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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부 부장 김명석.
그가 강원도에서 하던 일도 멈추고 강남에 위치한 가디언 본부로 달려 온 이유는 반쯤은 부하직원 때문이었다.
“좀 괜찮나?”
그 말에 뒤를 돌아보는 이예지.
그녀의 입에는 온도계가 물려 있었다.
그 온도계를 집어 자신의 온도를 확인한 이예지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21도입니다. 곧 정상 체온으로 돌아 오겠죠.”
“···끄응.”
보통 사람은 45도만 넘어도 죽는다는 걸 이 애송이는 모르는 걸까?
A급으로 올라선 지가 벌써 2년 전인 만큼 애송이는 아니겠지만 그녀를 어릴 때부터 봐 온 김명석의 입장에서 이예지는 죽을 때까지 애송이가 맞았다.
“몸 조심 좀 해! 남의 생명도 좋지만 네 생명부터 살리란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퍽이나.
그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화마 속에서 구한 그 날부터 지금까지 아버지 노릇을 해 오던 김명석은 그녀의 저 표정에 담긴 감정이 적어도 수긍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거참···한창인 녀석이,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잔소리를 오지게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그가 이곳으로 달려온 나머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귀환자는 어디에 있나?”
“지금 대기실에 계십니다. 현재는 시청각 동영상을 보고 계시는 중이시고요.”
“흠. 그래?”
10년 전, 인류는 몬스터라는 대격변을 맞았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죽었고, 각국은 평균 40%의 토지를 몬스터에게 내어주었다.
그 후 생겨난 던전, 게이트, 균열 등등.
그것을 막으려는 각성자들의 탄생과 인류에게 내려진 축복과도 같은 ‘귀환자’들의 귀환까지.
그것에 대한 정보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대격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교육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청각 동영상도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은 이런 상황에 대단히 유효한 것이었다.
“그렇군. 냄새 맡은 기자에게 연락 온 건 없고?”
“다행히 없습니다.”
“하긴···다 도망치기 바빴겠지. 그나저나 이번 귀환자는 정말 특별하구먼.”
물론, 귀환자를 숨길 수는 없다.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숨긴단 말인가?
처음에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어리숙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콧대가 높아지는 게 귀환자라는 족속이다.
그런 이들에게 거짓말. 혹은 기만에 가까울 정도로 정부에게 편파적인 정보를 제공 했다가 머리가 굵어진 귀환자들에게 후폭풍을 맞아 좌천된 것이 바로 김명석의 전임이었다.
전임은 정부에 대해 편파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후폭풍을 맞았지만, 자신은 모든 정보와 최대한의 편의를 봐 주어서 정부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심어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무려 10년 만에 돌아온 귀환자다.
그렇다면 그쪽 세계에선 300년을 살다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군.’
물론, 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아무리 300년을 살다 온 귀환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투에 적합한 인물이냐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10년이 지나며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이번 년도에 돌아온 300년 묵은 귀환자들만 해도 열 둘이 넘는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한 명마저도 과거에 이름 깨나 날렸던 은거기인으로서, 60년차 귀환자보단 강했지만 90년차보단 약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처럼 300년을 살다 돌아 왔다는 건 강함과는 별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약할 가능성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와 가까운 삶일 수록 300년을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보통 몸을 사리는 성격인 만큼 오래 살아남는 법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예지와 함께 싸웠다니 기대가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싸울 줄 안다는 거였으니까.
그렇기에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직접 온 것이 사실이었다.
김명석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번들거렸다.
“어떻던가. 얼마나 강하던가?”
물론 결과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귀환자가 왔고, 이예지와 함께 남양주가 지켜 졌으니 어느 정도는 강할 것이다.
하지만 목격자가 이예지 한 명인 만큼 귀환자가 얼마나 활약 했는지는 그녀밖에 알지 못한다.
그 말에 이예지가 싱긋 웃었다.
“그분은 강합니다.”
“아니 그니까 자세히 좀 말해봐 좀.”
이예지는 자신이 본 것을 모두 설명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폭탄박쥐들이 터져 나가고, 자신을 위협하던 화살촉 폭탄박쥐 역시 기습이었다지만 한 번에 잡았다고.
폭탄박쥐를 한 방에 터뜨렸다는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김명석은 자폭을 버틴 것까지 듣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번에 C급 신체강화 각성자가 자폭에 잘못 말려들었다가 죽지 않았나?”
“예. 위치가 안 좋았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그가 멀쩡했다고?”
최근 들어 나온 박쥐종.
