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3화
‘자, 집중하자.’
팔의 욱신거림을 견뎌낸 셰인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 몸 곳곳에 감도는 이질감. 몸에 받아들인 마나가 육체 곳곳에 스미며 물리력의 파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마나사용자들은, 이 마나를 수월히 다루기 위한 동작이나 언어 등의 루틴을 만든다.
셰인이 이 마나를 다스리는 방식으로 채택한 건 다름 아닌 ‘호흡법’이었다.
‘마나의 호흡.’
마법사나 기사들이 쓰는 집중법보다 훨씬 간단하고, 즉발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마나의 활용법이다.
그 호흡법의 기초는 총 두 가지.
숨을 들이쉬며 마나를 다스려 힘을 축적하는 심호흡.
그리고 호흡을 멈춰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자신이 모은 힘을 해방시키는 무호흡이다.
‘심호흡’
숨을 다스리며 한 발을 내딛은 셰인.
‘무호흡.’
그의 양 손이 곧 허수아비를 향해 빠르게 휘둘러졌다.
투파팡!
난잡하게 처박히는 연격.
체내 마나의 물리력을 ‘탄성’을 띠게 만들고, 그것을 몸 곳곳에 이어 반동을 크게 늘린 것이다.
그 속도는 굉장히 빠르나, 그 공격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의 급소에 해당하는 부분에 가격당한 상태.
적응력과 정확성만은, 카일의 정신을 지닌 소년의 몸으로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으……."
이후 다시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셰인.
직후 허리께에 놓인 주먹을 질끈 틀어쥐고, 그걸 있는 힘껏 내질렀다.
-쾅!!!
타격이 적중하기 무섭게 허수아비가 대파되었다.
마투술의 즉발기 강탄.
일순간에 한계까지 응축시킨 마나를, 주먹을 통해 방출시켜 폭발시키는 필살공격이다.
어지간한 수습기사들이 오러를 두르고 내리쳐도 일어날 수 없는 파괴력에, 셰인이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누가 귀족 자식 아니랄까 봐 재능은 충분하네."
아무리 유년기부터 마나의 제어력을 키워왔다 한들, 일격에 허수아비를 부순 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결과였다.
이 육체가 마나를 받아들이는 친화력이 터무니없다는 것.
재능만 보면 뒷골목을 싸돌아다니던 한량 출신과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다.
‘물론 당장은 불완전한 요소가 많지만…….’
몸 곳곳이 쑤신다.
고작 몇 번 허수아비를 후려친 것만으로도 이 꼴.
8살의 육체가 나약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기술 자체가 난잡하기 때문이다.
‘창시한 내가 생각해도 우습긴 하지만……. 마투술은 다른 계열의 기술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과격한 면이 있지.’
마법사들이 중시하는 정밀성은 물론, 기사들이 오러블레이드를 다룰 때에 중시하는 세심함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성질의 변화를 통한 변칙성과 팽창에 의한 가속, 그리고 즉발적인 결과에만 초점을 두는 기술.
그 모든 것을 순수한 물리력을 통해 다루는 만큼, 어지간히 단련된 육체가 아니라면 반동에 자멸도 할 수 있다.
‘어중간하게 배우면 위기탈출이나 겨우 가능하단 거지. 그거라도 익혀 보냈으니 생존률이 급증하긴 했다만.’
하지만 그것도 200년 전의 일.
이런 마나의 사용법은 현 시대엔 정말로 야만적이라 여겨질 테니, 그 시절의 기술이 지금에 와서 의미를 가질 거라고도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뭐가 됐건 잘하는 걸 시도해보는 게 낫겠지.’
활동에 제약이 있는 마당에 새로운 걸 시도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그렇게 제 처지를 되새긴 셰인이 부서진 허수아비를 치운 후, 연병장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팔굽혀펴기를 시도했다.
마나의 운용이야 쪽쪽이를 물 때부터 꾸준히 반복해온 상태.
이제부턴 마나가 버텨낼 정도의 육체를 만드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잊지는 마라. 본분이 의사라는 건.’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공부도 제대로 해야지.
평화의 시대에 주먹을 잘 쓴다고 득 볼 건 없으니까.
"오우, 도련님. 팔굽혀펴기 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팔굽혀펴기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기사들이었다.
"이야, 팔 구부러진 것 좀 봐. 현역들보다 훨씬 잘하시는 거 같은데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십쇼~ 그 왜, 어렸을 때 운동하면 키 안 큰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
방정맞긴 하지만 상급자를 향한 존중은 느껴지고 있었다.
