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5화
천식.
기관지에 염증이 일어, 호흡 그 자체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일으키는 기도폐쇄성 질환이다.
걸릴 경우 기도가 조여져 호흡이 가빠지고 호흡 때마다 이물감을 느끼며, 심할 경우 호흡 곤란에 의한 발작증세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질환의 주원인은 미세먼지나 유독물질 등에 장시간 노출되는 환경적 요인.
그리고 환자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생기는 선천적 요인에 있다.
‘천식은 유전적인 면역체계의 이상에 환경이 양립해서 생기는 알레르기성 질환이야. 어미나 아비가 천식환자라면, 그 자식에게도 천식이 생길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
그리고 라인하르트 가문은 기본적으로 검술가.
가문의 일원들이 거치는 훈련은 혹독할 것이며, 그로 인한 과한 호흡은 알레르기성 반응을 비대하게 증가시킬 것이다.
그리고…….
"천……. 식? 그게 뭔가요?"
예상대로, 정작 본인은 그에 대한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니까 자기가 걸린 병이 뭔지 모를 수도, 아버지도 귀족이니까 의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200년 전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이곳이 제국이 아닌 타국이었더라도.
‘제국놈들은 애초에 의료에 쥐뿔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성력.
제국이 그토록 섬기는 신이라는 작자가 내려주는 기적이란 것이다.
그에 대한 순수한 신앙만을 가지고 있다면 힘을 각성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빛을 받아들인 자는 몸의 상태가 어떻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외상은 물론 내상과 질병도.
결손 된 신체부위 역시, 다시 회수해 맞대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어붙일 수도 있다.
‘상태가 어떻건 신성력을 때려 박기만 해도 치료가 되는 힘이 존재하는데, 의학이 도태될 법도 하지.’
실제로 제국에선 의사들이 말하는 ‘학적 병명’의 구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부상이건 병이건 치유수단이 통일되니, 증상의 분류보다는 경중을 더 우선시하는 성향을 띠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이 정말로 만능이었다면 이 시대에 병이나 부상으로 죽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될뿐더러, 기도를 한 만큼 신성력이 축적되니 무한정 쓸 수도 없다.
뭣보다 신성력의 치유는 재생이 아닌 ‘복원’에 의한 것.
손상된 육체를 손상되기 전의 상태로 ‘역행’시키는 것이며, 그마저도 성장과 노화 역시 막지 못한다.
본래 육체가 가야 할 상황을 유지시키고자, 그 과정에 위배되는 간섭만을 차단하는 것일 뿐.
즉 천성부터 타고난 ‘유전병이나 선천적 장애’는 회복대상에서 배제된단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 놈들은 그걸 인정하질 않지.’
신성력은 신이 내려주신 은총이며, 그 힘이 있다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것을 절대적인 명제로 삼으니,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증세는 신의 저주를 받거나 버림받았다 정의해 버리는 것이다.
의사가 보기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논리.
하지만 이 제국이 의사의 시점 따위를 고려할 리가 없다.
‘애초에 제국은 200년 전에도, 수술이나 약을 먹이는 행위를 반인륜적인 행동이라 규정했으니까.’
그러니 치료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면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기보단, 오히려 그들을 멸시하고 배척하며 사회적으로 묻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절대다수의 사람만을 구제하며 사회의 기반을 다진다.
200년 전의 제국은 그런 식의 통치로 존재를 유지하고, 크기를 부풀려 대륙의 반을 먹어치운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왜 자기 외동딸이랑 혼담을 준비했나 했더니……. 구린 속내가 있긴 했었네.’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주받은 아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기에.
어느 정도 권위가 있는 가문의 서출과 맺게 하여, 그 반발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가문의 휘광만 보면 납득할 만한 결과고, 서출의 말은 그다지 공신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서출이라면 그 제안을 마다할 리는 없을 것이다.
미천한 출신으로 공작가의 후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 입으로 공작가의 문제를 밝히며 날려버릴 리는 없을 테니까.
