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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혁은 그곳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긴 나 혼자 들어갈게. 너희는 나가 있어도 될 것 같다.”
시혁은 이곳이 수상한 길임을, 자신은 몰라도 녀석들은 위험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우리도 들어갈 거다.”
창익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은 김민수도 마찬가지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창익 형님?”
“암. 그렇고 말고!”
정시아 역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나가도 문제야. 나가서 던전 감독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해? 클리어는 했지만 오빠는 안 나왔으니까 죽었다고 말해야 해?”
“흐음.”
시혁은 그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던전을 클리어 해버리면 오빠가 못 나올지도 모르잖아.”
“클리어 된 던전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잖아.”
“아직 클리어 이후 리셋 현상이 있다 없다 말이 많지만, 만약 있으면 어떻게 해? 안 돼. 절대로 같이 가야겠어.”
그때였다.
살금살금 검은 포탈 쪽으로 이동하던 김민수가 흣챠 하고 그곳으로 달려들어 버린 것이다.
“억지로라도 같이 갈 겁니다!”
어어 하는 사이 김민수가 검은 균열을 통과했다.
쿠당탕!
···진짜 그냥 허공처럼 통과해 버렸다.
어찌나 세게 다이빙했는지 A급 헌터인 김민수의 이곳저곳이 까졌다.
정시아가 재빨리 다가가 힐을 시전했다.
“음······.”
김창익이 포탈로 다가갔다. 검은 포탈은 마치 허공이라도 되는지 김창익을 통과해 버렸다.
그것은 정시아도 마찬가지.
눈으로 균열에 손을 왔다갔다 통과하면서 김빠졌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괜히 열 냈잖아? 문이 아닌가 본데?”
하지만 그 말은 시혁의 다음 행동으로 실효성을 잃는다.
시혁의 손 만큼은 검은 균열이 수표면처럼 수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난 들어갈 수 있나 본데.”
“···그냥 가지 마. 왠지 불안해.”
웬만하면 시아의 말을 들어주는 시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을 들어가 봐야 한다.’
정체불명의 검은 연기.
이곳은 그 검은 연기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뭔가의 이득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결국 정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앉았다.
“그럼 여기서 오빠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김창익도, 김민수도 주저앉았다.
밖으로 향하는 포탈이 공허하게 일렁거린다.
시혁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지만 3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나가. 혹시 출구가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기다릴 거야.”
“단비 생각 해야지? 엄마 아빠 어디 갔나 하고 지금 울 수도 있는데?”
“······.”
그 말에, 정시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익이 시혁의 어깨를 툭 쳤다.
“잘 다녀와.”
“형님. 다녀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피식 웃은 시혁이 검은 균열로 걸어갔다.
모두를 무시하던 검은 균열이 시혁의 몸 만큼은 물처럼 받아들였다.
* * *
균열의 내부로 들어가자 온 몸이 찝찝했다.
거대한 물살이 시혁을 어디론가 이끈다.
눈을 떴다.
검은 배경, 붉은 불빛들, 그 불빛들이 모여서 밝아지는 주변들.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미니맵을 보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저곳이 적이 모여 있는 주둔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주둔지의 개수는 10개였다.
검은 기류는 그를 일정 방향으로 끌어들였다.
적들이 모여 있는 곳들 중 시혁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곳으로 가까워지고 주변이 명학해지면서 시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의 던전이다.’
그렇다면 다른 주둔지는 또다른 던전일 터였다.
검은 기류는 10개의 던전 중 하나의 던전으로 시혁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가장 가까운 다음 역이라는 듯이.
시혁은 가까워진 던전의 천장을 밟았다.
곧 몸이 중력의 힘을 받아 아래로 떨어졌다.
턱.
주변을 둘러봤다.
100평 남짓한 공간 안에는 시혁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곤히 잠을 청하고 있었다.
시혁은 잠에 취한 몬스터 중 한 마리를 유심히 살폈다. 시혁의 눈매가 녀석을 살필수록 좁아진다.
붉은 피부, 인간과 원숭이를 섞은 듯한 외모, 등에 위치한 날개와 긴 꼬리까지.
‘아는 녀석들이다.’
