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7화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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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762일차.

의식주 해결이 고민이던 때가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집은 갑옷곰을 죽이고 그곳을 점령하면서 해결했고, 옷도 녀석의 가죽으로 몇 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 입었다.

녀석의 고기는, 곰 고기는 별미이기는 했다.

물론 금방 질려서 다른 녀석들에게 나눠주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맹수들을 사냥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한 것도 아니었다.

감자다.

무려 감자!

물론 지구의 감자와는 차이가 있다. 좀 더 크고, 좀 더 포슬포슬 하달까?(오히려 좋아)

몇 달 전에 실한 감자를 구했을 땐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묻어두지 말고 그냥 구워먹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라났으니까.

그것을 야무지게 먹었으니까!

그렇게 밭을 일구었다.

나이스.

이세계 1439일차.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젠 감자를 먹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100평 남짓 했던 감자밭은 전부 시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감자들이 시든 건 내가 못해서도 아니고, 종종 감자를 서리하다가 단백질 공급원이 된 웬수들의 잘못도 아니다.

아마 이 땅의 지력이 다 돼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곳에 심으려고 했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감자들이 살아났다.

쭈글하던 녀석들이 탱탱하게 펌핑 되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맛있어졌다!

물론 모든 감자가 살아난 건 아니었다.

감자밭엔 길이 나 있었다.

폭 2미터의 길.

시커먼 죽은 감자 밭을 가로지르는 폭 2미터의 탐스러운 감자의 길.

그 길은 감자밭을 지나고서도 쭉 이어져 있었다.

다른 풀들을 탐스럽게 만들면서.

그 길을 따라가 보려 한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참을 필요도 없고.

이세계 1441일차.

좀 참을 필요가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죽을 뻔했다.

와···진짜 죽을 뻔했다.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죽다니···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난 가족의 얼굴을 보기 전까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어쨌든 녀석의 정체는 달팽이였다.

폭 2미터의 길을 만들 만큼 거대한 달팽이.

가까이 가자 채찍 같은 촉수가 날 공격하더니 뒤가 따끔 하더라.

독에 당한 거지.

도망치려 했지만 녀석의 촉수가 좀 많이 길었다.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틈을 뚫고 녀석의 껍질을 박살낼 수 있었다.

어쨌건 난 살았다.

만약 녀석이 뿜어낸 달팽이 기름(?)이 없었으면 죽을 뻔했다.

죽어가는 농작물도 살리는 녀석의 기름이 상처를 치유했다.

심지어 본인이 주입한 독까지도 말이다.

어쨌든 녀석은 그 어떤 통골뱅이 보다도 쫄깃 하고 특유의 은은한 단맛을 자랑했다.

이 정도 양이면 앞으로 한3개월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 * *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간 시혁은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었다.

“······.”

12년 전.

아니, 시혁에게는 302년 전의 일이다.

막노동을 끝낸 후 집에 가는 길,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아야 한다.

상가의 골목길, 그 한 평 남짓한 크기 만을 가려주는 지붕 밑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야오옹.

500그람이나 될까?

시혁의 손바닥을 겨우 꽉 채울 수 있는 크기의 고양이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 본다.

시혁은 잠시 주춤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까. 오히려 옛날에 동생을 등교시켜 주다가 들개 한 마리에게 습격받은 후로는 꽤나 싫어하는, 무서워하는 쪽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 팔뚝에 남아있을 정도이니 그 후로 네 발 달린 짐승을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으음. 같이 좀 쓰자.”

시혁은 녀석의 몸을 다리 사이에 놓고 비를 피했다.

녀석은 몸을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 시혁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바라 마지 않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가까이 했을 뿐, 시혁은 동물이 싫었으니까.

타닥.

타다닥.

하지만 금방 그칠 줄 알았던 소나기가 거세지고, 흙을 두드리며 튄 방울들이 시혁의 워커와, 그것을 지나 녀석의 라일락 색의 털을 적시고, 그 빗방울이 튈 때마다 안그래도 작은 녀석의 몸이 더욱 작게 웅크려지는 것을, 떨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문득 시혁은 자신의 철칙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녀석은 손바닥 위에 딱 들어오는 크기였다.

물기를 머금은 털을 옷 안감으로 대충 닦고, 녀석을 자신의 품 속에 집어 넣었다. 녀석의 떨림이 멈추었다. 고양이의 작은 머리가 시혁의 겨드랑이 속을 파고 든다.

