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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0화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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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균열의 입구 바로 앞을 수문장처럼 막고 있는 시혁.

그의 주먹이 다가오는 돼지인간의 머리를 스친다.

퍼어억!

돼지인간의 머리가 으깨지며 초록 피를 내뿜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두가 죽자 바로 그 자리를 후미의 돼지인간이 채운다.

시혁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공부했던 대로네.”

인터넷에는 정보가 많았다. 개중엔 지금까지 공개 된 몬스터들을 도감화 시킨 것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탐독하여 교차 검증을 한 끝에 집어넣은 시혁의 지식은 눈앞의 돼지머리 인간이 오크. 그것도 D급인 퓨어 오크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너희는 정말 죽음을 모르는구나?”

취이이이이익!

1.5미터의 작은 크기에 우락부락한 몸매의 것들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입구 초입부터 막고 있어서 망정이지, 뒤로 두 발자국만 물러서도 지금보다 두세배는 많은 숫자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으리라.

퍽퍽!

퓨어 오크 2마리의 대가리를 한꺼번에 터뜨린 시혁이 흘깃 뒤를 보았다.

4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그의 조카 단비도 함께 있었다.

단비는 올망졸망한 손을 꽉 쥔 채 눈빛으로 ‘삼쫀’을 외치고 있었다.

시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은 피가 튀고 뇌수가 쏟아지는데 뭐가 좋다고 저러고 있는 걸까? 초록색이라 괜찮은 걸까? 누군가가 저 아이의 눈을 가려주진 않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도대체 왜 저들은 완전히 대피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시혁이 너무 압도적으로 오크들을 제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열린 균열로 차례대로 나오는 오크들을 너무나도 손쉽고 빠르게 죽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오크들의 시체가 쌓여서, 조금 전보다 더 틈이 좁아져서 한 번에 다섯 마리도 나오고 있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원래 가까운 거리에서 화산이 터져도 자신이 안전할 것 같으면 스마트폰부터 들고 보는 게 사람의 특성이다.

더군다나 단 한 사람이 균열 앞에 서서 몰려오는 오크들을 맨몸으로 막고 있는 경이로운 장면이 눈앞에 있다면 과연 도망갈까, 아니면 찍어서 SNS에 올릴까?

스마트폰을 들고 시혁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값이었다.

“더 뒤로 가셔야 합니다! 아주 멀리 가요!”

벌써 세 번째 외침이었다.

물론 이렇게 막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

힘들기는 일전에 상대 했던 이상한 변형 폭탄박쥐들이 더 까다로웠다.

적어도 이 녀석들은 날아 다니진 않는다.

단지 귀찮을 뿐.

그 녀석들 처럼 한 방에 끝내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은 도심. 그렇게 큰 폭발을 일으키면 사람들이 다친다.

마침 시혁의 외침이 효과가 좀 있었는지 아주 조금이지만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폭발은 가능하겠네.’

시혁이 열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고작해야 다섯 마리씩 쏟아지던 퓨어 오크 열 다섯마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사람들이 기겁했다.

상황이 갑자기 급박하게 돌아갔다.

모두가 뒤로 도망쳤다.

아줌마 하나가 단비를 끌어안고 같이 뒤로 물러나 주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이들 중 대부분도 펄쩍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그들은 찍지 못했다.

시혁의 손에서 뻗어 나온 폭탄벌레의 힘이 주먹 앞에서 터지며 거대한 구를 형성하는 것을.

콰아아아앙!

5미터 구체에 휘말린 퓨어 오크들이 모두 터졌다.

시혁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웃었다.

“흠. 이번엔 힘조절에 성공했네.”

콰아아아아아!

곧 죽은 오크들의 시체 파편 속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와 시혁의 눈코입으로 들어왔다.

주변이 전부 검게 물들 정도의 안개.

하지만,

와아아아아아!

모두는 우레와 같은 함성만 지를 뿐이다.

시혁의 예상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검은 연기가 시혁에게 빨려 들어가는 걸 봤다면 사람들이 저렇게 열광하진 못했을 테니까.

딱 봐도 여느 소설의 마왕에게서나 일어날 법한 시각효과이지 않은가 말이다.

‘확실해. 이건 나에게만 보인다.’

천만 다행이었다. 괜한 오해는 사기 싫었다.

그저 지금처럼 시민영웅으로서 열광해 주기를 바랐다.

오크들이 다시금 몰려 왔다.

시혁의 폭탄주먹이 다시금 뻗어졌다.

콰아아앙!

