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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생기기 바로 전.
한국 각성자 협회. 줄여서 한각협의 간부 박승환은 한국 귀환자 협회, 줄여서 한귀협의 간부인 이미량을 만나고 있었다.
장소는 남양주의 조용한 카페.
작당모의를 하려면 이런 인적 드문 서울 외각. 더군다나 박쥐들이 침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양주가 제격이었다.
“무슨 일로 본녀를 부른 거지? 내 개인 연락처는 어떻게 안 것이고? 무지렁아. 네놈은 대답을 잘 해야 할 것이다.”
128년차 귀환자이자, AA급 헌터이기도 한 무영검녀 이미량은 특유의 차가운 눈빛으로 박승환을 쏘아봤다.
그 서슬에도 박승환은 겉으론 신사다운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도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겉과 다른 음흉하고 비릿한 미소였다.
‘귀환자들은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무슨 컨셉충도 아니고 말이야.’
개량한복에 비끄러멘 검까지 이질적인 것들 투성이다.
물론 이미량은 양호한 축에 속했다.
어떤 귀환자는 언제나 아랫도리(···)를 까고 다닌다고도 하니까.
‘그래도 듣던 대로 미녀로군.’
물론 눈앞의 여인은 140살을 먹은 할망구다.
그러나 박승환에겐 아무렴 좋았다.
침대 위에서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연락처를 아는 건 쉽지요. 방법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건방지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이 잘리고 싶은 게냐?”
“에이, 그래도 같은 급끼리 모인 자리인데 존대를 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100살도 안 산 무지렁이가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르는군.”
이미량은 콧방귀를 뀌었다.
뭐, 예상한 바다.
박승환은 동요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남양주가 침공 당했다는 건 아실 겁니다.”
“알고 있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거였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 말에 이미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행동으로 인간들이 죽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하지만 박승환의 웃음은 깨지지 않았다.
“총 13명···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에게 죽는 사람은 많습니다. 우린 그런 세상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곤경에 처한 국민들이 보이면 지켜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있지요. 그러니, 우리의 계획 때문에 몇 명 죽어 나가는 게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승환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개인의 행동을 한각협 전체의 행동인 양 포장했다.
궤변이다.
이미량의 눈썹은 더욱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기분이 언짢은 데에서 온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녀석 보게?’하는 표정이다.
“60년차 귀환자들보다 철든 소리를 하는군. 애송이가 세상 이치를 빨리 깨달았구나.”
박승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귀환자들은 이래서 말이 통한다.
“물론 이 사실을 말하려고 당신에게 만남을 청한 것은 아닙니다.”
박승환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야기의 골자는 단순했다.
흡혈 박쥐를 자극해서 남양주를 치게 한 후,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만들면서 그곳의 땅을 사들이자는 단순하고 확실한 계획이었다.
“가디언이 끼어들 텐데?”
“그들은 막아야 할 곳이 많습니다. 그런 주제에 지금은 경기도를 되찾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죠. 그러니 늦을 겁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지?”
“지금 이곳이 그 증거이죠. 이번에 남양주가 당한 것도 다 경계가 소홀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거죠. 결코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가디언은 정부 소속이다. 가디언이 땅을 되찾으면 그 땅은 정부의 것이 된다. 그 후 원래 그곳에 살았던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분양되고, 그 후에는 2순위 국민에게 분양 되는 식이다.
각성자나 귀환자들에게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정부, 국민, 가디언만 좋은 꼴을 본다.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에서 그치면 그나마 괜찮지만, 이럴수록 가디언의 세력이 커지고, 그렇게 되면 먼 이웃나라 미국처럼 정부가 각성자와 귀환자들을 전부 쥐고 흔드는 나라가 될지도 몰랐다.
“그건 막아야지요. 겸사겸사 돈도 벌고 말입니다.”
“터무니 없는 계획이라 말도 나오지 않는구나. 그걸 정부가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까?”
“재벌의 숨겨놓은 사생아가 한각협의 간부라면···그곳의 건설업체와 동조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박승환 자신의 이력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들은 이미량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거, 너의 비밀 아닌가?”
