼 일사불란하게 쉘터로 피난했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대피에 성공한 상태.
하지만 ‘거의 모두’는 결코 ‘모두’가 될 수 없는 만큼, 균열과 가까워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 또한 존재했다.
정부소속의 가디언들은 그런 이들을 구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끼에에엑!
날아 오던 박쥐 두 마리가 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괴로워 했다.
타오르는 녀석들의 몸.
심장 부분으로 의심되는 곳에서 붉은 마정석이 서서히 드러난다.
주워서 팔면 100만원은 넘어갈 물건들.
하지만 길을 뚫는 다섯 명은 그런 것들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의 눈은 스마트 워치가 뿜어내는 홀로그램에서 반짝거리는 생명반응만을 쫓을 뿐이었다.
‘여섯 명. 반드시 구조해야 해!’
가디언 3팀의 팀장이자 불의 마녀라 불리는 이예지는 이를 악물었다. 오는 동안 많은 힘을 소모해서 숨이 턱에 찼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가 멈춰서 잃는 시간이 구조자들에겐 삶의 기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섯이던 생명반응이 다섯, 넷, 셋으로 줄어들고 있다.
“······!”
그녀의 속도가 빨라졌다.
자연히 네 명의 가디언들과는 거리가 벌어진다.
같이 가요! 위험합니다! 따위의 말들이 들려왔지만 그럴 수록 더욱 달렸다.
그렇게 생명반응이 있는 곳에 도착한 지금, 너무 많이봐서 익숙해질 법도 한 광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거대 박쥐 세 마리가 비명을 지르는 중년인의 머리와 팔 다리를 한 짝 씩 든 후 공중에서 당기고 있었다.
빠드득.
이예지가 이를 악물었다.
저곳까지 가려면 적어도 십수 마리의 박쥐를 처리해야 한다.
차분히 나아가다 보면 저 중년인은 물론 남은 두 명도 죽은 후에야 도착할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부하들도 절망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였다.
“···팀장님. 이번만큼은 안 됩니다.”
“무모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던 그녀의 눈동자가 돌아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참을 거였으면 굳이 고되고 박봉인 정부소속 가디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화르륵!
곧 그녀의 머리 끝이 불타 올랐다.
그녀의 입 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빌어먹을 만큼 불완전한 그녀의 힘은, 고맙게도 이런 상황일 때만 확정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고는 했다.
“던지면···잘 받기나 하도록!”
그녀가 뛰었다.
빠른 속도.
하지만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는 속도.
그 속도에 날개를 달아준 건 그녀의 날개뼈에서 뿜어진 고출력의 불이었다.
추아아아아아악!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이예지.
그녀의 경로에 걸린 모든 박쥐들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다.
그걸 본 중년인을 찢으려던 세 박쥐가 중년인을 팽게치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예지는 우선 달려드는 세 박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곳에서 불이 토해져 나왔다.
콰아아아!
곧 눈앞이 깨끗해졌다.
곧바로 방향을 선회한 이예지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중년인을 받아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치이이익!
“끄아아악!”
“미안해요. 조금만 참으세요! 지금 놓으면 추락하십니다!”
“끄흐으윽!”
그 말에 중년인은 불에 달군 쇠처럼 뜨거운 이예지의 몸을 더욱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예지는 서둘러 땅으로 착지했다.
그곳엔 중년 여인과 소녀가 둘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여보···!”
“우린···살았어. 이분이 살려 주실 거야!”
“고마워요 언니. 흐앙아앙.”
어린아이의 감사인사에 이예지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예전 자신의 모습과 소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받기엔 아직 이르다.
여전히 이곳은 박쥐들의 한복판.
심지어 조금 전 폭음을 듣고 백이 넘는 박쥐들이 이곳을 포위한 채 몰려들고 있었다.
‘셋을 전부 안고 갈 수는 없다.’
심지어 자신의 몸은 어린 소녀를 안아 들기엔 너무 뜨겁다.
부하직원과의 거리는 50미터 남짓.
그녀는 각오를 다졌다.
“신호를 하면 뛰세요. 넘어지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중년 남성이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양 손을 모은 후 펼쳤다.
손바닥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기다란 불 줄기가 뿜어져 나와 화염 방사기와 같이 박쥐들의 포위망에 큰 구멍을 뚫었다.
키에에엑!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건 그녀의 부하직원들.
“감사합니다!”
중년인과 중년여인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걸 본 박쥐들이 쫓았지만 그녀의 부하들도 놀고 있진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중년 가족과 합류한 녀석들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뒤로 빠지는 것까지 확인한 이예지는 그제야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자신만 빠져나가면 된다.
