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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6화 (6/44)

&06

어릴 적부터 시혁은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있기는 했다.

그 별로 없는 친구 중에서 진정 친구라고 불릴 녀석은 단 한 명이었다.

김창익.

녀석은 시혁과 소꿉 친구였고, 정 많은 하숙집 아주머니의 아들이기도 했다.

고아 라는 놀림에 주먹다짐을 한 날이면, 혹은 정시아가 짓궂은 동년배 남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면 시혁이 나섰다.

쪽수가 밀릴 때면 그의 친구. 김창익과 함께 쫓아가서 혼줄을 내주곤 했다.

쌍코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적들.

퉁퉁 부어 오르기 시작하는 얼굴을 매만지며 시혁은, 이미 부어올라서 안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더욱 못생김으로 물들이고 있는 창익에게 말하고는 했다.

- 내가 없을 땐 창익아. 시아를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말했다.

-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여동생은 내가 지키마. 우린 친구잖아?

- 킥킥. 새끼!

친구 김창익은 시혁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너무.

너무 잘 보살펴 주었다.

그러니 포상이 필요했다.

시혁은 주먹을 뻗었다.

당연히 손속에 사정을 둔, 사나이의 진심어린 분노 만을 담은 주먹이었다.

빠아악!

······.

녀석은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베시시 웃으며 시혁을 바라본다.

마치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하지만 어쩌냐. 나 좀 강하다’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시혁은 그 면상에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손속의 사정을 빼고서.

빠각!

“커억!”

벽에 처박힌 김창익. 그의 왼쪽 뺨에는 주먹도장이 박혀 있었다.

그 소리에 놀란 무언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조카였다.

정신을 잃은 창익의 면상을 잡고 짤짤 흔들고 있는 시혁과 조카의 눈이 마주쳤다.

으아아아아아앙!

“어, 어어······?”

시혁이 창익의 멱살을 놓았다.

동시에 날아온 야무진 손바닥이 시혁의 등짝을 후려 팼다.

짜악!

“애 앞에서 무슨 짓이야!”

명색이 힐러도 각성자다.

오랜만에 느끼는 동생의 손맛은 여전히 매콤했다.

이어지는 등짝 공격은 정시아가 행한 것이 아니었다.

우다다다!

그의 조카임이 분명한 소녀가 달려와서는 솜방망이 주먹으로 시혁의 이곳저곳을 거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나쁜 놈. 나쁜 놈! 도둑 놈!”

그 뭇매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시혁은 동생을 쳐다봤다.

‘주먹부터 나가는 게 옛날의 너랑 똑같구나.’

‘닥쳐.’

시혁은 조카 녀석을 안아 들었다.

여전히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난 아저씨가 아니란다. 나쁘지도 않단다.”

“그럼 왜 아빠 때려! 나쁜 아저씨잖아! 왜 아빠를 때리는데!”

“그것은 네 아빠가 네 엄마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지.”

그 말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동생도 어이가 없어서 벙찐다. 정신이 들자마자 저딴 소리를 들은 김창익의 얼굴도 똑같이 물들었다.

사실 말을 내뱉은 시혁도 벙찌고 말았다.

젠장. 부모 앞에서 애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실제로 그의 조카는 그와 엄마,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울먹이려 하고 있었다.

소녀의 세계관에 아주 큰 혼란이 오기 직전인 듯했다.

그때 그들을 살려준 건 시혁의 배에서 새어나온 천둥소리였다.

꼬르르륵.

그 거대한 소리에 모두의 사고가 다시 한 번 멈췄다.

육개장 컵라면을 다섯 개나 쳐먹고도 이 배는 왜 이렇게 고픈 것일까?

“···금방 밥 차려줄게.”

김창익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하긴, 이곳에서 가장 뻘쭘한 사람은 다름아닌 김창익일 것이다.

‘그래. 귀환자였지.’

자신은 C급 각성자였다. 때문에 시혁이 화를 낼 걸 알면서도 일단 진정해 보라고 말할 정도의 저지력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녀석은 무려 귀환자였다.

10년. 아니, 그곳에서 300년을 살다 온 귀환자.

상대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몇 분 전의 자신이 한심 스러웠다.

예전엔 항상 녀석의 뒤를 쫓아다녔기 때문에 지금은 좀 다르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었을까?

무모했다.

‘제길.’

뭐라도 만들려고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지던 김창익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라면밖에 없네. 시켜먹어야 겠다.”

귀환자로 돌아온 시혁에게 맛있는 음식을 시켜줄 생각이었다.