“때로는 비밀을 비밀이 아닌 것처럼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 법이죠. 방어적인 당신 앞에서 저까지 방어적이면 되겠습니까? 전 말 그대로 당신을 꼬시려고 왔는데 말입니다.”
순간 이미량의 동공이 커졌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한 후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래···생각해 보면 요즘 가디언 측이 너무 나대기는 했지.”
성녀와 김세건, 정옥자를 필두로 한 가디언의 특수부대인 ‘구원자’는 각성자들에게도 골칫거리겠지만 귀환자들에게는 더더욱 골칫거리다. 무엇보다 성녀와 정옥자는 귀환자인 주제에 가디언에 붙은 인물들. 심지어 성녀는 한귀협의 대표이기 까지 했던 인물 아니던가?
그런 이들이 정부 소속이 되어 오히려 압박을 가하고 있으니, 이런 방법으로라도 견제를 해야 했다.
“듣자하니 나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실력자는 한각협에도 많지 않나?”
“음···그랬던 게 사실입니다만, 상황이 변했습니다. 남양주의 네임드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
네임드. 그것은 말하자면 터줏대감을 뜻했다.
남양주 근처의 네임드는 AA급으로 판명 난 몬스터인 융단 폭탄박쥐다.
신경질적이고 호전적인 녀석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척살하고 폭발시키는 지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꾀어내기 쉬웠다.
영역권 근처에서 심기만 거스르고 도망치면 죽자사자 쫓아 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 영문에서인지 심기를 거슬러도, 소굴 바로 바깥에서 생 난리를 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녀석을 겁먹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텐데?”
녀석들은 호전적이다.
죽을 자리를 알면서도 달려드는 부나방 같은 것들이다.
물론 예외도 존재하지만 폭탄박쥐들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자폭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들인 만큼 다른 몬스터들보다도 죽음을 모르는 녀석들이 바로 폭탄박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의 우두머리가 부하 몬스터들도 내보내지 않을 만큼 겁을 집어 먹었다고?
왜 그런지 알지는 못하지만, 이유 보단 현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
“인력이 많이 투입되면 들킵니다. 물론 한각협도 인력풀은 있습니다만···경계선에 있는 정부의 이목을 피하면서 은밀하게 네임드 몬스터를 도발할 수 있는 고급인력은 없다시피 합니다.”
“들을수록 나를 두고 하는 말 같군?”
무영검녀가 배운 암영무음신법은 몸을 주변과 동화시키고 소리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뻗어내는 무영검결은 바로 눈앞의 적도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만큼 은밀한 검공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박승환의 입가가 진해진다.
그가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손가락 끝부터 어깨 까지를 지우개로 지운 것 같았다. 기척도, 기감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AA급 스킬, ‘완전 투명화’ 라는 스킬의 결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굳이 귀환자 협회에 보고하는 것보단 개별행동을 하셔서 저와. 아니, 미래그룹과 한 배를 타는 게 어떻습니까?”
결코 단체의 간부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귀환자 만큼은 달랐다.
겉으론 귀환자 전체를 지키는 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귀환자들끼리 모여서 그곳에서도 아귀다툼을 하는, 동료애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단체였던 것이다.
과연 무영검녀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그래. 굳이 다른 놈들이 알아서 숟가락 얹는 건 손해지.”
박승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각성자건 귀환자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건 똑같다.
그리고 박승환은 이런 일은 차라리 귀환자와 함께 하는 게 편했다.
돈 좀 쥐어주고, 자존심 좀 세워주고, 상전처럼 대접해 주는 것만으로도 중2병 걸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때문에 박승환은 같은 각성자보다 귀환자가 취향이었다.
물론 이번만큼은 외모적인 취향 역시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밥이나 한 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에 이미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너와 밥을 먹을 이유가 있나?”
“이유야 만들면 있지요. 가령 한 달 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이미 예약해 둔 상태 라던가 하는 이유는 어떻습니까?”
“흐응···?”
귀환자들은 음식에 민감하다. 정확히는 지구의 음식에 민감했다. 수십, 많게는 수백 년 다른 곳에서 살아온 만큼 고향음식에 대한 갈망은 모든 귀환자들의 공통점이다.
