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1화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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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 균열이 열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물론 남양주 지부의 가디언들이 그곳으로 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빨라도 10분이라 말하는 걸 보니 15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시간이면 이미 균열 일대가 초토화 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물론 강남본부에서 남양주는 더더욱 먼 거리이지만 이예지는 움직였다.

그녀라면 10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녀의 양 손과 양 발. 날개뼈에서 불이 뿜어졌다.

추아아아아악!

그녀의 몸이 일직선으로 하늘을 날았다. 충만했던 그녀 안의 힘이 지우개 닳듯 닳아지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속도를 높이면 높였지 줄이지 않았다. 아마 도착했을 땐 여유분의 힘은 전부 사라지고, 생명을 갉아먹는 전투를 치러야 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녀는 참상이 나는 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8분 만에 현장에 거의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남양주 지부의 가디언들이 도착하려면 5분은 더 있어야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쯤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잡혀서 도륙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기가 싫고 두려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그 모든 감정을 이겨내고 현장에 빠르게 착지한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응?”

사람들은 멀쩡했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밝다. 밝은 것을 넘어서 누군가를 크게 응원하고 있었다.

“삼쫀 화이티이이잉!”

“······!?”

균열이 보였다. 퓨어 오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막아내는 넓은 등이 있었다.

등 뒤에는 가디언의 상징인 백호가 수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저 자는 가디언일까? 그렇다기엔 GPS로 추적되지 않았다. 가디언이었다면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것도 몰랐다.

게다가······.

“츄리닝···차림이라고?”

콰아아앙!

하지만 거대한 등의 사내가 주먹을 뻗고, 그곳에서 단 한 번 보았던. 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던 주황색의 폭발이 터진 순간 이예지는 모든 기억을 조합해서 눈앞의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정시혁···귀환자님?”

그렇다. 그는 일전에 만났던 귀환자였다.

그녀가 놀라는 와중에도 그는 균열 앞에서 꾸역꾸역 몰려드는 오크들을 쳐내고 있었다.

모두의 응원소리를 등에 업고 말이다.

“······.”

그때 남양주 지부 가디언 중 몇몇이 도착해서 이예지를 알아봤다. 또한 상황을 파악하고는 말했다.

“가, 가서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복색을 보아하니 가디언이다.

그런데 그 혼자 막고 있으니 도와야 했다.

하지만 이예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오직 그녀만이 이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기다리죠.”

때마침 나타난 엘더오크가 시혁을 린치하고 있지만 이예지는 시혁이 위험할 거라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주먹 한 번에 수백 마리의 폭탄박쥐가 가루가 되는 걸 본 이상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만약 이곳이 도심만 아니었다면 이미 끝났을 상황이겠지.

“방해만 됩니다.”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할까? 본사에서도 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의 판단이 이곳 누구의 판단보다 우선시 되었다.

- 지금보다 뒤로 물러서셔야 합니다! 적어도 100미터는 떨어지셔야 합니다! 아니···아니 쫌 도망좀 치시라고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다들!

“풋.”

헛웃음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가디언들은 자리에서 버티려 했지만 이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떨어지죠. 휘말립니다. 뒤로 물러서서 민간인들을 보호하죠.”

“···예?”

이예지가 뒤로 물러나자 어버버 하던 다른 가디언들도 물러났다. 이제야 도착한 나머지 가디언들도 이예지의 지시에 따라 대기했다.

이예지는 시혁을 보았다.

시혁은 뒤로 쭉 물러난 채 엘더 오크와 하이 오크. 그리고 퓨어 오크가 버무려진 수십마리의 오크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모두들 기겁하며 시혁을 걱정하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오히려 그녀는 시혁이 뭘 하려고 이렇게 거리를 벌렸나 하고 흥미가 돌았다.

그녀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급박한 균열 현장에서 처음으로 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 쌓여 있는 흙먼지.

이예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본인 자체가 폭발할 줄이야?

“삼···촌···?”

여자아이가 그 광경을 보더니 눈물을 흘린다.

이예지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가 자폭할 리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은 달궈진 쇠처럼 뜨거운 상태.

내밀었던 손을 다시금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곧 안개 걷히고 주변이 드러난다.

시혁은 몬스터들의 잔해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옷마저 새 옷처럼 깨끗하다.

