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33화 (33/44)

&33

드레이크 길드는 길드 랭킹 15위에 들어가는 중형 길드다.

비록 TOP15의 말단이긴 하지만 그건 TOP20일 때도 그러했다.

언더독 기질이 있는 이 길드는 관련 전문가들에게 머지않아 못해도 TOP10의 대형길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드로 성장할 것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길드마스터 이상근이 최근에 S급으로 발돋움한 것도 결정적인 이유였다.

중소길드라기엔 거대하고, 대형이라기엔 어색한 길드.

김창익은 그런 드레이크 길드에서 관리되는 C급 헌터였다.

정해진 팀은 없었지만 촉망받는 탱커로서 맡은 바 임무를 묵묵하게 잘 해냈다.

얼마나 어그로 관리가 확실하면 사내에서 ‘정밀기계’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을까?

게다가 B급으로 승급하여 이제 슬슬 팀장급으로 올려야 하지 않냐는 주변의 말에 김창익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휴일에 갑자기 용병으로 투입된 던전.

그 던전에서 김창익은 준비 된 빌런들에게 죽을 뻔했다.

당연히 브로커를 조졌다.

피투성이가 된 브로커는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말로 얼버무리기에 더욱 조져버렸다.

윗선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의 윗선인 팀장은 상황을 덮으려 했다.

김창익은 이쯤에서 참았다.

이 일이 시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 브로커의 독단이 맞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에겐 토끼 같은 딸과 여우 같은 아내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쯤 했다.

그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이가 없었다.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힌 그에겐 일이 들어오지 않았고, 서울에서 멀고 모두가 기피하는 곳으로 발령받는, 소위 말해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건너건너 안 것은, 자신이 돼야 했을 4팀의 팀장이 이범준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범준은 B급 탱커이자 길드마스터 이상근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소문은, 창익을 빌런들에게 내몬 브로커와 이범준이 커넥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로커가 독단적으로 시킨 게 아니라 빌런조직과 관련이 있는 이범준이 브로커에게 시켰다는 것도 꽤 그럴싸한 그림이다.

빌런조직 쪽에서 문의하자 마침 잘 되었다 싶었던 거겠지.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식으로 공격이 왔을 텐데, 빌런조직 입장에선 이렇게 깔끔한 방식으로 창익을 칠 수 있었으니 편했으리라.

그래도 꾹 눌러 참았다.

그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이런 부조리 쯤은 버티는 훌륭한 가장이 되고 싶었다.

와이프에게도, 단비에게도, 그리고 정시혁에게도 당당한 가장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갑자기 김창익이 다시금 도심으로 발령받았다.

갑작스레 유배가 풀린 것이다.

더군다나 4팀의 팀장이 되었다.

원래 팀장이던 이범준은 서브 탱커로서 그의 팀원이 되었다.

이것이 모두 정시혁이 귀환자 협회에서 탈퇴 했다는 소식이 내려온 직후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대충 알 만 했다.

언더독 기질이 다분한 드레이크 길드의 마스터는 모험수를 좋아하기로 유명했으니까.

그런 그에겐 정시혁이라는 300년차 귀환자가 자신의 길드를 성장시킬 발판으로 여겨진 모양이겠지.

그 후부터 몸은 편해졌다. 그는 팀장이었고, 명령도 잘 따랐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불편했다.

팀원들이 창익의 명령을 따른다기보단 창익의 명령에 따르라고 지시받은 이범준의 명령을 따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범준도 평소에 김창익과 마주칠 때마다 이죽 거리고 조롱하던 것을 잊었는지, 김창익에게 들러붙었다.

- 선배님. 아휴 시체처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모두 알아들었지? 치워!

- 그간 일은 잊어주십시오. 제가 그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런 분을 몰라보고···시혁님에게 안부 좀 부탁드립니다.

- 그럴 게 아니라 언제 한 번 시간 내 볼까요? 승진도 하셨는데 회사에서 축하 파티를 준비해야겠죠. 가족들도 데려오시죠. 아! 부르는 김에 시혁씨도······.

김창익은 참을 수 없었다.

- 어이, 젊은친구. 그만해. 그만. 그렇게 말해도 난 절대로 그 녀석을 부르지 않을 거야.

그 단호함을 읽었음일까? 녀석의 입 꼬리가 더욱 찢어졌다.

그도 창익이 예뻐서 잘해주고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단호한 걸 보면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다 보았다.

게다가 평생 아쉬운 거 없이 자란 이범준은 이런 상황을 오래 참아줄 수 없었다.

- 뭐야. 가족인데 그것도 못해?

- 젊은 친구가 말이 짧네. 그래도 내가 팀장 아닌가?

