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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18화 (18/44)

&18

이세계 62년 하고도 72일차.

내가 아는 호랑이들은 지금까지 전부 좆밥이었다. 토끼보다 약하고, 쥐새끼보다도 약한, 고기도 맛이 없고 화려한 무늬 역시 내 취향이 아니라서 옷으로도 만들지 않는 그야말로 계륵 같은 짐승 놈.

30년쯤 전 곰굴을 떠난 후에도 나의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오늘,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호랑이는 머리가 둘이었다. 게다가 제각각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녀석은. 아니, 녀석들은 내 뒤를 노리지 않았다. 본인 영역에 찾아온 나를 죽이려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머리가 두개면 뭐가 달라지나?

처음엔 호랑이 주제에, 이 세계관에서 최약체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방진 건 나였다.

머리가 두개가 되니까 호랑이가 많이 달랐다.

그동안 날 편하게 방어해준 곰의 각질은 갑옷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달팽이 기름이 없었다면 처음 한 번의 이빨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어우···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가족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을 뻔했다니!

절대로 죽을 수 없어서 발악했다.

녀석들은 강했다. 빨랐다. 놈들이 두른 황금빛 기운은 내 폭탄주먹을 가볍게 상쇄시켰다.

오히려 미친 듯이 뜨거운 그 기운이 내 주먹을 태웠다.

오른쪽 머리는 공격을, 왼쪽 머리는 방어를 담당했다. 보는 놈이 두 명인 만큼 방심을 시킬 수 없어 고전했다.

공방이 오고 갈수록 나만 손해였다.

방법을 바꿨다. 일단 도망쳤다.

녀석은 날 쫓지 않았고, 난 몇 시간에 걸쳐 녀석의 이목을 속인 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아니 근데 미친. 기다렸다는 듯 황금 기운을 크게 펼치더니 오히려 거기에 날 가둬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을 차려보니 함정에 걸린 것은 오히려 나였다.

황금색 호랑이 눈동자가 나를 조롱하고 있는 듯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와···산전수전 다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산채로 구워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희미해지는 의식. 설상가상으로 두 대가리가 내 숨통을 물어뜯었다.

근데 이게 오히려 기회가 될 줄이야.

녀석의 왼쪽 머리가 내 어깨를 물고, 오른쪽 머리가 내 팔을 문 시점에 보인 건 녀석의 목과 목을 이어주는 부분에 돋아나 있는 살 구멍이었다.

내 폭발력으론 녀석의 두터운 황금기운을 뚫지 못했지만 이곳 만큼은 취약했다.

그렇게 녀석은 나에게 죽었고, 가죽과 고기를 남겼다.

가죽은 쓸 만큼만 베어서 이불 대용으로 챙겼다.

고기는 아까 먹어봤는데 맛이 그저 그렇다.

하지만 한동안 꾸역꾸역 먹어야겠지.

이 녀석의 어떤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 * *

털썩.

머리를 잃은 이진혁이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본인이 아는 가장 강한 성명절기를 펼쳐서 폭발의 여파를 막은 간부들도 검막을 형성하던, 권기를 내뿜던, 지팡이를 들어 올리던 손이 사라진 채로 찢어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내 팔이!”

“꺄아아악! 얼굴이···내 얼굴이······!”

이곳에 있던 일곱명이 모두 팔다리를 잃은 채 나뒹굴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저 녀석들 역시 한통속. 여차하면 달려들려고 온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던 걸 시혁이 몰랐겠는가?

“딱히 너희를 모두 죽일 생각은 없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시혁의 황금빛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대부분은 맹수 앞에 선 토끼 꼴이 되어 벌벌 떨고 있다.

하지만 그중 토끼의 탈을 쓴 뱀과 늑대가 보이는 것은 시혁의 기분 탓일까?

그럴 리가.

콰악!

시혁의 손이 이름 모를 귀환자, 중년 여인의 단전을 꿰뚫었다.

“어···어째···서······?”

시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혁의 직감이, 그리고 황금 호랑이의 눈이 눈앞의 여인이 찝찝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걸 말해 봤자 납득이나 하겠는가?

