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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9화 (9/255)

의무병의 환생 9화

셰인의 적성은 어느 정도인가.

골드리안 후작은 그에 대한 답으로 제 기사들이 들려준 얘기를 읊어주었다.

‘상당히 묘한 평가였지.’

‘묘하다니요?’

‘재능은 있지만 천재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네. 그야 어린아이니 숙련된 검사보다야 기량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대련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샌가 셰인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고 하더군.’

‘…황실에서도 인정하는 기사들이 말입니까?’

‘그래, 조금이라도 정신이 팔린다면 허점을 찔린다고……. 뭐, 아이와의 대련이니 방심한 걸 수도 있지.’

아니, 골드리안 가문의 기사단은 대륙 내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다.

검에 자부심을 가진 만큼, 아이 쪽에서 칭얼거리며 봐달라 하지 않는 이상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격을 적중시켰다면 허점을 노리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일 터.

‘속도도 기술도 결국 유효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허점을 찌르는 법을 타고났다는 건 검사에겐 아주 중요한 거다.’

하지만 위치에 걸맞지 않은 오만이란 오히려 독으로 다가오는 법.

어느 분야에서건 재능이란 그 분야를 지향하는 계기에 불과하며, 질리언은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진지하게 그를 후계자로써 여기고자 한다면, 일단은 그 무지에서 비롯된 오만을 꺾어 누르는 게 우선이다.

‘셰인, 내 너를 무릎 꿇리는 걸 원망하지 말거라. 스스로가 미천한 존재임을 알게 하는 것은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니.’

꾸욱.

검을 쥔 질리언이 호흡을 다스리며 외쳤다.

"그럼 시작하지."

선언이 떨어진 순간, 셰인이 그 순간에 맞춰 질리언에게 달려들었다.

빠르다곤 할 수 없지만 자세만은 단정하다.

그래, 보통은 그 정도로 여겨야 할 뜀박질이다.

‘뭐지?’

너무 진지하게 임해서인가.

뛰는 폼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눈치 채기도 전 뛰어올라 단검을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그렇게 행동했다고.

시야에 칼의 끝이 보였을 때에 확신을 가졌음에도…….

‘무슨……!’

그 직후 질리언의 숨통이 무의식적으로 멈춰졌다.

안면을 향해 날아드는 단검을 마주한 현재, 목덜미에서 오싹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다.

단검의 밑이 허하다.

다리는커녕 그림자만이 겨우 보일 뿐.

그 흔적을 따라 마주하게 된 것은, 진즉 자신의 품 안에 파고들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시야를 가리고, 사각으로...?’

단검을 쥔 채 뛰어오른 게 아니다.

단검을 던져 시선을 빼앗은 후 사각에서 파고든 것.

이 10살의 소년은, 자신이 일순간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그러한 묘기를 부린 것이다.

‘고작 이런 아이가, 그만한 속도를……?’

불가능한 건 아니다.

마나를 이용한 보법은 기사들도 익히는 것.

그걸 어린 나이에 구사하는 건 굉장한 일이지, 아주 있을 수 없다곤 할 순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건, 지금 이 순간 대련에서 있어선 안 되는 ‘위기감’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던져진 단검이 아닌 제 목으로 쏘아지는 손끝에서.

마치 마나로 벼려진 칼이라도 겨누어진 것처럼…….

‘아니, 그저 날카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위기감은, 오직 자신의 강체술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공격에만 느끼는 것이다.

그래, 이 소년의 손 끝은, 자신의 방어를 뚫고 들어올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위험해.’

무의식적인 자각은 이윽고 전신의 신경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1초. 아니, 그마저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교차되는 무수한 생각. 기억의 잔상.

그중 가장 부각되는 것은 과거 자신이 치렀던 ‘성인식’에 대한 것이었다.

‘제국의 변경에 위치한 블레이즈 방벽.’

마족과 몬스터, 제국에서 환영받지 못한 추방자들과 야만인들의 습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로, 평화의 시대엔 유일하다시피 전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질리언은 가문의 성인식을 치르고자 그곳에 들어섰었고,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 지금 느끼는 건 그때에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평화의 시대에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전장에 떨어졌을 때와 같은 감각이.

‘죽는다.’

