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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혁의 등장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나가 떨어진 헌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철갑 고라니를 피한 헌터들도, 또한 이범준 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씨발, 좆됐다.’
이번에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후회는 언제 해도 왜 이렇게 늦은 것일까?
무릎을 꿇어야 할지 도망을 쳐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필사의 각오로 덤벼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패닉상황.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시혁은 김창익에게로 저벅저벅 걸어갈 뿐이었다.
다가오는 시혁을 바라보던 김창익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태까지 날 미행한 거야?”
“물론.”
그리 말하며 시혁이 손을 뻗는다.
김창익에게 호랑이 기운을 충전해 주려는 의도였다.
다가오는 손을 바라보며 김창익은 많은 것을 생각 했다.
오만가지의 감정이 그를 물들이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퇴직한 상황임에도 자존심 부리며 말을 하지 않았던, 숨기려고 거짓말로 일관 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것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미행을 당했다는 모멸감이 합쳐져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감정이 삐죽 튀어나왔다.
저벅.
김창익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갈 길 잃은 시혁의 손도 살며시 내려간다.
둘의 눈이 무겁게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리···가족이라도 몰래 따라오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무리 가족이라도 인마···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 거야.”
말을 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눈시울도 붉어진다.
그것을 보는 시혁의 입에서도 묵직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 새끼가 왜 이러는지 시혁이 모르겠는가?
이러지 않았으면 죽을 뻔하지 않았냐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상황에서 전혀 불필요한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미행한 건 미안하니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 그 다음 녀석의 잘못을 따져야 할까? 그렇다면 이 녀석은 도대체 뭘 그리 잘못한 것일까?
시혁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내뱉었다.
시혁은 지금 이 녀석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 우린 가족이니까. 프라이버시. 믿음. 중요하지.”
“······.”
당연하다. 둘은 가족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가족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미행하고 있었다는 게 김창익은 화가 났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어쨌든 고마운 거 아는데, 화가 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는 자기 자신이 미웠다.
다시금 자괴감이 몰려올 때 묵직한 시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가족 이전에 우리 친구 아니냐. 너, 친구 대 친구로 생각해 봐라. 네가 나였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떨 것 같냐? 너, 옛날에 내가 쳐맞고 돌아다닐 때 어떻게 했어?”
“······.”
시혁이 언제나 골목대장인 건 아니었다.
옛날, 서로의 학교가 달랐을 때 여기저기 상처가 늘어나 있는 주제에 강한 척 할 때도 있었다.
그때 김창익은 시혁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시혁을 괴롭히던 놈에게 달려들었다.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덩치 셋과 맞붙어 흠씬 쳐맞고 바닥에 누워서 울면서 화내면서 결국엔 웃었던 기억.
“···결국 반 죽여 놨지.”
“우리가 좀 더 큰 후였지만.”
······.
목 언저리가 시큰하니 매웠다.
말이 나와야 하는데 말보다 뜨거운 눈물이 앞서 흐른다.
결국 김창익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나···나 진짜 많이 힘들었다. 도와줘라 친구야.”
무너지려는 창익의 몸을 시혁이 감쌌다.
“맡겨 둬.”
황금빛 기류가 둘의 몸을 휘감았다.
* * *
창익에게 호랑이 기운을 채운 시혁이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감히 자신의 친구를 건든 찢어죽일 놈들이 눈앞에 있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생각은 없다.
그래서 적당한 것을 찾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축 늘어진 철갑 거대 고라니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고, 철갑 거대 고라니에 깔린 세 명은 몸이 눌려 있을 뿐 아직 멀쩡했다.
시혁은 천산갑처럼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꼬리 부분을 쥐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콰아앙!
신음을 흘리던 세 명이 유압프레스에 깔린 것처럼 피떡이 되어 나뒹굴었다.
거대한 철갑 거대 고라니를 몽둥이처럼 빙빙 돌리자 저릿저릿한 풍압이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우리도 시켜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시혁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벌레를 보는 표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희는 사람 죽이는 걸 누가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행하나?”
“···그, 그건···.”
