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2화 (12/255)

의무병의 환생 12화

‘납을 금으로.’

연금술은 그러한 발상에서 시작된, 물질의 탐구와 그 지식을 통한 변형을 추구하는 일을 총칭하는 학문이었다.

이는 모든 사물은 본래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교리에 반하는 것이나, 본래 제국은 마도를 기반으로 한 문명을 쌓아올린 상태였다.

마법의 근간이 되는 연금술 역시 어쩔 수 없이 허가된 상태.

탐구를 추구하는 분야에서 금지된 것은 생물이 지닌 형태를 왜곡시키는 생물학과, 그와 연관되어 있는 약학이었다.

‘교쟁이놈들은 이 세계가 완벽하다고 믿고 있으니까, 거기에 손을 대는 건 해괴하고 불경한 짓이라 여기는 거지.’

그걸 배척해야 하는 이유로 인체실험이나 동물과 인간을 섞어 만든 인간 키메라. 그리고 독극물 등을 이용한 생화학 테러들을 예로 들기도 한다.

그것들이 인륜을 져버린 짓임은 셰인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그건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일 뿐.

그런 단편적인 결과로 모든 걸 금지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자기들도 수십 년 전까진 마녀사냥 신나게 벌여댔으면서.’

그런 모순을 견디는 것이 종교라는데 어찌 우습지 않고 배길까?

-딸랑.

이내 셰인이 일라이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자리한 다수의 광물과 책, 그리고 약초.

안쪽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자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셰인을 응시했다.

"아 뭐야, 어린애인가?"

"현 라인하르트 공작가에 손님으로 머무르시는 분입니다."

옆에 있던 일라이가 셰인을 대신해 소개를 해주었다.

가슴께에 매어진 브로치는 라인하르트 가문의 소속임을 증명하는 것.

가게의 주인이 그것을 눈으로 훑어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이거 살다보니 귀하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는 날을 다 보는군. 볼 건 없지만 천천히 구경하다 가시죠~~"

그리 말하곤 남자가 마저 신문을 읽어댔다.

가게를 운영하는 것치곤, 그것도 귀족을 마주했다기엔 꽤나 방정맞은 태도였다.

아마 이제까지 손님과 마찰을 자주 빚었기 때문이리라.

‘연금술이 합법이라도 혐오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예의상으로나마 물건을 사고 갈 명분이 생겼다.

이후 셰인이 가게의 물품을 둘러보려던 중, 문득 코끝에 퀴퀴한 냄새가 맡아지는 것을 자각했다.

신문에 가려진 남자의 입에서부터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주인의 입에 파이프 담배가 하나 물려진 것을 보게 되었다.

파이프 담배.

내부에 연초를 넣고 태우고, 연기를 머금어 태우는 기호품이다.

셰인이 관심을 가진 건 그중 남자의 입에 물려진 물건이었다.

"저기, 그 담배……."

"떽."

관심을 가지며 다가서려는 순간 일라이가 손날로 셰인의 머리를 때렸다.

아프진 않았다.

그저 너무 갑작스러워 당혹만이 느껴질 뿐.

눈을 둥그렇게 뜨며 올려다보자, 일라이가 셰인을 향해 충고하듯 말했다.

"도련님. 담배는 헌법상 성인식을 치른 이후의 어른들에게만 허락되는 물건입니다. 도련님께서 담배를 피우시기엔 아직 이른 나이이니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그게……."

"떽."

다시 손날로 툭 치는 일라이.

상급자에게 야단을 치는 격이지만,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이 담배를 태우고 싶다 오해한 게 서글플 뿐.

"담배를 태우고 싶은 게 아니라, 저런 걸 어디서 만드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세실을 위한 장난감이라도 하나 선물해주고 싶어서."

"아가씨를……. 위해서?"

잠시 눈을 껌뻑이는 일라이.

이내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 거라면 괜찮겠죠.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도련님께서 주신 선물을 아가씨께서 마다할 리는 없을 테니."

그리 말한 일라이가 셰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 주인을 위하는 마음을 갸륵히 여긴 듯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셰인은 서로 같은 사람을 위한다는 부분에서 유대감이 생긴 것을 느꼈다.

‘장난감이 아니라 엄연히 치료에 쓸 도구지만.’

셰인은 파이프 담배로 마저 관심을 향했다.

머릿속엔 아이헨발트에 있었을 적 사용했던 흡입기의 형태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영지는 넓었지만, 일라이의 안내를 통해 노을이 지기 전 필요한 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을 모두 꿰게 되었다.

덤으로 파이프 담배와 같은 수제 도구를 만들어주는 장인도.

그에게 설계도를 부탁하면 머지않아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줄 것이다.

"슬슬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는 성에 도착하고 난 후로 미루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직 돌아가기까지엔 거리가 머니까요."

일라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걸어갔다.

이번 외출에서의 그녀는 호위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으니까.