즉, 이 혼담은 결과만 본다면 관계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론.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하지만 셰인은 차마 이 상황에 못마땅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권력?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이번 혼담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이후 가문에 후계자가 교체되어 가문에서 쫓겨나더라도 용병일이라도 하며 먹고 살 각오도 있다.
그 ‘따위’ 것보다 더 중요한 건, 200년 전엔 천식이란 죽을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투약만 제대로 된다면 일상생활도 가능해. 알레르기성이라 완치는 어렵지만, 사람에 따라선 전문훈련을 받는 정도로도 호전시킬 수 있어.’
반대로 항생제 하나 투입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사망률이 급증하는 질환이다.
검술처럼 고된 훈련을 반복한다면 더더욱.
그런 상황에 놓인 이 아이를 내버려둬야 할까?
이 제국이 신성만능주의라는 이유로?
‘그건 안 되지. 절대로 안 돼.’
살릴 수 있다면 살린다.
그건 전생에서부터 의사로써 세워온 신념이라 할 수 있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제 어미가 불치병에 목숨을 잃었기에 더욱이.
"제 기침이 그……. 혈통에 전해 내려오는 저주라는 건가요?"
"……그래."
설명을 해주고 난 후, 셰인은 나름대로 납득을 한 세실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천식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적 질환이며, 그 질환은 그녀의 모계 쪽에서 전해져온 유전병이자 그들의 명이 짧았던 이유라고.
‘절대로 저주 따위가 아니다.’
그걸 입에 담으려 했다 속으로 꾹 억눌렀다.
제국은 200년 전부터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신성력이 만능이 아니라는 걸 부정하는 건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여길 일이니까.
그런 사회에서 교단을 부정하는 건 이 소녀의 앞날에 큰 지장을 줄 위험이 있다.
"……세실, 너 이 증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돼?"
그러니 일단 이 부분은 접어두자.
그 결정에 필요한 물음에 세실이 성의껏 답해주었다.
"아버지와 전속 시종이신 분, 그리고 제 몸을 봐주셨던 사제 한 분이요."
숫자가 적은 건 위안이지만, 다행 중 불행이게도 재수 없는 게 하나 끼어 있었다.
사제. 역시 교단 측에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교단 내부에는 다 돌고 있겠지.’
모든 비밀이 보장된다는 참회실에서의 고해성사가, 불연 듯 암시장에서 거액에 거래된다는 건 타국인인 그도 알 정도였다.
200년이 지났더라도 종교가 중심이 된다면 그 근본은 바뀌지 않았을 터.
"세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활동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이내 셰인이 각오를 굳히며, 제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 *
신이 실존하며, 그자가 내려준 힘에 의해 의학이 쇠퇴한 사회.
학적병명조차도 정립되지 않은 이 시대에 천식과 같은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당장은 불가능해.’
현 시대에 의학이란 엄연히 불법이니까.
기껏 해봐야 신빙성 없는 민간요법이나 시골마을에 떠돌아다닐 뿐.
의술을 공유할 사람도 없고, 재료도 일일이 찾아야 하며, 찾더라도 약을 제조하는 공장도 없으니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셰인의 전공이 ‘외과’임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해질 문제다.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은 약물치료가 기본이 되고, 약물을 전공으로 한 건 주로 내과니까.’
공교롭게도 셰인이 아는 약물에 대한 지식은 진통제나 항생제 등, 외과진료에서도 쓰이는 물건 뿐.
그 외에 약학에 대한 지식은 기초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지 않다.
즉, 제조 이전에 연구 단계부터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정기적인 진단과 보조는 필수야.’
그러니 어떻게든 이 성에 체류할 방법을 찾아야 할 터. 그것이 당장 셰인에게 주어진 첫 과제라 할 수 있었다.
"아, 그래, 돌아왔구나."
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귀빈실로 돌아온 셰인과 세실을 라인하르트 공작이 환대해 주었다.
"세실, 얘기는 잘 나눴느냐?"
"아, 그……."
질리언의 물음에 세실이 잠시 시선을 회피했다.