셰인이 고깝게 여기는 건 그들의 태도가 아닌, 그들이 농담조로 말하는 ‘잘못된 상식’에 대한 것이었다.
‘망할, 이 나라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흔히 사람들이 성장판이라고 부르는 곳의 정확한 위치는 뼈의 각 끝단에 위치한, ‘연골세포’가 자리한 곳이다.
이 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늘어나고 굳어지길 반복하며 키가 커지게 되는 셈.
그리고 이런 현상도 근육과 마찬가지로 자극을 받아야 더욱 활성화되는 법이다.
뼈가 병신이 되어라 중량운동을 하면 모를까, 키가 안 큰다는 말을 믿고 성장기에 적당한 운동마저 거부하는 건 등신짓이란 것이다.
‘그런데 제 체중의 2/3이나 들어 올리는 팔굽혀펴기를 하는 정도로 저런 말이 나와?’
어느 쪽이 야만하고 미개한 건지 모르겠군.
차마 그걸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구시렁댈 뿐이었다.
* * *
그런 식으로 2년이 흐르고.
"셰인, 최근에 기사들과 대련을 하고 있다 들었다만."
10살이 된 해.
드물게 친부와 단둘이 겸상을 하던 중, 셰인에게 돌연히 질문이 던져졌다.
큼직한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던 셰인이 행동을 멈추고 그를 응시하였다.
아놀드 골드리안 후작.
금빛의 털이 풍성히 자라나있는 반백 살의 노인으로, 고작 10세의 아이를 두었다기엔 꽤나 나이가 든 자였다.
비밀리에 첩을 들인 게 40대였으니 당연할까?
그 덕에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형제들의 눈칫밥을 보고 있지만,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는 입장에 원한을 가질 리가 없었다.
"네 뭐……. 할 게 없어서 빌헬름에게 단련을 시켜 달라 했는데, 검술에 관심이 생겨서요."
힐끗.
셰인이 마주앉은 골드리안 후작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검술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란다. 무엇을 배우건 본인의 자유지."
검술가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골드리안 가문은 대대로 상업에 정통한 상인 가문이었다.
그 가문의 후계자에게 중요시 되는 건 경제나 서무, 지휘 등 학문의 조예가 깊은 분야.
검술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차라리 검술에 필요한 자를 돈을 주고 고용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상태다.
‘그 덕에 다른 형제들의 눈초리를 받을 일도 적어져서 숨통이 좀 트이긴 했지.’
서로 으르렁대기 바쁜 남매들에게 있어, 계승과 하등 관련이 없는 검을 익힌다는 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물론 아비의 눈엔 뭐가 됐든 귀여운 자식일 뿐.
"매일같이 단련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밖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란다. 내가 네 나이대엔 책을 읽기가 지루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밖으로 나가 친우들과 사냥을 다니곤 했었지. 나가지 못하는 날엔 시종들에게 목마를 태워 달라 생떼를 쓰곤 했단다."
‘저런. 철이 많이 없으셨네요. 여기 시금치 한 점 더 드시죠.’
농담이 튀어나오려던 입을 다물며 쓰게 웃었다.
"저는 사냥보단 검술이 더 맞는 거 같아요."
아무리 귀족이라곤 해도 결국 본질은 어린아이.
애늙은이마냥 비꼬면 괜스레 의심을 살 것이며, 뭣보다 아비이자 가주된 자에게 무례하게 굴어선 안 될 터이다.
그러니 괜히 수상쩍은 짓 하지 말자 생각하며 점잖게 말을 이어갔지만…….
‘이 아이는 참. 누굴 닮아서 이리도 조숙한 건지…….’
정작 골드리안 후작은 셰인을 어른스러운 아이라 인식을 하고 있었다.
격식을 가르쳐주었다 한들 결국에는 어린아이이거늘.
식사를 취하는 예법도 완벽할뿐더러, 글과 예절을 교육해 주는 선생에게도 아주 좋은 평가를 받는 상태다.
그런 아들의 성장이 아비로써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안타깝구나. 출신과 시기의 문제로 어린 나이에 재능을 부각시키지 못하다니.’
부모가 정해준 정실과 달리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택한, 그렇기에 더욱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
하지만 하늘은 무정하게도 그 행복의 대가로 수명을 앗아갔다.
그녀가 떠난 후 10년이 흐른 현재. 골드리안 후작은 남은 아들에 대한 미련은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엔델리. 내 그대에겐 미안한 마음뿐이구려.’
그러니 이 아이만은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자.
이어지는 말엔 그런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셰인. 오늘 함께 식사를 하자 말한 건 너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란다."
‘……드디어 왔구나.’