맛있어서. 너무나도 맛있어서 분노가 가라앉도록. 가라앉지 않아도 조금은 누그러지도록 할 만한 음식이 지금의 김창익에게는 필요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시혁은 저벅저벅 다가와 스마트폰에 손을 대는 김창익의 팔목을 꽉 쥐었다.

“됐다. 라면이면 충분해.”

“······?”

“그거면 훌륭하다.”

“아, 그렇네.”

* * *

시혁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라면을 좋아했다.

그래서 육개장 다섯 개를 해치웠다.

이번엔 많은 재료를 넣을 작정이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지만 그렇다 해서 부재료를 넣는 것이 맛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진정으로 라면이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파파파팟!

젓가락질이야 둘째 치고 식칼질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라면은 총 4개. 물은 절반인 1리터를 넣었다.

4개니까 550씩 2200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라면의 초보.

이 분야에서만큼은 시혁은 프로였다.

물이 끓고, 면을 넣었다.

시혁은 꼬들면도 퍼진 면도 좋아하기에 꼬들하게 익혀서 퍼질 때까지 먹기로 했다.

알맞게 익기 1분 전에 계란을 넣었다.

휘젓진 않았다. 시혁은 계란이라는 녀석을 좋아하지만 이건 라면이지 계란탕이 아니었으니까.

‘휘저으면 계란음식이 되어 버린다.’

적어도 시혁의 생각은 그러했다.

마지막에 설탕 조금을 넣고 참기름을 딱 세 방울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라면은 광채를 뿜는 듯했다.

“어어······.”

조카, 김단비의 작은 입이 동그랗게 변했다.

김단비는 7살 평생 이런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든 집에 있는 라면같지가 않았다.

사실 7살 김단비는 라면을 싫어했다.

어린 아이의 입맛에 아빠가 끓여준 라면은 너무 짰다.

친구들과 라면 이야기를 할 때면 모두가 라면에 열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건 단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이 맛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본 느낌.

단비는 나쁜놈이라고 말한 것도 잊고 시혁에게 엄지를 추켜 세웠다.

“맛있어요, 아져씨!”

시혁은 당연히 맛있겠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다.”

“삼촌!”

“정말 오랜만에 끓여보는데, 맛있다니 다행이네.”

주방 앞에. 정확히는 주방 위에 얹어진 ‘푸라면’을 본 순간 300년 전 기억들이 떠오르던 것이 기뻤다.

지금 짓고 있는 시혁의 미소는 그런 행복함을 담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 정시아 역시 엄지를 추켜 세웠다.

“그래. 이 맛이었어. 정말 오빠가 돌아온 게 실감이 너무 돼!”

“······.”

반면 아무 말도 못하는 이가 있었다.

김창익. 그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한아름 쥔 채 면치기를 한 후 바닥만 바라볼 뿐이었다.

“···맛있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오려 했다.

친구의 맛있는 라면을 다시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녀석은 지금 화가 많이 났겠지.

그런 김창익을 바라보던 시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면을 끓이며 그도 많은 생각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올라 온 분노가 조절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혁이 김창익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식사가 끝나고, 조카가 여동생에게 안겨 고롱고롱 자고 있는 상황에서 시혁은 김창익에게 물었다.

“새끼야. 내가 시아 지켜주라고 했지 책임지라고 했냐?”

“···그, 그렇게 되었다.”

“내가 사라지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격변이 일어나고, 도시 이곳저곳에서 몬스터가 출몰했다.

지진과 함께 허공이 찢어지며 튀어나온 몬스터들.

몬스터들에게 죽은 사람들만큼 무너지는 건물에 짓눌려 죽은 사람도 많았다.

대격변 당시 여동생은 집에 있었다. 당연히 김창익 역시 집에 있었다.

지반이 흔들리며 하숙집이 무너졌고 무너진 틈으로 몬스터들이 들어왔다.

김창익은 정시아를 지키기 위해 몬스터들에게 몸을 내던졌다.

정부의 지원을 기다렸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시혁과 정시아에겐 하숙집 아줌마였고, 김창익에겐 진짜 어머니를 뜻했다.

김창익이 학습된 절제를 보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며칠 안 있어 돌아가셨다. 넌 이미 죽은 줄 알았고.”

“···후우.”

짙게 깔리는 음울함.

하지만 지난 일이라는 듯, 오히려 큰 일이라 애써 묻어 놓은 감정을 들추기 싫다는 듯 김창익이 이야기를 계속 해나갔다.

정부는 대격변 이후 한 달 하고도 보름 만에 지원을 왔다.