- 팀장이 팀장 일을 못하면 팀장인가? 되묻지. 그럼 팀장 씩이나 됐는데 길드를 위해 그것도 못해? 존나 못생긴 새끼가 대접 좀 해줬더니 지가 진짜 팀장인 줄 아나 보네.

- 그만 하지.

- 평생 자랑거리가 가족 하나 잘 둔 새끼가 목소리 깔면 어쩔 건데? 보아하니 너나 네 와이프나 정시혁에게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년놈들일 텐데 알량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김창익도 참을 만큼 참았다.

- 그런데 웃기는군. 아버지 입김으로 내려온 낙하산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 이 새끼가 어따 대고! 잉여인간 주제에!

이범준이 먼저 주먹을 날렸고, 김창익은 정당방위를 했다.

조금 세게.

호랑이 기운으로.

콰아앙!

- 끄, 끄아악! 아아아아악!

이범준은 얼굴 반쪽에 극심한 화상을 입었고, 김창익은 좌천될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사직서를 던졌다.

- 안해, 이 새끼들아.

사직서는 수리되었다.

정당방위도 인정 되었다.

길드마스터의 아들이 당한 거지만 모두가 무시하던 김창익에게 한방에 당했는데 그걸 대놓고 보복할 만큼 드레이크 길드는 체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길드로 가지는 못했다.

이 바닥 좁았다.

당장에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프리랜서 헌터로서 요즘 핫한 거대 고라니를 잡는 일이었다.

부르르릉.

아직까지 쿠야를 마주친 적은 없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주인보다 강한 고양이라니 쯧···뭔가 마주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제발 집에서만 보자, 쿠야!”

그렇게 창익은 트럭을 몰며 거대 고라니들을 쫓아갔다.

고라니들을 차로 받고, 빈사상태의 고라니와 싸워서 제압하고, 트럭에 싣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트럭에 3마리의 사체가 쌓였을 때 만난 것이 철갑 거대 고라니였다.

그냥 서로 지나치길 바랐지만 녀석이 트럭을 보고 쫓아왔다. 녀석은 고집이 세서 이런 구식 트럭으로는, 게다가 녀석의 구역인 숲에서는 따돌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나.’

한숨을 내쉰 김창익이 일단 트럭을 세웠다.

재빨리 내려 뒤로 돌아가자 철갑 고라니가 달려오고 있었다.

김창익이 달리는 속도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꿀밤 때리듯 철갑 고라니를 가격한다. 그의 몸에서 호랑이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꽈앙!

달리던 철갑 거대 고라니가 그 속도 그대로 고꾸라졌다.

녀석의 얼굴은 철갑 째로 짓눌린 채 시커먼 재가 풀풀 날렸다.

즉사다.

역시나 시혁의 호랑이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몸에 흐르는 황금 기류는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주기적으로 호랑이 연고를 바르지 않은 탓이었다.

시혁에게 연고를 발라달라고 말하기가 왜 그리 싫을까?

게다가 쿠야는 이제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황금빛을 활활 태운다는데 왜 자신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일까?

“쩝. 자괴감 몰려오네.”

도대체 왜 자괴감이 드는 걸까?

알량한 자존심일까?

어쩌면 자신보다 잘 나가는, 그래서 10년 만에 돌아와서 어느새 가족의 중심이 된 시혁이 부러운 걸지도 몰랐다.

···휴우.

창익도 이런 감정이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삭혔다. 그렇다고 시혁이 싫거나 미운 건 아니다. 언제나 보고싶었고, 만났고, 더없이 좋았다. 원한다면 목숨까지 던질 만큼. 모르긴 몰라도 녀석 역시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겠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강해져 봤자 지금과 다를 게 있을까?

친구 녀석이 너무 강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김창익의 역할이 사라져 있을 정도로.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겠지.

그는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그래도···오늘 집에 가면 시혁 녀석에게 충전 받아야 겠어.”

그렇게 김창익이 모는 트럭이 숲 속으로 나아갔다.

그런 트럭의 뒷모습을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마침 근처에서 거대한 소리가 나서 살펴본 것 뿐이었다.

거대한 소리와, 누군가가 잡은 철갑 고라니가 늘어져 있고 그것을 옮기는 현장.

단지 그뿐이었다.

보게 된 누군가가 드레이크 길드원이 아니었다면, 길드원이었어도 4팀의 팀원이 아니라서 김창익의 얼굴을 못 알아 봤더라면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엔 4팀 전원이 있었다.

한쪽 얼굴을 아직도 치료중인 이범준까지도.

빠드드드드득.

사람의 이를 가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메아리 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이범준은 부서질 만큼 이를 세게 갈았다.

“그 새끼가, 이곳에 있단 거지?”

“어떻게 할까요?”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참지 못해서, 주먹이 먼저 나가서, 그런 주제에 이기지 못해서 녀석이 퇴사할 명분을 주었다.

