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0화 (10/255)

의무병의 환생 10화

볼레로 라인하르트.

환생 후 11년이 지난 현재에 있어, 그는 전생에서 ‘스승님’ 다음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자라 할 수 있었다.

그 후손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하고, 뭣보다 한 번뿐인 만남에서의 인상이 꽤나 강렬했으니까.

‘미안하게 됐어. 딱히 원한은 없지만 태어난 집안에서는 이름값 때문에 공을 세워오라 하질 않나, 하늘같으신 폐하께선 너희들을 죽일 놈이라고 말을 하니 내가 뭘 어쩔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는 역사서에서 나왔던 대로 신실한 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경박하다.

책에서 나온 정중함, 근엄함…….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영웅으로서의 숭상을 위해 왜곡된 거라 확신이 들 정도였다.

강함을 제외한다면 어디에나 흔히 널린 어중이떠중이.

하지만 그 강함 하나 때문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된 존재.

카일이 마주했던 제국의 검이란 그런 인간이었다.

‘와, 너 진짜 세다.’

‘지랄하지 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힘이 강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묘하게 파고들기가 어려워. 그런데 방심하면 시도 때도 없이 급소를 노리고 들어와서 어떻게 공략할지 감이 안 잡히고……. 이야, 수준은 낮은데도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은 살면서 처음 보는 거 같네.’

‘감탄을 할 거면 일단 입꼬리부터 내리지 그래?’

‘하하! 이건 내 천성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네. 그건 그렇고, 그렇게 강한데 왜 치유사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야? 좀 더 단련하면 진짜 엄청나질 것 같은데……. 야, 이렇게 된 거 너 내 부하 안 할래?’

‘그쪽에서 나는 야만인 취급인데 부하로 들어가는 걸 허락해 줄 것 같아?’

‘그럼 내가 그쪽 밑에 들어가는 건 어때? 내가 제국을 배신하고 그쪽 밑으로 가는 거야.’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주먹과 칼을 나누는 중에도 방정맞은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평소엔 시답잖게 흘려 넘겼을 말 들이지만, 그 모든 것이 매 순간마다 자신의 살의를 자극했었다.

사람을 살리는 자가 살생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다짐했음에도, 처음부터 그를 죽일 걸 전제로 싸움을 했을 정도로.

‘뭐, 놀리는 것처럼 들려도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말아줘. 나도 널 인정하고 있어서 그런 거니까. 네 기술, 이대로 잊히기엔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들거든.’

마음에도 없는 소릴.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환생을 한 후 그 후손이 쓰는 기술을 본 바. 마투술을 연상케 하는 부분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검술가인 만큼 체술은 어디까지나 보조로 그쳤지만, 그런 보조기술이라도 200년이나 흐르니 큰 발전을 이룬 걸 볼 수 있었다.

그 발전의 결정체가 바로 라인하르트류 무검류.

검을 손에서 떨어트렸을 때를 대비한 기술로, 기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강체술을 기반으로 한 체술 겸 호신술이었다.

"제대로 된 검술을 전수하는 건 이 무검술을 모두 익힌 후로 미루자꾸나."

질리언은 그 무검술을 필두로 교육을 진행하였다.

아직 가문에 속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 셰인에겐 오히려 환영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들에게 무검술은 호신술이자 검술의 기초에 불과하겠지만, 맨손 전투가 기반이 되는 셰인에겐 이 무검술에서 참고할 구색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련할 맛이 있어서 좋네.’

그렇게 무검술을 단련하면서도, 셰인은 개인적인 트레이닝 역시 꾸준히 행하고 있었다.

그런 개인적인 훈련엔 언제나 세실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 * *

"셰인, 괜찮으신가요?"

"……매번 묻는 것도 이제 지칠 때가 된 거 같은데."

"하지만 매번 힘들어 보이는걸요."

"운동이 그럼 힘이 들어야 단련이 되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깊은 호흡.

누가 보더라도 지친 모습이지만, 그건 팔굽혀펴기라는 운동이 누구라도 수월히 할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팔굽혀펴기는 자신의 신체 중 2/3가량의 무게를 전신을 이용해 들어 올리는 전신운동법.

