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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시혁은 차를 타고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자동차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매제인 김창익이 몰았다.
녀석은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에 열중했다.
“랄랄라~”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인지 묻지는 않았다.
대충 아니까.
“이제 우리 고생 끝이야. 사실 서울로 갈 생각이 없으면 우리 꽤 많이 버는 거거든!”
여동생은 매제에게 이제 돈 모을 필요 없이, 사고 싶은 것 사고, 입고 싶은 것 입고, 먹고 싶은 것 맘껏 먹으며 즐기면서 살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생각해 보면 우리 월급 합치면 1억인데. 이제 내가 B급이고 시아가 C급이면 더 벌 수도 있는데 너무 허리띠 졸라매고만 살았어!”
마냥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 그간 고생했어. 보기 좋다, 야.”
“그런 의미에서 정말 고맙다. 돌아와 줘서. 항상 고맙고···앞으로도 좀 많이 고마울 것 같다. 형님!”
“···갑자기?”
이 녀석도 이 녀석이다.
갑자기 헤실헤실 웃다가도 이렇게 돌직구로 사람 마음을 뻐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시혁의 입가에 어쩔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런 것에 시아가 무너진 거려나?
“짜샤. 가족끼리 무슨 고맙고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고마우면 시아한테나 잘 해.”
“지금보다 더 잘 하라고? 그건 자신이 없지만 노력해 보마!”
“하긴. 이런 못생긴 놈을 데리고 간 여자면 평생 최선을 다 해서 잘하고 있겠지.”
“미친놈아, 연애결혼 이거든? 마지막엔 나 좋다고 매달리셨거든?”
“그래서 지금은 누가 매달리고 있지?”
“···썩을 놈.”
“형님이다.”
“썩을 형님 놈.”
쌩쌩 달릴 수 있던 도로에 차들이 많아지더니 이내 가고 서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울로 들어선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강변북로를 끼고 흐르던 SUV가 북쪽으로 노선을 틀면서 점점 한국 귀환자 협회로 가까워져 간다.
“가서 어떻게 할 거냐?”
“뭘 어떻게 해?”
“으음···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그곳에 가서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김창익이 콧잔등을 찌푸렸다.
시혁은 어깨만 으쓱였다.
“그래도 가야지 않겠냐. 일단 사과도 받았고.”
사실 처음엔 한 달 정도는 확인하지 않으려 했다. 실제로 이틀 정도는 방치해 뒀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풀 건 빨리 풀고, 풀 필요가 없거나 풀지 못할 것 같으면 빨리 찢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런 생각에서 확인해 본 봉투 안엔 한 장의 카드와 한 장의 정성스런 편지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300년차 정시혁 선배님! 우선 매스컴을 통해서 확인한 후 이제야 연락이 닿은 것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한 달 넘게 지체한 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협회측의 실수를 사과드립니다. 우선 귀환증서를 동봉합니다. 부디 너그럽고 어여삐 봐 주시겠습니까? 선배님을 한국 귀환자 협회의 본부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허심탄회한 담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시혁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한귀협에서 보내 온 귀환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그래도 꽤 정중하던데, 별 일이야 있겠어?”
“화전양면 모르냐? 겉으론 웃으면서 뒤에서 칼을 꽂을지 누가 알아? 솔직히 네가 간다고 해서 태워주고 있다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말들이 많다.
귀환자가 처음 한귀협 본부에 들어가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독충 같은 걸 먹여서 생사여탈권을 쥐려 한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흑마법으로 아예 세뇌를 시킨다는 말이 나돈다.
물론 시혁은 그것들을 도시괴담이라 치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차 돌릴까? 가서 너 세뇌 당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끌끌. 그럴 걱정은 없어. 너나 잘 해. 난 네가 더 걱정이다.”
시혁은 본인의 힘을 믿었다.
300년 내내 투쟁을 일삼아 온 자신이 호락호락 할 리 없으니까.
물론 녀석들도 한 가닥 씩은 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가 나를 제압하려 들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균열에선 힘 조절을 했다. 그저 폭탄벌레의 능력만을 사용했다.
전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녀석들은 시혁을 과소평가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300년간 오매불망 소원하던 가족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이런 시점에서 거대한 단체와 아주 척지는 것도 좀 그렇다.
