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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촌이 마지막 귀환자-44화 (44/44)

&44

시혁과 김민수는 장례식장에서 준비한 식당으로 왔다.

많은 이들이 자리에 앉아서 수육과 육개장을 먹고 있었다.

육개장은 얼큰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왜 머릿속엔 육개장 작은 사발면이 생각나는 것일까?

“우리도 소주 한 잔 할까요, 형님?”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병을 따면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않니?”

“하하···그렇습니까?”

김민수가 시혁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시혁 역시 김민수의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시혁과 함께 술을 마신 김민수의 표정은 무언가 감개가 무량하다 말하는 듯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습니다만 형님. 이렇게 단둘이서 술 한 잔 항상 하고싶었습니다!”

그 말에 시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이런 날도 오는구나.”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신 게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김민수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데, 누군가 다가와 헛기침 했다.

돌아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불사조 길드의 정불산. 그리고 석동식과 박해리였다.

“예. 하하, 노린 건 아닌데 이렇게 다시 뵙네요. 혹시 괜찮다면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김민수가 일어나 시혁의 옆에 앉았다.

“하하. 소주 드시고 계셨습니까? 제가 한 잔 따라 드려도 될까요?”

시혁이 잔을 내밀었고, 정불산이 시혁에게 잔을 따랐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만···반이나마 살 수 있었던 건 다 시혁씨 덕분입니다.”

시혁은 그 말에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러게요. 정말 천운이 따랐습니다.”

그 말에 석동식과 박해리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석동식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박해리입니다. 다른 팀원들을 빌어,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그때까지 버티고 계셔 주셔서 감사하죠. 그때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면 정말 슬펐을 겁니다.”

시혁은 정말 많은 헌터들의 목걸이를 수거했다.

단 한 명도 살릴 기회가 없었다.

마지막에 발견한 불사조 길드마저 죽었더라면 시혁은 던전을 나오며 정말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식당에 있는 많은 이들이 시혁과 정불산이 있는 테이블을 주목했다.

“저희 불사조 길드는 싸울아비 길드원 분들을 형제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아! 물론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그저 은혜를 입은 만큼, 그 은혜에 보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만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정불산이 손을 내밀었다.

시혁도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석동식 역시 묵례 한 후 자리를 빠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지 박해리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남았다.

머뭇거리며 김민수를 흘낏흘낏 바라본다.

김민수는 ‘뭐. 왜 그래?’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할 뿐이다.

한숨을 내쉰 박해리가 말을 이었다.

“시혁님과 독대를 하고 싶은데,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어?”

그 말에 시혁이 고개를 저었다. 대충 박해리가 시혁과 단둘이 할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긴, 달팽이 기름을 그렇게 발라줬는데 당연히 몸에 변화가 있었겠지.

가족들 만큼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많이 발라주었다.

“몸에 변화가 있으신 겁니까?”

“···예. 감사하게도. 과분한···저조차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받았습니다. 꼭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를 구하려 하신 거잖아요? 그 행동이 모두를 살리고, 나아가 당신을 구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전 그때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언젠간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 말하는 박해리의 시선은 뜨겁기 그지없다.

그리고 시혁은 저런 종류의 눈동자를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여 보인 박해리의 시선이 이번엔 김민수에게 머물렀다.

“혹시 머리 심었냐?”

“···아니거든?”

“길드에 들어간 건 몰랐는데, 사냥터에서 종종 보면 인사나 하자.”

“갈 길이나 가라.”

그리 말한 김민수가 혼자 잔에 술을 따라 벌컥 들이켰다.

박해리가 사라지고 시혁이 물었다.

“아는 사이였어?”

“잠깐 같은 길드에 있던 적이 있습니다. 불사조 길드 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죽을 뻔 했다는 소리 듣고 좀 놀랐습니다.”

둘의 눈빛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김민수와도 좀 친해졌겠다.

이 정도 말은 괜찮겠지 싶어 한마디 해 본다.