근육이 생기지 않으면 근육이 없는 대로, 근육이 있다면 있는 대로 전신에 일정한 부하가 가해지게 된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체감상 그 어떤 운동보다도 버겁고, 익숙해지더라도 절대로 수월히 할 수 없는 운동이란 거지.’

달리 말하면 상황을 타지 않는 최고의 단렵법인 셈.

때문에 셰인은 훈련 일과 외에도, 여유가 있을 때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팔굽혀펴기를 반복해왔다.

"여, 여기 물드세요. 냉동고에서 차게 식혀서 시원하실 거예요."

"아, 그래 고마워."

셰인이 곧 세실이 가지고 온 물병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물을 마시는 셰인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털어내었다.

차게 식은 냉수가 몸에 들어오니 기분이 훨씬 좋다.

열이 차오른 몸에 냉기란 감초와도 같으니.

그에 흡족히 미소를 지을 무렵, 세실이 멍하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왜 그래?"

"네, 넷!?"

세실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 제 손으로 얼굴을 감추는 세실.

하지만 손가락은 벌어져 있고, 그 시선은 자신의 몸으로 힐끗힐끗 향해지고 있었다.

탈의된 상태의 상반신.

근 1년간 라인하르트 가문의 지도를 받아 성장한 결과, 셰인은 동년배의 소년답지 않은 단련된 육체를 가진 상태였다.

키도 커졌고 팔도 단단한데다, 배에도 차차 복근이 생기는 상태.

세실의 시선은 그런 복근으로 향해지고 있었다.

‘설마 복근이 부러워진 건가.’

이해 못 할 건 없었다.

세실리아는 검술가의 후계자이고, 그 몸에는 발달된 육체에 대한 동경이 존재할 테니까.

"저, 저도 해볼게요!"

근육에 대한 동경을 떠올릴 무렵, 세실이 돌발적으로 팔굽혀펴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셰인의 머릿속에 근육질이 된 세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중에 근실리아가 되진 않겠지?’

그런 엉뚱한 생각이 좀 들긴 했지만 어쨌든.

세실이 팔굽혀펴기에 관심을 가지는 건 셰인에겐 환영할 이야기였다.

팔굽혀펴기는 무산소운동임에도 가슴을 자연스레 넓혀주니까.

런닝처럼 숨을 격하게 쉬지 않으니, 호흡에 문제가 있는 천식환자에겐 안성맞춤의 운동이라 할 수 있었다.

"흐그윽……!"

"무릎대고 해 무릎대고."

세실이 손을 대며 세실의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허리나 등에 손이 닿을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지만, 정작 셰인이 느끼는 건 세실의 몸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리고 넌 기관지가 안 좋으니까 너무 힘주지 마. 자칫 폐에 무리가 가면 호흡 곤란 때문에 발작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네, 네. 기관지……. 폐……."

세실이 셰인의 말을 번복하며 팔굽혀펴기를 이어갔다.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겠지만, 아마 자신이 하는 말 중 상당수는 이해하지 못하고 흘려 넘길 것이다.

이 제국민들은 의학에 관련된 지식이 전부 결여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무지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바로 세실을 매번 방으로 불러들이는 이유였다.

"폐라는 건 여기 가슴 부분에 있는 거야. 심장의 옆에 있는, 그러니까 숨을 쉬는 데에 필요한 부위지."

이후 셰인이 종이에 그린 인체구도를 세실에게 보여주며 강의를 해주었다.

처음엔 검술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근육이나 뼈 등을 중점으로 가르쳤다.

질리언도 이 점에 대해선 교범을 잘 읽었다, 정도로 생각하며 넘어갈 뿐.

그리고 1년이 지난 근래부턴, 교범에도 나오지 않는 ‘장기’와 관련된 부분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나 세실의 질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이 폐는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위야. 흔히 갈비뼈라 불리는 곳에 보호를 받고 있는데, 체내에 받아들인 산소를 혈액에 스미게 만들고 혈액의 순환작용에 따라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를 날숨을 내쉴 때에 배출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지. 운동을 할 때에 숨이 차는 이유는 혈액의 순환속도가 빨라짐으로써 몸이 산소를 운반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기 때문인데……."

구구절절 이어지는 설명.