함부로 건들면 뾰족한 놈이라는 것만을 가르쳐준 선에서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시혁의 입장에선 기회를 준 것이기도 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을 들었다.
그렇기에 가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서 대화로 풀자고 하면 당연히 대화로 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다.
다른 귀환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이룩한 결과물이 궁금했다.
일단은 시혁 역시 귀환자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귀협 본부는 귀환자 외엔 출입할 수 없었다.
그러니 반쯤은 관람하는 기분으로 온 게 사실이었다.
끼익.
SUV가 한귀협 본부 입구에 도착했다.
시혁을 내려준 매제가 운전석에서 손을 흔든다.
“잘 다녀와.”
시혁이 피식 웃었다.
이 새끼, 여기서 시혁을 오매불망 기다릴 생각인 것 같았다.
“집으로 그냥 가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거기 서서 뭐 하고 있으려고?”
“돌아올 땐 어떻게 하게?”
“택시라도 타지 뭐.”
“택시비 있어?”
“내가 너보다 돈 많아.”
“인마 그렇게 돈이 많으면 차를 사든가?”
“면허가 없는데 차는 사서 뭐 하게? 그냥 기사 아저씨 부르면 되지. 택시 기사 아저씨건, 매제 기사 아저씨건.”
즉, 앞으로도 계속 창익을 운전기사로 부릴 생각이라는 거였다.
“···새끼.”
SUV가 매끈한 도로를 미끄러져 사라졌다.
“흐음.”
시혁의 시선이 한귀협 본부로 향한다.
남산타워가 있었던 곳.
그곳엔 뼈만 남은 거대한 거북이의 사체가 축 늘어진 채 서울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 * *
S급 몬스터로서, 같은 S급인 불가사리를 정부가 간신히 잡고, 이후 최초의 각성자가 몰려오는 몬스터들 막아내고, 뒤늦게 돌아온 귀환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풀어가며 인류가 밝은 희망을 품고 있을 때 하늘에서 떨어지며 절망을 안겨준 녀석이 바로 S급 몬스터 바다늪귀였다.
체고 30미터, 껍질의 지름만 100미터인 거대거북.
이 거북은 남산을 짓이기고, 주변 땅을 바다처럼 헤엄 치며 인간들, 건물들 할 것 없이 모조리 먹어치웠다.
거북이 답게 느린 것이 약점 같았지만, 각질에서 튀어나온 기생체들은 그 당시의 각성자들을 힘들게 했다.
이대로 가다간 남산 일대를 몬스터에게 점령 당하려 할 때 나선 것이 다섯 명의 90년차 귀환자였다.
그들은 바다늪귀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정부와 각성자, 그리고 귀환자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결성해 녀석을 공략했다.
입천장에 있는 가장 얇은 부분.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가 뇌를 곤죽으로 만든 결과 바다늪귀를 죽일 수 있었다.
가디언과 각성자 협회의 이들은 부상자만 있을 뿐 희생자가 없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귀환한 90년차 귀환자 다섯은 그 전투로 인해 모두 전멸했다.
귀환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죽은 것이다.
모두가 그들을 추모했으며,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한국 귀환자 협회의 발호는 그렇게 정의로웠다.
물론 더 높은 연차의 귀환자들이 오면서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다.
여기까지가 인터넷에서 탐독한 한국 귀환자 협회의 역사다.
“그래도 경관은 예쁘네.”
남산타워 주변의 높은 지대. 과거엔 버스와 자전거가 경주 하듯 올라가고, 케이블카 타러 온 커플과 관광 온 외국인들이 자주 찾던 그곳은 100여 명의 귀환자와 그 관계자들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숲이 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길의 왼 쪽엔 자색의 풀밭이, 오른 쪽엔 푸른색의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바다늪귀가 죽으면서 토해낸 토사물은 주변 땅을 아주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 비옥한 땅에 심어진 것들 역시 귀환자들이 돌아올 때 주머니에 소지하고 있거나, 가방에 있는 것들이었다.
왼쪽 자색 잎은 만드라고라이고, 오른쪽 푸른 잎은 푸른 하수오라고 했던가?
상태에 따라서 적게는 300만, 많게는 3억원 까지도 한다는 이것들은 한각협이 만든 포션보다 부작용이 적고, 회복 이외에도 부가적인 기능이 많다고 한다.