그것도 너무나도 잘 아는 녀석이다.
시혁이 마경 생활을 할 적에, 정확히는 290년부터 300년까지 10년 동안 정말 질리도록 잡았던 녀석들이 눈앞에 있었다.
시혁은 이 녀석들을 날개 달린 원숭이. 혹은 원숭이라고 불렀다.
상대하면서 나름 급도 명확하게 나눠 놨다.
그런 시혁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린아이 크기에 뿔이 없는 이 녀석들은 날개 달린 원숭이 중에서도 최하급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키익?
최하급 원숭이 한 마리가 시혁과 눈이 마주쳤다.
‘곧 달려들겠지.’
죽음도 불사하고 달려드는 것이 최하급 원숭이들의 특징이었다.
시혁의 주먹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시혁을 발견한 최하급 원숭이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다.
끼에엑!
비명.
그리고 도망!
비명에 깨어난 다른 최하급들도 시혁을 바라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마치 호랑이를 만난 얼룩말 같은 모습이었다.
“······.”
시혁은 어이가 없었다. 녀석들을 상대하던 10년 간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칠 순 없다.’
시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도망치는 그것들을 잡는 허무한 손짓.
하지만 그 손짓은 허무함과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화아아악!
수십 마리의 날개 달린 원숭이가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는 그의 손이 블랙홀이라도 된다는 듯이 빨려 들어왔다.
끄에에엑!
공중에서 날개를 세게 퍼덕거려도, 손톱과 꼬리를 땅에 박고 버티려 해도 소용 없다.
그저 시혁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와 압축 될 뿐이다.
시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그곳엔 달걀 만 한 붉은 보석이 놓여 있었다.
머릿속은 순식 간에 기억을 끄집어내어 이것과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
흑곡의 우두머리 녀석이 사탕처럼 씹어먹던 붉은 보석.
녀석이 붉은 보석을 얻게 된 경로 역시 던전 안에서 로브를 쓴 원숭이 녀석이었다.
“이젠 날개 달린 원숭이가 아니라 악마라고 불러야겠군.”
시혁은 그것을 꽉 쥐었다.
붉은 보석을 손바닥으로 흡수시켰다.
몸에 변화는 없었다.
단지 뒤통수가 조금 간질거릴 뿐.
하지만 뒤통수를 만지진 않았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만져 봤자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니까.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하도록 하자.”
시혁이 걸음을 옮겼다.
시혁을 피해 악마들이 도망치려던 곳,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향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발에 채였다.
그것을 확인한 시혁의 표정이, 가뜩이나 심각하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의 손에 들린 군번줄 비슷한 것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우스 D급 탱커 김나연.]
“······.”
시혁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보았다. 몬스터의 뼈로 추정되는 그것엔 ‘싸울아비 A급 귀환자 정시혁’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목걸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하나 하나 집었다. 눈에 보이는 목걸이는 전부 42개였다. 그제야 한 구석에 놓인 짐덩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각종 무기와 아이템.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 가방들 까지.
보나마나 42명의 헌터들이 가지고 있던 것임에 틀림 없는 유품이었다.
빠드드득.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걸어가보면 알 일이다.
시혁은 자신의 가방 안에 목걸이를 챙겼다. 42개의 목숨을 짊어진 듯 묵직했다.
앞으로 걸어갔다. 던전의 길은 복잡했지만 이곳으로 오며 대강 본 갈림길 대로 이동하자 수월했다.
가는 내내 보이는 것은 뼈만 남은 시체들이다.
개와 인간을 섞어 놓은 듯한 뼈들.
이것에 살이 붙어 있다면 그가 도감에서 본 ‘코볼트’라는 D급 몬스터가 될 것만 같았다.
가면서 발견한 머리뼈만 73개.
전부 다 악마들이 먹은 것 같다.
원래 이곳에 있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난입한 악마들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보스 룸은 열려 있었다.
아무런 장막도, 장벽도 없이 훤히 보이는 보스 룸.
놀랍게도 그곳엔 보스가 있었다.
개처럼 목이 사슬에 묶인 채, 뭔가에 생체 에너지라도 빨렸는지 피골이 상접한 얼굴의 보스가 눈앞에 있다.