더 이상 균열에선 아무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제대로 터졌으면 주변일대를 지옥으로 만들 만한 균열은 한 사람에 의해서 클리어 되었다.

이예지는 홀린 것처럼 시혁에게 다가갔다.

가디언을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혁과 가까워지고, 그의 얼굴을 정확히 보게 된 이예지는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시혁은 무표정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무표정하다.

그런데 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슬퍼지는 걸까?

쓸데 없는 우려이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시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뇨. 괜찮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예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런 표정을 그녀는 많이 봐 왔었다.

바로 이런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이 단체 장례식에서 저런 표정을 짓고는 했다.

크나큰 무언가를 잃은, 혹은 희생해야만 했던 이나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결코 지금 어울리는 표정은 아닌 것이다.

이예지가 그렇기 입만 벙긋 거리는 동안, 시혁은 균열로 다가갔다.

“먼저 들어가도 됩니까?”

정신을 차린 이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귀환자께서 이렇게까지 해 주셨으니 이 앞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셔도 됩니다.”

그는 귀환자로서의 의무. 아니 그 이상을 해냈다.

그러니 쉬어도 되었다.

하지만 시혁은 이예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균열 안에서의 구조활동은 가디언만 가능한 겁니까?”

“······.”

시혁의 얼굴엔 마치 사람을 구하는 데에 이유와 자격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써 있는 듯했다.

이예지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실수했어.’

균열 바로 앞에 있는 바람에 귀환자가 균열 클로징에 기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은 종종 있어 왔다.

그때마다 귀환자들은 뒤늦게 도착한 가디언들의 무능을 탓하며 귀찮은 상황을 피하기 바빴다.

그게 이예지의 머릿속 뿌리 깊게 박힌 귀환자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나름 배려를 한답시고 그런 말을 했다.

어쨌든 시혁은 귀환자였으니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한 자리에 꿋꿋히 서서 모두를 구하려 애쓰고 그것을 이뤄낸 사람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닙니다. 같이 들어 가셔도 됩니다.”

“단비야, 삼촌 다녀올게.”

시혁이 소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단비라고 불린 여자아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가서 안기고 싶었지만, 아직 저 안에 사람들이 잡혀있다는 것을 단비 역시 알고 있었다.

“삼촌 안녕히 다녀오세요!”

해맑게 손을 흔드는 단비의 앞에는 비각성자 출신 가디언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모두를 보호하고 있었다.

시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단비에게 방긋 웃어주던 얼굴이 뒤돌아서자 다시금 무채색으로 돌아온다.

그 뒤를 이예지를 포함한 스물의 가디언이 뒤따랐다.

* * *

균열은 던전의 일종이다.

다만 던전은 포탈의 형태를 띠는 반면 균열은 공간이 쭉 찢어진다는 것이 달랐다.

던전은 보스 룸 안에 보스가 있지만, 균열은 잡졸이건 보스이건 한꺼번에 뛰쳐나올 수 있다는 것도 다른점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일반인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균열이 발생하는 와중 많은 이들이 빨려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을 팔던 아저씨, 줄을 서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 그밖에 많은 시민들.

1분 전까지만 해도 계획이 있던 모든 사람들은 계획은커녕 목숨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시민들은 자신이 균열에 빨려 들어온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절망했다.

균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미 10년 전부터 정부의 주최 아래 열심히 배운 상태.

스마트폰을 키고, 수신상태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이 현재 위치가 균열 안이라고 판단을 하면 일단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길 만한 곳으로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배운 모든 것을 하더라도 생존률은 10%미만.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이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적다.

중년인은 정부지침이고 뭐고 패닉에 빠졌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중년인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살려면 입다물고 있어야 했지만,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비명으로 공포를 해갈한 그의 등골이 뒤늦게 서늘해졌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걸어 다니는 많고 많은 몬스터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올 터였다.

중년인은 몸을 공처럼 말고 벌벌 떨었다.

그때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더니 거대한 폭음이 두 차례 울려 퍼졌다.

쾅! 콰아앙!

“젠장···폭탄이라도 터진 거냐고. 젠장, 젠장······!”

하지만 내심 안도감도 들었다.

몬스터들이 있다면 저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부스럭, 하고 뒤에서 소리가 났다.

