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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3화 (13/44)

&13

* * *

이 이후에도 300년차 귀환자 정시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지대했다.

여기저기 그에 대한 기사가 도배되었다.

대한민국 매스컴이 이번 일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 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일을 모두 알고 있더구나. 도대체 처신을 어떻게 한 거야! 이래놓고도 너희를 내가 믿어야 겠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 듣기 싫다. 어디서 아버지라는 거야!

물론 수화기 너머 상대의 노성은 여전했다.

- 각성한 자식 새끼라곤 그나마 너희 밖에 없어서 굳게 믿은 나의 잘못이지. 역시 천한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닌가 보군. 일처리를···이따구로 하다니. 이번 일로 정부에 양보해야 하는 이권들이 도대체 몇 개인 줄이나 알고 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 아버지라 하지 말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 저곳에 본인이 있었다면 본인에게 날아왔을 무언가가 벽에 부딪쳐 깨진 모양이었다.

- 박승환은 없나? 뚫린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라! 거금을 들여서 높은 자리까지 올려 놨더니 나를 이렇게 배신해?

“형은 이곳에 없습니다.”

- 허! 실패한 개새끼도 면목이란 것은 있나 보군. 녀석이 오는 즉시 둘 다 나에게 와라. 너희는 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 내가 아버지라고 하지······!

남자. 박승현은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수화기가 울렸지만, 전화를 건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지만 박승현은 받지 않았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강력한 악력에 으스러졌다.

“당신이···네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우리의 아버지라는 거냐.”

평생 이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다.

각성자의 시대에 회장의 씨 중 본인들만이 각성자였다.

형인 박승환은 양지에서, 그리고 동생인 자신은 음지에서 미래 그룹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썼다.

점점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 일은 위험했다. 승현은 형을 말렸다. 무리라고.

하지만 형은 언제나처럼 강행했고, 이 무리한 일은 결국 정부에 덜미를 붙잡혔다.

평소라면 싹싹 빌어야 했다.

형과 함께 아버지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단 한 번만, 제발 단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

그의 쌍둥이 형인 박승환은 죽었으니까.

죽었다는 기사도, 시체도, 그 무엇도 나오지 않았지만 박승환은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S급 특성, 쌍생.

던전 사냥을 같이 가지 않아도 똑같은 경험치를 분배 받는 미친 특성.

언제나 형과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던 그 끈이 바로 어제 끊어져 버렸다.

뚝. 뚝뚝.

박승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결국 눈을 감았다.

성인이 된 후로 엿보지 말자 서로 다짐했던 ‘기억 공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형이 죽은 건 알고 있다. 때문에 형의 현재의 기억은 읽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기억은 읽을 수 있다.

박승현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잠시 감았던 박승현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거대한 등. 습격 도중 생긴 주황색 폭발.

날아간 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

허공을 날고, 폭발하는 몸. 이어지는 고통까지.

“······으아, 아아아아아악!”

벌떡 일어난 박승현의 얼굴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광기로 번들거렸다.

당장에 TV를 켠 후 채널을 돌렸다. 어렵지 않게 정시혁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박승현은 정시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네가···네가 내 형을.”

이가 악물어졌다.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다.

아직은 그럴 힘이 없었다.

형의 기억에서 엿본 정시혁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머리에 울렸다.

- 상생전이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발동조건 : 박승환의 죽음.)

- 상생전이 스킬을 발동하시겠습니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형에 대한 복수 뿐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 플레이어, 박승환의 모든 스킬과 업적, 능력치가 플레이어 박승현에게로 전이 됩니다.

- 예상 전이 완료시간 12일 24분 43초······.

실시간으로 차오르는 힘을 느끼며, 박승현은 TV에 나오는 정시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기다리자. 당장은 수그려야 한다.”

말과는 달리 박승현의 눈동자엔 살심이 뱀처럼 차 오르고 있었다.

* * *

한편 한귀협은 시혁의 인터뷰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물론 물질적인 피해는 일절 없었지만, 때로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법이다.

체면.

“흠···한귀협이 큰 망신을당했군. 저런 인터뷰를 할 줄이야···큭큭큭큭!”

광기 어린 미소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 아무도 지금 말을 내뱉은 사람의 심기를 건들 수 없었다.

엄청난 살기가 주변에 작용하고 있었다.

모두가 살기를 펼친 인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결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냐아냐.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왜 잘해 놓고 벌벌 떠나? 다들 150년차들 답게 격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이 300년차 대선배가 3세대 치고는 너무 강하다는 거야.”

