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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대족장은 C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로 태어났다.
입구에서 몰려 오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이 그들의 뇌에 박힌 본능이다.
얼마 후 허공에 구멍이 뚫리며 세개의 뿔이 달린 악마가 등장했다.
갓난아이 크기의 날개 달린 악마.
악마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놀 대족장이 보는 앞에서 251명의 부하들을 죽이고, 뼈만 남기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마지막 부하까지 먹어치운 악마는 어느새 소년 만 한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그 녀석에게 놀 대족장은 패배했다.
어디서 난 지 알 수조차 없는 사슬에 목이 묶인 신세가 되었다.
묶인 후, 많은 것들을 보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했던 인간들을 악마는 혼자 능히 상대했다.
녀석은 인간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뱀처럼 집어삼켰다.
이제는 뼈 마져도 남기지 않았다.
인간을 흡수할 때마다 악마의 크기가 거대해 지더니 180센티는 되어 보이는 크기로 변했다.
마치 영양분을 섭취하여 몸을 되돌리는 것 같았다.
녀석은 손 끝에서 붉은 피를 흘렸다.
아니, 그것은 피가 아니라 붉은색의 빛나는 구슬이었다.
구슬 3개가 뭉치더니 허공으로 떠올라 검은 구멍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 한 마리의 악마가 나타났다.
아니, 소환되었다.
뿔이 달려있지 않은 악마 20마리가 그렇게 소환되었다.
인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 상황이 반복되었다.
악마들이 나서고, 죽이고, 우두머리가 흡수하고, 붉은 보석을 생산해 내고, 다른 악마를 소환하고.
바뀐 점이 있다면 작은 악마 5마리가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그곳에서 또다른 악마가 소환 되었다는 것이다.
5마리가 사라지고 튀어나온 한 마리의 이마엔 하나의 뿔이 달려 있었다.
인간들을 죽이고 흡수할 수록 악마의 숫자도 늘었다.
뿔 하나가 달린 녀석들도 점점 늘어나더니 5마리가 역소환 되며 뿔 2개 달린 한마리가 재소환 된다.
그것들은 우두머리에게 뭐라뭐라 말을 내뱉더니 허공에 검은 균열을 만든 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론가 떠나는 듯했다.
수십의 악마들 역시 그 악마를 따라 검은 균열로 사라졌다.
마치 세력을 넓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되돌아 오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갔을 때보다 훨씬 세력이 많아져서 돌아오고는 했다.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정시혁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비추면서 놀 대족장의 기억이 끝이났다.
녀석이 느낀 마지막 감정은 시혁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 * *
기억을 모두 읽어들인 시혁이 뒤로 물러났다.
초점 잃은 놀 대족장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대로 잘라냈다.
퉁그르르.
“수고 많았다.”
뒤를 돌아보자, 작은 굴 뒤쪽으로 나갈 수 있는 포탈이 열렸다.
아마 바깥에선 던전이 클리어 된 것 같다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가야 한다.
물론 시혁은 저곳을 통해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했으니까.
때문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피고 살펴도 검은 기류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열 개의 던전을 모두 파괴되자 검은 길 역시 사라져 버렸다는 듯이 말이다.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난감하군.”
꼼짝없이 출구를 통해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나가서, 싸울아비 길드가 들어갔던 B급 던전으로 이동해야 겠지.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
그의 앞에는 붉은 보석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많이도 쌓아 놨군.”
보이는 숫자만 해도 수천 개는 넘어 보인다. 이것들이 3개씩 합쳐져서 최하급 악마로 변한다면 수백 마리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악마들로 만들지 않고 왜 모아 놓은 것일까?
시혁은 이곳에 오기 전 9개의 던전을 같은 방법으로 부쉈다.
부수면서 죽어가는 보스 몬스터들의 기억을 전부 읽은 결과 두 가지 로 결론을 좁힐 수 있었다.
빌런이 될 법한 녀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상납하기 위해서?
“둘 다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남길 생각이 없다.
차라리 자신이 흡수하는 게 낫다.
시혁이 손을 뻗었고, 어마어마한 양의 보석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부 흡수하는 데에 1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을 정도다.
그렇다면 시혁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불쾌하군.”
뭐랄까. 입 안 가득 설탕을 넣고 씹어먹을 때에나 느낄 법한 불쾌감이다.
뒤통수 역시 간질거렸다.
평소보다 조금 더.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절로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
그때, 옅은 신음소리가 났다.
모두가 하나 둘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시혁이 그들에게로 다가가자, 정신을 차린 이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 시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죽다 살아난 만큼 그들의 목소리엔 진심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다들 움직일 수 있나요?”
“예. 한 명만···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그리 말하며 뒤를 본다.
그곳엔 유일한 여성인 박해리가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더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시가 급한 대원이 있습니다.”
시혁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급한 고비는 넘겼을 겁니다.”
“···그런, 겁니까.”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몸도 풀렸다.
너나 할 것 없이 주저앉는다.
박해리가 위급해서 어떻게든 움직이려 한 것일 뿐 그들은 아직 휴식이 필요한 몸상태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이였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그릇을 깨트렸던 사람, 실시간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바로 박해리였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 많던 악마들을, 그들에게 절망 만을 안겨주던 것들을 전부 처리하고 그들을 구해준 남자다.
그런 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였다.