둘은 구출 되었고, 병원 신세를 졌다.

김창익은 몸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먼저 퇴원을 한 정시아는 김창익의 병실로 가서 매일 같이 간병했다.

“그때 눈이 맞았던 거냐?”

“아니.”

정시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빠도 알겠지만 오빠 친구의 매력은 오래 봐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더라고. 고백하는 데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그 말에 시혁이 펄쩍 뛰었다.

“아니, 고백을 네가 먼저 했다고? 도대체 어디가 좋아서?”

“그러게. 어디가 결정적으로 좋았던 걸까?”

정시아가 김창익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건 그 후로도 2년이나 지난 후였다.

각성자가 생기고, 귀환자라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고···그러한 시간이 흐르며 김창익은 탱커형 근접 각성자로, 정시아는 힐러로 각성했다.

거의 동시에 각성한 둘은 서로의 각성을 자축 했고, 파티를 만들어서 던전을 돌기 시작했다.

김창익이 탱커를 서고, 다른 딜러들이 딜을 하고, 정시아가 치료를 해주는 흔해 빠진 파티. 그 파티에서 대격변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남다른 감정이 생겼음일까?

정시아는 김창익에게 고백했다.

정시아를 짝사랑만 하며, 뺀질거리는 근접딜러가 그녀에게 추근덕 거릴 때도 이 악물고 참아내던 김창익은 정시아의 고백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고백을 듣자마자 무르기 없다고 엄포 부터 놓은 것은 지금도 종종 그의 와이프에게 듣는 놀림 거리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결혼도 빨리 했다.

“음···그런 스토리로군···.”

다 듣고 나니 친구인 김창익이 고마웠다.

미녀와 야수의 결혼스토리 역시 이해가 되었다.

한 달 보름동안 동생을 지켜주었고, 무엇보다 둘이 눈이 맞은 계기 역시 더할나위 없이 건전(?)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고맙다는 말은 낯간지럽다.

시혁은 김창익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며 말했다.

“얼굴 괜찮냐.”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창익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주먹자국이 있던 자리가 좀 심하게 많이 부어 있었다.

시혁이 피식 웃는다.

“곧 치료해 주마. 그런데 넌 부어도 안 부어도 못생겼으니 그게 그거 아니냐?”

“새끼···그게 할 말이냐.”

“할 말이지. 얼마나 다행인데. 조카가 널 닮지 않아서.”

그 말에 김창익 역시 피식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의 딸 김단비는 정시아의 예쁜 얼굴만을 빼다 박았다.

굳이 김창익에게 이어받은 것이라면 키 크고 잘 뻗은 팔다리 정도랄까?

둘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서로의 미소에는 의리라는 이름의 녀석이 10년 만에 되살아나 격렬히 불타 오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시혁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석영이도 살아 있지?”

그 말에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혁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초조해진다.

시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아가 이석영을 찾기 시작한 건 대격변이 끝나고, 퇴원을 한 후였다.

증발한 듯 사라진 시혁의 소식을 가장 궁금해 할 언니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어. 아니, 없는 번호라고 뜨더라. 그래서 직접 언니가 사는 곳으로 가려고 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석영이 살던 곳은 서울숲 근처였다.

그리고 서울숲은 S급 몬스터, 불가사리가 처음 등장한 지역이기도 했다.

그곳의 생존자는 5%미만.

그리고 생존자 명단에 이석영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거기까지 들은 시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구나. 그렇게 된 거였어.”

그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시아와 김창익 역시 그런 시혁을 내버려 두었다.

씁쓸한 웃음이 울기 직전의 찡그림으로, 그 찡그림이 다시금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도···이제 모두가 만났네. 온 가족이 모두 만났어.”

시혁은 이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로써 온 가족이 다 만났으니까. 비록 그의 사랑은 세상을 떠났지만, 정시아도, 김창익도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만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분명 석영이도 그걸 원할 터였다.

하지만 둘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 상황과 정 반대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얼굴에 묻히고 있었다.

“모두는 아니야.”

“···내가 모르는 둘째가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야. 혹시···잊었어?”

“······?”

고개를 갸웃하던 시혁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쿠야가···살아있다고?”

인간도 죽어나가는 통에 고양이가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그걸 넘어 2살이던 쿠야가 10년 후인 지금까지 살아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보니 생각조차 못했다.

정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웃었다.

“미안한데, 울지 말아줬으면 해.”

라고 말하며 기어코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쿠야가 살아있다는데 왜 이 녀석은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답은 옆방에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시혁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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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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