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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3화 (13/255)

의무병의 환생 13화

전쟁을 했을 때엔 어땠는가.

제 휘하의 부하들에게 가급적 사람을 죽이지 말라 가르쳤지만.

대부분은 전장에 나가면 옆구리엔 아군을, 반대쪽 손엔 적군의 모가지를 들고 오고는 했었다.

그런 시대였다.

적에게 자비를 내리는 것조차도 버거운 시대.

셰인은 그런 시대에서도 손대중을 해왔던 자였다.

‘평화의 시대라곤 하지만 그 때랑 기량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니냐.’

절박함, 처절함, 광기…….

그런 시대를 물들이는 개념이 개개인의 강함으로도 직결될 수 있음을, 셰인은 환생 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물론 전쟁이건 평화건, 칼 들고 달려든 놈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지만.

"야, 니들 누가 고용했냐?"

셰인이 처음 달려들었던 자객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후드에 감싸여진 것은 흑색의 피부에 적발을 지닌 여성이었다.

"큭, 죽여라."

"허허, 포로로 잡힌 여기사나 할 법한 말을 하시네."

하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불살주의자였다.

강함의 척도란 학살이 아닌 손대중에서 비롯된 것. 그러니 아무리 적이라도 자기보다 약하면 살려는 준다.

반대로 살려두기만 하면 ‘뭐든’ 해도 된다.

그건 의사보단 군인의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도 주동자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왜 죽이겠냐? 일단 왼팔 분리시키고 시작한다."

"뭐, 무슨…… 끄아아각!"

뿌드드득.

셰인의 작은 손이 맞닿은 부분의 뼈에서 굉음이 일었다.

어깨나 팔꿈치 정도가 아니다.

팔과 손을 이루는 다수의 뼈의, 그 이음새와 연골 부위를 비틀어버린 것이다.

그건 손톱을 뽑거나, 가죽을 벗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동반된 일이다.

"아그, 아아아악!!!"

"이 정도로 엄살 부리지 마. 내 고향의 고문전문가들은 이것보다 더 끔찍한 걸 잘 알고 있거든."

제 조국의 고문전문가들은 전원이 의사 출신이었으며, 그렇기에 인간의 신체에 어떻게 하면 고통을 더 줄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 잔혹성에 한해선 제국의 이단심문관들을 넘어서는 수준.

외과의에 불과한 셰인이 하는 짓은 그들에 비하면 겉핥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말할 마음이 들었어?"

그 보잘 것 없는 기술만으로 표적이 된 여자가 울상을 지었다.

콧물과 눈물에 추하게 범벅이 된 얼굴에 입에서 침이 주룩 흐르기 까지.

"오……

그렇게 고통을 표하면서도 여인의 눈엔 체념의 감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오시면, 안 됩니다 공주님……."

그 눈에 그려진 건 누군가를 향한 걱정이었다.

-샤학!

그 순간 배후에서 덮쳐오는 살기.

이제껏 마주했던 잔챙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 감각은 셰인으로 하여금 ‘전생의 감각’을 되새기기에 이르렀으니…….

"오~ 이걸 피하네?"

이윽고 뒤로 물러섰을 무렵, 누군가가 쓰러진 여인을 앞두며 감탄을 흘렸다.

단검…….

아니, 수리검이란 무기를 쥐고 있는 말총머리의 소녀였다.

탱크탑에 핫팬츠라는 노출도 높은 복장.

야수처럼 날카로운 호박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입가엔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셰인이 놀란 이유는 이질적인 외형도, 이곳에 난입한 자가 동갑내기 소녀라는 점이 아니었다.

‘이 꼬맹이가…….’

직접 베이진 않았지만 몸에 둘러진 마나가 흐트러졌다.

조금만 고개를 늦게 비틀었어도 제 목은 저 칼에 갈라졌으리라.

‘그래, 이 시대에도 천재는 존재한다 이건가.’

셰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방금 당한 녀석들을 보고 한심하다 생각한 참이거늘, 저 소녀는 빈틈을 노렸다 한들 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조금만 더 정확했어도 자신을 죽인다는 위업을.

