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5화 (5/44)

&05

눈이 마주친 것 뿐인데 무너지는 몸.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그런 주제에 입가에 맺히는 웃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애뜻한 둘이 만날 땐 으레 그런 상황이 연출 되고는 한다.

적어도 시혁이 상상한 건 그런 클리셰였다.

하지만 적어도 시혁과 여동생의 만남은 그러지 못했다.

머릿속 격정적인 상봉은 없었다.

시혁은 눈물을 흘릴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지만 여동생은 아니었다.

시혁을 보더니, 잠깐 울컥 하더니, 이내 표정을 굳힐 뿐이다.

그 후로는 얼떨떨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차에 탄 상태였다.

차를 타고, 집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는 지금도 그 어색함은 이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왜 화가 나 있을까?’

상황이 이런지라 시혁은 옆자리에 타지도 못했다.

뭐랄까. 차 안에서 나란히 앉아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끄응, 어색하구만.’

하지만 어색한 와중에도 웃음은 짙어진다.

‘녀석. 변한 게 없네.’

전체적으로 시혁을 닮은 얼굴은 여자 답게 예뻤으며, 긴 머리와 호리호리한 체형도 그대로였다.

남자 깨나 울렸을 외모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다만 똘망똘망하던 눈동자는 묵직하고 깊어졌다.

10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

‘기회는 많겠지.’

지금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견뎌낼 때였다.

조만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자신 뿐만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쌔애앵.

막히던 차들의 맥이 간헐적으로 뚫리며 차가 자연스럽게 미끄러진다.

대격변으로 인해 인구가 줄었다고 들었지만, 한국의 수도인 서울은 여전히 교통체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바뀐 부분도 있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높이를 자랑하던 잠실타워가 그러했다.

대부분이 10년 전과 같았지만 끝으로 갈 수록 송곳처럼 뾰족해 지던 잠실타워의 끝은 정말 무언가를 꿰뚫어 전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하고 붉은 두개골이었다.

‘불가사리?’

시청각 자료에서 찍혀 있던 불가사리의 외형과 일치하는 두개골이었다.

‘역시 거대하구나.’

두개골의 크기만 해도 20미터가 넘어 보였다. 그렇다면 본체를 더하면 100에서 150미터 사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거대했다.

시혁이 죽였던 흑룡보다 3배는 거대해 보였다.

‘역시, 흑룡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적어도 불가사리가 흑룡보다 크기만큼 강했었겠지.

불가사리의 몬스터 등급은 S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은 저 녀석을 죽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변한 게 많지?”

여동생의 말에 시혁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렇네. 많이 변했네.”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정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그 한 마디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 너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시혁이 다섯 살 때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이모 손에 키워졌다.

하지만 이모는 자신들을 버렸고, 시혁이 고등학교 즈음엔 푼돈을 갖고 하숙집에서 길러졌다.

시혁은 여동생을 딸처럼 키웠다.

정시아는 초등학생 때 순수했다.

- 백 번 만큼만 자면, 내가 천 번 만큼 행복하게 해줄게!

중학교 땐 그 흔하다는 중2병도 걸리지 않고 조숙했다.

- 오빠. 생각해 봤는데, 행복하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돈 많이 벌자! 크면 나도 도울게!

고등학교 때도 보통이 아니었다.

- 내가 명문대에 가서 열심히 해볼 테니까 힘을 보태 줘! 나 진심이야 오빠. 내가 다 해볼게! 내가 찾아봤는데 의사가 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고 돈이 필요 하댔어. 오빠보다 내가 똑똑하니까 나한테 투자해. 행복하게 해줄게!

녀석은 기어코 총명한 머리로 의대에 합격했다.

시혁도 뛸 듯이 기뻐했다.

말로는 이제 제대로 투자해서 뽑아먹어야 겠다고 농담도 던졌지만 시혁은 녀석이 행복하길 바랐다.

막노동을 뛰면서 녀석의 학비를 지원하려 애썼다.

학자금 대출 같은 거 안 받게, 사회에 나오자마자 빚쟁이가 되진 않게 해주고 싶었다.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거참. 내가 항상 책임진다고. 나만 믿으라고 입버릇 처럼 말했었는데, 이젠 내가 얹혀 살게 생겼네.”