실제로 이 남자는 자신들을 치료해 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일곱 헌터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남양주 수호신···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시혁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 어떻게···이곳에 오게 되신 겁니까?”
“던전을 돌다가 갑자기 열린 다른 포탈을 타니 다른 던전으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10개의 던전을 돌았습니다. 모두가 죽어 있더군요.”
그리 말하며 배낭을 열어 보인다.
배낭 안에는 수백 개가 넘는 헌터들의 목걸이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여러분들을 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정말 천운이었군요. 당신을 만난 게······.”
그 말에 시혁이 다 머쓱해졌다.
“그리고, 제가 누군가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누구의 부탁이라고 거절하겠습니까?”
“그냥 말씀만 하십시오. 명령처럼 떠받들겠습니다.”
“아니 뭐···그 정도까지는.”
“당신에게 목숨 빚을 졌습니다. 다음에 갚을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 어린 행동들에 시혁은 머쓱해졌다.
“그···움직일 수 있다면, 이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이제 몸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리씨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박해리는 기본적으로 탱커형 헌터 답게 몸이 다부진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마르지도,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은 다부진 체격. 아무리 여자라지만 그런 이를 들쳐 메고 나갈 수 있는 컨디션의 헌터는 지금 불사조팀 내에선 없었다.
“별 수 있나요. 제가 업고 나가겠습니다.”
그리 말한 시혁이 박해리를 들쳐 업었다.
‘확실히 묵직하군.’
* * *
헌터지옥 던전의 입구엔 많은 이들이 깔려 있었다.
수많은 방송국과 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헌터들도 얼굴을 비췄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AA급 1명과 A급 14명이 한 팀을 이뤄서 들어갔으니 아무리 헌터지옥 던전이라고 해도 클리어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축하 하러 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스펙.
하지만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흘러도 던전은 클리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약속된 승리라 생각 했건만 막상 그게 아니었다.
불사조 길드의 길드마스터 정불산의 얼굴은 딱딱하다 못해 검게 죽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들어가고 싶군.’
각성자가 던전에 들어가면 클리어를 하고 나와야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들어간 기점으로 3일 내지는 4일 후부터 다시 각성자를 받아들인다.
때문에 그는 이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들어갔어야 했다.’
한각협에서 주는 특혜에 눈이 멀어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고, 모두가 죽게 생겼다.
그가 주먹을 꽉 쥔다.
‘제발 살아 돌아와라.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그때, 붉은 게이트의 색깔이 파란 색으로 바뀌었다.
와아아아아!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호성.
당연하지만 정불산 역시 환호성을 질렀다.
“크, 클리어 되었다! 클리어 되었어! 끄아아아!”
체면이고 뭐고, 너무 기뻐서 손을 꽉 쥔 채 휘두르며 나름의 세레머니를 했다.
방송국 기자들 역시 카메라를 들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을 찍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보통은 가장 주역이 되는 사람이 먼저 나오고는 했다.
암묵적인 룰이었다.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
누가 되었든 최대한 많이 살아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그렇게 흘러 갔다.
5분? 10분? 뭔가가 이상하다 싶어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웅성거리는 찰나, 일렁이는 푸른 포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누구일까?
AA급 헌터 박해리? 거기에 가려져 있던 최상위 A급 석동식?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들?
하지만 나온 인물을 확인한 순간 모든 기자들은 셔터를 누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해졌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서 나와···?”
요즘 언론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
그리고 절대 이곳에서 나올 리 없는 사람.
남양주 수호신, 정시혁.
그가 박해리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팡팡!
팡팡팡팡!
뒤늦게 터지기 시작하는 카메라 스트로보.
시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앰뷸런스 어디 있습니까?”
정불산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가 시혁 앞에 섰다.
왜 이분이 이곳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당연하지만 ‘왜’보다 중요한 말을 해야 할 때였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시죠?”
아니, 불사조 길드의 길드마스터를 모른다고?
“아···어어.”
찰칵찰칵찰칵!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정불산의 얼빠진 모습도 함께 찍힌다.
“저. 저는 정불산이라고 합니다. 부, 불산조 길드 길드마스터입니다. 아니! 불사조 길드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분 좀 받으시고요. 다른 분들 나올 겁니다.”
“아, 예.”
정불산은 졸지에 박해리를 공주 안기로 안아 들었다.
또 그 장면이 사진으로 찍힌다.
그만 좀 찍어요, 기자 양반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혁은 정불산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예?”
“혹시 괜찮으면 스마트폰좀 빌려도 될까요?”
“아···네. 그. 여기 있습니다.”
시혁은 정불산의 스마트폰을 받아서 전화를 걸었다.
가족들의 번호 쯤은 외우고 있었으니까.
녀석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기 위치가 어디···아니, 여기 택시 잡을 곳 있습니까?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아! 뭐···그! 제 차로 가시면 됩니다. 기사가 안내해 줄 겁니다. 그런데 어딜 가시려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가면 상황이 이상해진다.
인터뷰도 해야 했고, 왜 이렇게 된 건지도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시혁은 그런 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빨리 싸울아비 길드가 들어간 던전으로 가고 싶을 뿐이다.
던전 안에서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녀석들에게 빨리 가봐야 했다.
“이거, 내가 먼저 가서 녀석들 나오기를 기다리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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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각성자 협회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