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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4화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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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꺄아아! 쿠야가 커졌다아아아!”

단비가 달려가 쿠야를 끌어안았다. 목을 잡고 매달렸다. 쿠야는 그래도 버틸 정도로. 아니, 단비를 태우고 다녀도 될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다.

모두가 놀랐지만 그뿐이다. 뭐, 쿠야에게 어디 가서 이렇게 커졌냐고 물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미야옹’ 내지는 ‘그르르릉’ 밖에 없겠지.

시혁은 쿠야의 늠름한 이마를 매만졌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짜식! 좀 오래 걸렸구나?”

그르르르릉.

쿠야가 시혁의 옆으로 다가가 볼을 부볐다.

예전엔 무릎을 부볐는데 지금은 허리를 부빈다.

으음, 엄청 커졌네.

크기는 커졌어도 하는 행동은 똑같은 모양이었다.

시혁은 녀석의 눈가에 난 상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수증기가 되어 가슴을 달구는 느낌이다.

자식이 맞고 돌아왔을 때 이런 감정이 들지 싶다.

물론 그렇다고 누가 그랬냐고 윽박 지르진 않았다.

그저, 치료해줄 생각이었다.

그의 손이 쿠야에게 향한다.

하지만 녀석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무려 고개를 저었다.

그르릉 골골송도 멈췄다.

마치 그게 닿으면 안 된다는 듯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다는 듯이.

“끄응······.”

녀석이 뭘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달팽이 기름이 발라지면 DNA가 기억하는 최적의 몸상태로 녀석을 바꿀 텐데, 그럼 한 달 전 나약한 고양이로 돌아가게 되나 보다.

‘나가서 뭘 먹고 강해진 거냐?’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달팽이 기름을 바르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다음 기름을 발라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오히려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였다.

쿠야도. 가족 전체도.

“음···그게 지금인가?”

지금은 아침. 주말이라 정시아는 쉬고 있고, 단비 역시 마찬가지. 김창익 역시 던전을 돌고 마침 쉬는 날인지라 모두가 모여 있었다.

시기가 좋다.

이참에 시혁은 가족들을 모두 불러 앉혔다.

그리고 계란을 쥐듯 양 손을 포갰다.

손바닥에 물기가 흥건 해졌다. 아니, 물기라기 보다는 기름. 기름 보다는 연고에 가까웠다.

단비가 코를 막고는 뒤로 찻 하고 물러섰다.

“삼촌 이거 뭐야? 너무 고약해!”

코맹맹이 소리가 귀엽기 그지없다.

“곧 알게 될 거야. 설명하는 것보단 바르는 게 빠르겠지.”

그리고선 손을 쿠야에게로 가져간다.

먀오우우우우···!

쿠야는 기겁을 했다.

냄새가 고약해서가 아니라 냄새에서 뿜어지는 존재감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귀가 뒤로 눕혀지고 꼬리를 감추는 게 상당히 겁을 먹은 모양.

연고의 정체가 정체인 만큼 녀석이 저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안 좋은 일을 하겠니?”

시혁은 쿠야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를 어루만졌다. 노란 연고가 골고루 발라지더니 금세 스며든다. 이내 고약한 냄새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시혁은 여동생을 바라봤다.

그러곤 온 몸에 바를 양을 떼어서 여동생에게 건넸다.

“이건 바디로션처럼 온 몸을 도포해야 해. 넉넉하게 줬으니 머리까지 잊지 말고 발라라.”

“···이, 이거 안 바르면 안 될까?”

선뜻 받아 들기엔 냄새가 너무 고약했다.

하지만 시혁의 표정은 단호했다.

“달팽이 기름은 이것을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었어. 이게 진짠데 이걸 안 바르겠다고?”

“···그래도 이건.”

“반드시 발라. 반드시. 넌 이걸 반드시 발라야 해. 바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재차 강조하는 시혁의 얼굴에서 단호함을 읽었음일까?

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연고를 손바닥에 받아 들었다.

“알았어.”

정시아가 그렇게 화장실로 향했다.

