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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 속에서 시혁은 폭탄벌레를 열심히도 이용했다.
녀석은 때론 수류탄으로, 때론 지뢰로, 때로는 불을 피울 때도 유용했다.
맛도 썩 괜찮았다.
씹을 때마다 났던 랍스터의 풍미는 지구에 와서도 종종 그리울 정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운 녀석이 또 있다.
폭탄벌레보다 훨씬 이전에 접했던. 시혁을 지금의 시혁으로 있게 해준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다.
여느 문명인처럼 곤충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던 시혁을 폭탄벌레를 발견하자마자 먹을 생각을 하게 만든 녀석.
풀메뚜기.
작으면 7센티, 크면 10센티 하던 그 녀석은 시혁이 처음 먹은 곤충이기도 했다.
녀석은 정말 좋은 단백질 원이었다.
불에 바짝 구워먹으면 새우도 아닌 것이 새우깡 맛이 나고는 했다.
때문에 나중엔 찾아서 먹었다.
떼로 다니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초반 그의 마경 생활의 원천이기도 했다.
처음엔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구의 메뚜기와는 달리 날개가 없던 이 녀석은 위험하다 싶으면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어 도망갔으니까. 녀석이 뛰면 뛴 자리가 주먹 만큼 움푹 파이기도 했다. 50미터나 뛰어오른 녀석이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요령이 생겨서 하늘 높이 뛰어오르게 한 후 떨어지는 녀석을 수비수처럼 잡고는 했다.
마경 생활에서 가장 먼저 얻게 된 능력도 바로 갈색 풀메뚜기의 능력이었다.
공중에 뜬 채 땅으로 떨어지는 시혁이 그때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녀석이 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다. 그 많은 녀석들을 집어먹고 성장했지만 공중을 나는 능력은 얻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에게도 날아다니는 놈들을 사냥하는 방법이 있었으니까.
착. 운 좋게 폐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숲과 어우러져 형태만 남아있는 이곳에 서서 바라보자 융단 폭탄박쥐가 도망치는 모습이 잘도 보였다.
“잘도 도망치네. 그렇지 않니?”
그 말에 시혁에게 업힌 쿠야가 응답했다.
먀아우우.
쿠야는 시혁과 다르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뒤에는 많은 폭탄박쥐들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족히 천 마리는 넘어 보이는 폭탄박쥐들. 주인님의 말처럼 저 녀석들은 자신만을 노리고 온 것 같았다.
쿠야는 생각한다. 만약 오늘 주인님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상한 인간에게 공격 당하다가 힘을 무리하게 사용하고, 저 녀석들에게 들켜서 자식을 지키다가 죽지 않았을까?
쿠야의 까끌까끌한 혀가 시혁의 볼을 핥았다.
시혁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꽉 잡아라. 곧 빨라질 거다.”
청록색의 기운이 다리 밑으로 모여들었다.
옥상 난간을 잡고 벽을 밟다시피 하고 있던 시혁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콰아아앙!
시혁이 밟고 있던 건물이 그 여파로 인해 와르르 무너졌다.
‘이래서 평소에 사용을 못하지.’
도로에서 쓰면 도로가 꺼지고, 건물에서 사용하면 건물이 무너질 것이기에 도심 속에서는 사용하지 못해 왔다.
하지만 성능은 확실하다.
거의 직각으로 쏘아진 시혁의 몸이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융단폭격박쥐에게 실시간으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기세는 낮아진다.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 그렇게 되면 기껏 좁힌 거리가 다시금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시혁은 공중에서 뒤로 돌았다.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폭탄박쥐들이 시혁과 쿠야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주먹이 그곳으로 뻗어졌다.
콰아아아앙!
천 마리 중 반 이상이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삭제 되었고, 그 여파로 시혁은 다시금 하늘을 날았다.
미야아아아아!
깜짝 놀라는 쿠야. 시혁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쏘아졌다.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와 시혁의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어느새 융단 폭탄박쥐와의 거리가 100미터 안팎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도망만 다니던 융단폭탄박쥐가 뒤로 돌아섰다.
녀석의 목은 두꺼비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크에에에에에에에에에!
녀석을 융단폭탄박쥐라고 불리게 만든 거대한 폭탄광선이 시혁에게로 쏘아졌다.
“호오.”
거기에 대응하는 건 뭐 별 다를 게 없다.
그저 주먹을 한 번 더 내뻗을 뿐이다.
폭탄벌레의 기운이 융단폭탄박쥐의 광선을 씹어먹으며 융단폭탄박쥐에게로 향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기겁한 녀석이 점막날개를 회전 시키며 맞을 곳을 변경했다. 덕분에 머리가 아니라 박수하듯 마주친 양쪽 점막날개가 먼저 맞으며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콰드드드득!