그것들의 자폭은 C급의 신체강화 각성자를 죽일 만큼 화력이 대단하다.
그것을 견뎠다는 건 C급 신체강화 각성자보다 몸이 튼튼하다는 이야기였다.
“예. 그······.”
이예지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상한 가죽팬티도 흠집 하나 없더군요.”
“···가죽팬티? 팬티만 달랑 입고 왔다고!?”
보통 이계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은 그곳에서의 복색을 하고 있다.
플레이트 메일이나 가죽갑옷이 가장 흔하며, 개중에는 무복을 입고 온 귀환자까지 다양하다.
귀환자들은 대부분 해당 세계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죽어서 왔다.
때문에 그 어디에도 팬티바람으로 온 귀환자는 없다. 자는 듯이 죽었던 귀환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휘황찬란한 잠옷을 입고 있다.
그것도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진짜 팬티라면 더더욱.
“심지어 그게 폭발 속에서도 멀쩡했다고?”
폭탄박쥐의 자폭은 사람 한 명 쯤은 피떡으로 만들 만큼 강력하다.
그 폭발 안에서 팬티 따위가 손상 없이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뭐 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든 팬티도 아닐 테고···분명 기운을 내부로 뿜어내서 물건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임이 틀림 없군!”
사물에 기운을 뿜어내 코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저런 가죽팬티(?)가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강함을 점점 유추해야 한다.
이것이 귀환자들의 강함을 알아가는 방법이었다.
귀환자들의 강함은 A급이니 S급이니 하는 각성자들의 계급과 완전하게 동일시 시킬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허공에 주먹을 뻗으니 하늘에 구멍이 뚫리더군요. 그 한 방으로 폭탄박쥐들이 전부 죽었습니다.”
“······.”
아니, 처음부터 그 말을 해 줬어야지!
“···가, 가족은 있던가?”
“찾아본 결과 여동생이 있는 걸 알아냈습니다.”
“···부모님은 대격변 때 죽은 건가?”
“아뇨. 시기상 그분이 7살이 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그만······.”
“으음······.”
한동안 침묵하던 김명석이 미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것은 프로의 미소였다.
“어쨌든 여동생이 죽지 않아 다행이로군. 혹시라도 대격변 이후에 가족들이 변을 당했다면 골치가 아파지지 않나.”
“아무래도 그렇죠.”
문제를 일으키는 귀환자들의 대부분은 고아이거나 대격변으로 고아가 되어 버렸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워 할 것이 남지 않은 이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귀환자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부에겐 희소식이었다.
“흐음,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김명석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깊은 생각을 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우리가 먼저 발견했고, 가족도 존재하고···무엇보다 그 정도의 강함이라면···300년을 살아남았지만 꽤나 강한 게 되는 건가? 정옥자보다 강한 건 아니겠지?”
그와 친한 귀환자 중에 두 번째로 강한 정옥자. S급 헌터인 그녀는 183년을 이계에서 살다가 돌아왔다.
물론 그녀의 강함과 지금의 귀환자를 빗댈 바는 아닐 테지만 적어도 이 귀환자는 A급 이상은 확정된 인재임이 틀림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겠군!’
나쁜 의도는 아니다.
그저 친해질 시간을 좀 더 쌓고 싶을 뿐.
하지만 그런 김명석의 흑심(?)을 알 리 없는 이예지가 추가 보고를 해 왔다.
“안 그래도 여동생 분과는 연락이 닿아서 지금 이곳으로 오시는 중입니다.”
“···뭐라고? 아니 왜 그걸 자네가 전해!?”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가족이잖아요. 당연히 동의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나요?”
“······.”
고개를 끄덕이면 아무 이득 없이 나쁜 놈이 되는 상황에서 김명석은 자신의 흑심을 인정하지 못했다.
“어, 얼마나 걸릴 것 같지? 여동생 분이 오시려면 말이야.”
“놀랍게도 이번 웨이브에 휘말린 남양주에 사는 분이시더군요. 바로 오신다고 하셨으니 1시간 정도 아닐까요?”
‘···넉넉하진 않군.’
가디언 본부가 아닌 남양주 지부였다면 더 시간이 없었을 뻔했다.
“···그렇군. 일단 식사부터 대접하지. 아무래도 고향 음식이 그리웠을 것 아닌가?”
모든 귀환자들의 특성은 지구의 음식을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귀환자 역시 그건 다르지 않았다.
“예. 안 그래도 이미 식사 중이십니다.”