이젠 시혁의 눈이 김창익에게 향했다.

“넌 안 바르고 싶으면 안 발라도 돼. 냄새가 고약하잖아.”

“내가 미쳤냐? 강해질 기회를 놓치게? 강해질 수 있으면 똥도 바를 수 있어!”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낄낄거리며 기름을 한 움큼 떼어서 건네 주자 김창익이 그걸 받아들곤 정시아가 들어간 화장실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넌 다른 방으로 가.”

“···우리···부부······.”

“내 앞에서 그러고 싶니?”

“끙!”

뭔가 장난이라도 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지.

둘이 부부건 말건, 깨를 볶건 말건 시혁 앞에서만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아직······.

아직 그런 건 용납할 수가 없다.

“삼쫀···나두···나두 바르는 거야?”

단비가 주사 맞기 직전, 혹은 치과로 가기 직전에나 지을 법한 표정으로 시혁을 올려다 본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 있다.

‘귀, 귀엽다!’

엄청 놀려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하지만 시혁은 그러지 못했다.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꼭 발라야 된다고 하면 바로 울어버릴 것 같았다.

“아니. 단비는 안 발라도 돼.”

달팽이 기름은 몸을 최적화 시켜준다. 그래서 단비가 잘 때 발라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의 몸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법. 하루가 다르게 최대치가 높아지는 만큼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단비의 신체성장이 끝나야만 가능하다.

“저, 정말?”

“응.”

“역시 삼쫀이 최고야!”

그러는 와중 두 부부가 다른 방에서 나왔다. 둘의 표정은 어리둥절했다.

“···뭐 변한 것 같지 않은데?”

그것은 쿠야 역시 마찬가지. 시혁이 연고를 발라준 후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시혁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며칠 필요해. 나중에 놀라지나 말라고.”

* * *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며칠이 지났다.

다음 날부터 쿠야는 점심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12층 창문을 통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외출냥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혁은 더이상 집 안에만 있지 않았다.

“15억을 받았는데 뭐라도 해야겠지.”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샀다.

우선 가족선물을 샀다.

단비에게는 갖고싶어 하는 인형놀이 세트를 사주었고, 여동생에게는 명품백을 사 주었다.

그렇다면 창익에게는 뭘 사줬을까?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했다.

하지만 녀석이 혼자 집에 남아 TV를 볼 때를 노려 기습적으로 소매넣기를 해주었다.

현금으로 천만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던 유부남의 얼굴에 그렇게 해바라기 꽃이 폈다.

“혀, 형님!”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부르거라.”

“크흐윽!”

서울에 집을 사려고 허리띠를 겁나게 졸라매고 있는 녀석에게 천 만원은 가뭄에 단비. 아니, 장마 와도 같았다.

“티도 안 나는구먼.”

이렇게 가족을 위해 돈을 펑펑 썼건만 15억 2천이 15억쯤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혁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옷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고, 먹는 것쯤이야 1억만 있어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고가의 헌터 장비를 사자니 필요가 없다. 시혁의 몸 자체가 무기인데 무슨 장비가 더 필요할까? 다 쓸모 없었다.

그렇다고 15억을 묵혀두는 것도 웃기는 일.

그래서 산 것이 집이다.

때마침 동생의 아파트의 바로 맞은편 아파트,심지어 32평인 동생의 집보다 2배는 큰 60평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걸 들은 정시아는 난리가 났다.

“···아니, 10억을 집 사는 것에 태웠다고!? 그것도 남양주 집을!?”

“응. 나도 남양주 출신이라 별 문제 없더라.”

“오빠 제정신이야? 이곳은 두 번이나 문제가 생긴 곳이라고!”

동생의 분노는 타당했다.

“얼마 전에 진건읍 공격 당한 거 잊었어?”

“당연히 아니지. 내가 막았는데 어떻게 잊겠어?”

“얼마 전엔 균열까지 일어 났잖아···? 바로 근처였다구?”

“알지, 알아. 내가 남양주 문지기인데 그걸 어떻게 모르겠어?”

“······.”