“한 뿌리 가져가시겠습니까?”
시혁을 안내하던 사람 좋아 보이는 노인이 푸른 하수오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왼쪽의 만드라고라는 뽑을 때 비명을 지르는 관계로 지금 당장 뽑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시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챙겨가도 돌아갈 때 챙겨가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노인은 시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남산 길을 올라가기만 했다.
도착한 남산의 꼭대기에는 바다늪귀를 뼈대로 한 건물이 있었다. 거북이의 거대한 입은 벌어져 있었으며, 그 목구멍 쪽에 10미터가 넘는 대문이 있다.
[한국 귀환자 협회.]
끼이이이익.
“전 여기까지입니다. 들어가시면 모두가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여기까지 시혁을 안내한 노인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시혁 역시 고개를 숙였다.
‘일반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각성자일까, 아니면 저 노인 역시 귀환자인 것일까?
시혁은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거북이 껍질의 내부를 뼈대로 만들어진 건물.
그 건물의 내부는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시혁은 생각한 것 그 이상을 보았다.
‘···놀랍군.’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땅이 있었다.
운동장 만큼 거대한 연무장.
누가 이곳을 건물의 내부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그 연무장의 후반부에는 빈 문 하나가 벽 없이 홀로 서 있다.
마치 저것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으로 연결이라도 된다는 듯이.
시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이 공간 자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해한 기운. 좀 더 살펴보면 무슨 기운인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확히···열 셋인가.’
그렇다. 연무장엔 열 세 명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점령하고 앉아 시혁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뒷문 말고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저마다의 복색 역시 참으로 다채로웠다.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붉은 띠를 두른 남자. 허벅지 굵기의 거대한 건틀릿을 낀 왜소한 청년. 아예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어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인물과, 그게 아니라면 현대의상에 서양양식의 검 한 자루 비끄러 멘 여인이거나, 아예 무희들이나 입을 법한 의상을 입은 여인도 있었다.
정말 통일성 없는, 개성 강한 코스튬들이 아닐 수 없다.
‘이거 뭐, 게임 그런 건가?’
저벅. 저벅.
열 두명의 귀환자.
그들 중 한 명이 시혁에게 다가온다.
하필이면 인상파의 무복남이었다.
“당신이, 300년차 귀환자 정시혁인가?”
허스키한 중저음에다가 한 인상 하는 남자였는지라 시혁의 이마에도 역시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시혁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여차 할 때 폭탄벌레의 힘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몸 안의 힘을 끌어올렸다.
열 둘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다 터뜨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남자의 양 손이 움직였다. 시혁은 눈을 부릅 뜨며 대응할 준비를 했다.
봐줄 생각은 없었다.
저 손이 시혁의 몸에 닿는 순간, 그것이 어디가 되었건 가루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과 손은 시혁을 만지지 않았다. 중간 지점에서 서로 만났다.
시혁은 굳은살 박힌 투박한 손을 뚱하게 바라보다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남자의 인상파 얼굴엔 소녀감성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정말 소름 끼쳤지만, 눈앞의 남자가 상당히 간절하다는 것만은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크로비츠 가문은 아직 건재하나? 크로비츠 백작부인은···아직 살아 있는 것인가? 혹시 다른 남편을 찾았다거나···!”
“······?”
시혁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굳어 있자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려 했다.
보다 못한 호리호리한 체형의 건틀릿 남자가 다가와 그 남자에게 빈정거렸다.
“너 바보냐? 요르단 왕국이 건재한지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지.”
“그, 그런가···! 하지만 2년. 아니 60년 사이에 사라질 요르단 왕국이 아니지 않나?”
“네 마누라는 죽었다니까?”
“소드마스터가 되어서 살아있을 수도 있지!”
“퍽이나 그러겠다. 아, 됐고. 나도 물어볼 게 있어. 7대 권왕은 잘 하고 있나? 설마 녀석. 나 대신 권왕이 된 주제에 벌써 뒤져버린 건 아니겠지?”
“얾······.”
문을 열자마자 시혁이 마주한 건 간부들이 즐비한 2세대 귀환자가 아니었다.
3세대 귀환자.
그들은 시혁에게 물어볼 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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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귀환자 협회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