“둘이 잘 어울려 보이던데.”

“이미 대차게 까였습니다.”

“······아.”

시혁은 수육 한 조각을 들어 김민수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많이 먹으렴.”

“······.”

“······.”

“근데 그거 과거입니다. 이제는 쟤도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

“아, 그런 거냐.”

“전 못생긴 건 참아도 성질 더러운 건 못 참습니다.”

“성격 괜찮아 보이던데?”

“에이, 형님! 형님 앞에선 모두가 성격 괜찮아지죠. 뭐, 저만 해도 그렇고요. 아하하하.”

그때 들리는 목소리.

“그건 저도 못지 않습니다. 원래는 시니컬하고 정이 없는 편인데 시혁씨 앞에만 서면 그렇게 호인이 될 수가 없죠!”

그 익숙한 목소리에 시혁의 입가에 미소부터 자리 잡는다.

“왜 이렇게 오랜만 같을까요?”

“실제로 오랜만이지 않나요?”

그렇게 김명석이 자리에 앉았다. 김민수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술잔이 한 두잔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아니, 개미던전 클리어 하신다고 들어가신 거 아닙니까? 소소하게 던전 클리어 하며 지낼 거라는 분이 이렇게 큰 일을 해내고 오셨어요.”

“그리 되었습니다.”

“될 사람은 된다고, 강운이 시혁씨를 따라 다니나 봅니다.”

“아하하하.”

과연 이게 운일까.

시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헌터지옥 던전은 저희 가디언 쪽에서도 걱정거리였거든요.”

“가디언의 걱정거리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나라에서 헌터지옥 던전을 걱정하는 건 맞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한각협의 약세는 가디언에 도움이 되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리고 어느 자리나 본인들 밥그릇을 잘 지키는 사람이 가장 높이 앉다 보니 가디언 쪽에서도 방조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명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각성자도 대한민국 국민이죠. 국민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가디언의 일입니다. 아마 한각협에서 본인들이 해결하겠다고 강짜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진즉 우리가 나섰을 겁니다.”

그 말에 시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가 다시금 돌아온다.

“그렇군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김명석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일어나봐야 겠습니다. 너무 부장 대리를 부려먹는 것도 못할 짓 아니겠습니까.”

부장 대리가 누구인지 시혁은 알 것 같았다.

“예지씨는 잘 계시죠?”

“아하하. 궁금하면 연락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잘 지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김명석이 나가고, 시혁과 김민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도 다 먹었고, 생각보다 오래 있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형님. 조심히 살펴 들어가십시오!]

집으로 들어가는 길.

김민수의 문자에 시혁이 피식 웃으며 답장을 하려던 차였다.

집으로 들어가, 빨리 이 불편한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혁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의 서른 초반 남성이 시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시혁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한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님의 비서 직을 맡고 있는 나석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리 말하며 내밀어지는 손.

시혁은 그 손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밤늦게 사람 집 앞에서 듣지 않았으면 더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만.”

“급하게 찾아 뵙느라···이거, 실례 했군요.”

손이 자연스레 다시금 들어간다.

“용건만 간단히 해 주시겠습니까? 좀 쉬고 싶어서 말입니다.”

“이번 일로, 한국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님은 시혁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괜찮으시다면 빠른 시일 안에 한 번 들러주신다면 큰 영광입니다.”

그리 말하며 정중히 숙여지는 고개.

한참 동안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기다릴 필요 있을까요? 지금도 전 괜찮습니다만.”

“······?”

고개를 드는 나석규의 얼굴엔 공교로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피곤하다 하지 않으셨나요?”

“피곤한 김에 한 명 더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푹 자고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그래도 시간이 너무······.”

라고 말을 하던 나석규가 아주 잠깐 허공을 바라보는 듯하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공개로 만나게 되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그 말에 시혁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원하던 바입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요.”

* * *

나석규가 몰고 온 세단이 도로 위를 부드럽게 나아간다.

“운전을 잘 하시는군요.”