날개를 잃은 녀석의 거체가 나무와 폐 건물 사이를 갈면서 떨어졌다.
녀석의 앞에 시혁과 쿠야가 착지했다.
“오랜만이다.”
시혁의 말에 융단폭탄박쥐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날개를 움직이려는 듯 양 그루터기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날개는 없고, 입 안의 폭발광선은 오늘은 무리다. 심지어 그걸 사용한다고 눈앞의 작은 인간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끼우우우우우우욱!
낮고 가냘픈, 강아지로 따지면 깨갱거리는 듯한, 듣는 이로 하여금 불쌍한 감정을 자아내는 듯한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살려달라 이거냐.”
끼우우우우!
시혁은 이런 상황을 많이도 겪어 왔다.
마경에서 자신과 싸우다 죽기 직전이 된 녀석들은 세 가지 선택을 하고는 한다.
덤비거나, 도망치거나, 그게 아니면 이렇게 살려달라고 빌거나.
덤비는 놈은 죽였다. 도망쳐도 죽였다. 그러다가 살려달라고 비는 녀석을 만나 살려준 적도 있었다.
그 결과 목덜미를 물렸다.
뒤통수를 맞았다.
어떤 경우에도 좋은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넌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내가 네 가치를 인정했고, 우린 공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에도 욕심을 내었다.
그런 놈을 믿을 생각은 없다. 그 증거로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의 꼬리가 뱀처럼 움직여 쿠야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화악!
채찍처럼 날아온 꼬리 끝이 쿠야를 낚아 채려 했다.
인질로 사용 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시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호랑이 기운을 발동한 쿠야가 이 정도의 전투예지도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촤아악!
준비된 공격에 잘려나간 꼬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팔딱팔딱 뛴다.
끼, 끼에···!
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콰아앙!
머리를 잃은 녀석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콰아아아아아아!
막대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시혁의 안으로 들어왔다.
시혁은 간질거리는 느낌에 뒤통수를 매만져 본다.
‘도대체 왜 검은 기운을 많이 흡수하면 뒤통수가 간질거리는 걸까?’
물론 지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시혁은 지금 자신이 할 일을 했다.
푸욱.
녀석의 위로 올라가 손을 집어넣어 심장에 있는 마정석을 꺼냈다.
주먹 크기의 AA급 마정석이 시혁의 손에 들렸다.
방파제 역할을 하던 AA급 마수가 죽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이런 어설프게 똑똑한 녀석보다 훨씬 똑똑하고 믿을만한 시혁의 자식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혁은 그것을 쿠야에게 내밀었다.
“네가 이곳의 터줏대감을 계승하면 되겠다.”
먀아아우우우!
* * *
한편 이예지는 엄청난 화염을 방사하는 중이었다.
콰아아아아아!
그녀의 손에서 뿜어지는 화염이 폭탄박쥐들을 전부 숯덩이로 만들었다.
하늘로 도망치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같이 날아가서 잡았다.
추아아아아악!
하늘을 난 그녀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화염을 방사했다. 피막이 닿은 폭탄박쥐들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소의 이예지가 이런 식의 무차별 폭격을 난사했다면 이미 5년의 생명 쯤은 갈아넣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예지는 하루의 생명력은커녕 전체 기량의 반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MP가 무한인 것처럼 실시간으로 힘이 샘솟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설마 시혁씨의 힘인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녀는 지치지 않았고, 덕분에 몸 역시 50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그녀가 이렇게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폭탄박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혁이 쿠야를 데리고 떠나고 대부분의 폭탄박쥐들이 둘을 쫓았지만 남아있는 박쥐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것이다.
‘이대론 끝이 없겠어.’
그렇다면, 얻은 후 단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기술을 사용해 볼 때였다.
- 용광로(AA)
화르르륵!
그녀의 피부 주변이 타올랐다. 머리카락이 타오른다. 그녀가 불의 화신이 되었다. 양 손을 뻗었다. 조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굵은 화염이 방사 되며 눈앞의 폭탄박쥐들을 숯덩이로 만들었다.
원래 였다면 10년의 생명력은 우습게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반동은 ‘무리를 좀 했구나’ 정도일 뿐 1년의 생명력도 좀먹지 못했다.
물론 정시혁의 주먹 한 방 만도 못한 화력이었지만, 그녀에게 이 정도의 화력은 감회가 남다르다.
그리고 다시금 고마웠다.
‘···저에게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하늘 위에서 이예지가 감동하는 가운데 김민수는 뜨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저 여자 왜 저렇게 쎄? 같은 A급 아니었냐고?’
김민수는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예지를 보니 쭈구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김민수가 죽인 박쥐의 숫자는 50마리 정도.
