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20화 (20/44)

&20

며칠 전, 시혁은 모두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황금 호랑이의 힘을 끌어올렸다.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기운. 그 기운이 주변을 따스하게 덥힌다.

정시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야···너무 멋있잖아? 새로운 능력인 거야?”

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 자체가 다른 기운에 반응해서 발현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공격에도 알아서 대응하지. 기운 자체가 뜨거워. 힘을 극도로 주입하면 사람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태울 수도 있을 정도야. 근력과 체력, 반사신경도 극도로 늘어나. 때에 따라선 예지 수준의 예상도 가능해지고,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힘도 있어. 여러모로 쓸 만한 능력이지?”

시혁의 장황한 설명에 김창익이 얄밉다는 듯 웃었다.

“아이고 잘나셨어요 형님. 아주 그냥 부러워 죽겠구먼? 굳이 그렇게 자랑하지 않아도 대단한 거 알고 있다고? 이거 뭐 특이점 없는 퓨어탱커는 부러워서 뒤져야지. 으허허허.”

자조 섞인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는다.

“친절하게 사용설명서를 읊어주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이가 없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둘에게 시혁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퉁길 뿐이었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시아와 김창익의 몸에서 금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물론 시혁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꺼지기 직전의 촛불과도 같은 미미한 불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이게···?”

“뭐야. 뭘 어떻게 한 거야?”

몸 주변이 번쩍번쩍 한 것도 신기했지만 다른 게 더 신기했다.

갑자기 주변 사물이 명확하고 뚜렷하게 감지 된다.

극도의 각성효과다.

“이, 이거···뭔가 김세건에게 버프를 받는 기분인데···?”

S급 각성자이자 최강의 버퍼라 불리는 김세건. 그런 김세건의 버프를 받은 것처럼 몸에 힘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은 시아 역시 마찬가지인지 조심스럽게 김창익에게 손을 뻗어 힐링을 시전해 본다.

화르륵!

“으아아!”

“꺄악! 미, 미안해 자기야! 자기야!”

“어휴, 녀석들 하고는.”

시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힐을 사용하자 사용부위에 불이 붙었지만 그 불은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마 상처가 있었더라면 그곳에 스며 들어 훨씬 빠른 회복에 기여 했겠지.

“많이 쓰지 마. 영구적인 거 아니야. 효과 떨어지면 다시 발라야 한다고.”

“바른다니 무슨 소리야? 혹시 그때 바른 고약한 기름을 말하는 거야?”

“그래. 그것의 힘이야. 위기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쓰지 마. 정작 중요할 때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르니까.”

“···그렇구나. 정말. 정말 아껴 써야겠네. 나 그거 고약해서 진짜 바르기 싫거든.”

그 말을 하며 시아가 부르르 몸을 떤다.

어지간히도 바르기 싫은 모양이었다.

“안타깝지만 힘을 발현시키고,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 필요해. 아무리 잘 드는 칼이 생겨도 애송이가 들고 있으면 안 되지 않겠어? 며칠 동안은 힘을 쓰고, 바르고, 다시 힘을 쓰고, 충전받으면서 애송이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래야 앞으로 웬만한 상황에서도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게 될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시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평불만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반응이었다.

그 모습에 시혁은 괜히 미안해졌다.

“미안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성장이 끝난 상태에서 등급 한계를 뛰어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C급 힐러가 되고 연봉이 2배가 늘었는데 이런 힘까지 주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나는 오빠한테 고마워서 어떻게 해?”

그 말에 김창익이 거든다.

“그러게. 이거면 B급이 아니라 A급도 씹어 먹겠는데, 이런 기회를 주고 형님은 왜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거야?”

그 말에 시혁은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보단 고맙단 말을 듣고 싶은걸?”

여동생의 말에 시혁은 찡해진 코끗을 문질렀다.

“고마워.”

“그나저나···우리 단비는 어떻게 하지?”

단비는 호랑이 기름을 바르지 못했다. 일단 호랑이 기름을 바르면 더 이상 달팽이 기름을 바르지 못하는데, 성장하는 단비의 몸을 위해서는 달팽이 기름에 계속 노출되는 편이 조카의 미래를 위해서 좋았다.

그렇다면 단비는 위급 상황에 취약한 것일까?

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언제나 함께 있어줄 가족이 하나 더 있잖아.”

그걸 들은 쿠야가 울음소리로 화답했다.

미야우우우우.