세실은 그것을 의자에 앉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가, 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말았다.

"어쨌든 네가 앓고 있는 천식은 이 중에서 폐와 이어져 있는 기도 부근에 알레르기 반응에 의해 협소해져서……. 왜 그래?"

"아, 그……. 그게……."

세실이 셰인으로부터 시선을 회피하며 우물쭈물하였다.

설명이 어려운 것일까?

아니, 골격이나 근육에 대한 설명은 그래도 잘 따라온 사태.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사, 사람의 몸 안은 이렇게 생긴 건가요?"

인체구도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잇는 세실.

종이에 나타난 것은 이제까지의 골격구조와는 다른, 온갖 장기가 뒤엉켜 만들어진 괴상망측한 그림이었다.

셰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의 몸 아래쪽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이런 특징을 띠고 있지."

살가죽 아래, 근육의 아래, 뼈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장기들.

저마다 도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이 부속들은, 사실상 생물이 생물로써 살 수 있게 해주는‘근본’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외면을 중시하는 일반인에겐 와닿지 않을 터.

세실 역시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인체모형이 있었다면 설명이 더 쉬웠겠다만.’

사람의 신체 내부를 표현한 마네킹은 교육용으론 정말 유용하다.

하지만 그런 걸 현 제국에 들인다 쳐봐라.

이단자들의 부두의식에 쓰이는 불경한 물건으로 오해 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어쨌든 너는 여기 부분에 문제가 생긴 거야."

이후 셰인이 목 부분을 가리키고, 그 옆에 기도를 형상화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보통의 기도와 달리 세실의 기도는 매우 협소한 상태.

알레르기성 반응에 의해 염증이 도져 살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피부라면 그저 가려운 정도로 끝나겠지만 기도는 엄연히 호흡과 직결된 부분.

그 부분의 관리가 되지 않았을 때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반대로 잘 관리를 하면 어느 정도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지. 이 기도 부분에 항생성분이 있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알레르기에 의한 발작증세를 완화시키면 호흡도 편해질 거야."

"그, 약이란 걸 지속적으로 쓰면 회복할 수 있는 건가요? 신성력으로는 전혀 나아지질 않았는데……."

"나을 수 있어, 충분히."

그걸 위해 1년 간 천식약의 제조법을 연구했다.

남들에겐 알리지 않고 혼자서 은밀하게.

전공이 아니었던 만큼 더욱 고생했지만, 어쨌든 현존하는 재료로도 천식약을 만들 수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제 필요한 건 재료를 모으고 약을 투입해 상태를 지켜보는 것 뿐.’

이내 평소의 교육을 끝마친 셰인이 옷장에서 외출복을 꺼내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은데 영지로 내려가 봐도 될까?"

"아, 그럼 저도……. 콜록!"

일어서기 무섭게 기침을 하는 세실. 셰인이 등을 다독여주다 어깨를 꾹 눌러주었다.

"세실 넌 성에서 쉬고 있어. 어차피 잠깐 나갔다 오는 거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

혼자 나간다 해도 별 일은 없을 것이다.

500년 전통의 검술명가, 그를 따르는 기사단은 영지 곳곳에 배치되어 치안으로는 제국 내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니까.

"하지만 영지에 내려가 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아."

확실히 근 1년 간 성에 지내면서 했던 건 공부와 단련, 그리고 세실의 몸상태를 봐주는 것뿐이었다.

거주지만 해도 성인데다 앞마당은 숲 하나를 통째로 쓸 정도.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았던 만큼 영지로 내려갈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몸이 안 좋은 세실에게 동행해 달라 할 순 없고…….’

하지만 레시피의 설정이 끝난 이상 미룰 수도 없는 법.

그에 어찌 할까 고민을 하는 가운데 세실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 분을 한 분 소개시켜드릴게요."

"소개?"

싱긋, 세실이 활짝 웃었다.

마치 자신이 소개시켜줄 자를 셰인이 마음에 들어 할 거라 확신하듯이.

하지만……

* * *

"오늘 하루 셰인 도련님의 안내역을 맡은 일라이 덴이라고 합니다."

정작 세실이 소개해 준 여인을 마주했을 때, 셰인이 느낀 건 거북함과 낯설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