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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26화 (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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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 누워 있는 정옥자를 보는 김명석의 시선은 착잡했다.

찾아와 달라는 말이 진실인 경우가 한 번도 없었는데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을 줄이야.

다행히 정옥자는 무사했지만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음···제대로 사과하지. 거짓말인 줄 알고 전화 끊은 거 정말 미안해.”

그 말에 정옥자가 싱긋 웃었다.

“미안하면 밥 한 끼 사.”

“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던 김명석은 누군가의 등장에 입을 다물었다.

“그게 맞는 것 같은데요? 언니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고요? 언니가 저에게 전화를 주지 않았으면, 제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예지의 말에 김명석은 자신의 수양딸을 째려 봤다. 아빠를 도와주진 못할 망정.

“끄응.”

초롱초롱한 정옥자의 눈동자가 김명석을 부담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한숨을 푹 내쉰 김명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퇴원 부터 하라고. 마침 좋은 라면집을 아니까 말이야.”

“뭐야. 이게 바로 라면 먹고 가라는 그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김명석이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일이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버릇이었다.

“밥 말고 술 사줘.”

“···야, 그건 좀 아니지.”

정옥자는 자신도 장난이었다는 듯 빠르게 물러났다.

원래 매사에 질척거리는 것처럼 매력 없는 짓도 드물다.

그런 것치곤 지금도 상당히 질척거리고 있긴 했지만.

그걸 보던 이예지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그러지 말고 언니. 선을 보는 건 어때요? 제가 좋은 남자를 소개 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듣자마자 김명석이 가세했다.

이제야 딸이 자신을 도와주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 너도 슬슬 남자 찾아야지. 너가 다 외로워서 그래. 괜찮은 남자가 바로 옆에 있어 봐라. 나 같은 늙은 놈이 눈에 들어나 오겠어?”

정옥자의 표정이 몰라보게 굳었다. 김명석의 반응이야 그렇다 치고 이예지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지 몰랐기에 배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이예지의 손이 김명석을 가리킨다.

“아버지와 선을 보면 될 것 같아요. 밥은 사주실 테니 패스하고, 그 다음은 선을 보는 걸로 하고 술을 드시면 되지 않을까요?”

정옥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김명석의 표정이 포악해지더니 이내 뜨억하게 변했다.

생각해 보면 정시혁이 가디언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둘의 내기는 김명석이 진 것이 맞았다.

물론 ‘좋은 귀환자’ = ‘가디언에 들어온 귀환자’는 아니지 않냐고 말장난으로 잡아뗄 수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본인만 추해질 뿐이다. 그 당시의 김명석 역시 시혁이 귀환자에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그런 내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예지가 선을 보라면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봐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비를 이렇게 물 먹여?’

‘전 제가 내뱉은 말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도 뱉은 말을 지키시지요.’

김명석은 밥과 술까지 약속한 후 날짜까지 제대로 잡고서야 둘의 몰아 가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곽두호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아무리 곽두호가 마나폭주를 했다 해도 정옥자가 이렇게까지 호되게 당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옥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방심했어.”

“······.”

김명석은 정옥자의 눈을 유심히 살폈지만 그녀의 눈은 호수같이 맑고 깊을 뿐이었다.

“뭘 그리 뻔히 쳐다 봐? 역시 자꾸 보니까 예뻐보여?”

“···후우, 무슨 말을 더 하겠냐.”

물론 김명석은 가디언의 본부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원자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디언과 구원자는 수평적인 관계. 가디언이 구원자에게 숨길 수도 있지만, 구원자도 가디언에게 정보를 숨길 수 있다.

구원자의 일은 정부의 일. 어디서 새어나갈지 모를 일을 하고 있으니 입단속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친구로서의 걱정이었다.

“그럼 난 간다.”

“벌써 가는 거야?”

“그래. 벌써 간다.”

김명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떠났다.

정옥자는 그가 사라진 문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이예지가 한숨을 푹 내쉰다.

이예지는 항상 둘의 사이를 응원하고 있지만 그만큼 김명석의 완고함 또한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왜 언니가 싫으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 에···그···난 말이다. 여리···아니,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좋단다. 날 잡아···아니! 잡···음, 그래. 잡고 살려는 여자 말고. 그리고 귀환자라는 것도 한 몫 하지. 난 183년 만에 그녀가 만나는 첫 남자가 되기는···으음, 암튼 그래!

도대체 183년 동안 홀로였다는 것이 왜 흠이 되는 걸까? 많은 귀환자들이 손자의 손자까지 있는 마당에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점 아닐까?

여러모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이예지였다.

“언니는 아버지의 어디가 그리 좋으십니까?”

그 말에 정옥자가 피식 웃었다.

“그런 건 많이 말해주지 않았어?”

물론 남자답게 잘생기고, 키도 크고, 호쾌하고, 남을 위하고, 성격도 털털하고···많은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를 들은 것 같지는 않아서 물어본 거였다.

“따뜻해서 좋아. 손이 따뜻해서.”

“······?”

“아가는 모르는 그런 게 있단다. 아니, 넌 알수도 있겠구나?”

정옥자의 눈동자가 반짝 빛난다.

“능력을 사용하거나 하면 넌 뜨거워지잖니. 그걸 견디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겠어? 심지어 너보다 열기가 아주 조금 못 미쳐서 만진 손이 시원하게 느껴진다면?”

“······?”

정옥자의 말을 이예지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 표정을 본 정옥자가 예시를 하나 들었다.

“내가 손이 차가운데, 상대방 손이 덜 차가우면 따듯하게 느껴지잖아?”