쿠야의 몸에 난 황금불은 나머지 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혁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고양이과 동물이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시혁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이거, 쿠야가 너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에 김창익이 뜨억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라고 말해 줘.”

“농담이야.”

“···거짓말 아니지?”

“······.”

* * *

그르르르르릉.

시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쿠야의 턱밑을 쓰다듬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느끼던 쿠야가 현관문을 바라본다. 곧 문이 열리며 정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혁과 정시아의 눈이 마주쳤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뻔했지만, 시혁은 그 말을 집어삼키고는 말했다.

“고맙다.”

시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시혁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봉지 안에는 네 캔의 맥주가 들어 있었다.

츠칵!

시아는 맥주 하나를 시원하게 딴 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반을 한 번에 비운 시아가 그제야 시혁을 바라본다.

“마실래?”

굳이 대답이 필요할까?

츠칵!

둘은 말없이 캔맥주를 홀짝였다.

쿠야의 그르릉 거리는 소리와, 미약하게 들리는 단비의 쌔근쌔근 하는 숨소리가 이어지던 어느 순간 현관문이 다시 한번 열리며 김창익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창익의 손에 들린 봉지에도 네 캔의 맥주가 들어있다.

“고맙다.”

“······.”

시혁이 조용히 일어나 쇼핑백에 들어있는 상자 안에서 푸른 하수오 두 뿌리를 빼서 접시에 올려놓았다.

“최상급 푸른 하수오. 한귀협에서 받아온 거다.”

“···그거 귀한 거 아니냐?”

“아마도.”

와작와작 거리는 소리만이 묵묵히 들려 온다.

쿠야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품을 했다. 시혁은 녀석에게도 푸른 하수오를 건넸다. 냄새만 맡아도 싫은지 뒤로 몸을 빼던 쿠야는 시혁의 재촉에 꼬리를 탁탁 치면서도 입을 벌려 몸에 좋은 쓴 약을 씹어 삼켰다.

츠칵!

다음 캔을 딴 시혁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말했다.

“생각보다 이런 일이 빨리 일어났네. 미안하다.”

시혁은 이번 원한이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대한 자초지종을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그걸 잠자코 듣던 두 부부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그럼 균열 일어났을 때 오빠를 공격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도대체 왜?”

정시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상식으론 이해가 힘든 영역이었다.

하지만 김창익은 대충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랬군.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닌 것 같네. 허···혹시라도 형님이 아니라 다른 각성자가, 가디언이 그 자리에서 균열을 막고 있었더라면 암살을 당해서 주변이 초토화가 됐겠네?”

“그랬겠지.”

“단비도 휘말렸을 테고?”

“그랬겠지.”

“···개새끼가.”

시혁의 담담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이라도 그리 했을 거라는 듯이.

그 표정만으로도 시혁은 큰 위안을 얻는 것만 같았다.

“그 중 한 명이 쌍둥이였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죽인 걸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던 거군. 형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후아아암.

그때, 단비의 앙증맞은 잠꼬대가 들려 온다.

천사 같은 모습.

심각하던 모두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이 걸린다.

“우리 단비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쌔근쌔근.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군.”

“앞으로도 이렇게 단비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네.”

시아의 말에 시혁은 면목이 없었다.

둘을 강하게 해서 방비 한 건 다행이지만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웬만하면 원한을 사지 않는 방향으로 앞으로 살아가마.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일 없도록 할게.”

하지만 그 말에 김창익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형님. 아니, 시혁아. 우리 가족 맞냐?”

시혁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창익을 보았다. 가족이 아니면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한 것에 가슴이 아프지도, 아플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저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김창익의 다음 말이 그런 시혁을 벙찌게 만들었다.

“우리도 넌 둘도 없는 가족이야. 내가 더 강해져서, 가족에게 폐 끼치는 일 없도록 하마.”

옆에 있던 시아가 한 소리 더 거들었다.

“오빠한테 안 되니까 우리를 노린다고? 하···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남양주 미친개를 뭐로 보고.”

남양주 미친개는 시아가 고2 때 벌어진 패싸움에서 승리하며 얻은 별명이었다.

시혁은 아직도 최고 일진의 깻잎 머리를 반절로 뜯어버리며 짓던 웃음을, 그 광기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클래스가 힐러일 뿐, 정시아는 훌륭한 쌈닭 기질을 가진 여장부였던 것이다.

문득, 협회장 이진혁의 말이 떠올랐다.