“확실히 그런 것 같더군요. 더군다나 사용하는 능력이 폭발이라는 게 참으로 탐이 납니다.”

“권사인 것 같은데···내가 아는 유파엔 저런 비슷한 것도 없고···에드가라트보단 연 대륙 출신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초식이 없습니다. 초식 없는 무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무공이 저렇게 강한 건 드물죠.”

“오크 나부랭이에게 쓸 초식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확실한 건 저 파괴력은 보통이 아닙니다. 150년차 이상의 강함입니다.”

“어째, 이미량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본녀 뿐일까요?”

“프흐흐. 역시 안 보이는 자리라서 그런지 더욱 신랄하군?”

“애초에 간부 자격이 없는 년이니까요. 지금도 보세요. 모두가 와야 하는 자리에 얼굴도 비추지 않고 있잖아요?”

“확실히···며칠이 지나도록 얼굴 하나 내비치고 있지 않기는 하지.”

“협회 몰래 던전이라도 돌고 있나 보죠. 그년이 뒤에서 호박씨 까는 거 걸린 게 한두 번인가요? 그런 년은 단전을 폐하고 비급을 토해내게 해야 하는데.”

“왜. 직접 하지 그러나?”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거기까지.”

좌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3세대 중 가장 아는 게 많고···1세대만큼 공명심이 투철한데 2세대인 우리만큼 강한 귀환자라.”

남자. 연 대륙에서 천마라 불리던 남자, 이진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건···귀하군.”

* * *

며칠 후. 시혁의 계좌엔 거금이 꽂혔다.

그것도 얼마나 거금이냐면······.

“···15억? 15억 하고도 2천만 원이라고···!?”

남다른 액수에 정시아와 김창익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현직 헌터인 김창익이 허공을 응시하며 셈해 본다.

“하, 하긴···게이트를 혼자 처리하다 시피 했으니···많이 훼손 되긴 했지만 시체들도 다 용처가 있고, 균열 안에서 캔 마석들도 있으니 그것들을 전부 정부가 사면···퍼센티지로···아니 그래도 15억 2천은 개인에게 돌아 가기엔 큰 금액 아닌가?”

시혁은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마트폰엔 시혁이 만든 계좌에 입금된 금액이 표기되고 있었다.

- 1,520,000,000원.

물론 세금을 제외한 금액이라고 한다.

하루아침에 시혁은 부자가 되었다.

기뻤다. 엄청나게 기뻤다. 일주일 전만 해도 조카에게 사줄 아이스크림 값이 없어서 절절 메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건 ‘많은 돈’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기쁨일 뿐이었다.

뭐랄까···시혁은 15억이 아니라 1억 5천이 통장에 꽂혔어도 지금과 똑같은 행복감을 느꼈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소박 했던가?’

그렇다.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는 꽤 소박한 축에 속하는 듯했다.

얼마나 소박하냐면,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라면이 먹고싶을 정도로, 옛 영화에서 나온 레시피, 한우 채끝 짜장게티를 먹고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1++ 등급 한우 채끝살을 잘 구운 후 짜장게티 5개와 함께 버무려 가족들과 나눠먹었다.

“맛있어! 삼쫀 너무 맛있어요!”

단비가 좋다고 방방 뛰었다.

밥상에 앉은 여동생 과 매제도 고개를 처박고 한우 채끝 짜장게티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시혁은 흐뭇 하기만 했다. 저러는 게 당연할 만큼 맛있게 끓였다.

결국 밥까지 비며먹고서야 1차가 끝났다.

2차는 소주와 맥주다.

이것은 시혁이 돈을 많이 벌어서 쏘는 축하 파티.

더 비싼 술을 사고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시혁도, 여동생도 매제도 음식으로 사치 부릴 줄 아는 생활과는 담 쌓고 살아서인지 쏘맥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시혁은 너부리 순한맛을 부순 후 접시 위에 올리고선 라면스프를 후추 뿌리듯 살짝만 뿌린 후 나머지는 종지에 담았다.

“자. 마른안주 완성이다.”

“···아니···하하. 할 말 없네.”

시혁의 도를 넘은 라면 사랑에 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옛날에도 셋이 이렇게 자주 해서 먹었으니까.

“그때 난 콜라 마셨었는데, 지금은 쏘맥을 말고 있잖아?”

정시아가 씩 웃으며 능숙하게 쏘맥을 말았다. 술과 거품 8:2의 완벽한 쏘맥의 목넘김이 아주그냥 끝내준다.

단비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었다.

베게는 시혁의 허벅지였다.