“그럼 모든 사람의 손이 언니에겐 따듯한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어 버린다면?”

“······아아.”

이예지는 순간 정옥자의 말 뜻을 깨달았다.

그것 뿐이면 되는데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래도 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래.”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던 이예지도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예지 역시 할 일 많은 가디언이었으니까.

외신에선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중국에서 철갑기린을 상대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한국으로 왔다는 이야기였다.

“철갑기린 곧 잡히겠네.”

잡히면 모두가 외신에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정옥자가 한국으로 이송 되었다고 뜬 것이다.

곧 철갑기린이 잡혔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자신을 제외한 구원자들의 모습이 보기 좋게 찍히겠지.

“김세건한테 또 한마디 듣겠네.”

한숨을 내쉰 정옥자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정체모를 괴한을 떠올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어쩌면, 그냥 대화를 시도 했어도 괜찮았을지도.’

물론, 이미 늦은 후회였다.

* * *

남양주 진건읍 근처에 위치한 철마산.

과거엔 등산도 가능했을 그곳은 이제 절대 등산을 할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 굴을 파고 살고 있는 AA급 몬스터. 이곳의 네임드인 융단 폭탄박쥐와 녀석이 이끄는 폭탄박쥐들 때문이었다.

거대한 동굴을 기점으로 그 주변 일대가 전부 융단 폭탄박쥐의 영역이었다.

그곳에 지나가는 동물, 몬스터. 특히 인간들을 보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어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번영해 나가던 터줏대감 몬스터, 폭탄박쥐들.

하지만 이 몬스터들은 어느 기점부터 몸을 움츠렸다.

사냥도 나가지 않았고, 정찰도 나가지 않았다. 그저 본거지 근처만 배회하며 주린 배를 채울 뿐 공격적인 사냥이나 다른 몬스터들간의 영역다툼도, 심지어 가만히 두면 계속 영역을 침범해 오는 인간들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폭탄박쥐들이 이렇게 몸을 사리는 이유는, 융단폭탄박쥐가 그렇게 명령한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

단 한 마리의 인간 때문이었다.

수백 마리의 동포들을 한 번의 주먹질로 지워버린 인간.

그 엄청난 광경을 본 융단폭탄박쥐는 두려움에 몸이 굳어 둥지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새겨진 원초적인 공포는 무서울 것 하나 없던 융단폭탄박쥐를 겁먹은 생쥐 꼴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몬스터 역시 먹이활동을 해야 먹고 사는 생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변 먹이들이 사라지고, 먹을 것이 없어지고부턴 조금씩이지만 영역권을 넓혀서 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융단폭탄박쥐가 두려워했던 인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그 인간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융단폭탄박쥐 혼자 몸을 움츠리고 있었을 뿐, 이젠 괜찮은 게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인간의 영역권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영역권을 다시 넓히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조심성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다 인간들과 영역권이 겹치는 상황이 와버렸다.

빼야 하나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겁대가리를 상실했다. 인간들과 맞서 싸우도록 명령했다.

결과는 승리. 인간들은 후퇴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인간들과의 영역다툼이 시작되었다.

인간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길 수 있는 상황에도 패배하기를 반복했다.

인간들 하나하나가 더 강해진 것일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마치 어떠한 존재가 이 전쟁에 끼어들어 인간을 돕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때, 동족 하나가 굴 안으로 들어오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쭉 미끄러졌다.

폭탄박쥐에서 한 단계 진화한 화살촉 폭탄박쥐였다.

화살촉 폭탄박쥐의 등에는 짐승의 발톱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끼긱···끼···끼에엑······. (거대한···거대한 고양이···였습니다. 녀석을 잡아야 합니다. 녀석은······.)

화살촉 폭탄박쥐는 자신이 본 것을 낱낱이 보고했다.

몇 마디 내뱉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인간들과의 세력다툼. 갑자기 사라진 동료들. 자신의 목덜미를 문 몬스터.

그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황금빛 눈동자까지.

융단 폭탄박쥐에게 모든 사실을 전한 화살촉 폭탄박쥐는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을  전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듯 마지막 숨을 내뱉는 녀석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호상이었다.

카우우우우우!

융단 폭탄박쥐가 울부짖었다.

그것을 따라 만여 마리의 폭탄박쥐들이 같이 울었다.

융단 폭격박쥐가 명령을 내렸다.

황금색 고양이 몬스터를 찾아라! 그 녀석의 영역을 반드시 찾아라!

모든 박쥐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황금고양이를, 녀석의 영역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 * *

밤이 되었다.

시혁은 방 침대에 누워서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루를 마감했다.

눈을 감았다.

방의 창문이 열리며 한 마리의 거대한 고양이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왔다.

쿠야였다.

“오늘은 나랑 자러 온 거냐?”

시혁이 피식 웃으며 팔을 벌리자 그 사이로 다 큰 녀석이 아이처럼 파고든다.

그르르르르르릉.

낮은 저주파의 골골소리.

시혁은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시혁이 잠을 자는 와중에도 그르릉 거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기를 몇 시간이 흐르자 그 울음소리가 뚝 끊긴다.

잠시의 휴식을 취한 쿠야가 슬그머니 일어나 창문으로 폴짝 뛰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고 있던 시혁의 눈이 슬그머니 뜨였다.

‘도대체 밤마다 넌 어디를 돌아다니는 거냐?’

시혁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고 가슴으로 낳은 아들래미의 이중생활을 탐구해 보고자 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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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단폭탄박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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