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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김창익의 낡은 트럭을 타고 경계지역으로 향하는 길.
김창익이 운전을 하고, 시혁이 조수석에 앉았다.
길가에 가는 고라니나 철갑 고라니는 보이는 족족 잡아서 트럭에 실었다. 3분에 한 번 꼴로 헌터들의 트럭을 볼 즈음이 되어서는 더 이상 몬스터를 쌓을 수 없을 만큼 사체가 쌓여 있었다.
“이거 다 팔면 얼마쯤 되냐.”
“···거대 고라니가 300. 철갑 고라니가 700쯤 하니까 2천 정도 아닐까. 거기서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면 1500정도.”
“많이 벌었네.”
“그러게.”
덜컹. 덜컹.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김창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을까?”
“뭐가?”
“···그냥, 너무 일을 키운 게 아닌가 하고.”
드레이크 길드는 길드랭킹 15위의 중대형 길드다. 더군다나 길드 마스터는 S급. 너무 일을 크게 키운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럼 널 죽이려 했던 놈을 살려야 했을까?”
“···그건 아니지.”
“트럭이고 뭐고 전부 태웠다. 흔적을 아예 지웠지. 그리고 너, 액션캠 가지고 있잖아. 여차 할 땐 정당방위였다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거다.”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잖냐.”
“그럼 뭘 걱정하는데.”
“···아들이 죽은 걸 알면.”
“알면. 뭐.”
“······.”
거기까지 말한 김창익이 입을 다물었다.
그 다음 말도 하지 않았다.
시혁의 입에서 ‘알면 뭐.’ 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충분했다.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었다.
시혁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이 녀석이 했던 말을 드디어 돌려줄 때가 왔다.
“이럴 땐 고맙다고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었는데.”
피식.
“고맙다.”
“그래. 넌 잔말 말고, 시아 걱정이나 해.”
그 말에 김창익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 혹시 나 때문에···무슨 일이 생긴 거야?”
창익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성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시아한테 말 안 할 거냐?”
“······.”
“시아, 손 맵더라. 뭐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오늘, 대충 얼마 벌었다고 했지?”
“···1500정도.”
“그럼 15대 정돈 덜 맞을지도. 달게 맞아라.”
“······.”
* * *
사냥을 끝마친 시혁과 창익은 집으로 돌아왔고, 창익은 시아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물론 굳이 죽을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시혁이 이상하다 싶어서 창익을 따라다녔고, 창익이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걸 봤다는 선에서 그쳤다.
그것을 들은 정시아는 창익의 등짝을 거세게 때렸다.
빡! 빡!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김창익은 활어처럼 꿈틀거렸다.
장난이 아니었다.
장난을 할 상황도 아니었고.
잔뜩 울먹이며 남편을 때리는 정시아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곳엔 없었다.
“내가 말 했지. 우리끼리 숨기는 거 없자고 했지.”
말을 하는 정시아의 커다란 눈망울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니?”
김창익은 정시아의 눈물을 보곤 석상처럼 굳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새삼 실감 되었다.
“미안해···정말 미안해.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정말···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자존심 때문에 숨겼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숨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들통난 지금 김창익은 수명이라도 사용해서 시간을 거스르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정말···정말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다 잘못했어.”
하지만 정시아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오고, 가족이 모이고, 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도와줘서 등급도 오르고, 돈도 더 잘 벌게 되고, 버팀목이 하나 더 늘었다고 마냥 좋기만 했을 뿐 정작 같은 침대에서 자는 배우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녀가 행복에 젖어 있을 때 김창익은 남몰래 아파하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그게 부끄러웠다.
“내가 더 미안해. 더 살피고 더 챙겼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난 그냥 행복해서.”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흐느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혁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부으으응. 하는 진동소리.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한 시혁의 미소가 약간 굳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감동적이라면 감동적이고 격정적이라면 격정적인 순간이 끝났다.
시혁은 조용히 주방으로 가서 물을 올렸다.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엔 역시 안정탕면이었다.
* * *
후루루룩 하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던 어느 순간, 시혁이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아. 너는 보건소를 계속 다닐 생각이야?”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하긴, 듀얼 클래스로 각성까지 했는데 보건소를 다니는 건 네 성미에 안 맞겠지.”
“그러엄. 팀 활동도 했었는데.”
시아는 처음부터 보건소에서 근무한 게 아니었다. 왕년에는 창익과 함께 팀을 꾸려서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때 참 죽여 줬었지.”
어쩌다 어그로가 튀어서 달려드는 고블린의 턱 끝을 꺄아악 거리면서도 정확하게 주먹으로 꽂아 넣던 장면이 창익의 눈에 선했다.
“그때 이후로 내가 얼마나 어그로 관리에 신경을 썼는데. 너 다치게 안 할라고.”
“어머. 그랬었어? 전혀 몰랐었는데!”
“옛날 생각 나니까 좋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 시혁이 한마디 거들었다.
“길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나도 좀 들어가고.”
“······?”
둘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음···사실 아예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괜찮겠냐?”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다른 더 좋은 곳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거잖아.”
가령 대기업 길드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가디언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한각협의 중책으로라도 들어갈 줄 알았다.
시혁이 가고자 하면 알아서 모셔갈 곳은 넘치고 넘쳤다.