그리 말한 시혁이 피식 웃었다.

정시아는 담담하고 단단한 어조로 시혁에게 말했다.

“거참. 웃음이 나와요 귀환자 씨?”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화는 지금 한 말 때문에 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거야? 적당히 죽었으면,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잖아······.”

담담하게 내뱉던 말이 끝에 가서 흐려지고 물을 머금는다.

시혁은 여동생이 화가 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귀환자가 돌아오는 방법은 죽는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시혁 역시 곧바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혁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죽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결과, 시혁은 가장 늦게 귀환한 귀환자가 되고 말았다.

시청각 자료를 보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던지!

그렇다. 허탈 하기보단 코메디 영화를 본 것처럼 웃겼다.

물론 300년 간의 생고생이 아깝기야 하지만, 결국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다고 300년 동안의 고독과 고생이 완전히 미화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과정 중에 얻은 것도 많았으니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고생이지만, 시혁은 그렇게 자신의 300년을 긍정했다.

그런데 알아주는 사람이 아주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기약 없이 기다린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짜식. 그런 거였나.’

아무리 그래도 빨리 죽으라고 하다니 조금 슬펐다.

약간은 서럽기도 했다.

누가 죽으면 곧바로 지구로 올 줄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마음은 여동생의 다음 말에 봄 눈처럼 녹았다.

“오빠가 오빠 방에서 갑자기 사라지고나서···오빠가 몬스터에게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귀환자들이 돌아오면서 오빠도 귀환자일지 모른다는 걸 알았어.”

그렇다. 정신 없는 와중, 정시아는 오빠가 죽은 줄 알았다.

오랫동안 슬퍼했고,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귀환자라는 존재가 밝혀지면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드가라트!

그 넓은 대륙에 떨어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지구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오빠도 갑자기 사라졌어!’

때문에 정시아는 혹시 오빠도 귀환자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귀환예상자 명단에 오빠를 올렸다.

덕분에 시혁이 오자마자 연락이 닿아서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이 순간을 위해 10년 가까운 세월을 절망이라는 이름의 겉표면을 가진 작디 작은 희망을 꼭 쥐고 살아야만 했었다.

“그곳이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거야? 뭐가 좋아서···50년 동안 독방에 갇혀서 인체실험만 당한 귀환자도 있다던데···아니 그곳에서 얼마나 잘 풀렸으면 300년이나 살다가 왔냐구? 그리고 갑자기 키는 왜 이렇게 큰 거야? 얼굴도 몰라볼 뻔 했잖아. 내가 알던 오빠가 아닌 것 같아서···마지막까지 가슴 철렁이게 하고······.”

담담하던 목소리가 점점 젖어들어 간다.

시혁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그때는 일단 살아남아야 어떻게든 지구에 올 수 있을 줄 알았지.”

“알아. 아는데···그냥 슬퍼서 하는 말이야.”

“거참. 죽으면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좀 편하게 죽었을 텐데. 그렇지?”

시혁 역시 허탈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죽으면 되었는데, 그게 안 돼서 300년 동안을 악으로 깡으로 살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가 화답한다.

“아냐···내 말 잊어줘. 정말 고생 많았어. 정말로.”

“운전 하라니까. 거참······.”

시혁의 눈가 역시 젖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참아 본다.

아직은 울 때가 아니었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숨죽여 흐느꼈다.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불행한 날보다 행복한 날이 많아야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던데···너 죽었을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 지 너는 모를 거다.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자라 줘서 너무 고맙네. 진짜로.”

그 말에 여동생은 싱긋 웃었다.

“10년 전보다 예뻐졌지?”

“그래. 그땐 애송이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어른으로 보이네.”

얼마나 어른으로 보이냐면, 시혁보다 어른으로 보일 정도다.

시혁의 인생은 25세에서 멈췄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300년은 그저 투쟁의 시간일 뿐, 사람을 만나 왕래를 하거나 정을 쌓거나 한 적은 없다.

물론 마경 안에서 조난자(?)를 구조하기도 했고, 윌슨(?)를 주워서 기르기도 했지만 그것을 사회생활이라고 보기엔 많이 어렵겠지.