- 계속 귀찮게 굴더라고. 낳아준 정이 어쨌느니, 내가 버는 돈의 얼마 정도면 본인들 팔자가 핀다느니···나중엔 언론에 내 이야기를 멋대로 떠벌리더군?

시혁의 가족은 이진혁의 가족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맘 졸이고, 그래서 미안하고 고마운지도 모른다.

남양주 미친개가 시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어. 오빠 그 표정 알아. 마치 ‘이러니까 지키지 않고 배겨?’라고 말하고 있는데?”

“···들켰냐?”

“그러지 마. 오빠 오기 전에도 우리 앞가림 잘해 왔고, 와서도 마찬가지야. 심지어 오빠가 달팽이 기름이니 호랭이 기름이니 치덕치덕 발라주고 있는데 이 이상 도와 달라고 하는 것도 웃겨.”

“그래. 너는 너의 길을 펼치면 돼. 거기에 우리가 방해가 될 일 없게 하마.”

그르르르르릉.

쿠야가 걸어오더니 시혁의 볼에 자신의 볼을 부빈다. 마치 자신 역시 돕겠다는 듯. 단비는 걱정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거참.”

“그래서, 이제 화제전환 하자. 귀환자 협회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었어? 다행히 세뇌 같은 건 안 당한 것 같고. 잘 풀고 나온 거겠지?”

“그럼그럼. 푸른 하수오를 세 뿌리나 가져왔는데 잘 풀린 거 아니겠어? 귀환 보조금은 얼마나 나온대?”

두 부부의 말에 시혁은 궁색하게 웃었다.

“그···한귀협에서 말이지. 내가 깽판을 좀 친 것 같다.”

······.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두 부부의 입에선 진득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벌써 두근거리네···정말 멋진 오라비를 두었어.”

“고맙다.”

“···이번엔 미안하다고 하자.”

“미안.”

“괜찮아.”

“괜찮고 말고. 삼족을 멸한다는데 죽여야지. 그건 못 참지.”

“······.”

어느새 잠에서 깬 단비가 시혁을 확인하고는 오도도도 달려와 안겼다.

“삼쫀! 배구파. 라면 끓여 줘!”

“오냐.”

시혁이 씩 웃으며 주방으로 가 라면 봉지를 뜯었다.

단비가 먹을 것인 만큼 찐라면은 순한맛이었다.

* * *

가디언 본부.

활동 후 쉬고 있는 이예지의 입에는 여전히 온도계가 물려 있었다.

현재 온도 85도.

특수 제작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던 그녀의 눈이 금세 찢어져라 부릅떠진다.

벌컥!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온 이는 그녀의 상사이자 양아버지 김명석.

그가 스마트폰을 들어 이예지에게 내민다.

“너, 이거 봤냐?”

스마트폰 액정에는 거북이 등껍질이 안쪽에서부터 터지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 영상 말고도 다른 각도에서 찍힌 영상이 상당히 많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우연히 풍경을 찍다가 순간을 포착한 영상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예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지금 막 확인한 참입니다.”

“이거, 누구라고 생각하지?”

“십중팔구. 아니, 십 중 십 정시혁 귀환자님 아니겠습니까?”

물론 등딱지를 깨고 나온 폭발은 주황색이 아니라 황금색이었지만, 힘의 방향과 기세 등등을 고려해 봤을 때, 그리고 발생한 장소가 한귀협이란 것을 고려할 때, 지금 이 사건은 300년차 귀환자 정시혁의 소행임이 확실해 보였다.

“···너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만, 정말 대단하군. 이런 힘이라니···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군. 정말···데리고···아니, 모셔올 수 있으면 어떻게든 모셔오고 싶은 정도야.”

김명석은 이 믿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고, 보고, 또 봤다. 김명석과 같은 이들이 많은지 영상의 조횟수가 실시간으로 급상승하고 있었다.

“과연 귀환자 협회가 놔 줄까요?”

“···음, 등딱지까지 뚫었으면 뭔가 틀어진 게 아닐까?”

“저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우리에게까지 연락이 올까요?”

“어허! 어쩜 그리 부정 타는 말만 할꼬? 그렇게 내기에서 지기가 싫은 거냐?”

“아, 들켰습니까?”

“오지 않는다면, 찾아라도 가 봐야겠지. 어렵게 마련한 네 선 자리를 써먹기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잡아야지!”

그 말에 이예지는 싱긋 웃기만 했다.

어느새 입에 물려 있는 온도계는 36.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한편, 한귀협 본부는 아수라장이었다.

────────────────────────────────────

────────────────────────────────────

암습 0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