“가디언 쪽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거절했어. 아마 좋은 조건이었을 텐데, 그냥 거절하게 되더라고.”
처음엔 그게 그저 자신이 아직 준비가 안 된 줄 알았다.
가족도 만났고, 이제 평화롭게 쉬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 김명석이 또 다시 시혁에게 물어본다면 대답이 달라질 것 같았다.
“내 위에 누가 있는 기분이 별로더라고.”
그래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는 이미 가족이라는 굴레에 속해 있다.
“어차피 모두 헌터 일을 할 거라면, 최소한으로 나마 묶여 있자.”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느낀 사실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김창익과 정시아와 길드를 결성 했더라면, 길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의 사이가 깊다는 언질이라도 말하고 다녔더라면 김창익이 이런 무시를 당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정시아도, 단비도, 나아가 쿠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길드를 만들 생각이야. 그렇게 알고들 있으라고.”
그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김창익은 이미 프리랜서였고, 정시아 역시 그만두고자 하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아니, 누군가는 시아가 제발 그만두기를 바라는 일은 적고 위험도 낮은 직종에 있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끝낸 시혁은 단비의 방으로 갔다.
단비는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그런 단비의 볼을 한 번 쓰다듬어준 시혁이 동생의 집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온 그가 그제야 스마트폰을 열었다.
모르는 번호로 날아온 문자 하나가 시혁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다.
- 범준이가 죽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찾아갈 수고를 덜었군.”
시혁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예비 길드마스터로서 하는 첫 임무였다.
* * *
이상근은 아들의 제안을 묵살했다.
절대 하지 말라고 엄포를 넣었다.
하지만 전화가 끊긴 순간, 이상근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하지 말라 말했지만, 아들은 실행에 옮길 거라는 것을.
그에게 허락을 구하려고 했던 전화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음을.
언제나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달렸다.
아들 녀석의 슈트엔 위치추적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으니 장소를 특정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체도, 자동차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고 감쪽같이 소멸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불어올 뿐이었다.
아들은 죽었다.
그렇다면 김창익이 아들을 죽였을까?
그럴 리가.
김창익이 B랭크에서 인정 받는 실력자라지만 고작 그뿐이다.
아들을 포함한 4팀의 집단린치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단 한 명의 이름이 떠오른다.
“정시혁.”
휘이이잉.
이상근은 아들의 무덤에 서서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화풀이라도 하고싶지만 그 흔한 고라니조차 그를 피해가는 듯했다.
조용한 바람이 볼을 스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복수를 하고싶다.
하지만 공권력의 힘을 빌리자니 심증만 있을 뿐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만약 증거가 있어도 그것은 오히려 이쪽에 불리하다.
그러니, 그가 인과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참아야 했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던 이상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력감이라는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해선 안 되는 것을 알고 꾹 눌러 참는 것은 이렇게나 무력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근은 그의 아들에게 항상 이런 감정을 강요했다.
“네가···이런 심정이었구나.”
녀석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했다. 녀석은 너무 공격적이었고, 모험심이 강했으니까.
자제가 필요했다.
물론 언제나 아들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참 화도 많이 냈는데···이제 화를 낼 아들이 세상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아들이 살아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미안했다. 참는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로구나.”
참아야 하는 이 상황에서 자신 역시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스마트폰을 들었다.
자신의 길드를 더 위로 끌어 올려줄 다크호스라고 생각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서 조금씩 마음을 얻으려 했던 상대. 알아낼 방법이 있었고, 알아 냈어도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이 없는 그 번호로 이상근이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렇게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물론, 자신이 질 수도 있었다. 아니 십 중 팔구 자신이 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스킬은 시간과 장소가 주어졌을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정시혁을 맞을 준비를 했다.
필사적으로.
그가 올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과연, 시혁이 등장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오히려 좋았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말이야.”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 아들이 네 가족을 죽여도 되겠냐 했을 때, 난 분명히 반대했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참지 못했고, 일이 일어났지. 그것에 대해 사과할 건 사과하마.”
이상근은 고개 숙여 목례했다.
정중한 행동.
하지만 시혁은 그런 이상근을 꼴같잖다는 듯 바라볼 뿐이다.
곧 그의 말이 이어진다.
“잘못 가르친 아들이지만 내 아들이었다. 그러니···아비 된 입장에서 복수를 해야겠지.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은원을 정리하려고.”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은 바로하자. 넌 아들을 제대로 가르쳤다. 네 모습 그대로를 빼다 박게 좆같이도 가르쳤어.”
“······?”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창익이를 죽여도 된다고 했겠지. 그저 경험의 차이일 뿐, 너나 네 아들 놈이나 똑같은 개새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아들을 본인처럼 개같이 길러놓은 주제에 본인은 사람인 척 하는 꼴이 역겹기 그지없구나.”
“······.”
초탈한 듯, 뭔가 득도한 듯 무표정 하던 이상근의 표정에 파문이 일었다.
실핏줄이 돋아 나며 악귀나찰의 얼굴로 변한다.
“씨발새끼···죽어도 넌 죽이고 죽겠다.”
시혁의 입 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이제야 개새끼 다운 표정이 되었군.”
그런 시혁을 향해 이상근이 달려들었다.
수 시간 동안 준비한 것들이 이상근의 몸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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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자 친구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