“협회장님을 모시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워낙 나이가 많으신 분이라···예민하십니다.”

92세의 나이에 각성한 후 102세가 된 지금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각성자의 살아있는 전설.

현무진.

하지만 그의 강함과는 관계 없이, 그의 몸은 노쇠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것이 스킬이라는 재주를 기반으로 강해진 각성자들의 고충이었다.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긴 하다만.’

이예지나 김민수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탱커형 각성자였으니까. 노력 여하에 따라서 스킬이 주는 부담감을 몸으로 버틸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닌 각성자들도 있기 마련.

애석하게도 현무진은 약점이 있는 각성자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시혁은 문득 하늘을 보았다.

도심에서 벗어난 맑은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마치 별을 보는 시야 사이로 아주 맑은 유리가 덧 씌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일까?

‘그럴 리가 있나.’

시혁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의외로군요. 한각협에서 저에게 직접 연락이 오다니.”

“어떤 점이 의외인가요?”

“이렇다 할 연락이 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한귀협에서 나온 후, 가디언의 수장인 김명석은 시혁과 독대했다.

사실, 한각협 역시 비슷한 리액션을 취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했다.

“얽매이는 것이 싫어서 귀환자 협회와도 공조하지 않던 분에게 섣불리 연락을 취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길드를 세우셨으니,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응당 승인했으니 언젠간 자연스레 만날 거라 생각하고 보류해 두었었지요. 물론 공격적인 길드 하나가 그것을 어기기는 했던 것 같지만 뭐, 지금은 사라진 길드이지 않습니까?”

아마 드레이크 길드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시혁의 한 쪽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한각협의 아픈 손가락을 직접 처리해 주신 이상, 응당 연락을 드려야 할 명분이 생겼다고 보아야 겠죠. 사실 이런 상황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나석규씨 본인입니까, 아니면 현무진 협회장입니까?”

그 말에 잠깐 주춤한 나석규가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이거, 죽을 날이 가까워 질수록 조바심만 늡니다. 실례 했군요.”

시혁은 싱긋 웃기만 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때는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몇 초 간의 공백 후, 나석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속도를 조금 높이겠습니다.”

“그러시죠.”

부아아앙!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도로를 세단이 빠르게 질주했다.

곧 거대한 부지가 보이고, 철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이루어진 길을 다시금 질주한다.

끝없이 펼쳐진 숲. 정원을 지나자 거대한 저택들이 줄 지어 늘어져 있었다.

그 중 가장 거대한 저택으로 도착하고서야 세단이 멈췄다.

저택의 옆에는 거대한 두개골과 갈비뼈가 있었다. 이 살아생전에 일어섰다면 40미터는 족히 되어 보임직한 그런 거인이었는데, 눈두덩은 인간처럼 2개가 아닌 정 중앙에 1개 뿐이다.

S급 몬스터, 사이클롭스의 사체였다.

그걸 본 시혁이 피식 웃었다.

‘다들 이런 걸 전시해 놓는 걸 참 좋아하는군.’

하긴, 자신만 해도 흑룡의 두개골로 집을 지은 입장이라 할 말은 없었지만 말이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지균이 고개 숙여 저택을 가리켰다.

“당신은 들어가지 않는 겁니까?”

“이야기가 끝난 후에 뵙도록 하죠.”

그렇게, 시혁이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홀의 중앙엔 휠체어를 탄 노인과, 그런 노인을 보좌하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현무진.

그리고 TOP2 길드, 바이퍼의 길드의 마스터이자 각성자 랭킹 5위인 독고선과, 4위 길드의 길드, 자이언트의 마스터이자 각성자 랭킹 4위인 이정근이다.

“바쁘신 분들 아니었습니까?”

“귀한 손님을 혼자 볼 수 없어, 이렇게 당신을 보고 싶다 하는 친구들을 불러 보았습니다. 실례가 되었까요?”

“실례라뇨.”

그 말에, 시혁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꺼번에 만나니 그저 반가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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