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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쾅쾅쾅!
김민수는 멍하니 정시아와 김창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불개미들이 터져 나가고 있지만, 그저 멍하니 바라봐도 될 만큼 사냥은 안정적이었다.
자신이 기여하는 바는 없다.
선두 개미들이 서 있는 곳을 늪으로 만드는 것 정도가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으니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늪을 만든 후 그것을 토대로 다른 버라이어티한 공격을 시도하려던, 그래서 파티의 주도권을 잡으려던 김민수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이상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슬펐다.
김민수가 이렇게 상심하는 와중에도 두 부부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며 불개미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김창익의 주변에 붙어 있는 노란 불길. 그 불길을 머금은 주먹이 불개미들에게 적중할 때마다 그 여파가 뒷줄의 개미들까지 미치고, 공격이 닿은 모든 불개미들이 진짜 불이 되어 결국 잿더미로 화한다.
그런 큰 힘의 주먹을 무한정으로 휘두르고 있는 게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김민수의 눈에는 정시아가 더욱 가관이다.
정시아의 불길은 아예 화르륵 타오르고 있는 황금의 불길이었다.
콰아아앙!
김창익보다 넓은 범위,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정시아의 주먹이 개미들에게 닿을 때마다 김창익보다 더한 유효타를 냈다.
물론 김창익보다 손이 느리고, 움직임도 굼뜨지만 오히려 파괴력에선 앞섰던 것.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형수님 힐러 아니었나? 근접 딜러였어?’
김창익은 자신의 호랑이 기운을, 정시아는 시혁의 호랑이 기운을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민수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몰라보게 화력이 약해지는 정시아.
김창익은 정시아의 허리를 잡고 뒤로 두 번 도약한 후 바로 세웠다.
“자기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힐이나 해 줘.”
“피. 나도 싸울 수 있는 걸?”
“걱정되니까 그래. 그리고 힐러가 무슨 싸움이야? 호랑이 기운 다 떨어져 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나두 내꺼 피워내고 싶당······.”
“나중에 연습하자. 내가 요령을 알아.”
“알았어! 오빠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또르륵.
두 부부의 단란한 모습을 바라보는 김민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너무나도 부러우면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걸 김민수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친 듯이 강력한 시혁형님보다 창익 형님이 부럽다.
인생의 승자가 있다면,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창익 형님으로 하고 싶을 정도였다.
‘크윽. 부, 부럽다. 나도 저런 예쁜 사랑 하고 싶다!’
물론 김민수는 명색이 A급 헌터다.
그러니 여자들도 많이 따랐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여인들은 전부 자신의 돈과 지위만을 볼 뿐 자신을 보지 않았다.
만남이 진지해져서 자신의 동생 녀석을 보여준 순간 떠나간 모든 여인들을 겪으며 김민수는 그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허탈했다.
차라리 김민수가 길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절 겪었던 적지 않은 헌터들처럼, 이 여자 저 여자 갈아 치우며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본인들의 행복이라 굳게 믿는 족속이었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바라봐주는 단 한 사람만을 원했다.
내가 못생긴 탓일까? 아니면 내 머리가 너무 까진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동생 때문일까?
단 한 번도 김민수는 정시아가 김창익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시선을 여자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 물론 남자에게도.
그러니, 돈이라도 미친듯이 벌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 말은 틀렸다!
자신이 더 돈이 많아서 강남에 살고, 그러면서도 동생 녀석을 케어 하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할 바엔 가장 좋은 조건의 남자가 되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에 최대한 가까운 조건의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렇게 굳게 생각해 왔는데, 저 부부를 보니 예전에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들이 생각나고 기분이 싱숭생숭해 버리는 것이다.
눈앞에 진짜가 있다.
자신은 가짜를 쫓고 있었다.
이런 것도 우울한데, 심지어 무력에서도 자신이 밀리고 있다.
‘젠장. 아이들이 보고싶네. 녀석들아, 나 이곳에서 완전 스킬 셔틀 신세다.’
자신이 잘한다 생각했던 분야가 부정당한 느낌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더욱 축 처지는 어깨.
그런 어깨를 누군가가 포근하게 감쌌다.
