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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2화 (12/44)

&12

“예지씨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습니까?”

“······!”

이예지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면······?”

“역시 실례였겠죠. 죄송합니다. 단지···단지 궁금했습니다. 각성자가 되고 던전을 돌거나, 사람을 구하다가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상황이 없었나 하고요.”

시혁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간절함이 읽혔다. 그것이 갈고리처럼 그녀를 붙잡아 지금 이 화제를 어영부영 넘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있었습니다.”

3년 전. 동작구 일대가 빌런들의 테러에 휘말렸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된 끔직한 현장이었다.

그 현장엔 이예지 역시 있었다.

그때 이예지는수많은 빌런들을 불태워 죽였다. 그 중에는 그녀의 동료도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며 구애하던, 철 없지만 귀여운 동생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년 전부터 가디언에 심어져 있던 빌런이었습니다. 마지막엔 저에게 본인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 원망하지 말아달라고 하더군요. 녀석에게 죽은 민간인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던 이예지의 눈동자가 죽인 동료 이야기를 할 때 크게 흔들렸다.

“슬프셨겠습니다.”

“그 당시엔 너무 슬펐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이지만, 일단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니까요.”

“극복하셨나요?”

이예지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경우엔 그들을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했습니다. 전 그 상황이 다시 찾아와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그들이 죽지 않으면 죄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죽으니까요.”

시혁은 이예지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단단하기 그지없다.

“이예지 씨는 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예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딱히 미사여구가 섞인 멋진 말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다.

아마 그가 자신의 심정을 십 분 이해하고 있다는 게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혁씨는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나요?”

시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그는 오늘 두 각성자를 죽였다.

폭탄벌레의 힘을 둘의 몸에 두르고, 균열 너머에 보이는 하늘로 던졌다.

둘은 균열 안 하늘에서 폭발했다. 균열 안과 밖이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면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렸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죽어 마땅한 이들이기도 했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시혁은 그런 인간까지 보듬어야 한다 생각할 만큼 호인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는 안다. 시혁이 한 일은 옳았다.

하지만 자기확신만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엔 찜찜했다.

남의 입에서 자신이 내놓은 답과 비슷한 것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예지에게 물은 것이다.

그녀는 시혁이 돌아와서 본 각성자 중 가장 올곧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역시 시혁과 같은 답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일말의 찜찜함 마저 날아갔다.

‘그간 내가 너무 말랑해져 있었어.’

그는 300년간 숲에서 홀로 살았다. 그곳은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었다. 지성이 있는 것 같던 뿔과 날개가 달린 녀석들조차 시혁을 보면 죽이려고 달려들 뿐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오히려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다.

그런 곳에서 잔뜩 벼려져 있던 시혁의 감성이 이곳에 오며 여동생을, 친구이자 매제를, 쿠야를, 단비를 만나며 말랑하게 풀어졌다.

이젠 모든 투쟁이 끝났으니까.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큰 착각이었다.

대격변이 일어나고, 가디언과 각성자, 귀환자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이곳은 또다른 마경이었다.

그는 이 마경에서도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것을 씹어삼키며.

이내 시혁이 대답했다.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굳건한 선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군요.”

시혁의 대답은 어딘가 이상했지만, 그것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둘은 그렇게 말 없이 걸었다. 아까와 같은 어색한 상황.

하지만 어색함 대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이 상황을 편안하게 가꿨다.

그래서일 것이다.

용기가 난 것이.

“감사합니다. 이번 일이 아니라···저번 일.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연한 일을 하신 거겠지만, 그래도 제 입장에선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시혁의 대답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지만 시혁은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생명을 태우는 사람을 지나칠 수가 있어야 말이죠.”

“······!”

이예지의 눈동자가 이렇게 커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이예지의 말에 시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용하시는 게 힘인지 생명력인지 쯤은 분간할 수 있어서요.”

“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음···왜 그러냐고 말씀하셔도 딱히 대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그런, 건가요.”

이예지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사과 맛이 나서 사과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사과 맛이 나냐고 물어 보면 대답을 못 하는 것처럼 당연한 답변.

생각해 보면 이 남자는 계속해서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3명에서 4명으로 불어난 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비밀을 지켜줄 거냐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어차피 물어 봤자 그게 비밀이었냐는 말과 함께 당연하다는 듯 지켜 준다고 말할 것 같았다.

대신 그녀는 푸념했다.

“웃기지 않나요? 남들에겐 죽을 자리에서 목숨을 구해주는 능력이 제 죽음을 앞당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측근에게도 하지 않는 종류의 푸념이었다.

전투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생명은 깎인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철저한 몸관리와 남다른 젊음으로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들의 반도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억울하진 않았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 값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가끔 서른도 되지 못해 전장에서 홀로 죽어가는 악몽을 꾸고는 했다. 지금이라도 이런 무리한 구조활동을 그만두어야 옳지만 그녀는 그럴 수가 없다.

트라우마에 의한 중독증세.

이예지는 아직까지 그것을 이겨낼 수 없었다.

지금 그녀의 얼굴엔 그러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시혁은 그런 이예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달팽이 기름으로 그녀를 치유해줄 수 있었다.

그녀에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도와줄 수는 없었다. 능력을 사용하는 건 신중해야 했다.

게다가 능력을 사용하려면 신체접촉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생존자 구조가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에 현장이든 어디든, 또 뵐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싱긋 웃는다.

시혁 역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 * *

그렇게 균열로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구조자 32명 전원이 살아남았다.

좀처럼 없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들이 균열에서 빠져나오자 기다리던 가족들과의 상봉이 이뤄졌다.

