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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혁은 맥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공격세례를 받아넘길 준비만 했지 질문세례를 받아넘길 준비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당황스러워하는 이 와중에도 열 두 귀환자들의 질문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새로운 그랜드마스터는 나오지 않았겠지? 그래, 내가 하지 못했는데 그 누구도 하지 못했겠지! 그렇지?”
풀플레이트에 둘러싸인 검사의 질문이었다.
“불의 정령왕은 집으로 귀가했나요? 아직도 자신의 주인을 찾는답시고 공개유희를 하고 있진 않겠죠?”
이번엔 붉고 짧은 단발머리에 순박하게 생긴 소년의 질문이다.
“왜 다들 에드가라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연 대륙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당신. 지금 천하제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에드가라트 출신이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무희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질문이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시혁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저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감정은 비슷했다.
그리움, 간절함, 안타까움, 그 밖에 많은 감정들.
그렇다. 이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 남기고 온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300년 만에 돌아온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이겠지.
‘···흐음.’
시혁은 이곳에 오기 전 많은 공부를 했다.
공교롭게도 그럴 시간이 많았다.
모든 귀환자들이 한 날 한 시에 에드가라트 대륙. 혹은 연 대륙이라고 하는 곳에 떨어졌다.
지도도 있었다.
두 대륙은 도넛을 반으로 갈라서 약간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그 사이는 바다가 막고 있다.
의외인 건 반대편 바다로 이동하면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 실제로 그렇게 죽은 귀환자가 몇몇 있다고도 들었다.
즉, 그 세게는 구형이 아니라 하나의 판이라는 이야기.
자신이 있던 곳은 그 도넛의 가운데에 위치한 갈색 숲. 대마경이라는 것도 공부를 하며 알 수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들.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시혁은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대마경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군.’
각 대륙에서 대마경이란, 몬스터를 낳는 저주받은 땅이다. 몬스터들의 근원지였다.
그것을 알았을 때, 시혁은 자신이 했던 생각이 좀 잘못 됐음을 알았다.
바깥의 몬스터보다 대마경의 몬스터가 강력하다.
그곳에서 300년을 생존한 자신은 한귀협의 입장에선 탐스러운 사과일 것이다.
시혁과 뜻이 맞다면 상관 없지만, 지금의 한귀협이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아직 대마경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300년간 에드가라트 대륙에서 아무런 정세도 파악하지 못한 멍청이가 되어야 할까?
그리고 진정 문을 열자마자 3세대 귀환자들이 있는 이 상황이 정말 순수할까?
애초에 이런 배치를 허락한 것은 간부. 2세대 귀환자 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놀아나 줄 수 없었다.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감동스럽고 평화롭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어색함, 공교로움, 안타까움, 서운함, 분노.
그 모든 것들을 버무린 듯한 시선이 시혁에게 꽂힌다.
“크, 크로비츠 가문은 건재 한지···그것 만이라도 말해줄 수 없는 겁니까?”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시혁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물기를 머금었다.
시혁은 크로비츠 가문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른다고 말을 하면. 아니, 그 어떤 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간부측에게 시혁의 정보를 주는 꼴이 된다.
적당히 둘러대는 방법도 있었지만 굳이 시혁이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시혁은 냉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크흙···!”
남자는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쥐고 무릎을 꿇었다.
오열을 하는 듯했다.
퍽!
뒤에 있던 왜소한 남자가 도복남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질질 짜려거든 저기 가서 질질 짜!”
“으흑. 크흐으으으윽!”
왜소한 남자가 시혁을 한껏 노려봤다.
“거 같은 3세대 귀환자 끼리 너무하는 거 아니냐? 선배면 선배 답게 행동하라고? 그게 뭐 대단한 정보라고 숨겨? 우리가 그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잖아? 모를 리 없잖아?”
시혁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선배가 어쩌고 하는 주제에 네놈은 말이 짧군.
“······.”
남자는 시혁과 눈싸움을 했다.
“아무렴 상관 없겠지. 난 그 어떤 말도 해줄 생각이 없으니까.”
“흐, 흥! 거들먹 거리긴!”
그 이후에도 질문은 많았다.
“불의 정령왕은 집에 갔나요? 아니면 아직도······?”
“천하제일인을 알고 있나요? 혹시···지금의 천하제일인이 풍운검객 종리현인가요?”
“그래서, 황제는 누가 되었습니까? 설마 1황자는 아니겠지요?”
무수한 질문에도 시혁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질문을 들으며 오히려 시혁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이들의 최후가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3세대엔 권왕이 된 이도 없고, 사랑에 성공한 이도 없었다. 정령왕과 계약한 이도, 황자를 지킨 이도 없다.
‘씁쓸하군.’
처음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그렇게 바닥을 쳤다.
시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이곳에 1세대 귀환자들은 없나 보군. 전부 다 3세대 귀환자들 뿐이야.”
보통 1~100년을 1세대, 100~200년을 2세대, 200~300년을 3세대라고 부른다.
시혁은 1세대들이 궁금했다.
사실 2세대 보단, 3세대보단 1세대 귀환자들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아서 내심 기대도 했었다.
그들은 귀환 100년 안에 지구로 돌아온 이들. 지구에 대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이들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1세대 귀환자는 없었다.
하긴, 1세대 귀환자들이 한귀협과 친할 리가 없기는 했다.
“아마 이곳에 온 1세대는 없을 겁니다. 아니, 1세대들이 한귀협에 마지막으로 들른 것도 몇 년 전의 일이군요. 우리도 당신이 아니었다면 2세대 놈들 보기 싫어서라도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인물은 지금껏 아무 질문도 하지 않던 60대 노인이었다.