전직 군인이었던 만큼, 셰인 역시 그녀의 무력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라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따라오는 놈들에게까지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인파를 거닐던 셰인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은은한 마나의 파장.

느껴본 지 10년을 훌쩍 넘긴, 익숙하고도 그리운 감각이었다.

‘4명.’

일라이는 눈치 채지 못했다.

전직 군인에, 현 시대엔 기사들보다도 전장에 익숙한 몸일 텐데도.

‘아니, 이곳은 전장이 아니니까 당연한가.’

위병도 곳곳에 배치된 만큼 어느 정도 긴장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뭣보다 그들의 은밀함도 상당한 편이니.

"도련님, 마침 거리에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만……."

일라이는 마침 광대들의 공연에 시선이 팔려있었다.

벗어나기 딱 좋은 때이다.

셰인이 제 기척을 숨기고, 은밀히 인파 사이를 거닐어 골목길로 들어섰다.

알려줄 수도 있지만 괜히 나서게 하고 싶진 않았다.

‘기껏 즐기고 있는데 험한 일 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노리는 건 나일 테니까.’

그래, 분명 자신이 목적이다.

서자라곤 하나 골드리안 가문의 자식, 거기에 더해 라인하르트 가문과의 연결고리도 생긴 참이다.

다른 귀족들, 혹은 그들에게 사주를 받은 조직……. 노릴 만한 자들은 차고도 넘친다.

중요한 건 당장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가다.

단순한 미행인지, 아니면 기회를 봐서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그건 무대를 만들어주면 알 수 있겠지.’

이내 골목길에 들어선 셰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인적도 드물고, 번화가로부터 거리도 있는 곳이다.

공연으로 소란스럽기까지 하니, 폭탄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이목이 집중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은밀함을 일삼는 자들이 그런 소란을 벌일 리 없을 터.

"미행을…… 눈치 챈 건가?"

골목길에 방치된 상자의 그림자로부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수상쩍은 여성.

그 외에 다른 곳에도 마찬가지.

지붕이나 벽, 하수구 등등. 몇몇 이들이 거리로 나와 셰인의 주변을 포위하였다.

숫자는 총 네 명.

셰인이 감지한 것과 같은 숫자다.

"이런 거에 좀 민감한 체질이라서."

"눈치를 채고도 시종과 떨어지다니. 제 사람을 잘 챙기는 도련님인가보군."

그런 게 아니다.

전성기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녀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섭외한 이유가 시종일이 아닌 기사단의 고문인데다, 후계자의 단련을 맡을 정도로 공작의 총애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기에 나선 건 그녀가 아직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막상 오긴 했는데 이놈들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셰인은 기본적으로 불살을 지향하고 있다.

의사가 살생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는 철칙 때문.

불가피하게 죽여야 한다면 모를까,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죽이지 않고 넘어가는 걸 선호하고 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가까운 사람이 자길 지킨답시고 손을 더럽히는 건 보고 싶지 않다.

혼자서 처리하려고 한 건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자신감 있게 여기까지 왔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네. 지금도 내가 그걸 지향할 수 있을지.’

전생엔 전쟁터라 한들 여유가 있던 몸이지만, 지금의 그는 11살의 어린아이다.

약한 만큼 손대중은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을 터. 제 몸을 간수하지 못한다 여겨지면, 눈앞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도 고려해야만 한다.

‘이걸 어째야 하나.’

속으로 끙끙 고민을 하는 셰인.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그들이 서로 쑥덕이기 시작했다.

"역시 예사롭지 않군. 라인하르트가 후계자로 점지할 만한 아이이니 당연한가?"

"마냥 가문만을 믿은 애송이는 아니라는 거겠지."

"하지만 결국엔 어린아이가 아닌가? 고전할 순 있어도 제압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이 쪽은 너무 나약해서 제압과 살육 자체를 고민하는 마당에, 저 놈들은 태평하게 자기를 잡아가는 걸 전제로 삼고 있다니.

‘괘씸죄 추가.’

선두로 오는 놈은 일단 반죽음 확정이다.

"얌전히 따라와라. 순순이 응해준다면 험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탁.

다가온 녀석의 손이 셰인에게서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허해진 몸뚱아리에, 질끈 틀어쥐어진 셰인의 두 주먹이 겨누어졌다.

"무슨……."

-파파팡!!

말문이 난타음에 삼켜졌다.

체내의 마나를 탄성으로 전환해 가한 터무니 없는 속도의 난격.

그 모든 공격은 정확히 적중대상의 급소와 관절부를 두드렸다.

"커흑!"

그 난타에 적중한 녀석이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그를 보며 경악을 표하는 나머지 셋.

"한 놈."

정작 셰인은 호흡을 다잡으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일 뿐이었다.

"뭐해? 안 덤비고. 이쪽에서 들어가랴?"

고작 11살의 어린아이가 자신들의 동료를 제압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검술 명가의 후계자로 점지된 인물이니까.