그르르르르르릉.

나중에 알았지만, 고양이가 그르릉 거리는 것은 행복하다는, 기분이 좋다는 의미였다.

이놈은 처음 보는 시혁에게 안긴 게 뭐가 좋다고 행복했을까?

시혁은 뒤늦게 자신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솨아아아아아.

······.

비는 1시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아마 그때 녀석이 시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그 날 죽지 않았을까?

다른 생명을 구한다는 건 꽤 멋진 일이었다.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녀석을 먹이고 키웠다.

6개월 후.

녀석은 포동포동하고 윤기 나는 라일락색 털을 지닌 젖소무늬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녀석은 쿠야라는 이름으로 시혁과 시아의 삶에 들어와 있었다.

시혁이 부를 때면, 녀석은 대답 대신 꼬리를 한 차례 흔들고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빛내며 당당히 걸어오고는 했다.

그런 녀석이 다시금 죽어가고 있다.

가죽은 뼈의 윤곽을 드러내고, 윤기나던 털은 빛 하나 반사하지 않는다는 듯 생기를 잃은 채.

초롱거리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늪처럼 검다.

숨소리는 부드럽다. 아니, 희미하다.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녀석의 몸은 상해 있었다.

시혁의 이가 악물어졌다.

반가웠다. 그런데, 반가움을 표현하려 안아 들면 그것만으로도 녀석은 죽을 것만 같았다.

“림포마···림프절에 생기는 암이야. 림프절은 떼어내지 못해···보통의 힐은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거라 더욱 죽일 뿐이야. 2년 째 투병 중이고···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하시네.”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한 말이 거칠어지더니 물기를 머금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동생이 흐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시혁은 쿠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늪처럼 죽어있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희미하게나마 반짝인다.

“아빠다. 그간···잘 있었냐?”

녀석이 시혁을 바라보더니 뒷발을 지탱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시혁은 감히 녀석을 앉힐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일어난 녀석이 터벅터벅 걸어 와 시혁의 무릎 위에 올라 왔다.

시혁은 녀석이 편하도록 받아들었다.

녀석의 머리가 시혁의 겨드랑이를 버릇처럼 파고든다.

그르르르르릉.

저주파의 부드러운, 골골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지. 아직도 오빠를 기억하나 봐. 정말···오빠가 더 늦지 않아서, 이렇게 살아있을 때 쿠야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쿠야도 눈을 편안히 감을 수 있을 거야.”

항암은 장난이 아니다.

물론 그곳에 들어가는 돈은 빚을 내서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항암제를 사용해도 쿠야의 생명은 조금 더 이어질 뿐 나아지지 않고, 수반되는 고통은 그 어떤 진통제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녀석의 삶은 고역이었다.

이렇게 생명만 붙어있게 하는 것이 진정 쿠야를 위한 것인지, 아직 보낼 용기를 갖지 못한 자신들 때문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쿠야의 편안한 모습을 보니 그간의 고민을 후회할 수가 없었다.

쿠야는 지금껏 시혁을 기다렸던 것이다.

참지 못한 시아가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다가 온 단비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창익 역시 쿠야를 10년 넘게 알고 지낸 터라 함께 한 세월이 적지 않았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가족들의 흐느낌과 쿠야의 골골거리는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묵묵히 들어 넘기며, 시혁은 쿠야의 눈동자를 담담하게 응시했다.

“내가 늦었구나. 미안하다.”

시혁이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녀석의 털이 시혁을 아프게 했다.

더 이상 녀석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고맙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어서.”

눈을 감았다.

검은 화면이 된 시야 속에서 자신이 투쟁하며 싸웠던 많은 것들 중 한 녀석을 떠올려 본다.

츠으으읏.

쿠야를 쓰다듬는 시혁의 손이 코팅이라도 된 듯 반짝였다.

곧 쿠야 역시 시혁의 빛으로 반짝였다.

몸이 한 꺼풀 코팅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순간 쿠야의 힘없던 눈동자가 반짝였다.

······!

회춘이라도 한 듯 이윽고 벌떡 일어나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곤 부르르르 떤다.

그 모습에 모두가 뜨억한 반응을 보일 때, 시혁은 어서 말했다.

“사료든 뭐든, 칼로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져 와. 어서!”

우당탕탕!

뭔진 모르지만 빨리 움직여야 할 것만 같았다.

창익은 사료를 포대 째로 들고 왔고 그것은 옳은 행동이었다.