지구의 인간들을 하등하다 여기는 귀환자들도 음식 만큼은 결코 그러는 법이 없었다.
실제로 이미량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박승환은 자신의 은근한 마음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미량의 눈동자에 흥미가 일었다.
“그래. 무지렁이의 치기어림에 한 번 놀아줘 보도록 하마.”
“타시죠.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카페 앞에선 기사가 딸린 고급세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승환은 고급세단의 문을 연 후 신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들어 가실까요, 소저.”
“풋.”
이미량은 지금 이 상황과 박승환이라는 애송이가 퍽이나 재밌다는 듯 웃으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콰아앙!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 거대한 곳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몬스터로 추정되는 괴랄한 포효소리가 뒤섞여 주변을 어지럽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10미터 크기의 균열이 뚫린 채 오크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런 우연이.”
박승환은 멍하니 서서 아비규환의 현장을 바라봤다.
균열이 생긴 장소의 반경 10미터가 집어 삼켜진 듯 삭제 되어 있었다.
균열의 여파로 인해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균열의 크기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빨려 들어간 이들은 균열 안쪽에 무작위로 떨어질 터였다.
그리고 균열에서 나오는 오크들.
‘D급, 퓨어오크인가.’
피부색이 짙은 초록색인 걸 보니 퓨어 오크가 확실했다.
다른 오크들에 비해 지능과 수준이 떨어지지만 어마어마한 숫자와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저돌적인 성정은 초보 각성자들에겐 꽤나 공포로 다가온다.
물론 박승환은 A급 헌터.
저것들의 목을 소리소문 없이 따면서 몰살시키는 데에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가죠. 늦었습니다.”
그제야 실망스럽게 일그러진 이미량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 자연현상에 굳이 한 손 보탤 필요 없지.”
“오히려 우리에겐 좋은 결과를 낳을 겁니다.”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을 막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다면 대중의 뭇매는 가디언을 향할 것이다.
남양주에 몬스터 습격이 있은 후 같은 지역에서 다시금 생긴 일이니 그 비판은 상당히 거셀 터다.
이건 오히려 하늘이 돕고 있는 상황.
이곳에서 죽을 사람들에겐 좀 유감이지만,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차를 타려던 차였다.
콰앙! 쾅! 콰콰콰쾅!
연쇄폭발과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오크의 솜씨는 당연히 아니었다. 균열의 바로 앞엔 각성자 하나가 서서 꾸역꾸역 나오는 오크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것도 맨주먹으로 말이다.
“···흐음.”
각성자의 복색이 익숙하다.
초록색 트레이닝복의 등 뒤에는 흰색 호랑이 무늬가 수놓여 있다.
가디언의 상징인 백호였다.
박승환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미량이 조롱하듯 웃었다.
“네놈 말과는 달리 가디언의 치안 유지력이 이곳까지 닿는 모양이다만?”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의 입가에도 웃음이 머금어졌다.
“뭐, 그리 강한 놈처럼 보이지는 않는군요.”
“···?”
박승환은 고민했었다.
과거 비슷한 상황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박승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꺼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검은색 단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곧 단검의 끝부터 시작된 완전 투명화가 그의 몸 전체를 감싸고 지운다.
이미량은 얼른 무영선녀공을 끌어올리고서야 박승환의 기감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스킬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흥미롭군.”
그녀의 입 꼬리가 씩 말려 올라간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박승환이 행동을 알 것 같았다.
그것에 호감을 느낀 이미량의 눈썹이 추켜 올라간다.
박승환은 그녀가 본 모든 각성자 중에서 가장 세상 살 줄 아는 각성자였다.
이미 그녀는 박승환이 제시한 청사진이건 또 다른 무언가이건 흥미가 동한 상황.
“가디언 하나가 죽게 생겼어.”
츠츠츠츠.
그녀의 몸 역시 주변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지만, 도와줄 일이 있다면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둘은 무아지경으로 오크를 상대하고 있는 가디언(으로 추정되는)의 등을 은밀하게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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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남양주 문지기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