“와···샘 난다. 단비랑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아무래도 이번 일 때문이지 않을까? 아!”

마냥 흐뭇해하던 시혁은 계속 품던 의문점을 말했다.

“아니, 단비가 막 응원을 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몬스터이긴 하지만 시혁은 녀석들의 살과 내장을 분리하고 초록 피를 흠씬 뒤집어썼다. 폭발로 인해 인체와 비슷한  오크의 시체가 터져 나갔으니 끔찍해서 울음을 터뜨려야 옳다.

그게 시혁이 아는 어린아이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도 시아와 창익은 쓴웃음만 지었다.

“요즘 세상이 많이 변했어.”

“몬스터는 애 어른 가리지 않아.”

10년 전과는 풍조 자체가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올지 모르며, 10년 전과는 달리 언제나 죽음은 가까이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몬스터를 본 어린아이들이 빽빽 울며 주저앉는다면 몬스터들은 표적을 바꿔서라도 손쉬운 사냥감을 택할 것이다.

때문에 일부러라도 몬스터의 시체나 모습에 둔감하게 만드는 훈련을 학교에서 시킨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네.”

하지만 들을수록 맞는 말이었다.

동심도 중요하지만, 그 어여쁜 동심을 가진 채 아이로 죽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격변하는 세상인지라 교육법도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

시혁은 그게 못내 씁쓸했다.

“그리고 혹시 각성할지도 모르잖아. 그때 피를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 헌터 일을 해야 하는데.”

“아니 애를 그런 위험한···끄응.”

시혁은 입을 다물었다.

이젠 몬스터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시대다.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수십 년 간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예전의 평화로운 세상은 오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만큼 각성자가 우대 받는 세상에서 아이가 각성을 했을 때 헌터를 반대하는 인구는 적었다.

물론 당연히 본인이 원해야 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위험하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게 낫다. 자기 몸 지킬 줄 아는 게 낫다. 시혁은 한숨을 내쉬며 단비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술자리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억을 되짚어 현재가 강화되는 즐거운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그때 여동생과 매제의 스마트폰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울렸다.

동시에 둘의 입이 쩍 벌어진다.

“나, 나 B급 심사 통과했어!”

“나도 C급···으로 등급이 올랐어.”

“오올.”

그 말에 시혁은 뛸 듯이 기뻤다.

라면을 더 끓일까 물어봤지만 제발 좀 그만하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대신 배달어플로 들어가 이곳에서 가장 비싼 것을 주문했다.

배가 불러서 많이 먹진 못했지만 보쌈과 족발을 맛있게도 먹는다. 시혁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내일은 저걸 이용해서 라면을 끓여줘야지.

“아무래도 이거, 오빠 덕분인 것 같아.”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시혁이가 발라준 그···?”

“달팽이 기름?”

“어! 그 기름의 효과 같아. 그 후로 할 수 있는 게 늘었어.”

“나도야. 힐량이 늘고 효과가 증대됐어. 아마 능력치 측정을 하면 스탯이 엄청 올라 있을 거야.”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 그 웃음에 복잡한 감정이 함유된다.

‘달팽이 기름에는 그런 효능이 없어.’

그런데 그런 기능이 생겼다.

아마 시혁이 빨아들이는 검은 연기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폭탄벌레의 힘을 끌어 쓸 때에도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게 나갔었다.

이쯤 되면 확신이다.

‘정말 검은 연기는 내 능력을 향상시키는 힘이 있나 보군.’

그리고 그때였다.

먀아아우우.

고양이 소리가 났다.

가까운 데에서 났다.

거실 식탁에서 먹고 있었기에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창밖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창문 울타리에 고양이 한 마리가 위태롭게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야였다.

기뻐야 했지만 모두는 선뜻 창문을 열어줄 수가 없었다.

뿌리라도 박힌 듯 움직일 수가 없다.

기껏 해야 보통 고양이만 하던 쿠야의 몸집이 살쾡이처럼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통통하던 팔다리 역시 서벌(고양잇과 일종)처럼 길쭉길쭉하다.

으에옹.

······.

울음소리는 거칠다. 앳되어 보이던 얼굴엔 상처 하나가 아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게 또 묘하게 분위기 있었다.

눈빛도 달랐다.

티 없이 당당하기만 했던 에메랄드빛 눈동자 안에는 이제 뭔가를 크게 알아버린 수컷의 분위기가 담겼다.

···이것도 달팽이 기름의 영향일까?

시혁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달팽이 기름이 이 정도면, 다음 기름을 바르면 어떻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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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야가 돌아오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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