B급 보스 몬스터 코볼트 족장.
도감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메마른 녀석의 눈동자는 생기 하나 없이 초췌하다.
그리고 그런 보스몬스터를 감시하는 악마들이 있었다.
이마에 뿔 하나를 달고 있는 소년 크기의 악마 다섯 마리와, 두 개를 달고 있는 여인 크기의 악마 한 마리다.
시혁은 하급, 그리고 중하급이라고 부르던 녀석들.
키익!
긱, 기기···익!
뿔 하나 달린 악마들은 시혁을 보자마자 뱀 앞에 선 쥐처럼 굳었다.
두 개 달린 악마가 시혁을 확인한 후 이를 악물더니 뿔 하나 짜리들에게 명령한 후 도망쳤다.
콰앙!
마지 못해 달려드는 다섯 마리를 한 번의 주먹질로 터뜨린 시혁의 시선이 중하급 악마를 찾아 헤맸다.
중하급 악마는 허공에 난 검은 균열로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시혁이 타고 온 바로 그 검은 균열이었다.
뻗은 손 끝에서 흡력이 발생했다. 검은 균열로 반쯤 들어갔던 녀석의 몸이 점점 빠져나와 시혁에게 잡혔다.
캬아아악!
- @#%@^%^^!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인다.
생각해 보면 중하급 부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할 줄 아는 녀석들이었다.
녀석은 빨려 들어왔을 뿐 최하급 녀석들처럼 붉은 보석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검은 연기를 시혁에게 흡수 당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뿐이다.
시혁은 그것이 자신의 ‘검은 힘’이 아직 약해서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시혁은 녀석의 뿔을 양 손으로 잡고 뜯어버렸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주변이 진동한다.
“옛날엔 이걸 씹어먹고 난리를 쳤었지.”
하지만 녀석들에게서 얻은 능력은 없었다.
장침을 꽂아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마치 운영 체계가 다른 것처럼 아무 정보도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녀석은 바짝 마른 미라가 되어 눈을 까뒤집었다.
녀석은 내려놓자 퍼석 소리를 내며 잿더미로 화해 사라졌다.
시혁의 시선이 초췌한 보스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그르르르.
기분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녀석의 눈이 죽여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끝까지 고생좀 해야겠다.”
시혁은 장침을 사용해 녀석의 기억을 살폈다.
던전의 몬스터라도 짧은, 최근의 기억들은 읽을 수가 있었다.
평화로운 던전생활.
찾아오는 인간들.
죽이고,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본능적인 생활.
그 속에서 나타난 불청객. 불청객에게 당하고 먹히던 부하들, 자신을 제압하고 희롱하던 악마들. 인간이 오고, 죽고를 반복하던 비참한 생활.
쿵.
읽어들일 수 있는 기억을 전부 읽은 시혁이 녀석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주었다.
화아악!
보스 몬스터가 죽자마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포탈이 열렸다.
던전이 클리어된 것이다.
저곳으로 나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혁은 그곳으로 빠져 나가지 않았다.
이러한 던전이 앞으로 9개는 더 남아 있었다.
시혁은 조금 전 녀석이 빠져나가려던 검은 균열로 몸을 던졌다.
* * *
다음 던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보스를 제외한 모든 몬스터가 죽어 있고, 헌터들 역시 수십 개의 헌터 목걸이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고, 보스 몬스터는 갇힌 채 사육 당하고 있다.
최하급과 하급을 죽였다.
여지없이 검은 균열로 도망치려는 중하급 악마를 잡아 죽였다.
이곳에서도 32명의 목걸이를 얻었다.
다음 던전도, 그 다음 던전도, 그렇게 9개 째의 던전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렇게 얻은 목걸이가 329개.
그의 배낭이 목숨의 무게로 묵직하다.
그리고 떨어진 마지막 던전.
가장 밝은 빛을 뿜어내던 그 던전은 지금까지의 던전과는 사뭇 달랐다.
악마들의 질과 규모는 말할 것도 없다.
그곳엔 살아있는 인간이 있었다.
살아있는 8명의 헌터들이 박쥐처럼 치고 빠지는 하급 악마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329명의 생명을 거머쥔 시혁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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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원숭이들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