“호오. 뭘 달라고 하던가? 스테이크? 랍스타? 피자? 치킨? 아니면 정옥자처럼 김치찌개라던가? 배달이 되는 음식이여야 할 텐데 큰일이군?”
“컵라면을 드린 상태입니다만.”
김명석의 표정이 뜨억하게 변했다.
“아니, 그런 푸대접을 하면 어떻게 하나? 라면이 말이야 방구야? 여기 배달 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분이 라면을 원하셨습니다.”
“······?”
“정확히는 육개장. 그것도 작은 컵으로 다섯 개요.”
“···굉장하군.”
* * *
시혁은 옛날부터 라면을 좋아했다.
물론 가난했던 집안환경 탓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환경에 삼시세끼 라면만 차려 먹었음에도 그것이 물리지 않았다면, 이계에서의 300년 동안 가장 먹고싶던 음식이 치킨을 제치고 라면일 정도라면 시혁의 라면 사랑은 진또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고된 막노동 생활을 끝마친 금요일 저녁 파 송송 계란 탁 차린 한 그릇의 라면을 한 젓가락조차 베어물지 못하고 갑자기 이계의 숲에 떨어졌던 만큼, 라면에 대한 그의 갈망은 차라리 한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 300년 묵은 한풀이가 시작되었다.
꿀꺽.
시혁은 뜨거운 물을 넣고 육개장 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코를 자극하는 아는 냄새. 그것도 300년 전에 알았던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3분이라는 억겁의 시간이 지난 후, 한 젓가락 크게 들어올린 시혁은 분노의 면치기를 시전했다.
후루우우우웁!
“크하아···!”
MSG특유의 짜릿한 맛정보가 혀를 타고 뇌를 지나쳐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참아 본다.
그의 눈물은 여기서 흘리기엔 조금은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맛있구나···정말 맛있···어!”
얼마나 맛이 있냐면 앉은 자리에서 다섯 그릇을 해치운 지금도 다음 한 컵이 절실할 정도였다.
물론 시혁이 300년 만에 느끼는 MSG의 맛에 황홀해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빔프로젝트가 쏘아내는 시청각 자료는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시혁은 꿈에서도 그리던 라면을 먹으면서도 시청각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격변은 굉장하네.”
대격변은 마른 하늘에 생긴 균열에서 몬스터가 튀어 나오며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현재 S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레드 드래곤, 불가사리다.
불가사리는 서울숲을 브레스 한 번으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초토화 시키면서 대한민국을 위협했다.
녀석은 서울에 핵폭탄을 떨어뜨리기 직전이 되고서야 토벌 되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재기 불가능할 수준으로까지 망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에도 여러 균열이 열리며 고블린, 오크 등등의 저급한 몬스터부터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중급 몬스터까지 다양하게 나와서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중엔 엘리트 몬스터가 되어 도시를 꿰찬 녀석들도 많았다.
군사력을 잃다 시피 한 대한민국 정부는 그것들을 방어하지 못했다.
정말···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아마 그런 이들 중에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벌써 멸망 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떨어진 기둥.
그 기둥에 노출되어 각성한 최초의 10인!
그들은 인류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돕던 이들 역시 각성해서 인류 구제를 도왔다.
그런 이들이 100여 명.
인류는 그들을 두 번째 각성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후에 나타난 ‘귀환자’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지금의 30%도 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나타난 귀환자들은 마치 공략법을 꿰차고 있는 게임 속 고인 물 처럼 굴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들도 익숙하게 잡았고, 공략집을 만들어 다른 각성자들에게 뿌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많은 몬스터들의 약점이 발견되어 토벌 되었고, 덕분에 인류는 몬스터들에게 잃었던 토지의 절반을 되찾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땅덩이가 작은 한국은 아예 개체수를 조절해서 각성자들을 키우는 사냥터를 만들었을 정도다.
덕분에 땅덩이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각성자와 헌터의 수와 급으로 판가름 나는 현재의 국력에서 일본을 제치고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시청각 자료에서 말해주었다.
- 각성자들이 없었더라면 인류가 멸망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환자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몬스터들과 공존하는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았겠죠. 그러니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과 함께······.
그 후 살아남은 인류가 해야 할 일이나 이뤄야 할 목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을 끝으로 시청각 자료가 끝이 났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네.”
그렇게 입맛을 다시고 있을 즈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인물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가디언부 부장 김명석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101번째 귀환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와서 내미는 솥뚜껑 같은 손을 바라보며, 시혁은 그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이곳으로 돌아와서 보는 두 번째 사람이로군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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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귀환자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