"……죽이지 말고 제압해라. 팔다리 한두 군데 정도는 잘라도 상관없어."

각각 손에 쥔 건 단검, 블랙잭, 접이식 단창…….

하나같이 휴대가 편하고 숨기기 좋은 물건들이다.

평가는 딱 그 정도였다.

무기를 통한 대략적인 포지션의 분석.

그건 결코 셰인에게 투항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휘학!

단검을 쥔 녀석이 빠르게 접근해온다.

마나에 의해 벼려진 칼날.

어지간한 강체술이라면 그대로 찢어버리고 살을 벨 정도지만, 셰인은 그런 칼날에 제 손을 그대로 가져갔다.

놀란 암살자가 잠시 움츠렸지만, 셰인의 작은 손은 칼날에 베이지 않았다.

아니, 흘려보냈다.

팔에 감도는 마나의 회전에 의해.

그렇게 경로가 미세하게 비틀어진 순간, 셰인이 손바닥을 펼쳐 놈의 손목을 잡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마투술-회절.’

기사들이 검이나 방패를 이용해 사용하는 ‘패링’과 같은 기술로, 다가오는 공격의 궤적을 비틀고 밀어내 자세를 키우는 호신기다.

그리고 마투술은 이 흐름을 방어에서 공격으로, 연계를 이어가는데 특화된 체술이다.

-퍼엉!!

몸의 회전과 동시에 이루어진 원인치 펀치.

그 주먹에 실린 마나가 폭탄이 되어, 칼을 휘두른 녀석의 하복부를 꿰뚫었다.

‘강하다!’

밀려난 제 동료를 본 자객이 떠올린 생각.

하지만 주저하진 않는다.

세간에는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그 천재를 누구보다도 곁에서 지켜본 이들이었으니까.

‘포위해서 제압한다!’

쓰러진 동료의 옆을 지나친 녀석이 단창을 휘둘러왔다.

그 순간 블랙잭을 든 녀석이 측면을 가로막아 도주경로를 차단.

마침 상대는 단검을 쥔 녀석에게 반격을 가하여 자세가 크게 벌어졌다.

이 콤비네이션을 막아낼 방법은 없으리라.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셰인의 뒷다리가 축을 돌렸다.

-휘학!

그 순간 머리를 노리듯 이어지는 돌려차기가…….

아니, 머리가 아니다.

그대로 위를 향해 날아오른 발은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무릎은 굽혀지고, 그대로 자신의 손에 쥔 창대를 휘어감은 상태로.

-퍼엉!!

무기를 휘어감은 다리를 고정시키고, 당기는 힘에 의해 무기가 추락하기 전 몸에 어린 마나의 성질을 탄성으로 바꿔버린다.

그러한 탄력에 의해 이루어진 올려차기의 속도와 위력은, 그저 마나를 터뜨려 가속했을 때와 비교를 거부하는 수준에 이른다.

"카학!"

부서진 턱뼈에서 뿌리 뽑힌 이빨이 산발한다.

의식을 잃기 전, 적중한 자의 머릿속엔 고통과 경악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 뭐냐 저건!’

상대의 무기를 고정대로 삼아 발차기를 가하다니,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미 셰인은 자신이 휘두르는 블랙잭을 교묘히 피하며 제 양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강체술에 보호되고 있는 팔을 양손으로 휘어 감싸고.

-우지끈!

그 팔이 셰인의 손이 움직이기 무섭게 비틀어졌다.

"크학!!"

팔꿈치의 관절이 뽑혀나갔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생생한 고통.

그에 휘둘리며 괴로워하는 녀석을 마주한 셰인이 자신의 손을 치켜세웠다.

"그거 아냐? 마나로 아무리 몸을 단단하게 굳혀도 관절기는 못 막는 거."

"무, 무슨……."

"관절 부분까지 단단히 굳히면 애초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잖아.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이익! 얕잡아 보지 마!!"

이윽고 녀석이 남아 있는 한 손을 휘둘렀다.

손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으로 보아 마법을 쓴 듯했지만,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건 상대만이 아니었다.

파즉! 벌어진 손에서 튀어 오르는 전류.

그 공격이 화염이 뭉쳐지는 손을 보다 빠르게 가로질러, 녀석의 가슴팍에 적중하였다.

"아부바르라라락!!"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한 자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제세동술.

절개술과 마찬가지로 의료용 기술로, 정지된 심장의 신경을 다시 자극하여 심정지를 회복시키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위력을 조금만 조정하면 대상을 마비시키는 호신기로도 쓸 수 있지만, 절개술과 마찬가지로 전투용으로 써먹는 기술은 아니었다.

전장에선 이 정도 출력에 제압당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으니까.

분명 그럴 터였지만…….

"이야, 이 시대에는 이 정도만 되도 칼밥 먹고 살 수 있다 이거지?"

손대중이 어렵다곤 하지만 이런 ‘허접한’ 놈들의 목숨을 걱정했다니.

제 처지가 괜스레 우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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