아버지는 정시혁이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할 것까지 예상하고 사직서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그 결과 이범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바라보는 것뿐.

그럴 때마다 김창익을 씹어 죽이는 것을 상상만 하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 기회가 왔다.

이곳은 필드. 무법천지다. 특히 필드라면 구색 만이라도 갖는 CCTV도, 돌아다니는 가디언도 없다.

게다가 낡은 트럭으로 혼자서 사냥을 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역시 정시혁에게 버림받은 실 끊어진 연 신세인 것으로 보였다.

‘뭐, 흔하군.’

남보다 못한 가족들 따위는.

아버지만 해도 각성하자마자 들러붙는 가족들을 내쫓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범준의 기준에선 김창익이 시혁에게 버림받았다는 가설이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녀석이 드레이크에 있을 때부터 버림받았던 것일지도.

하지만 혹시 몰랐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이 설명 되었고, 높은 고성이 들렸다.

“ ···예, 아버지.”

이범준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모두가 이범준의 다음 행동을 살폈다.

주먹을 꽉 쥐고 부들 거리던 이범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볼에 난 상처가 씰룩였다.

12명이 탄 대형 방탄트럭이 숲길을 질주한다.

빠른 속도로 앞트럭을 따라잡은 대형 방탄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옆에서 온 충격에 김창익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서 교통사고라니?

한숨을 내쉬며 빠져나온 김창익은 더욱 큰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

그것도 악연으로 아는 얼굴들이다.

“큭큭큭···이게 누구야. 반갑네, 김팀장?”

이범준이 자신의 트럭을바라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근데 아무리 퇴사를 했다고 해도 회사 차를 이렇게 받아서야 쓰나···이거 얼마나 비싼 트럭인데. 범퍼가 다 나갔잖아. 못해도 1억은 수리비용으로 빠지겠는데.”

“······.”

김창익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이런 곳에서 이범준을 만나다니. 게다가 11명의 4팀원이 전부 나와 실실 웃고 있었다.

“돈 없으면 다른 걸로 줘. 가령 네 목숨이라던가. 그게 아니면 이걸 돌려놓거나···!”

그리 말하며 이범준이 볼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그걸 본 김창익이 피식 웃었다.

“불쌍한 새끼. 나이도 어린 새끼가 그렇게 못생겨서 얻다 쓰냐.”

항상 자신이 녀석에게 했던 말을 이딴 식으로 돌려 받자 이범준은 차라리 허탈했다.

물론 허탈함을 뚫고 나오는 건 곱절의 분노.

“···이 씨발새끼가!”

김창익은 탱커다. 달팽이 기름을 바르고 B급을 넘어섰다.

상대인 이범준 역시 B급. 그리고 나머지 11명은 C급과 D급이다.

하지만 김창익에겐 호랑이 기운을 사용하며 익숙해진 전투감각이 있었다.

딴딴한 몸으로 맞아줄 건 맞아주고, 그러면서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카운터를 꽃아 넣는 방식은 지나가던 A급이 봤다면 경탄할 정도로 스마트한 전투법이었다.

D급과 C급이 하나 둘씩 쓰러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오면 온 몸에 황금빛 기운을 둘렀다.

무협지로 보자면 구명절초나 다름 없다.

콰앙!

뒤로 쭉 날아가는 4팀.

특히 이범준은 저 황금빛 기운에 이를 갈았다.

저 기운에 노출되고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 되었다.

저것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다 떼로 덤벼!”

그리 말하며 본인이 뒤로 가는 것이, 다른 팀원들을 고기방패로 쓰고 마지막에 큰 한 방을 노리려는 개수작 같았다.

다른 4팀원들도 그걸 알지만 명령대로 움직였다. 얼굴엔 ‘씨발씨발’이라고 적혀 있는데 뒤로 빠진 저 녀석은 보지도 못하겠지.

그렇게 녀석들이 달려든다.

김창익은 다시금 호랑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호랑이 기운이 불 붙는데 실패한 라이터처럼 칙칙 거리더니 꺼져버렸다.

베터리라도 다 되었다는 듯이.

김창익의 입가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좆됐네.’

짧은 시간 많은 얼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의외로 마지막에 떠오른 인물은 시혁이었다.

‘혹시 나 죽으면 시아와 단비를 부탁하마.’

라는 섣부른 생각을 하는 그때였다.

거대한 뭔가가 날아와 4팀원들을 덮쳤다.

콰아아앙!

“크헉!”

“커허억!”

4팀원 절반을 가격하고 깔아버린 것은 어디선가 날아온 철갑 거대 고라니였다.

달려온 게 아니라 날아온 철갑 거대 고라니.

도대체 누가 저 큰 녀석을 짐짝처럼 던진 것일까?

“어허···이런 산길에선 고라니를 조심해야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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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자 친구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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