찹찹. 찹찹찹찹!

평소 쿠야는 밥을 느리게 먹었다.

정확히는 가루로 빻아서 물에 섞어 주사기로 입에 밀어넣지 않으면 삼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연신 으적으적 소리를 내며, 녀석의 입이 허용하는 용적 만큼 의 사료가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녀석의 몸이 변했다. 반쯤 빠져 있던 풍선이 꽉 채워진 듯했다. 털에는 윤기가 나기 시작했다. 늪처럼 검던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시혁이 알던 에메랄드와 같은 빛을 뿜었다.

3킬로그람 사료 한 포대를 완벽하게 먹어치운 녀석이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먀아아아아오오오옹!

“쿠야! 쿠야아아!”

단비가 달려와 쿠야를 안았다.

미처 제지하지 못한 시아와 창익이 기겁을 했지만 시혁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녀석은 허약하지 않음을. 단비 정도의 무게는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실제로 쿠야는 조카가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늠름한 눈동자로 시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시혁의 입 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앞으로도 천년 만년 우리와 함께 사는 거다.”

미야아아!

* * *

행복한 저녁이 그렇게 지나갔다.

부부는 부부의 방으로, 단비는 단비의 방으로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단비는 품 한 가득 쿠야를 끌어안고 들어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혁은 대충 거실에 이불을 덧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낯선 천장.

하지만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오늘은 많은 일이.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300년 간 이어져 오던 그의 세상이 완전히 바뀐 대사건이 일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좋고, 고향이 이 모양 이 꼴이라 어이가 없고, 그런 와중에 가족들이 모두 살아 있어서, 마지막 가족까지 살릴 힘을 시혁이 가지고 있어서 행복하기도 했다.

너무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많은 생각을 정리해야 하지만 그게 오늘일 필요는 없다.

오늘은 행복하고 싶었다.

온전하게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금 마경 한복판일 수도 있었다. 아니, 최악의 경우엔 지금 이 상황이 그 녀석에게 죽으면서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의 혼합물일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행복할 리 없었으니까.

그래서, 불안해서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르르르르릉.

그때, 저주파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단비의 방에서 조용히 나온 쿠야가 시혁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꼬리는 하늘을 가리키다 못해 전갈처럼 휘어진 상태.

녀석의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내비치는 모습이라는 걸 시혁은 잘 알고 있었다.

“잘 있었냐.”

미야옹.

박치기 하듯 시혁의 볼에 얼굴을 비비던 녀석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혁은 녀석이 불편하지 않게끔 틈을 주고 끌어안은 채 배를 쓰다듬었다.

보통 고양이들은 배를 만지면 싫어하는데,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골골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시혁은 녀석을 꼭 끌어안고 속삭였다.

“앞으로도 천년 만년 이렇게 함께 살자.”

그르르릉.

그것은 쿠야에게 한 말일까 시혁 자신에게 한 말일까?

그렇게 쿠야를 끌어안은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밝아 온 아침.

몸은 개운했다.

낯선 천장이 그를 반겼다.

“꿈이···아니군.”

시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꿈일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은 이제 더이상 하지 않으리.

여동생도, 조카도, 못생긴 매제 새끼도 그대로다.

단 한 명.

아니, 단 한 마리.

쿠야만이 사라지고 없었다.

베란다 유리창이 동그란 틀로 떼어낸 듯 비어 있다.

어떻게 하고 간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왜 나간 것일까?

모두가 당황해 하고 있는 가운데 시혁만이 웃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순전히 웃는 표정은 아니었다. 우는 듯 웃는 듯 묘한 표정이다.

“설마설마 했는데······.”

쿠야는 DNA에 박혀 있는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그것이 ‘달팽이 기름’의 효능이다.

근육은 최상의 상태가 되었고, 암세포는 전부 소멸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 중 소멸 되었던 것이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생후 6개월 이전에만 가지고 있던 쿠야의 소중한 고환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4월.

고양이들이 한창 발정할 시기다.

“그, 그래. 평생 써 보지도 못한 거 맘껏 쓰고 다녀라.”

슬프지 않았다. 돌아올 것을 알았으니까.

발정기가 끝나면 돌아오거라.

“믿는다.”

시혁은 괜스레 코를 쓱 문질렀다.

어느새 뽀얗게 떠오른 햇님이 쿠야의 청춘을 밝혀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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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남양주 문지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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