식사를 하던 셰인이 말없이 나이프를 내려두었다.
상대는 가문의 현 가주.
후계자 싸움의 치열함은 물론 셰인의 취급에 대해서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마당에 따로 불러 말하고자 하는 거라면 계승권의 포기 선언, 혹은 진로에 관련된 이야기일 터.
‘정 이야기가 안 나오면 내 쪽에서 직접 거론해도 되겠지.’
이제 곧 노후에 접어드는 사람이라도 그 정도의 힘은 발휘할 수 있으리라.
입가심용 차를 입에 가져가는 셰인에게 골드리안 후작이 말했다.
"혼담에 관한 이야기란다."
"부웨에엑."
입에 담은 차가 도로 컵에 쏟아졌다.
* * *
‘아버지, 저 열 살입니다.
기사단이랑 같이 근력 트레이닝 시작한지 아직 2년밖에 안 됐어요.
매일 검을 휘두르는데도 이 손은 유전 때문인지 아직도 매끈하고, 배에는 식스펙도 안 생겼습니다.
그런 연약한 몸으로 결혼? 누구를 챙기라고요?
하다못해 마누라 업고 살라 할 거면 취직이라도 시키고 해야지, 출세에 필요한 배움의 길도 전부 막아버린 마당에 무슨 놈의 결혼입니까?’
……차마 10살짜리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그 말들이 머릿속에 뒤엉키다, 이내 한숨이 되어 퍼져나갔다.
‘서출 주제에 무슨 놈의 반박이냐. 그냥 까라면 까야지.’
조혼 같은 건 조국에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이곳은 아이헨발트가 아닌 테라스 제국이다.
그런 곳에서 밥버러지에 불과한 녀석이 저항해봐야 시간낭비일 터.
그저 가문을 벗어난 동안에 가족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 다행이다, 하는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도련님, 슬슬 시간입니다."
"금방 갈게요."
이내 체념한 셰인이 차려입은 채 방을 벗어나고, 시종장을 따라 저택 앞에 자리한 마차에 오르게 되었다.
혼약 상대가 된 가문에서 보낸 마차. 규모도 규모지만 내부는 매우 호화스러운데다 쾌적하다.
주변에는 승마를 준비하는 호위들도 가득한 상태.
옷을 두껍게 두르고 있지만, 외과를 전공으로 했던 셰인의 눈엔 그들의 다부진 체격과 골격구조가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셰인이 함께 마차에 오르는 골드리안 후작에게 물었다.
"이번에 선을 보게 된 곳, 검술가문이라고 하셨죠?"
"그래, 제국의 설립부터 기여해 온 명망 있는 공작가이지."
공작가.
셰인이 속한 가문인 골드리안 후작가보다 한 단계 높은 서열의 가문이었다.
그런 가문에 서자의 신분으로 맺어진다니.
‘혹시 이거……. 인생 날로 먹을 찬스인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지.’
세상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법.
공작가에서 서자와의 혼담을 주선한 건 그에 따른 하자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서자는 대학원생과 마찬가지로 인간취급도 못 받는 존재인데.’
새삼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 * *
공작이라 하면 황제 다음 가는 제국 최고의 권력자.
대개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실제 그 위상은 제국에 귀속되어 있을 뿐인 ‘동맹국의 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지의 규모도 권리도, 전쟁 이전에 선진국이라 불렸던 곳들과 비등하다 여겨지는 수준이니까.
‘그런 가문에게 서출을 내어주는 거야 남는 장사겠다만, 상대도 정치인인데 아무 생각 없이 내어줬겠어?’
골드리안이 제국 최고의 부를 거머쥔 가문이라 한들, 서자와 맺어지는 건 다른 귀족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걸 감수하며 공작가의 딸을 서자와 맺어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착했습니다. 후작님."
그 이유를 알게 될 장소는 저택이라기보단 성에 가까웠다.
규모도, 형태도. 심지어 그 주변을 오고가는 사용인들 역시 제 고향과는 궤를 달리한다.
‘으리으리하구먼.’
성을 오고간 적이야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군인으로써의 업무차원에서였다.
가끔 행사나 보고가 있을 때에나 들렸던 만큼, 이런 성에 대해선 별로 익숙지 않은 상태였다.
그 앞에 선 화려한 차림의 젊은 남자 역시도.
"제 아버지의 오랜 친우여. 라인하르트 가문의 현 가주, 질리언 라인하르트가 그대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겠습니다."
은회색의 단발을 지닌 청년.
라인하르트의 젊은 후계자가, 성문의 앞에서 두 사람을 환영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