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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7화 (7/255)

의무병의 환생 7화

상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어이없게 여길 말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자라니. 설마 사람의 몸에서 산 채로 뼈를 뽑는 그 행동을 치료라고 말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실제로 그들이 말하는 ‘치료행위’에 간섭받은 이들에게 신성력을 쬘 시, 하나같이 온 몸의 뼈가 뒤틀리고 피를 토하다 죽어버리고는 했다.

그건 치료가 아닌 저주라 봐도 무방한 것.

신이 하사한 기적을 부정하는 육체로 만들어버리는,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 *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무식한 새끼들아.’

수술이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생긴 장애를 해결하고자 육체를 ‘분해하고 재조립’시키는 행위다.

그런 육체에 신성력을 쬐면 당연히 본 상태로 돌아갈 것이고, 수술 중에 벌어진 과정을 되돌린다는 건 육체에 큰 부하를 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그런 당연한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신성력이라는 힘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힘으로 여겨져, 그 외의 지식을 익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이헨발트가 제국에게 공격을 가장 거세게 받았던 이유였다.

* * *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말을 증명하듯, 제 발치에 있는 이들 중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서 제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전쟁이란 것임에도, 그는 적이 된 자들의 숨통을 붙여둔 것이다.

결코 이 자는 자신을 기만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직시한 볼레로가 긴장하며 물었다.

‘그곳에서 물러나시오 이단자여. 그대가 지키는 이들은 먼 훗날 더 큰 악으로 다가올 것이오.’

협곡의 한가운데.

스스로가 치유사임을 자처하는 야만인은, 저 멀리 도망치는 무리를 등에 진 채 홀로 대군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리를 지키고자 혼자 이곳에 남기를 택한 것.

그를 넘어서지 못하면, 도망친 이들은 더한 악이 되어 제국을 위협할 게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볼레로를 대면한 야만인이 말했다.

‘그저 입장이 다를 뿐인데 악이고 정의고가 무슨 상관이오? 나는 그저 사람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로써, 내가 속해있는 세력의 일원들을 보다 많이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했을 뿐이오.’

자기희생.

더 없이 숭고히 여겨지는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를 존중할 순 없었다.

‘그 신념만은 가상하나,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그대의 말을 따르자면 그대가 죽이지 않은 이들은 훗날 무리를 위협할 더 큰 세력으로 다가설 터인데……. 설마 적이 된 자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이오?’

‘동정이 아니오.’

야만인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이니 살육을 자중할 뿐. 그런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경우는, 그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고도 내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 확신했을 때뿐이오.’

살생을 금하면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에만 공격을 한다.

그것이 볼레로라는 강자를 마주한 자의 대답이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전장에서, 그는 누군가를 살려 제압하는 것을 정말 손쉽다는 듯 말을 한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오만이라고도, 또 조롱이라고도 해석될 말.

하지만 진정 오만한 자란, 패배가 확실시되는 싸움엔 결코 뛰어들지 않는 법이다.

‘허나 나는 이 자리에서 결코 물러나선 안 되는 자. 내 지금은 불가피하게가 아닌 이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일 것을 각오하는 상태요. 그러니 모쪼록, 그대가 나의 살의를 불러낼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라겠소.’

오만이 아닌 허세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볼레로는 그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검을 뽑아들었다.

설령 상대가 한 말이 제 무리를 도주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 한들, 그를 쓰러트리지 못하는 한 협곡을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리고 그 싸움은 수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마침내 볼레로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래, 그자는 제국의 검이라 불렸던 자조차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강함을 가진 자였다.

* * *

-털썩.

읽고 있던 책이 잠시 바닥에 떨어졌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실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건가요?"

배려심이 깊은 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데에 불쾌함을 느끼기보단, 그 이야기가 타인의 마음을 헤집는 걸 더 고려하는 아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몰입해버려서 그런 거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볼레로 라인하르트.

분명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이었다.

언제나 적이 된 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그조차 기억할 정도로, 그는 지난 생의 마지막에 정말로 강렬한 기억을 심어주었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그 남자의 후손이었다, 이건가.’

제 옆에 있는 소녀를 향한 감정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실이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세실이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심어린 안도를 표한다.

그 표정이 제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바뀔까?

제 선조가 제 앞에 있는 소년의, 카일 페터슨의 목을 베어버린 장본인임을 안다면?

아니, 그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게 있다.

지금 자신이 이 소녀에게 느낄 감정이란 무엇인지.

‘제국의 앞잡이로써 나를 죽이고 조국을 멸망시킨 데에 일조한 자의 후손이 눈앞에 있다.’

증오, 혹은 원망.

세월에 잊어야 할 감정이 다시 샘솟기에 충분한 요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니야.’

셰인은 눈앞에 있는 소녀에게 그러한 감정을 토하지 않았다.

토해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은, 이 책에서 말했듯 ‘입장이 다르기에’ 생겨난 것뿐.

‘전쟁에선 그게 당연한 거니까.’

진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반대로 그것만이 적대한 이유의 전부라면, 그 감정들을 전장을 벗어난 순간 묻어둬야 하는 법이다.