톡 쏘아내려던 정시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생각해 보니 두 사건 다 오빠가 막아냈던 것이다.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봐. 강남에 32평 아파트가 72억이더라. 물론 너도 그렇고 매제도 그렇고 헌터지. 나도 귀환자인 만큼 아마 앞으로 잘 벌 것 같아. 못 모을 돈도 아닐 거야. 하지만 생각해 봐. 여기 60평대 아파트가 10억인데 강남이 72억이라는 게 말이 되니? 그곳 집값은 미쳤어.”

오빠가 돈을 보태줄 필요가 없다고 한 마디 하려던 동생은 말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이어진 시혁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중요한 건 안전이잖아. 사람들의 안전. 우리들의 안전. 그래서 생각해 봤어. 내가 이곳을 지키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곳 만큼은, 더욱 적어도 우리 가족 만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곳에 집을 얻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고. 그리고 어우···서울 차 너무 막히더라.”

“······.”

“물론 너희는 서울로 가도 돼. 하지만 돈을 모을 때까진 이곳에 있을 거잖아? 그때까지 이곳에서 내가 지켜주마.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시혁의 결연한 말에 정시아는 입을 다물고 팔짱을 꼈다. 허공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뭔가 깊이 고민을 할 때 나오는 녀석 특유의 버릇이었다.

밤이 그렇게 깊어졌다.

* * *

침대에 나란히 누운 두 부부.

천 만원의 비상금이 생겨서 기분이 좋아져 버린 김창익은 오늘만큼은 온전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다.

원래 예쁜 그의 마누라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일까?

무슨 생각에 잠긴 건지 우수에 차 있는데 그게 이토록 섹시할 수가 없다.

마누랄 너무나 사랑해서,

그는 TV를 껐다.

마누랄 너무나 사랑해서,

커튼도 쳤다.

몇 달간 시혁과 함께 살게 되며 좀처럼 기회와 타이밍을 잡지 못하던 김창익의 손이 능글맞고 은근하게 움직였다.

“여보오옹?”

“···오늘은 아니야, 오빠.”

아니 그럼 언젠 날이었던가? 얼마만에 시도한 건데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 당하다니?

물론 포기는 없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 뿐.

“······흥!”

김창익은 이불을 끌어안고 뒤로 돌아 누웠다.

평소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을 정시아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정확히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일생일대의 갈림길을 결정하고 있었으니까.

“오빠. 우리 이야기좀 해.”

“······!”

김창익의 눈이 부릅 떠졌다.

이야기 좀 하자는 말.

그것은 원초적 욕구조차 단숨에 식혀버리는 마법의 말이었다.

유부남이. 아니, 여자를 만나는 모든 남자들이 듣고 싶지 않은 단연 으뜸의 말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외상 후 증후군이 발동한 김창익은 난데 없는 상황에 나온 이 말이 그나마 말이 되는 상황을 재빠르게 유추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경험 끝에 안 사실은, 이럴 때 잡아떼면 본인만 손해라는 거였다.

“후···어떻게 알았어···?”

김창익은 침대 두번째 서랍을 완전히 빼낸 후 그 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

정시아는 고개를 갸웃 하며 내용물을 확인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유심히 보던 김창익이 한숨을 내쉬더니 침대 밑 매트리스에서 똑같은 크기의 봉투를 하나 더 꺼내서 내민다.

“···오해하지 마. 나머지도 막 꺼내려던 참이었어.”

“······.”

정시아는 대번에 상황을 알아차리곤 5만원 권이 100장씩 들어 있는 봉투 두 개를 챙긴 후 말했다.

“우리가 모은돈이···대충 18억 정도야.”

“그렇지···이젠 18억 1천만 원이 되었겠지······.”

“이 돈으로 우리도 시혁오빠 사는 아파트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

“시혁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오빠 근처에 살면 우리가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단비가 위험하긴 하지만···어차피 서울권으로 가지 않으면 똑같은 상황이잖아? 이렇게 모아서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도 월세 내지 말고 집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창익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권에 집을 사서 들어가는 게 가장 베스트 겠지만 그 선택지를 아예 포기해 버린다면 전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속도로 돈을 모은다 해도 서울로 가는 건 도대체 몇 년 후가 될까? 그때의 서울 집값이 지금과 같으리란 법도 없다.