사방에 육편이 튀기고, 연기가 뿜어져 나와 흡수 되고···그것이 서너번쯤 반복된다.

적어도 백여 마리는 족히 넘는 오크들을 앉은 자리에서 죽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은 없었다. 여전해 균열 너머에서는 수많은 퓨어 오크들이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저곳으로 폭탄벌레의 모든 힘을 쏟아붓고 싶었다.

뜬 구름에 구멍을 뚫을 정도의 힘이라면 눈앞을 전부 소멸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안엔 사람들이 있다.’

입구로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닌, 입구가 생길 때 그 여파로 빨려 들어간 이들은 위치가 무작위라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오크를 만나 죽었을 수도 있지만 운이 좋다면 지금도 살아서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있는데 덮어놓고 큰 폭발을 질러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무고한 이들이 폭발에 휘말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직접 들어 가자니 그가 들어가며 생긴 틈에 오크들이 조금이라도 빠져나온다면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는지라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 버틴다.

다른 각성자들.

특히 가디언들이 올 때까지.

콰아아앙!

또다시 폭발이 일고, 십수 마리의 오크들이 터졌다.

일순간의 공백.

그 공백 사이로 들리는 소리는 모두의 응원이다.

화이팅! 화이이이이팅!

심지어 단비는 꼭 쥔 손을 뱅글뱅글 돌리며 그 응원을 리드하고 있었다.

“허······.”

도망쳐야 마땅한 이 상황에 응원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특히 25년 평생을 막일만 하며 살다가 대수림에 떨어져 300년 동안 제대로 된 인간 몇 번 보지 못하고 살았던 시혁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꽤나 달콤했다.

‘어헛. 이게 바로 인정욕구의 충족, 뭐 그런 건가?’

그렇게 아주 잠깐, 기분이 풀어지는 정도.

그 공백을 뚫고 균열 사이로 갈색의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시혁의 정수리를 찍어 갔다.

시혁은 그걸 보지도 않고 팔을 들었다.

쩡!

시혁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팔을 보았다.

머리통 만 한 도끼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아니, 시혁의 팔뚝이라는 장애물에 날이 우그러졌다.

푸스스스.

도끼가 서너 조각으로 쪼개져서 떨어진다.

“따끔하네.”

전혀 따끔하지 않은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퓨어 오크보다 2배는 거대한, 3미터 장신의 하얀 오크가 균열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3미터의 흰 피부의 오크.

퓨어 오크의 상위 개념인 하이 오크보다도 상위의 몬스터,

엘더 오크였다.

“퓨어 오크가 D급···저 녀석이···A급이었나?”

오크가 나오는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만큼, 녀석은 이 균열의 보스 몬스터일 터였다.

보스까지 나올 정도면 균열 안에는 오크가 거의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럼 너만 죽이면 되겠네.”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그 여파로 주변 오크들이 육편이 되어 후두둑 쏟아졌다.

하지만 엘더 오크는 양손을 교차한 채 버텼다.

온 몸이 그슬려 거뭇거뭇 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몇 번을 뻗어서 몇 번을 폭발에 노출 시켜도 녀석은 저 이상의 데미지를 받지 않을 듯했다.

곧 엘더 오크의 등 뒤 균열에선 갈색 오크 다섯 마리가 튀어나왔다.

B급 하이 오크.

보스를 뒤따라 나온 보좌관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시혁이 급박하게 소리쳤다.

“지금보다 뒤로 물러서셔야 합니다! 적어도 100미터는 떨어지셔야 합니다! 아니···아니 쫌 도망좀 치시라고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다들!”

목소리에 아주 약간의 짜증이 섞였다. 모두는 군말 않고 뒤로 쭉 물러났다. 일사불란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 엘더 오크의 도끼가 시혁에게로 날아왔다.

시혁은 녀석의 공격을 피하거나 불가피할 땐 튕겨내며 시간을 벌었다.

확실히 엘더 오크는 다른 놈들보다 반응이 빨랐고, 중간중간 하이 오크들이 도끼를 던지는 통에 시혁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인도를 지나 8차선 도로의 중앙까지 내몰린 시혁은 균열과의 거리도, 사람들과의 거리도 대충 50미터 정도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혁의 반경 50미터 안에 인간이 없게 된 것이다.

그어어어어어!

함성을 지르며 엘더 오크가 달려들었다. 하이 오크들이 그 뒤를 따랐고, 무지성의 퓨어 오크가 또 그 뒤를 따른다.