석벽을 세우고, 바닥에서 원기둥을 뽑아 찔리게 하며 고군분투 했지만 이예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예지는 못해도 200마리는 죽인 것 같은데 자신은 고작 53마리였다. 끝이 3이라서 반올림도 안 해줄 것 같았다.
‘오늘은 왠지 컨디션이 좋으니 큰 기술 한 번 시도해 볼까.’
콰드드드드드득!
곧 김민수의 발 아래로 원기둥이 10미터나 솟아올랐다. 김민수는 그곳으로 뛰어내리며 몸을 공처럼 말았다. 주변에 바위로 이루어진 돌기가 형성되며 그의 몸을 철퇴처럼 만들었다. 바닥은 이미 트렘펄린처럼 탄성있게 만들어 놓은 상태.
김민수라는 이름의 철퇴가 하늘을 날아 정확히 화살촉 폭탄박쥐에게로 향했다.
갸악!
하지만 화살촉 폭탄박쥐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방향을 트는 건 너무 쉬웠고, 그것은 여타 폭탄박쥐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김민수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으아아아악!”
그런 김민수를 구해준 것이 이예지였다.
김민수를 하늘에서 낚아챈 이예지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으아아아아악!”
얼굴이 발그레해 지며 순식간에 이예지와의 손자까지 상상하던 김민수가 큰 고함을 질렀다.
큰 기술을 쓴 이예지의 몸은 바위도 녹일 정도로 뜨거운 나머지 김민수의 흙갑옷을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세요. 떨어지는 것보단 낫습니다.”
“크헉. 헉!”
흡사 거푸집 안에서 구워질 뻔한 김민수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와···이, 이 여자는 포기다. 포기야.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자!’
그렇게 고군분투 했지만 폭탄박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백 마리를 죽였는데 그만큼의 숫자가 남아 있었다.
무한한 힘을 발휘하던 이예지도 지쳤다. 김민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때 둘의 뒤에서 얼음탄을 쏘아내는 이가 있었으니 가디언 본부의 본부장이자 S급 헌터인 김명석이었다.
“버티느라 고생 많았다.”
김명석이 양 주먹을 허공에 뻗었다. 곧 전완근 주변이 리볼버의 탄창이라도 되듯 허공에 얼음쐐기가 돋아난다.
그것이 회전하며 얼음쐐기를 쏘아냈다.
파바바바바바바박!
1초에 열 번을 소아내는 두 개의 얼음총이 허공에 있는 폭탄박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다.
하늘을 날고 있는 폭탄박쥐의 숫자는 족히 400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래도 못 막을 정도는 아니다.
김명석의 뒤로 40명의 정예 가디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원 사격 준비!”
우두두두두두두두!
그들은 대 마수전용 소총을 들고 박쥐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성난 박쥐들이 자살하러 달려들 땐 김명석이 나섰다. 얼음으로 된 원판이 허공에서 짠 하고 생겨나자 거기에 머리를 박은 박쥐들이 펑펑 터져나갔다.
- 얼음원판생성(B)
“음, 옥자에겐 미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쓸만하지.”
씩 웃은 김명석이 냉기가 풀풀 날리는 손으로 이예지의 몸에 손을 얹었다.
평소라면 뜨겁지 않아야 할 손. 하지만.
“으뜨거!”
기겁한 김명석이 심각한 눈으로 묻는다.
“···또 수명을 쓴 거냐? 생각보다 많이 뜨겁구나.”
그 말에 이예지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건 나중에···라도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
김명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나에게 비밀이 있다고?”
부녀지간이 원수만도 못한 사이도 분명 존재 한다지만 이예지와 김명석은 그 대척점에 있었기에 이 한마디에 김명석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다만 수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아니······.”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바깥 숲쪽에서 뭔가가 빛나기 시작했다.
황금색 빛줄기. 그것이 빠른 속도로 가디언들에게 가까워졌다.
무슨 상황이지 싶은 순간, 절벽의 왼쪽 허공에서 시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혁은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를 타고 있었다.
모두가 뜨억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일부러 사람들의 측면에 나타난 시혁이 폭탄박쥐들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눈앞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폭발.
단 한 번의 주먹으로 폭탄박쥐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시혁이 모두의 앞에 섰다.
“융단 폭탄박쥐 잡고 왔습니다.”
······.
그 날, 남양주 진건읍을 공포로 물들이던 융단 폭탄박쥐와 그의 부하들은 전멸했다.
매스컴은 시혁을 조명했고, 시혁을 부르는 별명은 더 이상 남양주 문지기가 아니게 되었다.
남양주 수호신.
모두는 시혁을 남양주 수호신으로 추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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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의 각성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