박쥐들이 그녀에게로 몰려드는 게 보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방금 전 공격으로 거의 모든 힘을 사용했지만 몸을 빼는 것쯤이라면 어찌저찌······.
콰악!
“······!?”
이예지는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봤다.
피로 빚은 듯한 붉은 크리스탈이 박혀 있었다.
화살을 10배쯤 불려 놓고, 그 촉만을 떼어서 투척한 듯 날카로운 크리스탈이었다.
피하지 않았더라면 심장에 박혔을 것이다.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다른 박쥐들보다 2배는 더 큰 박쥐가 한창 꼬리 끝에서 자신에게 날린것과 같은 크리스탈을 생성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침착한 눈동자. 옅게 말려 올라간 입 꼬리.
그것은 광기어린 다른 박쥐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었다.
어디로 가든 녀석의 투척은 그녀를 노릴 것 같았다.
평소라면 몰라도 옆구리가 성치 않은 그녀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정면돌파 밖엔 답이 없는 상황.
팀장님! 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뒤돌아 볼 수도 없었다.
앞을 주시한 채 소리친다.
“잘 부탁한다. 난 나중에 합류하지!”
그 후에도 뭐라고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헌터 인생 5년 동안 이런 위기가 이번 한 번 뿐이던가.
그러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죽음이란 단어를 애써 무시하며 좀 더 희망을 품어보기로 했다.
화르르륵!
그녀의 몸이 초처럼 타올랐다.
그것에 닿은 박쥐들이 도망치다 재가 되어 사라졌다.
부하들이 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눈썹을 꿈틀거릴 뿐 동요하지 않았다.
녀석의 꼬리가 전갈처럼 휘어져 그녀를 겨눈다.
꼬리 끝 마름모꼴 투척물은 그녀의 몸에 박힌 것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상황.
이예지가 이를 악물었다.
‘오래 유지할 수는 없어.’
갑자기 올라간 출력이 정상적인 방법일 리 없다.
그녀를 연료 삼아 불을 뿜어내는 만큼 오래 유지할 수록 수명을 깎아먹는다.
‘한 방에 결정지어야 해.’
그녀가 달려들지 않자 녀석도 꼬리 끝을 꺼떡거릴 뿐 결코 쏘아내지 않았다.
시간이 자신의 편임을 알고 있는 영리한 개새끼였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출력으로 부딪치면 수명 3년은 우습게 날아 가겠지만 죽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녀가 가까워지자, 녀석이 꼬리를 뒤로 한껏 젖혔다.
한 치의 흩으러짐도 없는 진지한 얼굴.
저 얼굴에 그녀의 수명으로 불태운 주먹을 꽂아 넣으리!
콱!
······!
달려들던 그녀가 박쥐의 코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박쥐는 서 있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목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채로.
치이이이이이익!
푸른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녀석의 몸이 엎어졌다.
물론 그녀의 짓은 아니었다.
이예지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 곳으로 향한다.
그곳엔 한 남자가 농구공 만한 무언가를 한 손에 쥐고 있었다.
남자는 팬티 한 장 걸치고 있었다.
* * *
시혁은 현재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난 분명히 죽었어. 그런데······.”
깨어나 보니 지구다. 심지어 300년 전 자신이 자던 곳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남양주 진건읍. 꿈에도 그리던 그곳을 잊을 리가 없었다.
돌아온 걸 확인하고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갈색 숲 대신 건물 숲을 볼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적어도 시혁은 몰랐었다.
물론 이상한 점은 많았다.
건물들은 거대한 무언가가 쪼개고 부순 것처럼 성한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명의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난 폭음과 비명소리에 이곳으로 와 봤다니 너무나도 꽤나 익숙한 박쥐 새끼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개중 가장 강한 녀석부터 일단 잡고 본 것이 지금 이 상황이었다.
기긱···켁······!
시혁의 손에 들려 있는 박쥐의 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그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혁이 말한다.
“너네가 왜 지구에 있는 거냐? 아니, 여기가 지구는 맞는 거냐?”
기긱···기기기긱······!
생각해 보니 녀석은 폐를 잃은 상태.
어차피 대답을 들어 봤자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으음······.”
영양가도 없는 녀석의 머리를 버리고, 시혁은 주변을 둘러봤다.
광기에 취한 박쥐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200년도 전에 지나쳤던 곳에 있던 놈들인데 이것들.”
시혁은 저 녀석들을 대충 ‘터지는 박쥐’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존재했다.