김창익이 그럴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이 남양주인데, 앞으로 위험하지만 않으면 이곳에 터를 잡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진짜? 오빠만 믿고 선택하는 거라서 자기 의견도 물어보고 싶었어!”

그렇다.

돌아온 그의 친구는 두 부부의 인생설계를 뒤집을 만큼 강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자신도 강해졌고, 고약한 연고도 발랐으니 더욱 강해질 것이다.

“심지어 지금 남양주 집값은 최하점을 찍고 있어. 기왕 살 거면 지금이 기회 아닐까?”

“당장 내일 알아보자고!”

“역시, 이야기 하기 전부터 오빠가 찬성해 줄 줄 알았어!”

긍정적인 동반자의 말에 정시아가 김창익의 얼굴에 쪽 입을 맞췄다.

행복한 순간.

물론 창식은 마냥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자는 이야기가 이거였어?”

“응. 그런데?”

“···어···그럼 내 천 만원은?”

“응? 천 만원? 무슨 천 만원?”

“······.”

그녀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며 김창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속였엉?”

“아 그게···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 마. 나 그런 적 한 번도 없잖아. 이제 돈 모을 일도 없는데 더 그럴 이유 없어.”

그런 김창익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시아가 생긋 웃으며 두 개의 봉투를 돌려 주었다.

봉투를 건네받은 김창익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시아가 김창익의 얼굴을 감싸쥐곤 다시 한 번 쪽 입을 맞췄다.

“나 오빠의 이런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지?”

“시아야···!”

“오빠 이사 가면. 응?”

* * *

며칠 후 시혁은 두 부부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내가 너희를 지켜줄 거야. 약속할게. 정말 선택 잘 했어!”

그렇게 가족간의 이야기를 끝마친 시혁은 며칠 전부터 자신의 집이 된 60평 아파트로 향했다.

시아네 집과는 10분 거리.

산책 하듯 걷던 중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한 마리의 살쾡이(?)가 있었다.

아니, 살쾡이가 아니었다. 그만큼 거대해진 쿠야가 그곳에 있었다.

네 마리의 고양이는 쿠야의 옆에서 기분 좋다는 듯 배를 까뒤집고 있었다. 쿠야는 네 고양이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루밍(몸단장)을 하다가 시혁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마치 녀석의 눈이 ‘결국 봐 버렸군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왠지 씩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다 큰 아들의 문란한(?) 사생활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시혁은 헛기침을 하고서 갈 길을 갔다.

“짜식···다 컸구나. 그래도 즐기고 사는 게 부럽다, 인마.”

문득,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인 이석영이었다.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시혁은 시아에게 이석영에 대해 물었다.

시아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보름 넘게 집에 숨어서 대격변을 버틴 후 퇴원한 시아는 곧바로 이석영에게 연락을 했지만 없는 번호로 떴다고. 그래서 직접 이석영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려 했지만 이석영이 살던 곳이 불가사리가 처음 등장했던 서울숲 근처였다고.

생존자 명단에 이석영은 없었다고.

“후우······.”

사실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자 한숨부터 나온다. 눈시울이 시큰한 게 단 3초만 이 상태로 있으면 주책맞게 길가에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의 첫사랑을, 끝사랑이라 생각했던 존재를 마음 속으로 흘려 보내려 오늘도 애써 본다.

“그래도 난 널 잊으려면 좀 걸릴 것 같다.”

300년 간 지켜 온 순정이 단숨에 사라질 리가 있을까?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자신의 집이 된 아파트의 내부로 들어섰다.

문득 707호 우편함에 봉투 한 장이 들어있는 걸 확인했다.

- 한국 귀환자 협회.

시혁의 입 꼬리가 삐죽 말려 올라갔다.

“거 더럽게 빨리도 부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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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귀환자 협회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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