"대단하네~ 진짜로 죽일 기세로 내지른 거였는데."

감탄을 한 건 셰인만이 아니었다.

난입한 소녀역시, 자신의 살기를 감지하고 회피한 셰인에게 감탄을 느끼고 있었다.

셰인에겐 썩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 건 속으로 말해라 꼬맹아."

"꼬맹이?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그쪽은 몇 살이길래 나한테 꼬맹이라고 부르는 거야?"

"……일단은 11살이지."

"나는 10살! 그럼 그쪽이 오빠네~!"

소녀가 그리 말하며 손뼉을 쳤다.

언동은 유쾌하지만, 가느다랗게 뜨여진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1살 많다고 나보다 오래 살 거란 보장은 없겠지만……."

말장난이 아니다.

저 소녀는 자신을 죽일 수 있다.

이전의 공격은 거기에 확신을 가지기에 충분한 것. 셰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소녀를 살폈다.

‘마나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아.’

라인하르트 공작이나 그 휘하의 기사들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보다는 한 단계 위.

엄연히 귀족 태생에, 마나를 다루는 법에 숙달한 셰인보다도 ‘재능’자체는 뛰어나단 것이다.

"너, 설마 황제의 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아닌데?"

"……그런데 제 부하한테 잘도 ‘공주님’소리를 듣네."

이 대륙에 나라라곤 제국 하나뿐인데.

"집안사정이라고만 말해둘게. 애초에 우리가 서로의 사정에 깊게 관여될 만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관여될 사이는 맞지. 누구한테 사주를 받아서 나를 납치감금하려 한 셈인데."

혼담 같은 로망적인 이야기가 아닐 뿐, 부정적인 의미로라도 서로의 사정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힘이 있어야 알아낼 수 있다는 거……. 설명해야 아는 걸까?"

"……꼬맹이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저 능구렁이의 말대로.

서로 적대하는 마당에 사정을 안다는 건, 상대의 주둥아리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래~ 애초에 오빠가 나한테 뭔가를 물어볼 처지는 못 되지. 아무리 라인하르트 가문에서 배웠다 해도 결국 전통 유지를 위해서 배워온 거잖아?"

욱신.

목 부근에 손을 올리자, 소녀가 꺄르르 웃으며 수리검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내가 배워온 건 강체술도 돌파하는 ‘진짜 살수’란 말이지. 신기하지? 보통 강체술이라 하면 어지간한 상위서클 마법도 한 번에 관통하지 못하게 마련인데."

휘휘, 저어지는 수리검에 마나가 깃들어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밸런스가 안정적이고, 그러면서도 예리함이 살아 있는 상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기술은 명검보다 날카롭게 날을 벼릴 수 있는, 자신이 구사하는 절개술보다 더 살수에 특화되어 있다는 걸.

"나는 말이지, 오빠보다 어린 나이대에 무려 마법의 ‘2써클’을 개화한 사람이야. 1써클만 해도 수재 소리를 듣는데, 이 나이에 벌써 2써클이라고~"

대개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마탑에 틀어박혀 마법만 익혀온 사람들이 3써클에 도달한다.

그것도 대개 귀족출신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전문교육을 받아야 13~14세에 1써클을 개화시키니, 10살부터 2써클에 도달했다는 건 셰인의 시대에도 천재라 부를 만한 경지였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의 비전을 이용하면……. 대개 3단계 위의 써클로 펼치는 방어술을 깨부술 수가 있지. 어때, 신기하지?"

2써클로 5써클의 방어술식을 뚫을 수 있다.

소녀는 기회가 된다면 숙련된 강자들을 암살할 만한 재간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인이 사용하는 절개술도 조건을 탈 뿐, 접근과 집중만 허락된다면 8써클 마나로 쓰는 마나실드도 뚫어버릴 수 있다.

지금의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닐 터.

"자, 그럼 오빠에게 한 가지 질문! 2써클에 오빠의 강체술을 뚫어버릴 정도의 칼을 구사하는 나를 오빠가 이길 수 있을까요?"