그가 아는 녀석들은 붉었는데, 녀석들은 검은 색이다.
다른 녀석들일까?
그렇다면 붉은 놈들보다 강할까 약할까?
“둘 다 너무 X밥들이라 분간이 안 가는데······.”
때마침 녀석이 눈을 까뒤집었다.
“으음, 모르겠군.”
그렇게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데 녀석의 시체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더니 시혁의 눈코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흐음?”
마경에선 이런 적이 없었다.
물론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녀석을 죽인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리고······.
“아무래도 여긴, 천국은 아닌 모양이야.”
그렇다면 단 하나.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애써 참았다.
감동을 받기 전, 확실한 설명이 필요했다.
이곳이 자신이 아는 곳인지, 그렇다면 왜 이곳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말이다.
다행히 설명해줄 사람은 가까이에 있었다.
파앙!
시혁이 촛불 꺼지듯 사라지더니 이예지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요?”
갑자기 키큰 남자가 촛불 켜지듯 생겨났다.
게다가 그 남자는 거죽 한 장 걸친 것을 제외하면 알몸.
이예지가 기겁했다.
“꺄아아아아악!”
콰아아아!
얼떨결에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시혁을 덮쳤다.
시혁이 뒤로 물러났다.
“여자가 입에서 불을 뿜네? 역시 이곳은 한국이 아닌 건가?”
“누, 누구십니까?”
“정시혁이라고 말하면 누군지 압니까?”
“어떻게···알겠습니까?”
“그런데 뭘 물어봅니까? 어차피 모를 거면서.”
“······.”
이예지는 입만 벙끗 거릴 뿐 반박하지 못했다.
황당하다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 시혁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거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
시혁은 자신이 국부 이외엔 전부 드러나 있음을 깨달았다. 흑룡의 가죽으로 대충 만든 팬티 한 장만 걸친 상태. 자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전투였는지라 너무 편한 차림이었던 것이다.
“···저 여자가 불을 뿜을 만도 하군.”
키이이이익!
사방에서 몰려 오는 날개달린 무지성 박쥐들을 바라보며 시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이 상황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대충···324마리인가?”
시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힘이 별로 남아있질 않을 텐데?”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힘은 아닌 밤 중에 찾아온 강한 존재를 죽이면서 거의 전부 소진했다.
하지만 저것들을 죽일 정도의 힘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혁을 이예지가 붙잡았다.
“당신이 좀 치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너무 많아요. 당신이라도 도망치는 게 낫겠습니다.”
그가 기습으로 화살촉 폭탄박쥐(이곳에선 그렇게 부른다)를 한 번에 죽인 건 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 그때 많은 힘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겉은 멀쩡해 보였다.
반면 자신은 글렀다.
그러니 이 자라도 살아야 했다.
“둘 다 빠져나가진 못합니다. 그러니 길은 제가 엽니다.”
“흠.”
시혁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지금 내 상태로는 당신을 지키면서 빠져나가는 건 애매하군요.”
“그러니 어서······?”
도망 치라고 말 했건만 남자는 박쥐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지키면서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만 다 죽이고 빠져나가는 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다가오는 것들은 최대한 쳐내면서 버텨 봐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시혁이 주먹을 뻗었다.
쾅!
날아 오던 박쥐의 머리가 풍선처럼 터졌다.
“이거 뭐, 펑펑 터져나가니까 힘을 가늠할 수가 없잖아?”
하지만 아쉽다는 듯 말하는 시혁의 입 꼬리는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아직 이 녀석들 쯤은 압살하기 충분한 힘이 그에게 남아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끼에에엑!
박쥐들은 시혁과 이예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두머리는 죽었으나 그게 어떻단 말인가?
통제할 존재가 사라지니 자제력은 사라지고 광기만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쪽수로 밀어 붙이면 질 것 같지 않은 상황.
가장 용감한 박쥐 하나가 그렇게 달려들었고,
쾅!
터졌다.
시혁이 손아귀를 쥐락펴락 하며 고개를 갸웃 했다.
“몸이 왜 가볍지?”
분명 시혁은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혁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더 좋다.
고개를 갸웃 하며, 시혁이 뒤로 손을 뻗었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 박쥐의 목이 손에 잡혔다.
“감각도 날카롭고.”
어쨌든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그 후로는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이었다.
피하면서 쥐어 터뜨리고, 방패로 삼다가 휘둘러서 다른 녀석들을 맞추고, 날개를 찢어서 던졌는데 부메랑처럼 돌아오고···그렇게 힘에 취해 무아지경으로 휘두르고 찢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수백 마리에 둘러싸인 만큼 모든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턱!