소심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아직은 무언가를 숨기는 데에 익숙지 않은 아이.
행여나 자신과 대화한 내용을 밝히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지만, 이내 셰인이 시킨 대로 고개를 푹 숙여 말했다.
"네, 즐거웠어요. 셰인 님께선 제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계셨고요."
속내를 숨길 때엔 긍정하며 고개를 숙여라.
처음부터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 소심하다 생각하지, 대개 이상점을 눈치 채지 못하게 마련이다.
다행히 질리언도 그런 세실을 이상히 여기진 않는 상황.
그 관심은 이내 셰인에게로 돌아갔다.
"모르는 거라……. 세실이 흥미를 가질 정도면 마음이 잘 맞는 듯하구나. 나중에 나에게도 한 번 들려주지 않겠니?"
검사로써의 호기심인가.
아니면 딸아이에 대한 걱정인가.
어느 쪽이건 그의 제안은 지금의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힘들겠네요. 오늘 혼담을 마치고 나면 바로 돌아갈 것이 예정되어서……."
슬쩍 아버지인 골드리안 후작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래,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일단 세실의 몸을 봐주기 위해선 여기에 오래 머물러야 하니까.
당장 약혼이 정해지진 않았더라도, 이곳에 당분간 머무를 만한 구실을 들여 설득을 할 필요가 있다.
그에 눈치를 보는 가운데 골드리안 후작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에 대한 얘기다만……. 셰인, 혹시 괜찮다면 이 성에 몇 년 간 머물러 지내지 않겠느냐?"
"……네?"
예상치 못한 제안에 셰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머무르길 희망하려던 참에 그러한 제안이 제 아비의 입에서 내뱉어졌다.
대화의 내용이 유출된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대화 따윈 정치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테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저택의 기사들과 자주 대련을 한다고 들었다만……."
"아 네, 할 일이 없어서 운동을 하다가 취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하하! 섭섭한 소릴 하는구나!"
라인하르트 공작의 물음에 답하기 무섭게, 골드리안 후작이 셰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화사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비록 라인하르트와 같은 명가보단 못하다곤 하나, 제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이들 중에 엄선하여 꾸린 기사단입니다. 그런 이들이 제 아들과 대련을 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취미 정도로 끝내서야 되겠습니까!?"
열정적으로 제 자식을 칭찬하는 아비.
이렇게 자식사랑이 지극하셨던 분인가 싶었지만, 그런 가정사를 알지 못하는 라인하르트 공작은 셰인을 감탄스레 쳐다볼 뿐이었다.
"확실히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면 검술에 조예를 갖춰야만 하죠. 어쩌면 제 뒤를 이을지도 모르는 아이이니 곁에 두며 지켜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
급히 진행된 이야기에 셰인이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야기가 잘 풀려서인지 감정도 환하고, 묘하게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 제 아비에게 물었다.
"아버지, 혹시 벌써 약혼을 결정한 건 아니죠?"
첫 만남에서 바로 체결하는 건 세간의 시선도 있고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셰인에게 골드리안 후작이 답했다.
"그 자격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이곳에 머무르게 하려는 거란다. 적어도 가문에 후계자가 정해질 때까진……."
"……."
"……아니,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 다시 그 전쟁통 속으로 들어가라니. 정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후작 역시 실상은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안한 것이 분명하다.
가문의 후계자 싸움이 정리되기 전까지, 약혼에 적합한 상대인지를 알아보고자 신세를 지는 건 좋은 명분이 되어줄 테니까.
"어느 정도 있으면 될까요?"
"한 2년……. 아니, 길면 3년 정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잠시 머물러 지낸다기엔 꽤나 길지도 모르지만……."
"아뇨, 딱 적당하네요."
아카데미의 평균 교육기간은 4년.
배우고자 하는 자로써 3년 정도 머무르는 건 그다지 길다고 할 순 없다.
그건 치료 역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였다.
‘3년 만에 이 애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
그 촉박함을 느낀 셰인의 손아귀에 땀이 고여갔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