반대로 자신도 저 소녀를 죽일 수 있지만, 서로를 죽일 수 있는 사람끼리 맞붙는 건 수지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무리겠네. 공교롭게도 이쪽은 1써클이니까."

이내 셰인이 투항하듯 말했다.

써클의 차이만으로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마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차이는 극복할 수 있지만, 상대 역시 그 차이를 극복하는 법을 알고 있는 자니까.

그렇기에 셰인은 저 소녀와의 싸움에서 무조건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금’ 상태로는.

"1써클만 해도 굉장한 거지~ 분명 시간이 지나면 더 엄청난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을 거야! 물론 나랑 만나서 그건 힘들게 됐지만……."

"그래, 굉장해야지. 그 이상은 열리지 말라고 내 쪽에서 의도적으로 틀어막았거든."

"……뭐?"

눈을 껌뻑이는 소녀.

셰인이 제 몸에 손가락을 향하며 말했다.

"써클이 열리면 괜히 일상이 피곤해지니까."

고위급 마법사일수록 운둔생활을 선호하는 건 그들이 책벌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수의 써클이 생성될 시 무의식적으로 끌어들이는 마나에 몸이 버텨내질 못하기 때문.

그 점을 염두에 둔 셰인은 생활의 안정을 위해 경지의 상승을 강제로 틀어막았지만, 그 경지란 필요할 때에 언제든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운 좋은 줄 알아 꼬맹아. 이거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거 아니니까."

이내 셰인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제 몸의 곳곳을 눌렀다.

그리고…….

-쿠구궁.

대지가 전율하며 공기가 무거워졌다.

협소한 골목에 선명히 느껴질 정도의 바람. 아니, 폭풍의 전조.

동시에 그의 몸 곳곳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주변의 시야를 어그러트렸다.

"무, 무슨……."

열기에 의한 게 아니다.

저건 마나의…….

몸이 받아들이는 물리력의 세기가 너무 강하여, 주변에 감도는 빛마저 왜곡되는 현상이다.

"오, 오빠, 1써클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까까진 그랬지."

기가 죽은 소녀를 향해 셰인이 말했다.

"지금은 8써클이야."

이론적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경지를.

-투콰앙!!

그로부터 비롯된 폭풍이 골목길을 대차게 휩쓸었다.

* * *

‘술자의 써클이란 어떤 원리로 생성되는가?’

써클이란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 그 흐름이 고리와 같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마나는 물리력의 덩어리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물에 스미는 힘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만지거나 느끼는 건 가능하다.

빛이 어그러지거나 색이 발하는 등…….

그런 현상이 고리의 형태를 띠는 게 바로 마법사들이 말하는 써클의 정체이며, 고리의 숫자에 따라 그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은 이 써클이 생성되는 이유가, 인간의 신체를 지나는 ‘마력회로’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인간의 신체에는 받아들인 마나가 지나는 길이 있으며, 이 길이 개방될 때마다 써클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 가설을 증명할 방도는 없었지만, 그보다도 더 그럴싸한 가설은 없기에 마법사들 사이에선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대강 그런 결과가 있다고만 염두에 두는 부류의 가설.

그런 마력회로의 존재가 실존함을 밝혀낸 건, 공교롭게도 마법사가 아닌 의사라 불리는 자였다.

‘마나는 어쩌면 우리의 피와 함께 순환하기에 고리의 형태를 띠는 걸지도 몰라요.’

피오 아스클레.

카일의 스승이자, 그보다 앞서 아이헨발트 왕국군 후방지원부대를 이끌었던 자였다.

카일은 제 스승인 피오보다 뛰어난 의사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환생 후에도 그녀를 뛰어넘었다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존경하지 마지못할 스승이지만,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은 존재하고 있었다.

‘……또 무슨 엉뚱한 소설을 읽으신 거예요?’

그건 그녀가 흔히 ‘민간요법’이라 불리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료대국에서 가장 뛰어나다 평해지는 의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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