그런 주마등의 끝에 도달한 결과를 직시한 질리언이, 이윽고 셰인에게 어깨를 들이박았다.

육체에 마나를 실어 터뜨리는 호신술을.

고작 ‘10살짜리의 어린아이’에게 전력으로.

-콰앙!!

그렇게 대련 시작 후 5초 뒤.

순수한 물리력의 폭발에 대기가 밀려나고, 그 사이로 여린 소년의 몸이 튕겨져 나가 연병장의 바닥을 굴렀다.

"허억, 허억……."

질리언 역시 땅에 무릎을 처박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많은 마나를 담은 육체에 부담이 가해졌기에.

그다지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긴장을 과하게 해서인지 천릿길이라도 질주한 것 마냥 피로감이 밀려들어왔다.

‘착각이, 아니야…….’

목에 칼이 겨누어졌을 때, 그 목이 자신의 목을 베어 넘기리라고 확신했을 때.

그 이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리란 상상이, 그러한 미래를 예지시키는 싸늘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 공포를 일으킨 게 10살의 아이라는 게 가당키나 할까?

질리언은 아직도 실감할 수 없었다. 지금 저곳에 쓰러져 있는 소년이 자신에게 이런…….

"아……!"

뒤늦게 자신이 벌인 일을 자각한 질리언이 다급히 셰인에게 달려갔다.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력을 발휘했다.

신체에서 일으킨 마나의 폭발은 마법보다는 아니어도, 마력에 강화되지 않은 맨 몸에 적중한다면 몸에 큰 피해가 가해질 터다.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는 죽음에 대한 위험보다도 더욱 강렬하다.

"셰인, 셰인! 괜찮느냐!?"

"괜찮아요."

정작 셰인은 다급함에 개의치 않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주 멀쩡하게.

모래바닥을 굴러 몸에 흙먼지가 가득 묻었지만, 고통스러운 기색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질리언이 안도감을 느끼다, 이내 밀려드는 자학감을 버티지 못하고 셰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 미안하구나. 내 너에게 큰 실수를……."

"아뇨 괜찮아요. 갑자기 달려들면 놀랄 수도 있죠."

셰인은 그에 별 개의치 않고 애매히 웃음을 지었다.

딱히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원에서 나오지 않고 모든 공격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겠다는.

그 자신만만히 말했던 조건을 어기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셰인이 유도했던 거니까.

‘진짜 죽일 기세로 내질렀는데.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죽는 건 저쪽이 됐겠지.’

아이헨발트식 절개술.

손끝에 집중시킨 마나를 날카롭게 벼려, 손가락에 칼날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렇게 벼려진 손끝의 예리함은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이들의 오러블레이드를 넘어선다.

‘별로 대단할 건 없는 경지야. 애초에 용도 자체가 면도칼보다 날카로운 메스를 대체하는 거니까.’

메스는 살과 근육을 가르는 데에 쓰이는 도구.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 역시 의료용으로나 쓰이기에 전투용으론 적합하지 않다.

오러 블레이드와 달리 내구성이 너무 취약하여, 갑옷 같은 걸 내리치면 도리어 팔이 망가져 버리니까.

‘반대로 금속이 아닌 살가죽이나 마나로 이루어진 장막은 가볍게 뚫어버릴 수 있지. 예리함에 초진동 효과까지 더해져 대상의 마나를 흩트리니까.’

요컨대 기습으로 급소를 노리면 어떤 상대라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기술.

셰인은 그런 기술을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자에게 행사했다.

이 시대 최강의 검사라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살수 한 번에 식은땀을 흘리는 건 뭐, 평화에 찌들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얻어맞았던 부분을 툭툭 건드리는 셰인. 욱신거리긴 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여유를 빌어 셰인은 라인하르트 공작에 대해 냉정히 평가를 했다.

‘오히려 전장에 서지도 않았는데 그 기습에 이 정도의 대응을 하다니…….

썩어도 준치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역시 그 녀석의 후손이다. 생각한 셰인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격도 했고, 원에서도 나오셨네요."

"……어?"

"대련 말이에요."

몸이야 언제나 굴러왔으니 통증엔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과의 약속을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가.

그 물음에 질리언이 벙찐 표정을 짓다, 이내 애매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를 얕잡아봐서 미안하구나."