“혀, 형님?”
“어찌 그리 다운 돼 있어?”
“아니 그냥···허허, 뭐. 그렇습니다. 제가 이 파티에서 맹활약을 할 줄 알았는데, 부끄럽네요.”
시무룩한 소리만 하는 김민수에게 시혁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저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말을 하던 김민수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오른팔을 치료할 때 아주 잠깐. 그리고 이예지 가디언에게 아주 많이, 정체모를 무언가를 해 줬을 때처럼 정시혁의 손이 빛나고 있었던 탓이다.
“이제 달라질 거야. 날 믿어라.”
“······.”
김민수는 그 이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시혁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곧 시혁의 손에서부터 전해져 온 부드러운 무언가가 김민수를 감쌌다.
김민수는 갑자기 몸 안의 모든 것들이 활성화 되는 것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
하지만 간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서, 거짓말을 보태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아니라, 진짜 다시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모근까지도!
“이, 이게 뭡니까! 아니 이게 뭔데요!”
“이유가 필요하냐?”
“곤란하시면 됐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힘이···힘이 샘솟습니다! 끄오오오오!”
김민수는 알 수 있었다. 형님이 이예지에게 해줬던 것을 자신에게도 해주었다는 것을!
이예지는 그때 S급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화력과 지속력을 보였다.
저게 무슨 자신과 같은 A급인가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민수가 전장으로, 아직도 개미들이 득시글거리는 그곳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언제나 생각해 왔던, 그렇지만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각에만 그치던 것을 행했다.
곧 그가 밟고 있는 땅에 탄성이 부여된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땅의 탄성화 스킬이다.
뿜어진 땅의 탄성화는 김창익과 정시아가 있는 곳까지 이어졌다.
김민수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30미터.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범위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불개미들이 있는 곳으로는 땅의 탄성화가 아닌 땅의 늪지화 스킬이 사용되었다.
단 한 번에 아군이 있는 곳은 탄성 있는 땅으로, 적군이 있는 곳은 늪지로 바꿔 놓았다.
늪지 역시 전과 같지 않았다. 훨씬 깊은 곳 까지가 늪이었다. 점성 또한 물에 가까워져서 가라앉는 속도 역시 훨씬 빨랐다.
그리고 그 경계면으로 거대한 벽이 세워졌다.
토벽 세우기 스킬을 원거리로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에 땅의 탄성화, 땅의 늪지화, 토벽 형성을 끝마친 김민수가 외쳤다.
“땅을 탄성 있게 만들었습니다. 잘 이용하시면 됩니다!”
갑자기 땅이 트램펄린처럼 되어 당황하던 김창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몇 번 방방 뛰어 보더니 4미터 크기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후 밟았다. 벽 밑에선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김창익은 그런 녀석들에게 호랑이 기운을 날리며 수월하게 사냥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발을 헛디뎠다.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늪에 빠지진 않았고, 녀석들의 머리 위를 밟은 채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곳에서 밀려오는 불개미들을 상대했다.
정시아는 놀라서 김민수를 부르려 했지만 그만 두었다.
좋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정시아가 호랑이 기운을 한껏 끌어올린 후 김창익에게 뻗었다.
노란 불길을 뿜어내던 김창익의 몸에 황금 불길이 덧씌워지면서 힐링이 완성되었다.
탱커라서 상처도 잘 나지 않았지만 불개미가 상처를 내어 봤자 금방 아무는 상태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김창익을 회복시켜주는 이 기운이 다른 개미들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와. 우리 여보 아이디어가 남다르네!”
김창익이 씩 웃으며 전장을 돌아다녔다.
불개미들을 발판 삼아 진군 중인 병정 불개미가 보였다.
모든 개미들은 보통 일반개미보다 병정개미가 거대하다.
이 몬스터들 역시 그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턱의 길이만 2미터가 넘었다.
창익은 징검다리들을 밟으며 녀석에게 다가간 후 주먹을 날렸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대가리에 금이 쩍 간다.
하지만 부족했다. 역시 단단하기가 다른 불개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다면 숨겨 왔던 시혁의 호랑이 기운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콰아아앙!