시혁이 다시금 좌중을 둘러봤다.

남은 것은 6마리.

시혁은 그 중 한 마리의 단전을 마저 깨부수고 나머지 다섯의 단전은 그대로 두었다.

호랑이의 눈은 나머지 다섯에게서 공포 이외의 불온한 감정을 찾아내지 못했다.

“난 이제 돌아가겠다.”

“저, 혀, 협회장이 되시려던 것···아니셨습니까?”

시혁이 피식 웃었다.

“전혀.”

이곳과 시혁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

오직 그것만을 확인하러 온 자리였다.

비록,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시혁은 이곳에 근본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곳을 이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한 단체를 잘 이끌려면 그만큼의 경험이. 그것도 아니라면 경험을 쌓을 노력과 각오라도 필요한데 시혁은 자기 가족 건사하기도 바쁜 사람이었다.

“이진혁은 내 가족을 건들겠다 하여 죽였다. 한 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지. 하지만 귀환자 협회가 날 귀찮게 굴지만 않는다면 난 너희를 내버려 둘 것이다.”

시혁은 뒤를 보았다. 시혁이 들어온 문이 있었다. 저곳을 열고 들어가면 3세대 귀환자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문을 열자마자 감탄을 하거나, 박수를 치거나. 본인들을 대변하는 구세주의 등장에 기세등등해질 수도 있다. 2세대 간부들과 한통속이 되어 계획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던 그들이 이번엔 자신에게 달라붙을 것을 생각하니······.

“꼴도 보기 싫군.”

그냥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가려는데, 2세대 귀환자 중 한 명이 그런 시혁을 붙잡았다.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가시면 저희는 다 죽습니다!”

간부들의 주축인 이진혁이 죽었다. 나머지도 크게 다쳤다. 심지어 둘은 단전이 파괴되어 폐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혁이 그냥 가버린다면 상황을 알아차린 3세대 귀환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시혁의 표정은 뚱하기만 했다.

“내가 굳이 너희를 살린 게 얄팍한 자비심 때문인 것 같나?”

“······?”

반쯤은 의도한 상황이었다.

“그간 뿌린 대로 거두도록. 너희가 협회를 지키건, 3세대가 탈환하건, 그게 아니면 1세대가 쥐던 간에 나는 모르는 일이다.”

“크으으윽···!”

상황을 알아차린 귀환자가 각탁 밑에 수납되어 있던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다른 귀환자는 힐을 시전해서 자신부터 치료했다. 단전이 파괴되어 빌빌거리는 녀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팔다리는 몰라도 단전은 한 번 파괴되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니 전력이 되지 않는다.

시혁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귀환자 협회가 주장하던 약육강식의 결과가 어디로 튈지 시혁도 궁금했다.

그렇게 시혁은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나왔다.

거북이 등껍질 위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은 퍽이나 운치가 있었다.

앞부분으로 내려와, 바다늪귀의 머리를 밟고 착지했다.

등 뒤에는 시혁이 들어간 한귀협의 문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후우.”

자신이 올라왔던 길이 보인다.

아마 이 길을 내려가면 다시는 한귀협에 올 일이 없겠지.

그렇게 저벅저벅 내려가는데, 누군가가 시혁의 뒤를 쫓아 달려왔다.

뒤돌아보니 이곳을 안내해 주었던 노인이 있었다.

“가시는 겁니까?”

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푸른 하수오를 드려도 될까요?”

그 말에 시혁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는 진정 자신이 한귀협 안에서 한 일을 모르는 걸까?

그럴 리가.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은 행동인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적어도 저에게는 지금 상황과 맞는 말과 행동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 팔뚝 만 한 푸른 하수오가 담긴 주머니를 시혁에게 건넸다. 세 뿌리의 하수오는 포장까지 완벽하게 된 채 쇼핑백에 담겨 있었다.

“최상품입니다. 본인은 필요하지 않으시겠지만, 가족분들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가족이라는 말에 시혁이 하수오를 받아 들었다.