시혁은 도망가지 않았다. 더이상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

엘더오크의 도끼가 시혁의 정수리를 쪼개 왔다.

순간. 시혁의 양손이 주황빛으로 백열했다.

전완근과 전완근이 부싯돌처럼 부딪치며 점화하고,

시혁을 중심으로 반경 30미터가 폭탄벌레의 힘에 휩싸였다.

콰아아아아아앙!

후두두두두둑.

털썩.

퓨어 오크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하이 오크들도 육편이 되어 쏟아졌다. 골치를 썩이던 엘더 오크는 가슴 위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갔다.

살 타는 냄새와 화약냄새가 지독한 가운데, 시혁은 균열을 보았다.

더 이상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끝난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시혁이 뒤를 돌았다.

그곳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허···크허···.

으으···흐으으!

남자는 폭발에 양 팔을 잃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물고기 신세다. 여자는 팔은 지켰지만 몸 전체에 심한 화상을 입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눈꺼풀이 다 타버려서 동그란 눈동자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녀석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비명도 몸이 멀쩡할 때나 지를 수 있는 것이니까.

커허···커허억···!

크흐···흐으으으으으!”

“내 팔···X이발 내 팔이이···크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시혁은 싸늘한 눈으로 그 둘을 보았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알고도 터뜨렸는데 당황할 이유가 없다.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 시혁은 등 뒤에서 자신을 엄습하는 두 개의 살기를 느꼈다.

나름 은밀 하다만 그 은밀함이 마경의 사냥꾼들에 비하면 재롱 떠는 수준.

당연히 멈추지 않았고 결과가 이거다.

시혁은 둘의 앞으로 가서 쭈그려 앉았다.

“너희 둘, 왜 나를 죽이려 했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숨을 헐떡이면서도 시혁을 노려볼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시혁을 죽이고 싶어하는 눈동자들이다.

“너희가 한 짓은 생각을 안 하는 거냐?”

“크흑. 크···끄으으으윽!”

“죽여···죽여버리···겠어!”

“그러냐.”

시혁은 언제나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직감은 이 둘이 누구 앞에서도 아쉬워본 적 없는 부류라 판단했다.

또한 그의 직감은 지금 이 녀석들을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될 거라 말하고 있었다.

마경에선 실제로 그러했다.

저런 눈을 한 녀석을 측은지심에 살려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뒷덜미를 물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후부터 시혁은 저런 눈을 한 맹수는 살려둔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인간에게 까지 적용시켜야 하는가?.

“젠장.”

되도록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경을 전전하며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해 왔던가?

이야기가 통하는 누군가를 갈망하던. 하루라도 좋으니 같은 인간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몸부림 치던 300년의 시간들.

지구에 와서 좋았다.

가족을 만나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다.

그것이 단비와 도망치지 않고, 더불어 이곳의 모두를 지키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결코 각성자가 어쩌고, 귀환자가 어쩌고 하는 나라에서 정한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못봤으면 못봤지, 보고도 지나칠 수가 없었으니까. 그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지키는 게 당연했다.

적어도 시혁에겐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은 그런 시혁을 무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너희는 뭐냐. 왜 나를 돕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 했지. 그게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던 거냐.”

크흑. 끄으으으.

끄으으으···!

시혁은 사람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폭발로 일어난 흙먼지는 고맙게도 이곳의 상황을 가려주고 있었다.

물론 시혁은 흙먼지 너머가 보인다.

그의 눈이 먼지 너머의 사람들을, 정확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조카를 본다.

단비는 울고 있었다. 두려워 하고 있다.

몬스터를 보고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시혁이 폭발에 휘말렸을까 두려워 흘리고 있었다.

“하아······.”

시혁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안 그래도 꽉 쥐고 있던 손아귀가 더욱 하얗게 변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흐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내 시혁의 손이 탁 풀렸다.

“단비 때문에라도 너넨 죽어야 겠다.”

시혁은 둘의 머리 끄덩이를 쥐고 던졌다. 그의 손을 타고 이어진 폭탄벌레의 힘은 둘의 몸을 주황색으로 도포했다.

던져진 둘의 몸이 허공을 날아 균열의 가장 높은 부분을 통과해 사라졌다.

번쩍.

번쩍!

균열 안에서 주황색 빛이 두 번 깜빡거리곤 이내 잠잠해 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

폭발로 인해 쌓여 있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시혁은 몬스터들의 잔해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시혁에게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정말···수고하셨습니다.”

멍하니 하늘을 보던 시혁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예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시혁은 서글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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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정하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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