다시 한 번 뻗어진 황금주먹이 병정 불개미를 불태웠다.
“형님!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벽을 비탈길처럼 세워 놓은 김민수가 5미터 짜리 철퇴의 모습을 한 채 머리만 내밀고 씩 웃고 있었다.
창익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민수라는 이름의 바위철퇴가 구르며 모든 불개미들을 짓밟으며 지나가 창익의 앞까지 도달했다.
더 이상 몰려오는 개미들은 없었다.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죽인 개미들이 문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다.
마주치는 뜨거운 시선.
땀으로 흥건한 두 남자의 손바닥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탁!
그런 둘에게 시아가 쪼르르 달려가 힐링을 해주었다.
이런 식의 전투가 네다섯 번 반복되었다.
어느새 그들의 눈앞에는 보스 룸이 열려 있었다.
* * *
거대 여왕 불개미.
20미터의 거대한 체고, 체고 만큼 거대한 배에서는 지금이 순간에도 개미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왕 불개미는 1000마리에서 1500마리 정도의 자식들을 낳는다.
아직 외피가 마르지 않아서 말랑말랑한 이 녀석들은 보통 불개미보다 약하고 작지만 그 숫자는 압도적이다.
여왕개미가 배에서 뿜어내는 갓 태어난 불개미의 숫자는 대략 1분에 100마리.
그것들을 상대하며 최대한 빨리 여왕 불개미의 약점을 공격해 죽이는 것이 보편적인 공략법이다.
녀석의 약점은 가슴과 배를 이어주는 얇은 부분.
뱃속에 개미들이 많이 들어있는 만큼. 그러니까 빨리 클리어한 만큼 모든 여왕개미류의 배는 비싸게 팔린다.
시혁이 간단하게 도약했다.
50미터를 도약하는 것쯤은 풀메뚜기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용해야 할 때는 지금!
거대 여왕 불개미의 가장 단단한 부분. 머리 부분에 그의 발이 닿았을 때다.
꽈아아앙!
여왕 불개미의 목이 푹 꺼졌다. 팔다리를 움찔 거리던 녀석의 몸이 엎어졌다.
이제 막 개미들을 생산하고 있던 거대 여왕 불개미의 배는 단 10마리의 개미들도 생산하지 못한 채 생산을 멈췄다.
김민수는 믿을수 없다는 듯 고개를 회회 저었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여왕 개미가 죽다니.”
그것도 가장 단단한 머리를 노렸다. 여왕개미의 머리는 AA급 헌터들이라 해도 깨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것을 해체해서 재 가공 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것을 단 한 번의 짓밟음 만으로 부쉈다.
수십 조각으로 해체를 해놓은 채로.
온전해야 돈을 많이 받는 부분은 그대로 남기고, 해체를 해 놓으면 돈을 더 많이 받는 곳은 부숴 놓다니?
‘형님의 힘은···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아주 잠깐이지만 몰라보고 덤비려 했던 과거가 떠오르며 소름이 돋는다.
그때 만약 덤볐으면 뼈도 못 추리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C급 헌터 15명이 들어가야 겨우 클리어 가능하다는 이곳이 2시간 만에 클리어 되었다.
‘형님이 나섰더라면 10분도 안 걸렸을 것 같다.’
클리어 한 후 뒷처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보상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달달할 터다.
어쩌면 A급 던전의 보상과 비견될지도 몰랐다.
그때 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출구가 열렸다.
저곳으로 빠져 나가면 던전은 클리어 된다.
김창익도, 정시아도, 그리고 김민수도 출구로 향했다.
그게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시혁은 멈춰 선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잠깐만.”
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전의 기시감이 다시 한 번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랄까. 몸 내부에서 맥동하는 혈관 안의 피. 그 피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참동안 허공에 시선을 집중하던 시혁이 재빨리 달려가 허공을 움켜 쥐었다.
허공은 허공일 뿐.
하지만 부질없어야 하는 그 몸짓이 만들어낸 광경은 놀라웠다.
촤아아악!
그 허공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검은 속살을 드러냈다.
“이, 이게 무슨······?”
이곳의 모두는 그것이 새로운 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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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원숭이들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