시혁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정체랄 것도 없습니다.”

노인이 흘흘 웃으며 말을 이었다.

“214년차 귀환자 이만식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이곳을 관리하는 정원지기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그렇군요.”

마나. 혹은 내공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시혁은 단번에 이만식이 귀환자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단전도, 내공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법을 운용할 때 필요한 심장의 서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망가진 상태이겠지.

“나중에, 혹시 제가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시혁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선물, 잘 받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이만식을 뒤로하고 시혁은 한귀협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해가 지평선에 닿아 사라지며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 * *

돌아가는 택시 안.

멍하니 저녁하늘을 바라보던 시혁이 문득 피식 웃었다.

협회장을 죽이고, 두 간부의 단전을 파괴한 결과 세 뿌리의 푸른 하수오를 선물 받다니.

그것도 최상급으로다가.

문득 하수오를 건네 준 이만식이 걱정되었다.

‘최상품이면 못해도 3억씩 할 텐데 해코지 당하지 않으려나. 하긴···그런 거 알아차릴 겨를도 없으려나.’

아마 한귀협의 권력구도는 어떤 쪽으로든 크게 바뀔 것이다.

3세대가 휘어잡을지도, 2세대가 버틸지도. 그게 아니라면 1세대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제 시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일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시혁이지만, 반대로 시혁을 탓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삼족을 멸한다는 말을 했으면 그정도는 각오 했어야지.’

시혁은 세 뿌리의 하수오가 담긴 쇼핑백을 살폈다.

“흐음······.”

- 자양강장, 푸른 하수오!

시혁은 고급스런 패키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부릅떴다.

허공에 손을 뻗어 뭔가를 잡았다.

턱.

시혁의 손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이 들려 있었다.

화살이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다 축 늘어진다.

시혁은 뒷좌석 왼쪽 창문을 보았다.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유리가 깨지진 않았다.

“이게 무슨······!”

시혁은 상황이지? 라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조수석으로 손을 뻗었다.

운전하던 택시기사가 시혁의 돌발 행동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 가득 뱀처럼 꿈틀거리는 화살이 보인다.

택시기사가 기겁했다.

“으, 으아아아아악!”

끼이이이이이익!

길게 그려지는 스키드 마크.

결국 택시는 중앙선을 넘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중앙선을 침범 했지만 서울을 벗어난 관계로 오가는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다행이 아니다.

타이밍 좋게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시혁이 탄 택시를 덮쳤다.

“으아아아아아악!”

택시기사의 찢어지는 비명이 묻힌다.

콰아아아아앙!

가드레일을 박은 트럭이 가까스로 멈췄다.

모자이크 가면을 쓴 다섯 명의 실루엣이 트럭에서 내렸다.

그들은 도로 바깥쪽에 서서 한 손으로 자기 몸보다 커다란 택시를 들고 있는 시혁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시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섯 중 한 명이 변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고, 300년차도 귀환자는 귀환자라 이건가? 힘이 장난이 아닌데?”

“하긴. 남양주 문지기라는 별명이 아주 뽀록으로 얻어진 건 아닌······!”

콰앙!

후두두둑.

다섯 명이던 조각들이 도로 위에 널브러졌다.

두 명이 죽고, 세 명은 숨을 헐떡이다 과다출혈로 곧 죽을 터다.

“이미 기절 하셨군.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기사의 상태를 확인한 시혁이 택시를 정중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빌런들을 바라본다.

미안함 가득하던 시혁의 표정은 이미 벌레를 바라보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입을 벙끗 거린다. 하지만 뭐하는 놈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진 않았다.

죽이러 온 주제에 살려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시혁이 손을 흔들었다. 그 궤적을 따라 나온 황금빛 기류가 빌런들에게 달라붙더니 녀석들의 몸을 흔적도 없이 불 태웠다.

그아, 아아아아아아악!

시체가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시혁이 택시 위로 올라탔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화살에서 무고한 택시기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군.”

저격수를 죽일 생각이었다.

시혁의 눈동자는 어느새 황금빛으로 다시금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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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습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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