"그럼 약속은……. 우옷!"

"얌전히 있으렴. 혹시 모르니 사제님에게 데려가줄 테니까."

셰인을 업은 질리언이 연병장을 가로질러 성을 거닐었다.

아마도 영지와 성의 사이를 잇는 교회에 데려다줄 생각일 터.

교단에 몸을 맡기는 게 썩 내키진 않지만, 일단 셰인은 그를 잠자코 따르기로 하였다.

셰인이 싫어하는 건 의학의 부정이지, 신성력의 치유효과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셰인. 너에게 검술을 가르쳐준 분이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니?"

얌전히 업혀가는 중 질리언이 물었다.

"검술스승이요?"

"……으음, 그래. 이전에 했던 건 검술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는 기술이었다만."

‘그래, 검술보단 암살술에 가까운 기술이지.’

애초에 마투술은 호신술.

정면승부와 장기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에, 검술과 같은 정직한 결투보다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에 초점을 둬야 한다.

전장에선 비겁한 수도 서슴없이 저지를 것을 염두에 둔 기술.

그런 걸 대련에서 구사한 건 양심적으론 석연찮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 뭐, 앞으로 함께 지낼 사람이니, 마냥 경계하는 것도 좋진 않겠지.’

셰인이 곧 대답했다.

"빌헬름이라고 해요."

"빌헬름……."

"알고 계시나요?"

"그래, 한때 함께 했었지. 대륙의 변경에 있는 격전지에서도 그분이 지도하던 부대에 속해있었단다."

제 목에 손이 겨누어졌을 때에 떠올렸던 곳이기도 했다.

변경지대.

평화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라는 말이 적합한 장소.

그리고 라인하르트 가문의 일원은 누구라도 그곳에서 성인식을 치러야만 한다.

그건 가문 밖에서 온 후계자에게도 적용되는 바였다.

"만약 네가 우리 가문을 이어받게 된다면, 언젠가 너도 그곳으로 향하게 되겠지."

그곳을 거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그리고 가주로써의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제국을 지탱하는 가문의 가주가 된다는 건 그만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전제되는 일이니.

때문에 부모가 된 자는 자식을 더욱 혹되게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들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거라.’

성인식을 치르기 전.

가문의 전 가주이자, 질리언의 아버지가 누누이 들려준 말이었다.

그 말을 자신 또한 하리라고 여겼지만, 지금의 세실은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니 그는 후계자가 될 자가 그곳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아이이길 바랬다.

셰인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겼다.

"너라면……. 그곳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두렵다면 가지 않아도 된다.

차마 그렇게 말을 할 순 없었다.

검술은 몰라도 전투에 대한 재능만 친다면 자신 이상.

이전의 그 살벌했던 일격은 결코 요행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으니까.

‘걱정이 드는 건……. 그런 자질을 갖춘 아이에게 가문의 기술을 전가해줘도 되는지에 대한 거겠지.’

이 평화의 시대에 전장에서 생존하는 재능이 필요한가?

그런 재능을 자신이 개화시켜줘도 되는 것인가?

한편으론 두려움마저도 느껴지는 고민을 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질리언에게 업힌 셰인은 제 나름의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전에 밀어냈던 거 마투술이었지?’

마나를 응집시키고 터뜨린다.

마투술의 오리지널이라곤 사용할 수 없는 응용법이나, 마법이나 검술 등에선 어디까지나 거쳐 가는 방식으로나 사용한 것이다.

그것을 주력으로 두는 건 200년 전에도, 그리고 현 시대에도 셰인이 창안한 마투술이 유일할 정도.

그런 기술의 단편이,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경의를 표했던 자의 후손으로부터 엿보이고 있었다.

‘허, 참. 그 자식 나랑 싸우고 이 좀 갈았나보네.’

볼레로 라인하르트.

자신을 패배시켰던 녀석이, 자신과의 싸움을 토대로 하여 그 기술을 후손들에게 구전해온 것이다.

그게 셰인에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에게 쓸모없다고 여겼던 검술에도 어느 정도 배울 구석이 생긴 셈이니까.

‘앞으로가 기대되네.’

싱긋, 미소를 지은 셰인이 자신의 스승이 될 자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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