십 중 팔구 몬스터겠지.

“이야아!”

그는 손에 잡힌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턱.

그것을 요령 좋게 잡은 건 가디언이었다.

가디언은 계속 불러도 대답이 없던 중년인을 달랬다.

“괜찮으십니까? 이제 다 괜찮습니다.”

“···크흡, 크흐흐흑.”

중년인이 선 자리에서 무너졌다. 가디언은 싱긋 웃으며 그런 중년인을 일으켜 세웠다.

이와 같은 일들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 *

균열은 여의도 크기로 밝혀졌다. 거대하다면 거대하고 작다면 작은 그곳은 숲으로 빽빽했다. 곳곳에서 오크들의 흔적이 보였다. 아마 잘 찾아보면 오크들이 살던 부락도 찾을 수 있을 터다. 몬스터 탐색 기술을 가진 가디언들이 주변을 훑었고, 그 결과 이곳에 남은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하긴, 보스를 따라 모든 오크들이 따라 나왔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곳의 대부분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 이곳은 클리어 되었습니다. 생존자 분들은 와이파이를 켜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생존자 분들은 목소리로 위치를 알리지 마시고 와이파이를 켜주시기 바랍니다! 고함을 쳐선 안 됩니다! 혹시라도 아직 남아있는 오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확성 스킬을 가진 가디언들이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구조된 이들은 15명. 예상치가 서른 명이었던 만큼 반쯤은 임무를 완수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급박하게 돌아갈 것 같던 균열 안 구조작업은 순조롭다 못해 평화롭기 까지 했다.

이게 다 시혁의 덕이다.

“균열은 던전과 다르게 스마트폰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들고 들어갈 수가 있군요.”

“모르셨나요?”

“예. 헌터 위키엔 그런 건 써 있지 않더라고요.”

“너무 기본적인 거라 생략 되었나 봐요.”

시혁과 이예지는 함께 걸으며 생존자를 찾았다.

그들이 걸을 수 있는 이유는, 말 그대로 이곳의 구조가 ‘시간 문제’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주고 있으니, 시혁과 이예지는 산책 아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생존자 구조였다. ‘평화로운’과 ‘생존자 구조’가 함께 붙을 수 있다니? 이예지는 풋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귀환자에게 말했다.

“이렇게 행복한 수색은 처음입니다.”

“원래는 안 그런가 보죠? 하긴···그렇겠군요.”

시혁의 말에 이예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급박한 비명소리. 가디언들의 급박한 숨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한 이들, 돌아갔을 때 기다리는 그들의 가족들, 그들의 오열소리.

어느새 이예지의 주먹은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쥐어진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을 대신 해주셔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시혁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입장에선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귀환자들을 많이도 접하고, 기대를 하고, 실망도 많이 한 이예지는 결코 이 상황을 당연하게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

“당신과 같은 귀환자는 오랜만입니다.”

“다들 안 그런가 봐요?”

“정확히는 측은지심이 있는 귀환자도 더러 있지만, 한귀협에 속하고 몇 달 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런 모습들이 전부 사라지더군요. 도대체 그곳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물론 물어 봤자 규정상 가르쳐주지 않으시겠지만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그 말에 시혁의 얼굴이 아리송해졌다. 덩달아 이예지도 아리송해진다.

“제 말이 너무 실례였을까요?”

“실례고 뭐고···아직 한귀협에서 연락이 오질 않아서요.”

그 말에 이예지는 순간 굳었다.

하지만 곧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옥자 언···니···에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귀환자법 상 제대로 설명듣진 못했으나, 200년차가 넘는 귀환자들은 초반에 먼저 부르지 않는다더군요. 텃세···신입 기죽이기···?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뭐요?”

시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집안에서 백수처럼 지낼 수밖에 없던 나날, 돈이 없어서 단비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지 못했던 기억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이 전산상의 오류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기를 죽이기 위한 텃세였다고?

진짜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들 사는지 모르겠네요.”

“저 또한 오랜 의문입니다.”

둘은 한동안 말 없이 걸었다. 그런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가디언들이 구조자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어색한 기류.

한참 말 없이 생각을 거듭하던 시혁이 내뱉었다.

그로선 중요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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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정하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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