이곳에 어쩔 수 없이 온 놈들은 없다. 그것이 시혁의 황금빛 눈동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곳에 죄가 없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가담한 만큼의 이득이 생기니 오히려 좋다고 따라온 녀석들 뿐이다.
“어쩜 이런 쓰레기들만 골라서 팀으로 묶어 놨을까.”
헌터라는 족속들에 대한 불신감이 절로 생길 정도였다.
“······.”
녀석은 시혁에 말에 대답도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시혁 역시 대답 대신 고라니 철퇴를 휘두를 뿐이다.
퍽! 퍽!
철갑 거대 고라니가 휘둘러질 때마다 딱 한 놈씩 피떡이 되어 나뒹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명씩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으아아악!
도망치는 놈도 있었다.
시혁은 묵묵히 거대 고라니를 왼손에 고쳐 들곤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콰앙!
왼쪽 무릎이 소멸된 4팀원 하나가 나뒹굴었다.
시혁은 고라니를 질질 끌고 가 그 녀석에게 휘둘렀다.
퍽!
시혁은 고라니를 놓았다. 그리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 놈을 끌고 와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았다.
헐떡이는 놈도, 신음을 흘린 놈도 있었지만 하나같은 공통점은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4팀의 12명 중 단 한 명만이 멀쩡했다.
이범준.
시혁은 이범준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범준은 그것을 자신 편한 대로 해석했다.
‘그래, 아무리 정시혁이라도 드레이크 길드는 무시할 수 없겠지.’
어쩌면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범준은 당장에 무릎을 꿇었다.
“···무조건 죄송합니다. 제가···제가 전부 잘못했습니다. 감히 당신의 가족을 건드렸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었다. 그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던 김창익도 덩달아 웃는다.
이 새끼가 하는 짓거리가 역겹기 그지없었다.
울다가 웃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난 널 죽이지 않아. 넌 내 친구의 몫이거든.”
“그래. 넌 내 몫이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김창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이범준은 넙죽 엎드릴 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 죄송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이대로 죄송하다고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나? 차라리 일어나서 나에게 덤벼라. 그게 더 살 가능성이 높을 거야.”
고개 숙인 이범준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더 중요한 건 저 녀석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정시혁은 드레이크 길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작정 비는 것은 살 길이 아니었다.
“호랑이 앞에서 호랑이 행세 하는 여우 같은 새끼가······.”
“큭큭큭큭! 이 녀석, 아까부터 자기 소개를 열심히도 하고 있네. 그리고 진심으로 1:1로 맞붙으면 네가 날 이길 거라 생각하나?”
“···당연히 지겠지.”
그리 말하며 둘을 감싼 황금 기운을 노려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시혁이 창익에게 충전해준 것을 알 수 있는 그 기운을 말이다.
예전에 당했던 것 역시 저 기운 때문이었다.
“넌 저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다.”
“그건 듣고 흘리기 힘들군. 기운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도 너 하나쯤은 충분히 피떡으로 만들 수 있거든.”
김창익이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무덤을 파는군.”
이범준이 일어나며 정시혁을 보았다.
“제가 이기면 저는 살려주십시오.”
그 말에 4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혁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부하들을 앞세운 탓에 이범준은 비교적 지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저 녀석은 숨을 좀 골랐을 뿐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사람은 자신을 빗대어 남을 판단하기 나름이다.
기운을 사용하지 않겠다 말했지만 그럴 리가 없기에 그 부분만 단단히 경계하자 생각한 이범준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선언하듯 시혁에게 말한다.
“제가 이겨서 나간다면, 이 일을 공론화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약속을 지킬거라 믿습니다.”
시혁이 피식 웃었다.
“끝까지 염병을 떠는군. 넌 그럴 수가 없다니까 그러네.”
“···그 말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고오오오.
이범준이 자신의 병기, 양손 망치를 쥐었다.
“죽이진 않으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김창익이 웃는다.
“난 죽일거다. 너에게 쌓인 게 많거든.”
“이 새끼가 끝까지!”
이범준이 달려들었다.
그의 장기는 무거운 양손망치를 손망치처럼 빠르게 휘두르는 괴력과 풍압에서 발생되는 삭풍이라는 스킬효과였다.