거기에 순응하며 싸움에 임했기에, 그는 자신을 쓰러트린 자에게 경의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 소녀의 선조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를 마주하고 있기에 더더욱.

* * *

긴 시간의 끝에 그는 쓰러졌고, 그가 지켜낸 야만족들의 군대는 지도자들에게 간청하여 항복을 이끌어내었다.

한 남자의 희생이 본대가 투항할 시간을 마련해준 셈.

그럼에도 황제는 그들을 멸망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단이며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그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굽어 살피는 분을 위한 봉사로다.’

그것이 항복을 선언한 집단에 되돌려줄 답이었다.

하지만…….

‘폐하, 감히 신하된 자로써 간청하옵니다. 부디 저들을 제국의 산하에 두어주시길 바랍니다.’

정작 그 명령을 받은 볼레로는 그에 불복하며 황제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제국을 지탱하는 자가 그 명령을 거스른 것.

그에 배신감을 느낀 황제가 호통을 쳤다.

‘어째서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냐. 그들은 요상한 사술을 부리며 우리를 핍박했던 자들이다.’

‘그렇다곤 하나, 그들을 도망치게 해주었던 남자는, 제가 보았던 그 어떤 이들보다도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를 배출해낸 세력이 마냥 그릇되었다곤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는 제국의 검임에도 이단을 옹호하는 것인가?’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되었다면 그건 그들의 신념이 아닌, 신념이 발휘하는 방향성이란 것이지요. 정녕 저희를 굽어 살피는 분께서 고결한 자에게 축복을 내려준다면, 저들의 죄를 바로잡는 것 또한 신을 섬기는 자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네, 저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시도해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법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그들로부터 빛을 보았습니다. 그들 역시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간곡히 바라옵니다. 제가 보았던 그 광명이, 이 땅을 더욱 크게 밝힐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회를 주소서.’

볼레로는 몇 번이고 그에게 간청을 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자임을 자처함에도 전장에 나서고자 무를 기르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살린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자, 전쟁터라는 장소에서도 불사를 지향했던 자에게 감회되었기에.

그 자가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은, 이윽고 황제의 마음을 흔들어 항복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야만족들을 대상으로 한 토벌은 그들을 향한 교화행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신의 자애로운 가르침과 더불어, 인류의 깨달음을 적어둔 성서에 새로이 추가된 구절을 그들에게 전파하면서.

‘야만의 무리를 경계하되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은 악마가 아닌 그릇된 길을 거닐었을 뿐인 인간이니.’

‘그들이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면, 우리들은 신을 섬기는 자로써 그들이 가진 신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의무가 있소.’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 구절을 만들어낸 이는 이윽고 성자로써 취급되어, 오늘날에도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제국의 평화와, 평등에 이바지한 영웅으로써.

* * *

‘……원수를 사랑하긴 개뿔.’

마처 책을 읽은 셰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결국 이용가치가 있으니 자비를 내려줬다는 것 아닌가?

그걸 그럴싸하고 신성하게 포장한 게 가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혐오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될 자비였으니까.’

적어도 자신이 보았던 제국은.

빈말 없이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이 대륙에서 지워버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남자는 자신과의 사투에 경의를 표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이 제국에 아이헨발트의 흔적이 남게 해주었다.

지도상에서 이름은 사라졌을지언정, 그 나라가 조국의 지식을 매장시켰을지언정.

그 피는 제국에 교화되어 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 녀석을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미함.

하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에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향수다.

그 계기를 마련해준 자의 피가 이 소녀에게 흐른다는 건, 셰인에겐 살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은 것에 불과한 일이었다.

"아, 아버지!"

이내 책을 돌려놓았을 무렵 세실이 외쳤다.

입구에 서 있는 것은 후작을 배웅하러 갔던 라인하르트 공작.

그가 셰인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후작님에게 들었던 대로 책을 꽤 좋아하는 듯하구나."

"네, 저택에선 별로 읽을 기회가 없었지만……."

"우리 성엔 그런 제약이 없으니 여유가 될 때면 출입해도 된다. 세실도 책을 좋아하니 함께 어울리기 좋을 거다."

질리언이 세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세실 역시 그 손길이 나쁘지 않은 듯 얼굴을 붉혔다.

누가 보더라도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이다.

자신의 딸을 서출 같은, 하찮은 녀석에게 시집보내는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녀석의 후손이 망나니라는 건 썩 보기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직 그렇게 보기엔 이르겠지.’

일단은 두고 보자. 생각하며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런데 일과를 시작하는 건 내일부터라 들었는데……. 무언가 용무가 있어서 찾아오신 건가요?"

"아, 그래. 내일 훈련이 이루어지기 전, 한 번 네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어져서 말이다."

"검증이요?"

"그래, 너만 괜찮다면 한 번 대련을 해보고 싶다만……."

이어진 제안에 셰인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졌다.

제국 최고의 검술가문의 가주와 일대일 대련이라니.

돈을 줘도 못 할 기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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