부둥켜 안고, 서로 울음을 터뜨리고···다만 울고 있는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걸려 있는 것이 평소와 달랐고, 그 하나가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삼쪼오오오오온!”

단비가 쪼르르 달려와 시혁에게 안겼다. 그 뒤에는 김창익과 정시아가 뒤따라 왔다.

정시아는 시혁을 부둥겨 안고 울었고, 김창익 역시 시혁의 손을 거세게 쥐었다.

“···정말 고맙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김창익이 울먹거렸다.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만약 자신이 단비를 데리러 갔다면 어땠을까? 이 사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휘말렸다면, 단비를 지킬 수 있었을까?

시혁이 피식 웃었다.

“당연한 거지, 못생긴 매제.”

짝짝짝짝짝짝.

주인공이 나오자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모두가 감사하다며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스트로보가 팡팡 터졌다. 개중엔 시혁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려는 기자도 있었다.

“우리의 영웅!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예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 없는 그녀였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공무집행 방해가 될 수······?”

대신 막아주려는 이예지를 시혁이 부드럽게 만류했다.

“인터뷰 할 겁니다.”

시혁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 만큼은 사나웠다.

이렇게 된 이상, 시혁은 자신이 멕일 수 있는 최고의 엿을 한귀협에게 먹여줄 생각이었다.

* * *

모든 포털의 헤드라인을 잠식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남양주에 생긴 갑작스런 균열이 그것이었다.

제목 :  남양주 문지기! 그의 정체는?

남양주에 난데없는 재앙이 닥쳤다.

A급으로 판명난 균열이 바로 재앙의 정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3년 전 강원도에서 발생한 A급 균열, 놀 늪지로 인한 인명피해가 500여 명에 달하는 것과 대조해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쾌거다.

이것은 세계 최초로서, 해외에서도 ‘남양주 도어맨’으로 불리며 격렬한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첨부영상]

영상에서는 단 한 명의 각성자가 몰려오는 오크들을 전부 때려잡고, 급기야 폭발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SNS에 올라온 그의 영상은 총 조횟수 1억 뷰를 돌파할 만큼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만약 영상에 나오는 각성자가 없었더라면 500명 이상의 피해가 났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영상에서 나오는 각성자는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마크가 등 뒤에 수놓여 있다. 그렇다. 이 옷은 가디언들에게 지급되는 트레이닝 복이다.

그렇다면 남양주 문지기는 가디언 소속일까?

아니다. 그렇다고 각성자도 아니다.

무려 귀환자!

바로 300년 만에 돌아온 귀환자 정시혁이 남양주 문지기의 정체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디언의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을까?

그것을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조금은 길어진다······.

···후략.

이어지는 본인의 상세한 인터뷰에 누리꾼들은 난리가 났다.

ㄴ 뭐야. 그러니까 한 달 전에 돌아왔다는 거야?

ㄴ 조카 아이스크림 사주려다가 돈 없어서 돌아갈 뻔했다는 거 나만 뻘하게 웃김?

ㄴ 한귀협 천룡인 새끼들 어서 모셔가지 않고 뭐 했냐? 이게 진짜 전산오류라고?

ㄴ 보나마나 텃세 겠지. 천룡인 새끼들 일반인이랑은 말도 안 섞는 주제에 지네들끼리도 연차별로 알력다툼 정치질 ㅈㄴ장난아님. 안 봐도 뻔하지.

ㄴ 미친 ㅋㅋㅋㅋ 그래서 가디언한테 뺏겼다고?

ㄴ 그건 모르지. 트레이닝복은 입을 옷이 없어서 입은 거라던데?

ㄴ 와···300년차 귀환자가 돈이 없어서 옷도 못 사입고 한달 동안 인터넷 서핑 질만 했다고?

ㄴ 감정이입 너무 하지 마라. 저 새끼도 귀환자다. 보나마나 한귀협에서 정신세뇌 들어가면 천룡인 한마리 더 탄생인 것이야.

ㄴ 현장에 없었으면 입닫고 꺼져라. 저분 아니었으면 나 자식새끼 얼굴도 못 보고 죽었을 거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씨부리지 마라.

ㄴ 뭐 내가 틀린말 했냐? 어차피 다 똑같아. 시민을 위해 싸우던 귀환자들은 이미 죽거나 병신 됐다. 지금 귀환자들은 그냥 이익집단이야. 어찌 보면 한각협보다 더 하지. 한각협은 인간 목숨이 오가는 정보 가지고 밀당질 하지는 않거든. 늦게 와서 강하다는 이유로 권력 잡고 흔드는 새끼들. 역겨워서 토악질이 나온다.

ㄴ 이 분 목숨 많네. 한귀협이 어떤 곳인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싶으신가 봄? 목숨 내놓고 댓글 다네 ㅋㅋㅋ

ㄴ ···신고된 댓글입니다.

ㄴ ㅋㅋㅋ 역시 이분 신고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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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와 그나저나 문지기 죽이네. 다 터뜨리고···난리가 나네.

ㄴ 그 와중에 츄리닝은 안 타는 게 킬링 포인트.

ㄴ 정시혁 가디언 츄리닝 입은 김에 가디언 입성하나요?

ㄴ 그건 아니지 않음? 그러려면 귀환자 자격을 포기해야 되는데 잃는 게 너무 많잖아? 당장 귀환보조금만 해도 수십억일 텐데, 그 밖에도 여러 편의들 있다고 들었음. 나같아도 포기 안 함.

ㄴ ···고건 고렇지. 수십억 못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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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야가 돌아오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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