반면 김창익은 맨손이다. 공격력보단 버티고, 막고, 조금씩 어그로 관리를 할 땐 맨손이 더 유용했다.
후앙! 후앙! 후아아앙!
망치가 붕붕 거린다. 애먼 공기만 타격되어 삭풍이 나아가 쓰러져 있는 관람객들을 공격했지만 김창익에게 닿지는 않았다.
“역시 여우새끼, 호랑이의 힘이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반면 김창익은 시혁과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뭐야. 이 새끼 어떻게 기운이름을 알지? 우연인가.”
“우연이겠지.”
“그런가.”
확실히 힘에선 녀석을 압도하지 못한다.
녀석도 창익도 같은 B급이었으니까.
게다가 힘은 저 녀석이 더 우위였다.
하지만 적의 장기를 받아주는 건 멍청한 짓. 답답한 녀석이 망치를 양 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후 휘두를 때 창익이 뱀처럼 움직였다.
깡! 소리와 함께 창익의 어깨가 망치를 받아냄과 동시에 흘렸다.
동시에 파고든 창익의 손끝이 녀석의 왼쪽 겨드랑이에 송곳처럼 꽂힌다.
푸욱!
“어억!”
탱커의 몸은 단단하다. 하지만 모두가 취약한 부분은 탱커 역시 취약했다. 김창익도 탱커. 탱커의 강철 같은 손끝이 그곳을 가격하자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쏟아졌다.
지친 상태에서 상대방을 상대하는 완벽한 수였다.
청그렁!
양손도끼가 떨어진 후부턴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퍽! 퍽!
뻐어억!
김창익의 주먹이 이범준의 여기저기에 박혔다.
“으아아악!”
이범준은 몸을 웅크린 채 뒤로 물러나며 그것을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힘만 세면 뭐하나. 힘을 제대로 사용할 기술이 없는데. 애초에 넌 팀장급이 아니야.”
뻐억!
“커헉!”
송곳 주먹에 가격당한 녀석의 턱이 내려왔다.
“아버지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낙하산에”
빠악!
그 턱을 송곳주먹이 빗겨 친다.
“탱커인 주제에 부하들을 고기방패로 내세우는 놈이 이기기엔,”
으적!
“네가 여우라 말하는 내가 좀 강하다. 그리고······.”
화르르륵!
“도대체 누구더러 여우라는 거냐.”
그의 몸에 불이 붙었다. 미약하지만 확실한 불길. 그것은 결코 시혁이 방금 채워준 호랑이 기운이 아니었다.
노란색.
황금색보다 찬란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김창익이 뽑아낸 자기만의 호랑이 기운이었다.
“잘 막아라. 뒤지기 싫으면.”
노란 기운이 담긴 주먹이 격발 직전의 권총 공이처럼 뒤로 젖혀졌다.
“잠······!”
콰아아아앙!
일직선으로 날아간 이범준이 다른 팀원들을 볼링핀처럼 쓰러뜨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이범준의 상반신 전체가 숯덩이처럼 불탔다.
거기까지 확인한 김창익이 뒤를 돌아 친구를 바라봤다.
그의 친구 정시혁은 주먹을 꽉 쥐며 기쁘게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냐!”
“좀 됐다. 쿠야에 비하면 아직 미숙하지만 말이지.”
이젠 마무리를 해야 할 때.
“이젠 네 힘을 빌리···아니, 감사히 사용하마.”
화르르륵!
노란 기운이 황금으로 넘실거린다.
김창익이 다가오자 이범준이 울상을 짓더니 눈물을 흘렸다.
“···사···살려···주세요. 제발······.”
김창익은 대답 대신 주먹을 휘둘렀다. 온 힘을 다한 주먹이 호랑이 기운에 힘입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것이 주변으로 퍼지며 이범준과 4팀의 전원이 불길에 휘말렸다.
시혁이 묵묵히 다가와 황금 불길에 힘을 더했다.
창익을 죽이려던 열두 구의 시체가 그렇게 흔적조차 없이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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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자 친구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