키키키킥!
그렇게 시혁의 허리를 붙잡은 박쥐가 기괴하게 웃었다.
“어허허허.”
시혁 역시 그 녀석을 보며 웃어 주었다.
콰아아앙!
녀석은 자폭 했고,
시혁은 멀쩡했다.
“알아서 죽어준다는데 웃어줄 수밖에.”
힘만 올리고 체력을 올리지 않아 강력하지만 종이몸을 가진 몸 따윈 게임에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언벨런스다.
이곳은 현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을 발휘하는 몸뚱이 역시 딴딴한 게 정상인 것이다.
그렇게 시혁은 완력, 그 완력을 받쳐 줄 내구력까지 확인했다.
“그럼 슬슬, 기억을 되짚어 볼까? 터지려고 안달 난 놈들은 터지게 내버려 두어야겠지.”
키이이이익!
시혁만을 향해 날아드는 무지성의 박쥐들을 바라보며, 시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떠올린다.
숲을 거닐다가 잘못 밟아서 폭발 했던 벌레를.
한동안 조심하며 거닐었던 벌레들의 밭을.
폭발 직전에 머리를 떼어 놓으면 폭발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희열을.
무사히 잡고, 익혀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녀석의 외피를 벗긴 후 입에 물자 퍼지던 랍스터와 유사했던 풍미를!
과정은 길었지만 여기까지 생각해 내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츠룹.
고인 침을 닦고 눈을 떴다.
수백의 박쥐가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고,
어느새 그의 오른손은 주황빛으로 백열하고 있었다.
주먹을 뻗었다.
그가 섭취한 폭탄벌레만 해도 수만 마리.
그것들의 힘이 한 점으로 응축되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힘의 폭사가 부채꼴로 이루어지고, 시혁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하늘을 빼곡하게 가리던 박쥐들이 말 그대로 삭제 되었던 것이다.
뒤덮여 있던 검은 구름이 뚫리며 지름 30미터의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곳에서 빛이 떨어져 내려 시혁을 비춘다.
“······.”
300마리가 아니라 3000마리가 몰려와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화력이었다.
시혁은 자신의 주먹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현상은 닭 잡을 때 소 잡는 칼을 쓴 격.
이것은 시혁이 원한 바가 아니었다.
좀처럼 힘조절이 되지 않았다.
만약 하늘을 향해 쏘지 않았더라면······?
“아우씨. 오자마자 살인자 될 뻔했네.”
[······.]
“······!”
갑작스럽게 기감이 튀어나온 곳으로 시혁의 시선이 향했다.
머나먼. 이곳으로부터 적어도 2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의 허공.
그곳엔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 박쥐가 보무도 당당하게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다가 시혁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시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녀석은 방금 잡은 모든 녀석들의 우두머리임이 틀림 없었다.
잡을까?
[······.]
씨알 굵은 박쥐는 아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 온 것보다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렇게 도망쳤다.
“저, 저······.”
콰아아아.
쫓아갈까 생각했지만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와 시혁의 코와 입으로 흡수 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백이 넘는 군세였던 만큼 눈앞이 다 검어질 정도.
“···뭐지?”
뭔가가 자동으로 흡수 되었다.
그럼에도 힘에 차이는 없다.
단지 뒤통수가 아주 조금 따스해진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시혁은 자신의 뒤통수에 손을 가져가려다가 내렸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엔 이예지가 옆구리를 손으로 막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어디 다친 덴 없어요?”
털썩.
“······.”
이예지는 멍하니 주저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눈앞에서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걸 봤는데 제정신일 리가 없겠지.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아니, 말해주면 아냐고······.”
시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자신이 보아도 지금 상황은 설명이 필요해 보이긴 했다.
정체를 숨길까?
‘하늘을 뚫어 놓고 어떻게 숨겨?’
그럼 뭐라고 설명할까?
휴일에 자려고 누웠더니 이계의 숲에 떨어져서 300년간 살아남았다고 말하면 퍽이나 믿어줄 것이다.
곤란한 시혁을 도와준 건 오히려 이예지 쪽이었다.
“서, 설마···귀환자이십니까?”
“귀환자가 뭔데요?”
“이계로 빠졌다가 돌아온 분들을 말하는 겁니다. 맞으십니까?”
말하면서 점점 굳어지는 이예지의 표정을 바라보며 시혁의 표정 역시 떨떠름해 졌다.
“뭐야. 이거 흔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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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귀환자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