노인은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디 우리 3세대들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선배님”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시혁은 이 눈빛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2세대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대들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지?”
그 말에 노인이 주변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건 이곳에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신중···또 신중 하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정보입니다.”
말하는 중 ‘정보’라는 말을 할 때 노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혁은 피식 웃었다.
대충 알 만했다.
그 말에 시혁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자신을 새로운 희망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방패막이로, 대항마로 여기는 듯했다.
시혁은 노인의 손을 정중히 놓은 후 앞으로 걸어갔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과연, 연무장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문을 열자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간부들이 있는 곳이었다.
* * *
100평 정도 크기의 검은 방. 위쪽엔 거북이의 껍질을 안쪽에서 보는 듯한 무늬가 수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직사각형의 각탁이 있었다.
아홉 자리, 그곳엔 여덟 명의 남녀가 앉아 있다.
그곳에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자가 솟구치더니 시혁과 2미터 정도 대치한 곳에 뚝 떨어졌다.
곱고 긴 머리, 전체적으로 장난기 많은 어린 얼굴.
신체나이는 이제 한 16살이나 되었을까?
청년이라 부르기엔 좀 이르고, 소년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남자가 시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씩 이를 드러냈다.
그 모습이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눈앞의 남자가. 아니, 소년이 바로 한국 귀환자 협회의 협회장이자, 대한민국에 7명 밖에 없다는 S급 헌터 이진혁일 것이다.
대한민국 랭킹은 3위.
11살 즈음에 연 대륙으로 넘어갔던 소년은 180년이 넘는 연 대륙 생활을 거치고 돌아왔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소년의 신체 나이는 16세가 되어 있었다.
“반갑군, 300년차 노선배. 나 이진혁이라고 한다. 112년쯤 전에 천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나?”
선배라는 말에 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라는 단어에 담긴 비아냥이 대놓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이진혁이 ‘선배’를 언급하자 나머지 간부들이 손을 가리며 대놓고 킥킥거린다.
명백한 조롱의 의미.
시혁은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바쁘게 살던 시기라 기억에 없군.”
“그렇다면 역시 에드가라트 사람이로군? 연 대륙의 무인이었다면 나를 모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킥킥 웃던 이진혁이 양 손을 비비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달 동안 부르지 않은 건 미안해. 선배가 이렇게 걸출한 인물인 줄 모르고 기 죽이기를 했지 뭐야.”
“그런 건 상관 없지. 지금이라도 불렀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크···역시 300년차 대선배! 속 좁은 우리가 다 부끄러워지는군. 그렇지 않아? 아하하하핫!”
하하하핫!
이진혁이 웃자 나머지 일곱 귀환자들이 따라 웃었다.
시혁은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시혁이 인상을 찌푸리건 말건 이진혁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다음 말을 꺼냈다.
“우리가 선배를 부른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거야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함이겠지.”
어차피 277년 이후 귀환자는 없다. 그러니 277년 이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이가 없었고, 외국의 귀환자 협회 역시 그런 정보에 민감해서 서로의 교류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확실히 우리가 귀환자들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그리고 어떤 정보를 가지고 왔는지에 따라 지원금을 후하게 쳐주는 건 맞아. 하지만 그건 보통의 3세대 귀환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일 뿐 선배처럼 강한 귀환자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겠어?”
“······.”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선배는 3세대 꼰대들과는 달라. 본인들이 300년간 이룩한 것을 두고 와서 그리워하는 저 놈들은 약한 주제에 우리에게 원로 대접을 받으려다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지. 보조금 받고, 우리가 던져주는 길드에 들어가서 우리 눈치만 보면서 살고 있어. 하긴, 대부분 실력이 각성자들도 이기지 못하는 B급이니 말 다 했겠지. 본인들이 살던 곳과의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자멸해 가고 있단 말이야. 내가 괜히 이곳에 오기 전에 저들을 보여준 게 아니야. 선배가 보기엔 어때. 저들의 추억팔이가 참으로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진혁 역시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듯 자기 할 말을 이어 나간다.
“선배는 달라. 강하지. 단지 그 하나가 엄청난 차이야. 우리는 적어도 AA급 최상위. 혹은 나와 같은 S급이라 생각하고 있어. 어째 내 말이 틀린가? 선배!”
그리 말하며 자신의 의자를 제외하고 남은 단 하나의 의자를 가리켰다.
“난 말이지. 부디 선배가 이 자리에 앉아 주었으면 해. 지식을 공유 해 주면, 우리가 후하게 쳐 줄게. 같이 나아가자고? 같이 강해져서, 빌어먹을 정부나 각성자 협회의 천박한 것들이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선택받지 못한 것들이 선택 받은 우리에게 감히 대항할 수 없도록 세를 넓혀 보자고! 그래줄 수 있겠지?”
마치 대답이 정해진 듯한 상황.
시혁은 이진혁의 해맑고 어린 얼굴에 숨겨진 진득한 광기를 느꼈다.
시혁은 거기에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말석에 위치한 빈 의자를 가리켰다.
“저 자리엔 누가 앉아 있었지?”
그 말에는 이진혁 대신 다른 이가 대답했다.
“공석은 아니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량, 그년은 이미 끝났으니까.”
말을 끝마친 여인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콧방귀를 뀌었다. 신체나이가 40중반쯤 되었을까? 살집이 있는 여인은 농담으로라도 예쁘다 말할 수 없는 추녀였다.
시혁의 눈이 더욱 좁혀진다.
공석의 주인이 여자라는 점.
무엇보다 그녀가 뿜어내던 기운이 지금 이곳에 있는 여덟 명. 정확히는 귀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그 모든 것이 시혁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죽인 여자의 이름이 이미량인 모양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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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귀환자 협회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