그러니 방금 한 말은 25세 정시혁이 30세 정시아에게 한 말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으음, 부끄러워 져서 말을 돌려 본다.

“그나저나 차도 있네?”

시혁이 타고 있는 차는 대격변 전에도 있던 국산 브랜드의 SUV차량이었다.

시혁은 자신의 옆 좌석에 얹혀진 어린아이용 카시트를 어루 만지며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아이도···있는 거야?”

“그럼 이렇게 어여쁜 내가 10년 동안 독수공방 했겠어?”

이어지는 막힘없는 대답.

“어허이···독수공방이라니 이 녀석 말투 보게.”

“받아들여. 당신의 여동생은 이제 어엿한 애엄마라고?”

그 말에 입가에 미소가 그러졌다.

여동생이 시혁 없는 10년 동안 출세도 하고, 가정도 일궜으니 기뻤다.

“결국 의사가 된 거야? 출세했네, 우리 시아.”

“의사는 무슨······.”

“······?”

정시아가 말 없이 카드 한 장을 꺼내서 뒷자석으로 건네 주었다.

[D급 힐러 정시아.]

“······?”

시혁의 눈이 퉁방울 만하게 커졌다.

시청각 자료에서 본 헌터는 위험한 만큼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다.

그 중 힐러는 비교적 위험하지도 않고, 돈은 더 많이 버는 귀족 클래스라는 것도 배웠다.

“···굉장하네. 힐러라니?”

“D급 힐러는 의사선생님과 비슷하게 벌어. 전투조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그냥 근처 병원에 취직해서 헌터들 물리치료 해주고 있어.”

“그래도 굉장해!”

“굉장한 일은 따로 있어.”

“너가 힐러가 되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데 뭐가 더 굉장 하겠어?”

“······.”

여동생은 말을 아꼈다.

자동차가 서울 도심을 벗어나 외각으로 향했다.

높고 길게 늘어서 있던 건물들의 숲이 점점 낮아지더니 하늘이 잘 보이는 곳이 드러난다.

남양주.

분명 남양주는 폭탄박쥐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지만, 되찾았던 전부가 공격당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남양주의 대부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번 침공당한 만큼 방어도 공고해질 터였다.

시혁과 정시아는 그렇게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시혁이 눈매를 좁혔다.

아파트 단지의 담은 높았고 꼭대기는 뾰족했다.

구역을 나누는 담이라기보다는 외부의 무언가로부터 건물을 지키는 성벽 같았다.

생각해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오고 가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전부 다 서울을 지나치고 부터 일어난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곧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존재.

조카를 볼 수 있으니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인터폰을 누르자 누군가가 문을 열어 준다.

하긴, 아이 혼자 두고 어떻게 밖을 나갔겠는가?

‘매제···이겠지?’

얼굴도 모르는 매제에겐 고마운 마음 뿐이다.

저런 말괄량이와 함께 이 대격변을 함게 견디고 나아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조카와 매제, 둘 다 안아줄 생각이었다.

고마움을 표할 생각이었다.

그 마음은 여동생이 현관 문을 쥐었을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미리 말하지만, 오빠는 화낼 자격 없어. 날 구해준 사람이야.”

아무래도 갑자기 생긴 매제를 시혁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불안한 모양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허 참. 내가 뭐 애인 줄 알아? 내가 없을 때 널 구해준 사람인데 고마워 해야지.”

“약속했다?”

“그럼, 그럼!”

그렇게 열리는 문.

그 앞에는 얼굴도 모르는 매제가 있었다.

“······.”

아니, 모르지 않았다.

매제는 그가 너무 잘 아는 남자였다.

“새끼···반갑다!”

심지어 시혁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감동 투성이었지만 시혁은 도저히 감동을 할 수가 없었다.

울먹이며 다가오는 매제의 턱주가리에 시혁의 주먹이 꽂혔다.

빠아악!

금이야 옥이야 스물 까지 장성시킨 여동생의 남편은,

여전히 못생긴 얼굴의 그의 친구 김창익이었던 것이다.

────────────────────────────────────

────────────────────────────────────

집으로 돌아오다 0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